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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는 25개 자치구와 423개 행정동, 국회의원 선거구는 48개 지역구

草霧 2013. 11. 16. 14:06

 

 

 

 

서울특별시는 25개 자치구와 423개 행정동

국회의원 선거구는 48개 지역구

 

 

 

 

 

 

1. 강남구(江南區)

 

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구. 면적 39.54, 인구 569,176(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삼성동이다. 본래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大旺面)과 언주면(彦州面)에 속하였다. 1963년서울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으며, 성동구 언주출장소와 송파출장소의 관할 하에 있었다. 1975년서울특별시의 구 증설에 따라 성동구로부터 강남구가 분리 신설되었다. 1979년탄천 이동 지역의 명일·고덕·암사·천호·성내동 등을 관할구역으로 하여 강동구가 분구되어 천호출장소가 폐지되었다. 1988년에는 서초구가 분구되었다.

 

이 지역의 대부분은 한강의 침식을 받아 저기복의 구릉지를 이루며, 북쪽의 한강 연안에는 충적층이 발달하고 있다. 동쪽의 탄천은 하안공사가 이루어지고 제방도로가 가설된 상황에서 강 복판으로 자유곡류하며 하구에서 양재천을 만나 한강으로 유입된다. 남쪽에는 대모산(大母山, 293m)·구룡산(九龍山, 283m) 등이 연봉을 이루어 자연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1960년대 말부터 영동개발 붐으로 농촌경관에서 주택지구로 발달하였으며, 저인구밀도에 중·고등학교 같은 교육기관의 신설과 이전으로 주거지역으로서 양호한 조건을 갖추어 나갔다. 최근 사무실용 빌딩의 건설, 각종 연구소 등의 이전, 그리고 백화점·쇼핑센터 등의 집중적인 개점과 건설로 생활여건이 완비되어 가는 주거지역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구청이 자리잡은 삼성동 주변은 아파트단지와 상가가 형성되었으며, 한국종합무역센터·종합전시관·한국전력공사·한국감정원·관세청 등의 주요 기관이 있다. 압구정동은 고급 아파트촌으로 유명하며 쇼핑센터와 백화점 등 강남의 고급 상권을 형성한다.

 

신사동에서 논현동에 이르는 강남대로 주변은 강남구의 중심거리를 이룬다. 또한 도곡·개포·대치·일원·수서동 등은 새로운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개발이 거의 이루어졌다.

 

강북을 잇는 교통수단은 1960년대까지는 한남동나루와 뚝섬나루를 내왕하는 나룻배를 이용했으나, 한남대교·영동대교·성수대교·동호대교 등의 가설로 도심과 바로 연결된다. 또한 현대도시의 주요 교통수단인 자동차 이용에 적합하게 토지이용이 계획되어 주요 간선도로망은 바둑판식으로 직선화되어 있으며, 지하철 2·3·7호선이 연결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역삼동 청동기시대주거지와 삼성동에 선·정릉이 있으며, 전통사찰 봉은사에는 선불당·판전 등이 있고, 백제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삼성동토성이 있다. 그리고 마을의 안위를 비는 동제당들이 역삼동 등에 남아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30개 교, 중학교 23개 교, 고등학교 21개 교가 있다. 삼성(三成신사(新沙논현(論峴압구정(狎鷗亭청담(淸潭대치(大峙역삼(驛三개포(開浦포이(浦二일원(逸院수서(水西도곡(道谷세곡(細谷자곡(紫谷율현(栗峴) 15개 동이 있다.

 

2. 강동구(江東區)

 

시의 동단에 위치한 구. 면적 24.58, 인구 469,021(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성내동이다. 암사동선사주거지에서 보듯 선사시대부터 생활의 터전이고 백제의 위례성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이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龜川面, 1907년에 九川面) 지역으로 한적한 농촌이었다.

 

1963년서울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지역이었던 지역이 성동구에 편입되었으며, 천호출장소가 설치되어 이곳을 관할하게 되었다. 1975년성동구에서 강남구가 분구되자 이에 속했으며, 1979년강남구에서 강동구로 분리, 신설되었고, 1988년송파구가 분구되어 나갔다.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에서 발원한 성내천(城內川고덕천(高德川) 등이 한강으로 합류되며, 그 연안에 넓은 충적지를 이루어 땅이 비옥해 밭농사·논농사 지역으로 이용되어 왔다. 근래 천호동 일대에는 방적·식품·금속·기계 공업이 발달하였다. 특히 암사동은 점촌(店村)이라 하여 도자기 생산지로 유명했는데, 1925년 홍수 때는 옹기를 굽는 이 일대가 모두 물속에 잠겼던 일도 있었다. 광복을 전후해서는 성내동을 중심으로 벽돌·옹기·기와·토관·화분 등을 만드는 대규모의 연와공장이 자리 잡기도 하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해 천호지구와 고덕지구 등의 택지개발사업으로 크게 변모했으며, 점차 인구 증가와 도시 정비가 이루어졌고 생태공원 등 녹지공간을 사려 모범적이며 쾌적한 도시환경을 이루고 있다.

 

한강의 동쪽 끝에 있는 강동구를 강북지역과 이어주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지하철 5호선과 광진교(廣津橋) 및 천호대교(千戶大橋)가 있다. 1976년에 천호대교가 개통되어 천호동과 길동을 거쳐 경기도 도계에 이르는 천호대로가 건설되었고, 이 도로와 맞물리는 여러 갈래의 도로가 신설되었으며, 1999년 잠실역 까지 지하철 8호선의 일부구간이 개통되어 교통을 더욱 원활하게 되었다. 또한 천호대로·풍납로(風納路선사로(先史路)의 교차 사거리인 천호동로터리는 상업중심지역이며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문화유적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선사유적인 암사동선사주거지가 있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유적지 인근 대지 1만 평 위에 움집과 전시관을 복원하고 공원으로 꾸며 현장교육과 관광명소가 되었고 있다.

 

주요 기관으로는 서울시립종합직업훈련원, 한국시각장애자복지회, 암사·팔당수원지, 보훈병원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25개 교, 중학교 16개 교, 고등학교 12개 교, 특수학교 1개 교 등이 있다. 성내(城內강일(江一상일(上一명일(明逸고덕(高德암사(岩寺천호(千戶(둔촌(遁村) 9개 동이 있다.

 

3. 강북구(江北區)

 

시의 동북부의 위치한 구. 면적 23.61, 인구 348,702(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수유동이다.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에 속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노원면을 합친 노해면에 속하였다.

 

1963년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북구 노해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73년 숭인출장소와 노해출장소의 관할지역이 성북구에서 분리되어 도봉구가 신설되자 이에 속하였으며, 1995년 우이천을 경계로 그 서쪽지역을 관할구역으로 하여 도봉구에서 강북구가 분구되었다.

 

지형적으로 서부 산지와 중앙 저지, 동부 산지로 구분되는데, 서부 산지는 백두대간의 철령(鐵嶺) 부근에서 갈라져 서남쪽으로 달리는 한북정맥의 일부이다. 서울의 진산(鎭山)인 삼각산(837m)을 이루는 백운봉(白雲峰인수봉(仁壽峰만장봉(萬丈峰) 등의 암봉이 솟아 있다. 북동쪽으로 흐르는 우이천은 여러 물줄기를 합류하여 중랑천에 흘러든다. 산 아래 낮은 부분은 주택지로 개발되어 있으며, 산세를 이루고 있는 부분은 수도권개발지역·군사보호구역 등으로 남아 있어 비교적 자연이 잘 보호되고 있다. 따라서 공원녹지지역이 강북구 전체 면적의 54.8%에 이른다. 특히 우이동계곡은 무더운 여름철에 서울시민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일찍이 우이구곡(牛耳九曲)으로 아름다운 풍광이 유명하였다.

 

예전에는 중랑천·우이천 연안의 평야를 중심으로 벼농사를 짓고 채소·화훼·과수재배가 이루어졌으나 도시화에 따라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도심개발정책으로 미아동 지역에 저소득층 주민이 집단으로 이주하면서 잡화·의류·가발 등과 하청에 의한 기계·전자부품 생산 등의 가내공업이 한때 활발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일부지역에서 의류 하청공장이 소규모로 명맥을 이어 가고, 번동 지역에는 아파트형 공장에서 봉제·전자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상가는 도봉로 좌우로 길게 형성되어 있으며 수유삼거리와 미아삼거리는 상업중심지이다.

 

남북으로 뻗은 도봉로는 경원가도(京元街道)로서 구의 중심길이며, 길음동에서 우이동으로 연결되는 삼양로(三陽路)는 도봉로의 보조 간선으로 교통난 해소에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최근 우이동과 상계동으로 진입하는 방학로(放鶴路)와 수유리와 월계동을 잇는 한천로(漢川路)가 개통되어 이 지역의 교통불편을 덜어 주고 있다. 한편, 사당동에서 당고개를 잇는 지하철 4호선이 개통됨에 따라 도심과 수원·안산 방향으로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문화유적으로 도선사(道詵寺) 마애관음석불, 화계사(華溪寺) 대웅전이 있다. 그리고 우이동 도선사 길 입구에는 3·1운동 때 민족대표 33명 중 한 사람인 손병희(孫秉熙)의 묘소와 봉황각(鳳凰閣)이 있다. 그 외 김창숙·이준·신익희·여운형·조병옥 등 근대 역사인물의 묘역이 있다. 특히 수유동에는 4·19혁명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민주학도 216명의 넋을 봉안한 4·19묘지가 있는데, 대대적으로 확장공사를 해 19954월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14개 교, 중학교 12개 교, 고등학교 5개 교와 한국신학대학교, 덕성여자대학교 등이 있다. 수유(水踰미아(彌阿(우이(牛耳) 4개 동이 있다.

 

4. 강서구(江西區)

 

시의 서단에 위치한 구. 면적 41.42, 인구 566,495(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화곡동이다. 조선시대 경기도 김포군 양동(陽東양서면(陽西面)에 속했으며, 1963년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영등포구 양동·양서출장소의 관할이 되었다.

 

1968년 양동출장소가 양서출장소로 통폐합되어으며, 1977년강서구로 분구 신설되었다. 그후 목동·신정동·신월동 지역에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어 인구가 급증하자 1988년양천구를 분리 독립시켰다.

 

한강 하류연안의 김포평야에 속하며 한강변에 작은 구릉을 이루고 있다. 즉 평야지대에 낮게 솟은 개화산(開花山, 129m), 수명산(壽命山, 117m), 우장산(雨裝山, 102m), 궁산(宮山, 75m), 까치산(87m) 등이 구릉 산으로 남아 있다. 한강으로 유입하는 가양천(加陽川안양천(安養川방화천(傍花川) 등의 하천이 있어 관개수로로 발달되어 있다.

 

지역 내부는 주택지역·공업지역·농촌지역·개발제한구역·녹지지역 등의 경관으로 뚜렷하게 분화되어 있다. 1963년 정부가 서울 인구를 강남으로 유치하려는 시도로 화곡동에 10만 단지 주택지를 조성한 이후 서울시 서부의 최대 주택지역을 이루고 있다. 그 후 공항로를 중심으로 교육·상업·문화 시설이 발달하였으며, 양천길을 따라 아파트 등 주거시설과 전문상가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가양·등촌·염창동 등지에 많은 공장이 건설되었는데, 주업종은 기계·섬유·화학 등이다.

 

한편, 우리나라 항공교통의 중심지인 김포공항이 있어서 교통량이 많은 곳이다. 김포공항과 도심을 잇는 공항로는 1980년 성산대교가 개통됨으로써 강서구와 경기도 김포시를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생활도로가 되었다. 또한 경인고속도로·남부순환도로가 이 곳을 통과하며, 까치산터널의 완공으로 공항로와 경인고속도로가 직결됨으로써 주변의 교통이 매우 원활해졌다. 또 지하철 5호선간이 지나게 되어 지역주민과 김포공항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문화유적은 약사사 약사사삼층석탑, 양천고성지(陽川古城址), 양천향교(陽川鄕校) 등이 있으며 향교 앞에는 역대 양천현감들의 선정비(善政碑)가 서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34개 교, 중학교 20개 교, 고등학교 21개 교, 특수학교 1개 교 등과 그리스도신학대학교가 있다. 화곡(禾谷염창(鹽倉등촌(登村가양(加陽마곡(麻谷내발산(內鉢山외발산(外鉢山공항(空港방화(傍花개화(開花과해(果海오곡(五谷오쇠(五釗) 13개 동이 있다.

 

5. 관악구(冠岳區)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구. 면적 29.57, 인구 55766(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봉천동이다. 조선시대 경기도 시흥군 동면(東面)이었는데, 1963년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영등포구로 편입되어 관악출장소의 관할이 되었다.

 

1968년 관악출장소가 폐지됨에 따라 영등포구의 직할로 편입되었다가 1973년영등포구에서 관악출장소 관할구역을 중심으로 관악구가 분리 신설되었다. 1980년에는 관악구에서 동작구가 분구 신설되었다.

 

구 전체가 관악산 북쪽 사면에 위치하며 그 사이에 흐르는 도림천 사이로 주거지가 발달해 있다. 서쪽으로 금천구, 동쪽으로 서초구, 북쪽으로 동작구, 남쪽으로 과천시·안양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관악산을 중심으로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이 넓으며, 인접한 영등포구·구로구가 대단위 공업지역인 데 비해 공장지역이 형성되지 못하고, 이 지역의 유휴노동력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의 전자·섬유·가발·농약공장 등이 각처에 분산되어 있다. 도심지역에 견줄 만한 큰 상업권이 형성되어 있지는 않으나, 봉천동사거리와 신림동사거리가 서울대학교와 연계되어 상업중심거리로 발전하고 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상경인구와 철거민의 정착촌 전형을 이루었던 관악구는, 도시재개발사업의 진행으로 짧은 기간 동안에 정돈된 주택지구로 탈바꿈하였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관악산 자체라고 할 정도였으나, 철거민의 정착 이후 1975년 서울대학교가 옮겨옴에 따라 점차 신흥주택지역으로 변하였다.

 

서울 도심부와의 거리가 가깝고 교통수단이 잘 정비되어 있으며, 남부순환로와 지하철 2호선의 개통으로 강남·영등포 지역 등과의 연결이 더욱 신속·원활해졌고, 낙성대길·은천길·난곡길 등이 구 내외를 동서남북으로 연결하고 있어 교통의 요충지를 형성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사당동백요지·봉천동마애미륵불·강사상신도비 등이 있으며, 특히 봉천동에 낙성대와 낙성대 유지가 있어 고려시대에 거란군을 물리친 강감찬의 행적을 살필 수 있는 산 교육장이 되고 있다. 또 중구 회현동에 있던 구벨기에영사관이 남현동으로 옮겨져 있으며, 신림동 굴참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22개 교, 중학교 16개 교, 고등학교 16개 교, 특수학교 1개교 등과 서울대학교가 있다. 봉천(奉天신림(新林남현(南峴) 3개 동이 있다.

    

 

 

 

6. 광진구(廣津區)

 

시의 동부에 위치한 구. 면적 17.05, 인구 386,367(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자양동이다. 본래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의 인창방(仁昌坊)과 남부의 두모방(豆毛坊)에 속했던 곳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성부를 축소시키면서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纛島面)에 편입되었다. 1949년서울특별시의 확장에 따라 성동구에 편입되어, 뚝도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95년 동일로를 경계로 성동구에서 분구되었다.

 

구의 남쪽은 한강에 접하며, 동쪽으로는 아차산을 경계로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과 접하며, 북쪽으로는 중랑구·동대문구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성동구와 접한다. 광진구의 한강변에는 영동대교·청담대교·잠실대교·잠실철교·올림픽대교·천호대교·광진교 등이 놓여져 있어 강남지역과 강북지역을 연결하는 도심의 관문이 되고 있다.

 

자연녹지 지역은 31.4%를 차지하고 있는데 용마봉(348m)을 정점으로 하는 아차산 산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100m 이하의 저지대를 이룬다. 서부 경계의 중랑천과 청계천이 흘러와 합류해 다시 한강 본류에 유입하면서 이룩한 범람원에 해당되는 저지이다. 해발 50m 이상의 지역이 겨우 20%밖에 안 되는 평탄한 충적평지이므로, 시가지 발달과 교통발달에 유리한 지형조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택과 공공기관이 밀집해 있다.

 

교통은 지하철 2·5·7호선이 동서남북으로 지나고, 천호대로·동일로·강변대로·용마산길·아차산길 등의 대로가 나 있어 강남과 강북간의 교통소통이 원활해 새로운 교통의 요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동서울종합터미널이 위치해 있다. 특히 화양동지구는 주변에 건국대학교·세종대학교 등이 있어 젊은이의 거리로 변모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위락시설이 밀집해 있다. 아차산 기슭에는 국제관광시설로 건립된 쉐라톤워커힐호텔이 있다.

 

문화유적은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유강원(裕康園, 순명효왕후 능) 터의 석물 일괄과 아차산성·아차산고구려보루군·낙천정지 등이 있으며, 화양동느티나무는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화양정(華陽亭)은 살곶이목장과 관련하여 세종 때 지어졌던 곳으로 많은 일화와 더불어 그 터가 보존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22개 교, 중학교 12개 교, 고등학교 9개 교와 세종대학교·건국대학교·장로회신학대학교 등이 있다. 화양(華陽모진(毛陳(중곡(中谷구의(九宜광장(廣壯자양(紫陽노유(老遊군자(君子) 9개 동이 있다.

 

7. 구로구(九老區)

 

시의 남서단에 위치한 구. 면적 20.11, 인구 445,095(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구로동이다. 조선시대 경기도 시흥군 지역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 지역은 경기도 시흥군 북면(도림·구로리)과 동면(독산·가리봉·시흥리), 그리고 경기도 부천군 계남면(고척·개봉·오류·궁리) 등에 속하였다. 1936년에는 시흥군 북면의 일부지역을 경성부로 편입해 영등포출장소에서 행정을 담당하였다. 19498월에는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이 확장되면서 경기도 시흥군에 속해 있던 구로(九老도림리(道林里)가 영등포구로 편입되었다. 동부지역인 가산(加山시흥리(始興里) 등은 시흥군 동면(東面)에 속했던 것이 1963년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로 편입되어 관악출장소 관할 내에 속하게 되었고, 서부지역인 소사읍(素砂邑 : 지금의 부천시)의 일부는 오류출장소 관할 내에 속하였다.

 

1980년김포군에서 영등포구로 편입된 오류·고척동 등을 합해 구로구로 분구되었고, 199531일 남쪽지역의 가산·독산·시흥동이 금천구로 분리되었다.

 

동쪽으로 관악산 능선을 경계로 관악구와 접해 있고, 서쪽은 부천시, 남쪽은 안양시·광명시, 북쪽은 도림천을 경계로 영등포구·양천구와 접해 있다. 서쪽으로는 경인선과 경인로를 따라 도시가 발달하였는데 해발 150m 이내의 낮은 구릉으로 되어 있고, 남쪽으로는 안양천과 경부선을 따라 저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구 중앙에 안양천이 흐르며 김포준평원(金浦準平原)으로 이어진다.

 

1971년구로동에 공영주택·간이주택·공익주택 등 1,000여 채가 건축되면서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당시에 구로공업단지의 전신인 구로수출산업단지가 들어섰다. 구로구의 공장지역은 한국수출산업단지가 들어선 구로동과 가리봉동이 중심을 이루었는데, 이 곳은 영등포 공업지역과 연결되어 공장지대로서의 인상이 강화되었다. 근래에 구로동과 이어진 가산동 일대의 공업단지는 시대변화에 따라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면모를 바꾸었다. 구로지역이 공업단지가 된 것은 교통 외에도 풍부한 수자원, 풍부한 노동력, 그리고 저렴한 토지 가격 등의 유리한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공장이 밀집하여 안양천이 오염되어 환경파괴문제가 심각해지기도 하였다. 그 후 공장이 이전되고 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고 안양천 정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환경이 날로 좋아지고 있다.

 

지하철 7호선이 개통되고, 경인·경수간의 철도가 분기되어 출퇴근 때 교통이 편리하고, 오류동 지역에는 시가지가 조성되어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매우 적은 편으로 유진오씨 별장, 원각사, 관음사, 정선옹주 묘, 함양 여씨 묘역 등이 있다. 고척공구상가·구로기계공구상가·중앙유통단지 등 명소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23개 교, 중학교 12개 교, 고등학교 11개 교, 특수학교 2개 교, 동양공업전문대학과 성공회대학교·한영신학대학교 등이 있다.

 

구로(九老신도림(新道林가리봉(加里峰고척(高尺개봉(開峰오류(梧柳천왕(天旺(온수(溫水() 10개 동이 있다.

 

8. 금천구(衿川區)

 

시의 남서단에 위치한 구. 면적 13.01, 인구 264,323(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시흥동이다. 조선시대 경기도 시흥군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시흥군 동면(시흥·안양·신림리) 등이 되었고, 1936년에는 시흥군 북면의 일부지역을 경성부로 편입해 영등포출장소에서 행정을 담당하였다. 1949년에는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이 확장되면서 경기도 시흥군 동면에 속해 있던 구로(九老도림(道林번대방리(番大方里)가 영등포구로 편입되었다. 동부지역인 가산(加山시흥리(始興里) 등은 1963년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로 편입되어 관악출장소 관할에 속하였다. 1980년김포군에서 영등포구로 편입된 오류·고척동 등을 합해 구로구로 분구되었고, 1995년 남쪽지역인 가산·독산·시흥동이 금천구로 분리 신설되었다.

 

동쪽으로 관악구, 북쪽으로는 구로구와 경계를 이루며, 서쪽과 남쪽으로는 서울시의 남서부 경계로서 경기도 광명·안양시에 각각 면하고 있다. 관악산(629m)의 서쪽 기슭에서 안양천에 이르는 지역에 발달된 지역이다. 따라서 금천구는 남동쪽이 높아 해발 390m에 이르며 북서쪽으로 갈수록 낮아지고, 서쪽에는 안양천이 북으로 흘러 한강에 합류한다.

 

1968년에 한국수출산업단지 제2공단, 1973년에 제3공단이 가산동에 들어서고 인근에 많은 공장과 주거지역이 밀집해 있어 공기오염 등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공단이 들어서면서 근로자들의 숙소로서 이른바 벌집 또는 닭장집이라고 하는 주택이 건립되기도 하였다. 그 후 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고 안양천 정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환경이 날로 좋아지고 있다.

 

시흥대로가 구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고, 남부순환로가 동서방향으로 지나며, 서부간선도로가 서해안고속도로와 이어져 도로교통이 발달해 있으며, 경부선 철도가 남북으로 구의 서쪽에 안양천을 따라 놓여 있어 철도교통도 편리하다. 이러한 철도와 도로망의 발달은 서울의 남서쪽 제일 바깥부분에 치우쳐 있는 금천구의 지리적 입지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지방을 잇는 교통상 요지가 되고 있다.

 

시흥대로를 중심으로 도로변 시가지화된 지역에는 일찍부터 주거지가 발달해 있으며 서울디지털산업단지가 있는 가산동은 타지역에 비해 도로망이 넓게 발달하였다.

 

서울특별시의 전체 면적 6052.2%를 차지하는데, 이는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면적이다. 이 지역에는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산업단지에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거주함으로써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문화유적은 순흥안씨양도공파 묘군, 호압사 석약사불좌상, 한우물 및 주변호암산성지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18개 교, 중학교 9개 교, 고등학교 6개 교가 있다. 가산(加山독산(禿山시흥(始興) 3개 동이 있다.

 

9. 노원구(蘆原區)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구. 면적 35.42, 인구 621,192(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상계동이다.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海等村노원면(蘆原面)에 속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면을 합친 노해면(蘆海面)에 속하게 되었다. 1963년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어 노해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3년성북구에서 분구된 도봉구에 속하게 되었다. 1988년도봉구에서 노원구가 분리 신설되었다.

 

서쪽으로 도봉구, 북쪽으로 의정부시, 동쪽으로 남양주시 별내면, 남쪽으로 중랑구와 접해 있다. 지형적으로 서부 저지와 동부 산지로 구분된다. 서부는 월계·번동 등의 구릉지를 제외하면 마들평야의 낮은 지대를 형성한다. 이 저지대의 중앙에 한천(漢川, 중랑천)이 흐르는데, 서쪽의 우이천(牛耳川)과 동쪽의 태릉천(泰陵川)을 합류하여 한강으로 유입된다. 동부 산지에는 불암산과 수락산이 있다. 이들 산지의 서쪽 사면과 산록에 있는 동네가 상계·중계·하계동이다. 수락산·불암산의 안부(鞍部 : 산마루가 말안장처럼 움푹 들어간 부분)가 덕릉현(德陵峴, 덕릉고개)이며, 이 곳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는 당현천(堂峴川)은 많은 토사를 퇴적시키면서 한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서울과 의정부시를 연결하는 도봉로와 마들평야를 관통하는 동일로(東一路) 연변에 새로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시가지가 조성되었으며, 북쪽으로 개발제한지역과의 사이에 있는 농경지가 시가지개발의 확장으로 계속 잠식되고 있다.

 

상계·중계·도봉동 지역은 재개발계획 등에서 철거된 주민들의 이주정착지로 배정되어 영세주민의 밀집지역이 형성되었다. 1960년경부터 시작된 도심재개발사업으로 철거당한 주민들이 이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1970년대 초부터 시가지가 크게 확장되면서 택지화되어 주택건설이 활발해졌다. 계속된 아파트의 계속 신축으로 현재 서울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구가 되었다.

 

1911년에 부설된 경원선이 지나는데, 지하철 1호선과 연계되어 기존의 성북역·창동역 외에 월계역·녹천역이 신설됨으로써 도시교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 성북역에서 서울교외선·경춘선이 분기하며 지하철 4·7호선이 완공되어 도심과의 교통소통이 더욱 원활해졌다.

 

산수가 수려한 수락산·불암산 등에는 유적이 많이 분포해 있어 서울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가 되었다. 공릉동에는 국제사격장과 실내수영장, 태릉스케이트장, 공원시설을 갖춘 유원지 등이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다. 아울러 이 곳에는 1971년에 세운 태릉선수촌과 태릉골프장이 있으며, 주변의 갈비집·배밭 등이 유명해 주말에 서울시민이 여가를 위해 즐기는 곳이었는데, 이제 거의 다 아파트 공간으로 변하였다.

 

문화유적은 문정왕후 윤씨의 태릉,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를 합장한 강릉이 있다. 육군사관학교 내에는 삼군부 청헌당·연령군신도비가 있으며, 하계동에는 한글고비가 있다. 또 월계동 각심재와 이명신도비, 초안산조선시대분묘군, 충숙이공신도비와 영정 등이 있다. 수락산·불암산 기슭에 학도암·불암사·흥국사·석천사·수락사·내원암 등의 많은 사찰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42개 교, 중학교 26개 교, 고등학교 25개 교, 특수학교 1개 교, 인덕대학·육군사관학교·서울여자대학교·삼육대학교·광운대학교·서울산업대학교·한국성서대학교 등이 있다. 상계(上溪중계(中溪하계(下溪월계(月溪공릉(孔陵) 5개 동이 있다.

 

10. 도봉구(道峰區)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구. 면적 20.70, 인구 378,559(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창동이다.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에 속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노원면을 합친 노해면에 속하게 되었다. 1963년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어 노해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1973년 숭인출장소와 노해출장소의 관할지역을 통합하여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분구 신설되었다. 1988년에는 노원구가 분리되어 나갔다.

 

구의 동쪽은 노원구, 서쪽과 남쪽은 강북구, 북쪽은 양주시·의정부와 접해 있다. 지형적으로 서부 산지와 중앙 저지로 구분되는데. 서부 산지는 백두대간 철령 부근에서 갈라져 서남쪽으로 달리는 한북정맥이며, 서울의 진산인 삼각산과 도봉산 사이의 준령이 뻗어있다. 중앙 저지는 우이천과 도봉천이 흘러 중랑천으로 합류된다. 남쪽은 서울의 시가지에 연속되는 주택지구이고 북쪽은 산림지로 되어 있다. 과거에는 중랑천 연안의 평야를 중심으로 벼농사가 잘되고 채소·화훼·과수재배와 양계·양돈·육우사육 등이 활발했으나, 도시화에 따라 거의 아파트단지로 변하였다.

 

노동력이 풍부해 잡화·의류·가발 등과 하청에 의한 기계·전자부품 생산 등의 가내공업이 횔발하다. 또 도시화 이전에 공업이 발달했던 창·도봉동 일대는 섬유·화학공업의 비중이 크다. 상가는 도봉로 좌우로 길게 형성되어 있으며 수유삼거리와 미아삼거리는 상업중심지가 되고 있다.

 

남북으로 뻗은 도봉로는 구의 남북으로 통하는 중심 길이며, 우이동과 상계동으로 진입하는 방학로(放鶴路)와 수유리와 월계동을 잇는 한천로(漢川路)가 개통되어 이 지역의 교통 불편을 덜어 주고 있다. 그리고 신흥 주택지 개발에 따른 시루봉길·해등길·쌍문동길·노해길·창동길 등이 정비되어 교통을 원활하게 해주고 있다. 또한 지하철 1호선과 연결되는 국철과 사당동에서 상계동을 잇는 지하철 4호선이 개통됨에 따라 도심으로의 진입이 원활해졌다.

 

문화유적은 도봉동에 천축사(天竺寺도봉서원(道峰書院)이 있으며 도봉계곡에는 빼어난 암각글씨가 있고, 방학동에는 연산군의 묘소와 양효안공신도비부묘소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23개 교, 중학교 13개 교, 고등학교 10개 교와 덕성여자대학교가 있다. 쌍문(雙門방학(放鶴도봉(道峰() 4개 동이 있다.

    

 

 

 

11. 동대문구(東大門區)

 

시의 동부에 위치한 구. 면적 14.20, 인구 385,825(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신설동이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의 숭신방(崇信坊)과 인창방(仁昌坊) 및 남부의 두모방(豆毛坊) 지역이었는데, 1914년창신·숭인동 외의 지역은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崇仁面)으로 편입되었다. 1936년경성부의 확장으로 경성부에 편입되어 동부출장소의 관할 내에 속하였다. 1943년 각 출장소를 폐지하고, 구제(區制)를 실시하면서 동부출장소 관할지역에 동대문구와 성동구를 구분, 설치하였다. 1949년동대문구에서 성북구가 분구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의 행정구역 변경을 거쳐 1988년중랑구가 분구되어 나갔다.

 

동쪽은 중랑천을 경계로 중랑구, 서쪽은 정릉천(貞陵川)을 경계로 종로구, 남쪽은 정릉천을 경계로 성동구, 북쪽은 천장산 능선을 경계로 성북구와 접해 있다. 천장산 기슭과 중앙의 배봉산 지역이 산지를 이루고 정릉천·중랑천 유역에는 장안평의 평야가 발달하였다. 장안평은 중랑천 연변의 평지를 이루고 있어, 도심의 팽창에 따라 농경지에서 아파트 주거단지로 변하였다. 그리고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동부 부도심(副都心)의 저지대는 평탄한 지형 때문에 인문(人文)이 발달하기에 좋은 자연환경을 이루고 있다. 철도와 도로망이 사방으로 통하고 주변에 상가가 밀집해 있으며,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인구의 조밀화와 상업기능의 집약화를 가져왔다.

 

인구가 조밀한 지구는 전농동을 비롯해 이문·청량리·답십리·용두동 등이다. 농경지가 없는 반면 노동력이 풍부해 잡화·일용품·가발·의류·직조·연탄·제약 등의 공장이 산재한다. 인구의 집중 분포로 시장이 급속히 확장되었으며, 이에 따라 상품의 거래권도 더욱더 확장되었다. 이제까지의 일상필수품의 상업기능에서 점차 벗어나, 백화점·청량리시장·종합상가 등 현대식 설비를 갖춘 대형 상가를 중심으로 상업기능이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경동시장은 명절 때는 제수용품, 김장철에는 마늘·고추 등 양념류의 거래가 활발한 곳으로 유명하며, 근처에는 한약 건재상들이 모여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청량리동에는 한국개발연구원을 비롯해 산림청·산업연구원 등이 있으며, 휘경동 지역에도 건설부 산하의 건설공무원교육원·국립건설시험소 등의 국가연구기관이 진출해 있어 학술연구기관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철도와 지하철 5호선의 개통으로 도로교통망의 발달로 점차 이 지역은 서울 동부의 관문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종로의 연장선상에 있는 왕산로(旺山路)와 망우로 및 사가정길·답십리길이 구의 동서를 통과하며, 고산자로·홍릉길·전농로 와 천호대로와 연결되는 한천로 등 간선도로가 구의 남북의 통과하여 지역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제기동에 선농단과 천연기념물 제240호로 지정된 향나무가 있으며, 선농단 서쪽에는 보제원(普濟院)이 있어 여행객의 숙박과 진휼 및 경로잔치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청량리동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내에는 조선시대에 수표교 옆에 세워져 있던 수표가 이전되어 있고, 영릉에 있던 세종대왕신도비도 옮겨져 있다. 그 밖에 고종의 후궁 엄비(嚴妃)의 묘소인 영휘원(永徽園)과 영친왕의 장남 진()의 묘소 숭인원(崇仁園) 등이 있으며, 배봉산에는 목장성터와 휘경원이 있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21개 교, 중학교 16개 교, 고등학교 9개 교, 경희간호대학·삼육간호보건대학과 경희대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서울시립대학교 등이 있다. 신설(新設용두(龍頭제기(祭基전농(典農답십리(踏十里장안(長安청량리(淸凉里회기(回基휘경(徽慶이문(里門) 10개 동이 있다.

 

12. 동작구(銅雀區)

 

시의 남부에 위치한 구. 면적 16.35, 인구 414,839(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노량진동이다. 조선시대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上北面)과 하북면(下北面)이었다가 뒤에 시흥군 동면과 신동면(新東面) 및 북면(北面)이 되었다. 1936년경성부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경성부에 편입되어 영등포출장소에 속했다가 1943년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영등포구에 속하였다. 1963년영등포구 신동출장소가 설치되어 그 관할이 되었다가 1973년 신설된 관악구에 편입되었으며, 1980년관악구에서 분리 신설되었다.

 

북쪽은 한강과 샛강을 경계로 용산구와 여의도와 접해 있으며, 동작대로를 경계로 서초구와 접해 있다. 북쪽은 국사봉 능선과 도림천을 경계로 관악구와 접해 있으며, 서쪽은 시흥대로를 경계로 영등포구와 접해 있다.

 

신대방·대방동 지역에 모방·화학·방직·제약 등의 큰 공장이 밀집해 있으며, 그 밖에 전자·전기기기공장이 있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는 수산물이 공급 전문시장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1899년에 개통된 뒤 이듬해에 한강철교가 준공되어 강북과의 교통이 처음 열린 철도의 시발지이며, 지하철 2·4·7호선의 개통으로 사당역·이수역·상도역 등이 각각 건설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간선도로는 한강대교에서 노량진을 거쳐 수원에 이르는 1호 국도와 올림픽대로·남부순환로가 있다.

 

문화유적은 용양봉저정, 사육신묘, 지덕사부묘소, 창빈안씨(昌嬪安氏)의 묘소와 신도비, 백제요지 등이 있다. 특히 동작동에는 민족의 성역으로 16만 위의 순국영령이 고이 잠들어 있는 국립현충원이 있으며,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묘역도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화장사(華藏寺사자암(獅子庵) 등의 사찰이 있으며, 원불교 서울회관, 조정특수훈련장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5년 현재 초등학교 19개 교, 중학교 16개 교, 고등학교 7개 교, 특수학교 1개 교와 중앙대학교·숭실대학교·총신대학교 등이 있다. 노량진(鷺梁津상도1(上道一상도(上道(흑석(黑石동작(銅雀사당(舍堂대방(大方신대방(新大方) 9개 동이 있다.

 

13. 마포구(麻浦區)

 

시의 중서부에 위치한 구. 면적 23.87, 인구 40392(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성산동이다. 조선시대 한성부의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으로 후기에는 용산방(龍山坊)과 서강방(西江坊)에 속하였다. 1911년고양군의 연희면(延禧面)과 용강면(龍江面)에 속했으나, 1936년경성부로 편입되어 1944년서대문구와 용산구의 일부를 합해 마포구가 신설되었다.

 

동쪽으로 용산 줄기의 능선을 따라 용산구와 접해 있고, 북쪽은 은평구·서대문구, 서쪽은 고양시와 접해 있으며 남쪽은 한강을 경계로 영등포구·강서구와 접해 있다. 창천·홍제천·불광천이 한강으로 유입되며, 와우산·노고산·성산·연희산의 작은 구릉이 이어져 있고 난지도에는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 후기 한양으로 집산되는 많은 조세와 물자가 마포나루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상업활동이 번창하였다. 그리고 동교동에서 양화대교에 이르는 구간은 지하철 2·6호선의 개통으로 도로가 확장, 정비됨에 따라 호텔·예식장·종합상업시설과 고급 상점가가 조성되어 있고, 홍익대학교 앞 지구는 새로운 젊은이의 문화광장이 되고 있다.

 

영등포·강서구 지역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는 통로로서 도심과 직접 연결되는 간선도로가 놓여져 있다. 그리고 양화대교, 마포대교, 성산대교와 지하철 2호선이 통과하는 당산철교 등이 놓여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으로 절두산순교지(切頭山殉敎址)와 순교기념관, 외국인묘소, 공민왕사당과 한강변에 여러 부군당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21개 교, 중학교 13개 교, 고등학교 9개 교, 특수학교 1개 교와 서강대학교·홍익대학교 등이 있다. 성산(城山아현(阿峴공덕(孔德신공덕(新孔德도화(桃花용강(龍江토정(土亭마포(麻浦대흥(大興염리(鹽里노고산(老姑山신수(新水구수(舊水현석(玄石창전(倉前상수(上水신정(新井하중(賀中당인(唐人서교(西橋동교(東橋합정(合井망원(望遠연남(延南상암(上岩() 26개 동이 있다.

 

14. 서대문구(西大門區)

 

시의 서부에 위치한 구. 면적 17.61, 인구 357,174(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연희동이다. 조선시대 한성부 서부의 반석방(盤石坊)과 반송방(盤松坊), 북부의 상평방(常平坊연은방(延恩坊연희방(延禧坊) 지역이었다. 1914년경성부 구역이 축소되면서 경기도 고양군 용강·연희·은평면에 속하였다. 1936년 다시 서울에 다시 편입되고 서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1943년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서대문구가 신설되었다. 1944년마포구가 분리되었고, 1979년 다시 은평구가 분리 신설되었다.

 

인왕산·안산·백련산(白蓮山, 216m) 줄기와 그 사이에 흐르는 홍제천을 중심으로 동쪽은 종로구, 서북쪽은 은평구, 남쪽은 마포구와 접해 있다.

 

구릉과 한강 인접의 충적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역이 주택가와 학원가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의주로·신촌로·연희로 등 삼각상의 간선도로변을 중심으로 상업지구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와 연결된 교통로가 발달해 있다. 그 가운데 이화여자대학교 입구의 양장점과 양품점, 신촌로터리 주변의 음식점과 주점 등이 대표적인 전문상가를 형성하고 있다. 1914년 경의선의 개통과 1920년대 연세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의 설립은 이 지역 발달의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이 지역은 대학촌으로 상징된다.

 

교통은 신촌로와 성산로가 동서를 관통하며 연희로가 홍제천을 따라 남북으로 통한다. 또 지하철 2·3·5호선이 통과되어 도심지와의 소통이 매우 편리하며, 또한 경의선이 통과하여 통일을 향한 전초기지 구실도 한다.

 

문화유적은 독립문, 영은문(迎恩門) 주초, 백련사(白蓮寺) 경내의 명부전(冥府殿삼성전(三星殿극락보전(極樂寶殿범종각(梵鐘閣원통전(圓通殿) 등이 있고, 그 밖에 보도각백불(普渡閣白佛), 봉원사 대웅전, 무악동봉수대지, 화산군신도비 등의 유적이 있다. 그리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독립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독립운동과 일제의 만행을 살필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교육기관은 2008년 현재 초등학교 18개 교, 중학교 12개 교, 고등학교 6개 교, 특수학교 1개 교, 서울여자간호대학·명지전문대학과 연세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명지대학교·경기대학교·감리교신학대학교·추계예술대학교, 그리고 외국인 2세를 위한 외국인학교와 화교학교 등이 있다. 연희(延禧충정로2(忠正路二街충정로3·(미근(渼芹천연(天然냉천(冷泉옥천(玉川영천(靈泉현저(峴底북아현(北阿峴대신(大新대현(大峴신촌(新村봉원(奉元창천(滄川홍제(弘濟홍은(弘恩남가좌(南加佐북가좌(北加佐) 20개 동이 있다.

 

15. 서초구(瑞草區)

 

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구. 면적 47.00, 인구 411,951(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서초동이다. 조선시대 경기도 과천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시흥군 신동면으로 개편되었다. 1963년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어 신동출장소의 관할이 되었다. 1973년성동구 영동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1975년성동구에서 강남구가 분리 신설되어 이에 속하였다. 1988년강남구에서 서초구가 분구 신설되었다.

 

북쪽은 한강을 끼고 있으며, 서쪽은 반포천(盤浦川)을 경계로 동작구, 동쪽은 강남대로를 경계로 강남구, 남쪽은 과천시·성남시와 접해 있다. 한강 변을 따라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이루어져 있으며, 저구릉지에는 바둑판식으로 규칙적인 간선도로망을 갖춘 신개발도시로 터전을 잡았다.

 

한강 연안으로 충적층이 발달한 잠원동 일대는 사질토(砂質土)에서 잘 자라는 뽕나무를 많이 가꾸었는데, 조선시대부터 양잠을 장려해 국립양잠소격인 신잠실(新蠶室)이 설치되었다.

 

한때 화훼재배단지로 유명하였는데, 서울로 편입된 이후 도시개발로 인해 쇼핑센터·지하상가 등이 들어서는 등 상업이 발달해 신도시로 개발되었다. 특히 강남종합고속터미널 주변과 지하상가, 화물터미널 주변, 강남대로 변은 대규모 백화점을 비롯한 상업유통 중심지로 번창하고 있다. 그리고 강남구와 더불어 학군이 좋은 지역과 주민소득이 높은 지역으로 알려졌다.

 

구의 남북으로 경부고속도로가 통하고, 강남종합고속버스터미널·남부시외버스터미널·화물터미널 등이 위치함에 따라 우리나라 최대의 교통 요지이자 물류처리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반포대교·한남대교·동작대교 등으로 강북과 연결되어 도심과의 교통이 원활하며 올림픽대로·신반포로·사평로·서초로·사임당길·효령로와 도곡동길·남부순환로 등이 동서로 횡단하며, 강남대로·반포로·방배로동작대로 등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또한 지하철 2·7호선이 구의 동서방향을 가로지르며, 지하철 3·4호선이 남북방향을 잇고 있어 원활한 교통망을 형성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헌·인릉, 청권사부묘소, 성안상공신도비, 대성사목불좌상, 원지동석불입상및석탑과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전적문화재가 있으며, 조선 초기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잠실동뽕나무는 조선시대에 잠원동에 설치했던 신잠실과 함께 당시 양잠업이 성행했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도곡동에는 산신제당 등이 있어, 토착 주민의 동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서울메트로·서울시공무원교육원·법조단지·학술원·예술원·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 등 주요 기관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21개 교, 중학교 15개 교, 고등학교 11개 교와 서울교육대학교·가톨릭대학교가 있다. 서초(瑞草원지(院址우면(牛眠염곡(廉谷신원(新院잠원(蠶院반포(盤浦방배(方背양재(良才내곡(內谷) 10개 동이 있다.

 

16. 성동구(城東區)

 

시의 동부에 위치한 구. 면적 16.85, 인구 341,620(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마장동이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의 인창방(仁昌坊)과 남부의 두모방(豆毛坊)에 속했던 곳으로, 1914년경성부를 축소시킬 때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纛島面)과 한지면(漢芝面)에 편입되었다. 1936년경성부로 편입되어 동부출장소에 속하였고, 1943년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동부출장소 관할구역이 동대문구와 성동구로 분리되었다. 1949년서울특별시 확장에 따라 뚝도면을 편입해 성동구 뚝도출장소를 두었으며, 1963년광주군의 4개 면을 편입해 천호·송파·언주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3년송파·언주출장소를 폐지하고 영동출장소를 설치했으며, 1975년강남구가 분구됨에 따라 한강 이남지역이 분리되었다. 1995년 동일로를 경계로 광진구가 분구되어 나갔다.

 

남동부지역은 중랑천과 청계천이 흘러와 합류해 한강에 유입되면서 이룩된 범람원에 해당되는 저지이며, 구 전체적으로 평탄한 충적평지로, 시가지가 이루어져 교통이 발달해 있다. 주택과 공장이 혼재하는 혼합지구로 원래 근교농업이 발달했으나, 광복 후 계속적인 인구 증가와 성동교(城東橋광진교(廣津橋)의 건설로 도시화가 진전되어 왕십리지구와 뚝섬지구에 주택·학원·공장·특수시설 등이 들어서게 되었다.

 

동호대교·성수대교·영동대교로 강남지역과 이어지는 남북 종단 도로가 나 있고, 지하철 2호선이 동서로 관통하며, 강변북로·뚝섬길·왕십리길·광나루길·천호대로 등이 동서로 횡단하고 있어 교통망이 매우 발달해 있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고장으로 옥수동 응봉에서는 구석기시대 지표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두모포(豆毛浦입석포(立石浦) 등 포구가 발달하여 물산의 유통중심지가 되었으며, 살곶이다리가 놓여진 살곶이벌에는 국립목장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18개 교, 중학교 11개 교, 고등학교 6개 교, 한양여자대학과 한양대학교가 있다. 하왕십리(下往十里상왕십리(上往十里도선(道詵홍익(弘益마장(馬場사근(沙斤행당(杏堂응봉(鷹峰금호동1(金湖洞1금호동2·금호동3·금호동4·옥수(玉水성수동1(聖水洞1성수동2·송정(松亭용답(龍踏) 17개 동이 있다.

 

17. 성북구(城北區)

 

시의 북부, 삼각산 남쪽에 위치한 구. 면적 24.57, 인구 477,358(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삼선동5가이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숭신방(崇信坊)과 인창방(仁昌坊)에 속하였다. 1914년경기도 고양군 숭인면(崇仁面)으로 되었다가, 1936년경성부의 관할구역 확장으로 경성부에 편입되어 한지면(漢芝面)에서 편입된 일부지역과 함께 동부출장소에 속하였다. 1949년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 때 고양군 숭인면의 일부지역과 동대문구의 일부를 합해 성북구가 신설되었으며, 1963년양주군 노해면이 편입되었다. 1973년성북구 숭인·노해출장소 관할구역이 도봉구로 분리 신설되었다.

 

서울특별시와 고양시와 경계를 이루는 삼각산 보현봉과 주능선 및 칼바위능선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와 성북천·정릉천 계류사이에 주거지로 발달한 지역으로 동쪽에 중랑구, 남쪽에 동대문구, 서쪽에 종로구와 접하고 있다. 산봉우리들을 앞뒤에 두고 구릉과 계곡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많은 고갯길이 있는데, 미아리고개·아리랑고개·보토현·제터고개(안암동성황당고개(석관동)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광복과 6·25전쟁 이후 돈암동미아리 일대와 삼양동수유리 일대 등 곳곳에 불법정착지구가 형성되면서 인구집중이 되었으며, 1960년대의 도시재개발사업으로 중상류의 단독주택지구를 형성하고, 1970년대 후반부터는 인구성장이 멈추어 안정된 거주지역으로 정착되었다. 그 후 내부순화로가 개통되고 정릉천 주변이 고층 아파트지구로 변모하면서 도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성북뉴타운 지역 개발로 인한 새로운 면모로 변신하고 있다.

 

부자동네로 소문난 성북동에는 전통가옥과 외국 대사관저가 많으며, 기존에 개화된 한옥이 많던 돈암·동선·삼선동 등은 많은 부분 아파트단지로 변모하였다.

 

미아로·보문로·종암로 등 주요 도로를 따라 상가가 발달하고 주민생활과 직결되는 시장·슈퍼마켓 등이 발달하였다. 도심과 연결되는 혜화문과 동대문을 통과하여 원산으로 향하는 길이었던 동소문로와 미아로·종암로를 통해 일찍부터 교통이 발달하였으며, 정릉길과 북악터널 개통, 내부순환로와 정릉터널 개통이 이루어져 북부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는 대로가 되었다. 또 지하철 6호선이 개통되고 4호선이 통과되면서 교통은 더욱 편리해졌다.

 

문화유적으로 한성의 외곽 관방시설인 북한산성(北漢山城)이 삼각산의 주요 봉우리를 연결하며 보국문·대성문 등과 더불어 축조되어 있다. 왕릉으로 태조비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貞陵), 경종과 경종비 선의왕후 어씨의 의릉(懿陵) 등이 있다. 봉국사(奉國寺경국사(慶國寺), 신흥사(新興寺), 미타사(彌陀寺보문사(普門寺), 개운사(開雲寺보문사(普門寺) 등 역사가 긴 전통사찰이 있으며, 이 밖에 많은 암자도 있다. 그리고 서울성곽이 종로구와 경계를 이루며 성북동 일대에 남아 있으며, 선잠단지(先蠶壇址), 성락원 등 문화유적이 자연림과 수석(水石)이 어울려 많은 시민이 찾는 명승지로 손꼽힌다. 또 성북동에는 많은 국보 및 국보급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이 있으며 이재준가·이태준가, 김진흥가 등도 전통가옥이 보존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29개 교, 중학교 16개 교, 고등학교 13개 교, 특수학교 1개 교, 고려대학교병설보건대학과 고려대학교·국민대학교·성신여자대학교·동덕여자대학교·한성대학교·서경대학교·중앙승가대학교 등이 있다.

 

삼선동5(三仙洞五街삼선동1·삼선동2·삼선동3·삼선동4·성북(城北성북동1(城北洞一街돈암(敦巖동소문동1(東小門洞一街동소문동2·동소문동3·동소문동4·동소문동5·동소문동6·동소문동7·동선동1(東仙洞一街동선동2·동선동3·동선동4·동선동5·안암동1(安巖洞一街안암동2·안암동3·안암동4·안암동5·보문동1(普門洞一街보문동2·보문동3·보문동4·보문동5·보문동6·보문동7·정릉(貞陵길음(吉音종암(鍾巖하월곡(下月谷상월곡(上月谷장위(長位석관(石串) 39개 동이 있다.

 

18. 송파구(松坡區)

 

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구. 면적 33.88, 인구 63691(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신천동이다.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中垈面)이었으나, 1963년서울특별시에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1975년성동구에서 분리된 강남구에 속하였다. 1979년강남구에서 분리된 강동구에 속해 있다가, 1988년송파구로 분리, 신설되었다.

 

북쪽과 서쪽에는 한강과 탄천이 흐르며, 그 연안에 비교적 넓은 범람원이 발달해 있으며, 강남구와 경계를 이루로 동쪽은 성내천을 따라 난 강동대로와 풍납로를 경계로 강동구와 접해 있으며, 남동쪽으로 하남시·성남시와 경계를 이룬다. 그 사이 탄천과 성내천 사이에는 잠실과 그 배후지역이 연결되어 있고 작은 구릉지대에 주택지가 발달하였다. 1963년서울시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한적한 농촌이었으나, 서울시의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발생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실 일대에 아파트단지를 조성하여 서울도심과 성남시가 연계되는 징검다리 부도심으로 발전하였다.

 

1980년 지하철 2호선의 개통과 바둑판식의 넓은 도로망의 건설, 서울올림픽대회를 치른 잠실·방이동 일대의 경기장 시설, 1985년가락동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의 건립과 또 계속되는 아파트단지의 건설 등으로 인구가 계속 증가하였다. 또한 가락동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과 잠실의 대형 호텔·백화점·쇼핑센터 등의 건설은 대단위 유통단지를 이루었으며, 잠실역 일대는 체육·오락·업무·주거 단지가 집합된 쇼핑문화의 중심지 구실을 하고 있다. 서울올림픽대회가 개최된 잠실동의 종합운동장 시설과 방이동의 올림픽공원을 중심으로 올림픽경기장 일대는 새로운 관광지로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한강 본류가 인공호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석촌호수 주변에는 서울놀이마당·롯데월드 등과 어울려 많은 시민이 찾고 있는 명소가 되었다.

 

교통은 지하철 2호선과 더불어 강북지역을 잇는 잠실대교·잠실철교·올림픽대교·천호대교 등의 교량이 있어 서울도심과 원활한 교통망을 형성하며, 지하철 5·8호선이 계통되어 성남시와 직결되고 있다.

 

문화유적으로 잠실지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된 석촌동 백제초기적석총과 1976년에 발굴된 방이동백제고분군이 있어 한성백제의 유적을 확한할 수 있었다. 특히 2000년에 발굴된 풍납리토성 내부의 유구와 성벽 절단 발굴 조사를 통하여 한성백제의 궁궐 유구로 추정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몽촌토성 유적 또한 백제 초기의 왕성 유구로 추정되고 있다.

 

이 밖에 삼전도비, 거창신씨묘역, 문화유씨묘역, 충헌김공신도비 등이 있으며, 무형문화재로 송파산대놀이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33개 교, 중학교 25개 교, 고등학교 16개 교, 특수학교 1개 교와 한국체육대학교 등이 있다. 송파(松坡풍납(風納거여(巨餘마천(馬川방이(芳荑오금(梧琴석촌(石村삼전(三田가락(可樂문정(文井장지(長旨잠실(蠶室신천(新川) 13개 동이 있다.

 

19. 양천구(陽川區)

 

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구. 면적 17.40, 인구 508,566(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신정동이다. 조선시대 경기도 양천현이었고, 1914년에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陽東面)에 속하였다가, 1963년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어 양동출장소의 관할이 되었다. 1968년 양동출장소가 폐지되어 양서출장소에 속했다가 1977년영등포구에서 분구된 강서구에 속하게 되었다. 1988년강서구에서 양천구로 분리 신설되었다.

 

안양천과 한강 연안에는 두꺼운 충적층으로 된 넓은 범람원이 형성되어 김포평야의 일부를 이루었으며, 낮은 구릉지대 사이로 안양천의 지류가 흐르고 다시 한강으로 유입한다. 따라서 안양천을 경계로 동쪽에 영등포구와 접하며, 북쪽으로 공항로를 경계로 강서구와 접하고, 남쪽은 구로구, 서쪽은 낮은 구릉을 경계로 부천시와 접해 있다.

 

서울에 편입되기 전에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서 산림지·농경지·취락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농산물의 생산량도 많았다.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 각지의 철거민이 이주해 와 영세민 집단거주지역을 형성하였다. 서울의 인구를 강남으로 분산시키려는 정부시책에 따라 대규모 주택단지로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강서구 화곡동 일대와 더불어 서울 서부의 최대 주택지역이 되었다. 목동에는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건립되었으며 신월동에는 영세민을 위한 연립주택단지가 조성되었다. 대규모 주택지역으로 교육·상업·문화 등의 제반시설이 들어섰다.

 

주택지역으로 성장하게 된 요인 중의 하나는 교통의 편의이다. 경인고속도로와 남부순환로가 교차·통과하며, 이들 도로를 근간으로 오목로·신월로·신정로 등이 개설되어 있고, 지하철 2·5호선이 동서로 관통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안양천을 따라 개설된 안양천 길은 광명시로 이어져 서해안고속도로와 이어지며 등촌로와 강서로가 구를 관통하는 교통망을 형성하고 있다. 문화재로 성시헌익사공신록·열조통기 등 전적(典籍) 문화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28개 교, 중학교 18개 교, 고등학교 14개 교가 있다. 신정(新亭(신월(新月) 3개 동이 있다.

    

 

 

 

 

 

20. 영등포구(永登浦區)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구. 면적 24.57, 인구 439,151(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당산동이다. 조선시대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면이었으며, 1931년영등포읍으로 승격되었다. 1936년경성부의 구역확장 때 시흥군 북·동면의 일부지역과 함께 편입되어 영등포출장소의 관할에 속하였다. 1943년 구제(區制) 실시로 영등포구가 되었으며, 1949년과 1963년에 시흥군 및 김포군의 일부가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 후 1973년관악구, 1977년강서구, 1980년동작구와 구로구 등이 차례로 분구됨에 따라 종래 영등포구 관할지역의 중심부만 남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한강과 그 지류인 안양천에 인접해 발달한 충적평야지대로, 대체로 해발 10m 내외의 낮고 평탄한 지역을 이룬다. 이러한 특징은 특히 경부선의 서부에서 안양천에 이르는 양평·당산·문래동 일대에 뚜렷하며, 제방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많은 범람이 있었다. 그리고 동쪽의 동작구와 인접한 지역은 낮은 구릉을 이루고 있어 여의도 샛강 사이에 포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북쪽으로 한강의 하중도인 여의도를 지나 마포구와 경계를 이루며 남쪽으로는 구로구·금천구와 접해 있다.

 

1900년대 초기까지 영등포구의 취락발달은 극히 미약했으나, 철도의 개통과 공업지역의 건설로 이 지역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일제 식민지정책에 의해 영등포·양평·당산·문래동에 집중적으로 건설된 공장지역, 영등포시장을 중심으로 한 상업지역과 그 밖의 지역에 산재한 주택지 등으로 시가지가 확충되어 왔으며, 서울의 부도심으로 발달해 왔다. 이러한 공업도시로서의 면모는 지금도 그 전통이 계승되고 있는데, 현재의 공업 특징은 섬유·식품·음료공업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의 노동집약적 공업이 특색이고, 기계·화학 등의 공업은 규모가 작은 편이다. 일찍부터 근대공업이 발달해 도시화의 추진력이 되어 왔고, 이에 따른 인구증가, 주택지 확장과 상업지역 및 기타 업무기능지역의 발달을 가져왔다. 특히 최근 들어 영등포민자역사에 고층의 백화점이 들어서고, 역 앞 일대에 새로운 대형백화점들이 건설되어 유통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영등포의 위상은 여의도의 개발과 이에 따른 교량건설로 더욱 높아졌다. 1970년대 초기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여의도는 고도로 발달한 금융·방송 등 4차 산업의 업무기능들이 집중됨으로써 서울의 또 하나의 경제중심부를 이루고 었고, 국회의사당이 옮겨옴으로써 정치적 위상도 높아졌다. 마포대교·원효대교·서강대교의 가설로 도심부와의 접근성이 더욱 좋아진 영등포 지역에는 국회의사당·증권거래소·KBS·MBC·SBS·전경련회관·노동청·원호청·대한결핵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금융기관 등이 들어서 주요 기관이 밀집해 어우러져 상호 시너지 효과를 가지며 다양한 업무를 펼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통의 편리함을 이용한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주거공간으로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개통된 경인선, 뒤이어 개통된 경부선과 이에 따른 영등포역의 설치 및 호남선의 개통, 이에 더해 1917년 한강인도교(현 한강대교)의 준공으로 한강 남부지역과 서울 중심부를 잇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또 지하철 2호선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지하철 5호선이 동서로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그리고 성산로·선유로·당산로·양평로·제물포길·여의대로·대방로·도신로 등이 구의 남북을 관통하고, 올림픽대로·노량진길·경인로·영등포로 등이 동서로 관통하여 인천지역과 남쪽지역으로 이어지며 성산대교·양화대교·당산철교·서강대교·마포대교·용호대교 등으로 한강을 건너 강북과 이어져 있다.

 

문화재로는 조선이흠례묘지가 있으며, 선유봉과 당산동 일대에는 경승을 이루었고 부군당이 있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23개 교, 중학교 11개 교, 고등학교 9개 교가 있다.

 

당산(堂山영등포(永登浦영등포동1(永登浦洞一街영등포동2·영등포동3·영등포동4·영등포동5·영등포동6·영등포동7·영등포동8·여의도(汝矣島당산동1(堂山洞一街당산동2·당산동3·당산동4·당산동5·당산동6·양평(楊坪양평동1·양평동2·양평동3·양평동4·양평동5·양평동6·도림(道林문래동1(文來洞一街문래동2·문래동3·문래동4·문래동5·문래동6·양화(楊花신길(新吉대림(大林) 34개 동이 있다.

 

21. 용산구(龍山區)

 

시의 중남부에 위치한 구. 면적 21.87, 인구 248,362(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원효로1가이다. 조선시대 한성부 서부의 용산방(龍山坊)이었으며, 1911년고양군 용산·한지면(漢芝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성부 용산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43년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용산구가 되었다.

 

남산의 남쪽 사면에 위치해 있으며, 서쪽으로 안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용산 줄기를 경계로 마포구와 접해 있고, 동쪽은 남산의 부어티고개에서 한강으로 뻗은 종남산 한줄기를 경계로 성동구와 접해 있다. 남쪽으로 한강이 흐르고 둔지산과 남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산줄기 사이에 낮은 평지가 발달되어 주거지와 도로망을 형성하고 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와 같이 제방이 없던 시절에는 한강이 신계동과 삼각지까지 범람하였다. 따라서 이촌동 지역은 넓은 범람원이 퇴적되어 한강백사장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갈수기에는 노들섬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원효로 방면을 구용산, 한강로변을 신용산이라 부르는데, 구용산은 조선 말 청나라와 일본의 세력다툼의 무대였고, 특히 일본인 거류지로 조성되어 지금도 효창·청파동과 원효로 등지에는 일본식 목조의 낡은 가옥이 남아 있다. 서울역에서 한강철교에 이르는 신용산 지역은 일제가 군사기지로 삼았으며, 해방 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미군이 주둔하여 오늘에 이르며, 2006년에 들어 용산기지 반환과 더불어 용산민족공원 조성에 여론이 모아지고 있다.

 

용산지역은 도심과 인접한 주거지역으로 발전한 곳이었으나, 근래 도시기능의 확산으로 종합시설물과 편의·위락시설이 이전됨에 따라 도심과 직결되는 간선도로변에는 상업기능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남영동을 중심으로 서울역에서 삼각지에 이르는 도로변에는 인근의 여러 학교와 학원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상가가 형성되었고, 서울의 이방지대라 불리는 이태원 상가는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내국인까지 유인하는 새로운 상업지역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이태원과 한남동 일대에는 대형 호텔과 각국의 대사관 들이 자리하고 있어 국제도시의 모습을 띠고 있다.

 

한강로3가에 있던 용산청과물시장이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이전되고 그 자리에는 용산전자상가단지가 들어섰다. 용산동2가의 흔히 해방촌이라 부르는 곳은 월남한 이북사람들이 만든 마을로, 대부분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억척스럽고 부지런한 생활을 한 곳이었다. 반면 최근에 재벌들의 주택이 자리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주택지로 주목되고 있다.

 

삼국시대에 이미 수륙교통의 요충지로서 세력 확장의 쟁탈지였으며, 고려시대 임금의 유락공간이 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 초기에는 용산을 중심으로 물산이 모아지는 길목으로 한강 상류나 삼남지방을 서울의 도심과 연결시키는 하항의 관문 구실을 하였다. 특히 1900년 이후 철도가 개통되면서 철도교통의 중심으로서 일제의 대륙침략의 발판이 되기도 하였다.

 

용산은 1900년 한강철교가 준공되어 경인선의 전 구간이 개통되고 용산역이 설치된 이후 철도교통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용산시외버스터미널이 강남으로 이전한 후에도 지하철 1·4·6호선이 통과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며, 한강대교·한강철교를 비롯해 반포대교·한남대교·동작대교 등의 교량이 걸쳐 있어 강남과 연계되어 도심의 관문으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많은 유물·유적이 남아 있는데, 조선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文孝世子)의 묘원인 효창원(孝昌園) 터에는 효창공원과 김구선생묘역 및 삼의사묘가 있다. 조선 말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많은 천주교도가 처형된 이촌동의 새남터와 용산신학교 및 원효로성당 등이 있다. 또한 구용산수위관측소, 서빙고부군당, 김유신장군당 등의 동제당이 남아 있으며, 원효로의 백송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주요 시설로서 효창공원과 효창운동장이 있으며, 그 밖에 남산도서관·철도도서관·회교성당(回敎聖堂) 등이 있다. 특히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세종로에서 용산가족공원 서쪽으로 이전 개관하여 종합사회문화교육의 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15개 교, 중학교 9개 교, 고등학교 10개 교와 숙명여자대학교 등이 있다.

 

원효로1(元曉路一街원효로2·원효로3·원효로4·후암(厚巖신창(新倉용산동1(龍山洞一街용산동2·용산동3·용산동4·용산동5·용산동6·갈월(葛月남영(南營동자(東子서계(西界청파동1(靑坡洞一街청파동2·청파동3·청암(淸巖산천(山泉효창(孝昌용문(龍門도원(桃園신계(新契문배(文培한강로1(漢江路一街한강로2·한강로3·이촌(二村이태원(梨泰院한남(漢南서빙고(西氷庫동빙고(東氷庫주성(鑄城보광(普光) 36개 동이 있다.

 

22. 은평구(恩平區)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구. 면적 29.71, 인구 463,473(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녹번동이다. 조선시대 한성부 북부의 연은방과 상평방 지역이었는데, 1914년에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이 되었다. 1949년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편입되어 은평출장소에 속하였다. 1973년고양군 신도면(神道面)의 구파발리(舊把撥里진관내리(津寬內里진관외리(津寬外里) 등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 은평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79년서대문구 은평출장소 관할구역이 분리되어 은평구가 신설되었다.

 

서북쪽은 효경산 줄기와 창릉천과 삼각산 의상봉 능선을 경계로 고양시와 경계를 이루며, 동쪽은 비봉과 탕춘대능선을 따라 종로구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서대문구와 마포구와 접해있다. 그리고 연신내 일대는 불광천을 따라 얕은 충적지를 이룬다.

 

도심지역과 구분되어 주택과 학교 등이 집중되어 깨끗하고 조용한 주거지역으로서 도시주변의 성격을 띤다. 산지의 대부분을 개발제한구역으로 설정해 주택지구의 기능이 강화되고 있으며, 공장 분포수가 적어 다른 구에 비해 환경오염의 요인이 적은 편이다. 특히 불광동 지역은 서울에서 가장 먼저 생긴 집단주택지역에 속하는데, 1957년 재건주택 171채로 시작되었으며, 1964년경 문화·경제 수준이 높고 안정된 주거공간으로 인식되었으며 지속적으로 고층아파트가 건립되었다. 또 주거지역으로 기자촌이 개발되었고, 2006년에는 진관내·외동과 구파발동 등이 은평뉴타운지역으로 개발되고 있어 넓은 녹지공간 속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형성되고 있다.

 

주택지역으로 본격적으로 개발될 즈음인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통일로(統一路)가 도심과 이어지는 거의에 유일한 길이었으나, 그 후 구기터널이 개통되어 진흥로를 통해서도 연결되었으며 가좌로·증산로·응암로·은평로·연서로·서오릉로 등의 여러 길로 각 지역이 연결되고 있다. 또한 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이 개통되어 은평구의 교통상황은 크게 호전되었다.

 

역촌동과 구파발은 조선시대 역참이 있어 유래된 지명으로 이와 관련하여 인조별서유기비, 금암기적비와 하마비 등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그 외에 북한산성, 삼천사지마애여래입과 진관사의 여러 불교유적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25개 교, 중학교 16개 교, 고등학교 14개 교, 특수학교 1개 교와 대한기독교대학교 등이 있다. 녹번(碌磻불광(佛光갈현(葛峴구산(龜山대조(大棗응암(鷹巖역촌(驛村신사(新寺증산(繒山수색(水色진관내(津寬內구파발(舊把撥진관외(津寬外) 13개 동이 있다.

 

23. 종로구(鍾路區)

 

시의 중북부에 위치한 구. 면적 23.91, 인구 173,843(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수송동이다. 조선시대에 한성부 중부의 서린방(瑞麟坊견평방(堅平坊경행방(慶幸坊징청방(澄淸坊수진방(壽進坊관인방(寬仁坊장통방(長通坊정선방(貞善坊), 동부의 연화방(蓮花坊창선방(昌善坊건덕방(建德坊숭신방(崇信坊숭교방(崇敎坊), 서부의 인달방(仁達坊여경방(餘慶坊적선방(積善坊), 북부의 순화방(順化坊준수방(俊秀坊의통방(義通坊관광방(觀光坊안국방(安國坊진장방(鎭長坊가회방(嘉會坊양덕방(陽德坊) 등의 지역이었다. 1943년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종로구가 되었다.

 

삼각산 보현봉에서 뻗어내린 북악산을 주산(主山)으로 동쪽에 낙산, 서쪽에 인왕산이 솟아 있고 남쪽의 남산에 에워싸인 분지의 중앙을 흐르는 청계천 북쪽에 위치한다. 풍수지리적 으로 주산 아래 좌청룡·우백호와 내명당수에 에워싸여 장안에서 으뜸가는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형상 북악산 남사면에 위치하여 북고남저(北高南低) 남향한 지형으로 일조와 배수가 양호하며 전망도 매우 좋다. 행정구역상으로 서쪽은 서대문구·은평구, 북쪽은 성북구와 고양시, 동쪽은 동대문구와 성동구, 남쪽은 중구와 접해 있다.

 

종로구는 조선왕조 왕궁이 위치한 도성의 중심지로서 한양 천도 때 이미 중심가로인 세종로·종로·남대문로의 대로가 마련되어 도성문으로 이어지는 간선도로가 되었다. 아울러 이들이 교차하는 종로사거리 운종가를 중심으로 시전이 형성되어 육의전으로 발전해 도심의 핵을 형성하였으며, 이 때 형성된 육조거리 관청가와 주요 도시구조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율곡로 북쪽의 북촌지구는 전통주거지역으로 관리 보전되고 있으며, 세종로 일대는 관공서와 경제·언론·외교 등의 업무지구를 이루고 있다. 종로 일대는 상업의 중심지역을 형성해 도산매상(都散賣商) 등 동일종(同一種)의 상점이 밀집하는 경향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인사·견지동의 골동(骨董표구(表具화상(畵商), 익선동과 종로3가의 보석 및 귀금속상,악기와 자동차부품상, 청계로의 전자제품, 종로4·5가의 약품 상가 등이 밀집되어 있다. 또 이와 관련된 문화지구·국악거리 등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자하문터널 뒤쪽은 인왕산과 북악의 북쪽 사면으로 경관 좋은 주거지로 형성되어 있다.

 

한편 종로구은 교통망이 가장 발달해 있고, 교통량이 가장 많은 복잡한 곳이다. 종로·율곡로·세종로·우정국로·삼일로·창경궁로·대학로가 종로구의 동서·남북을 관통하여 도로교통의 간선을 이루고 있다. 북악터널을 지나는 세검정길 등도 교통소통에 큰 몫을 하며, 내부순환로의 정릉터널구간과 홍지문터널구간의 일부가 종로구를 통과하고 있다. 지하철 1호선이 종로를 통과하는 외에 3·4·5호선이 종로3가와 동대문운동장에서 교차함으로써 시내 교통소통이 더욱 원활해졌다.

 

종로구는 조선왕조의 5대 궁궐 가운데 4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종묘 등 세계문화유산을 간직한 문화유적의 보고이다. 그리고 양반계급인 권문세가들이 모여 살면서 청계천 북쪽의 북촌(北村)과 인왕산 동쪽 기슭에 우대를 형성하면서 양반생활과 관련된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간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직·서울성곽 등 나라의 상징건조물과 문묘·와 각종 관아터를 있으며, 성리학을 이념으로 운영하면서 사상 통일을 꾀하기 위해 한양에 둔 원각사·흥천사·조계사 등의 불교유적과 남아 있다. 그 외에 우정총국·번사창 등 근대역사 유물도 많이 분포되어 있다.

 

민속박물관·궁중유물전시관·세종문화회관·정독도서관·중앙교육원·문화예술진흥원과 짚풀생활사박물관 등 각종 특수박물관이 분포되어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중심지 구실을 하고 있다. 그리고 동숭동 대학로 주변은 문화거리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으며, 인사동 문화지구, 종묘공원의 국악마당과 국악거리축제 등이 있다. 아울러 고궁·국립공원·근린공원과 탑골공원·사직공원·삼청공원 등은 도심 속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해 준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14개 교, 중학교 9개 교, 고등학교 14개 교, 특수학교 2개 교, 배화여자대학·적십자간호대학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성균관대학교·상명대학교·한국방송대학교 등이 있다.

 

수송(壽松청운(淸雲신교(新橋궁정(宮井세종로(世宗路효자(孝子창성(昌成통인(通仁누상(樓上누하(樓下옥인(玉仁사직(社稷체부(體府필운(弼雲내자(內資통의(通義적선(積善삼청(三淸팔판(八判안국(安國소격(昭格(사간(司諫송현(松峴부암(付岩신영(新營홍지(弘智평창(平倉구기(舊基교남(橋南(송월(松月홍파(紅把교북(橋北행촌(杏村도렴(都染당주(唐珠내수(內需신문로1(新門路一街신문로2·가회(嘉會((원서(苑西인사(仁寺청진(淸進서린(瑞麟중학(中學종로1(鐘路一街종로2·종로3·종로4·종로5·종로6·공평(公平관훈(寬勳견지(堅志와룡(臥龍권농(勸農운니(雲泥익선(益善경운(慶雲관철(貫鐵낙원(樂園(훈정(薰井봉익(鳳翼돈의(敦義장사(長沙관수(觀水인의(仁義예지(禮智원남(苑南효제(孝悌연지(蓮池충신(忠信이화(梨花연건(蓮建동숭(東崇혜화(惠化명륜동1(明倫洞一街명륜동2·명륜동3·명륜동4·창신(昌信숭인(崇仁무악(毋岳) 87개 동이 있다.

 

24. 중구(中區)

 

시의 중앙에 위치한 구. 면적 9.96, 인구 137,435(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예관동이다. 조선시대 한성부의 남부 광통방(廣通坊회현방(會賢坊명례방(明禮坊태평방(太平坊훈도방(薰陶坊낙선방(樂善坊성명방(誠明坊)과 서부의 양생방(養生坊) 일부, 반석방(盤石坊)의 일부지역이었다. 1943년 구제(區制) 실시로 중구가 되었다.

 

남쪽은 남산 주봉 능선을 따라 용산구와 접하고, 북쪽은 청계천을 따라 종로구와 접하며, 서쪽은 서대문구, 동쪽은 성동구와 접해 있다. 따라서 남산의 산각 사이를 작은 개천이 흐르고 그 사이를 동현(銅峴송현(松峴인현(仁峴야현(冶峴종현(鐘峴) 등의 고개가 잇고 있다. 복개되었던 청계천이 복원되어 새로운 경관을 보이며 자연생태가 살아나고 있다.

 

남산의 북쪽 사면은 일조가 좋지 못하나 지하수가 풍부해 생활용수를 얻기 쉽기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평민이나 중인·하급관리와 세력을 잃은 양반의 후손들이 모여 남촌(南村)을 이루어 왔다. 그렇지만 청학동과 회현동 일대는 경관이 수려하여 권문세력들의 세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훈련원(訓鍊院남별영(南別營남소영(南小營) 등이 있어 많은 장교들이 거주하였다.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 군대와 일본군대가 각축을 벌이면서 그 세력에 힘입어 중국 화교촌과 일본인 상가가 형성되었으며, 급기야 충무로 일대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중심의 새로운 남촌이 형성되었다. 이때 형성된 명동 일대의 상권은 현재까지 서울의 도심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서대문·광화문·을지로2가 사이에는 서울특별시청이 있고, 서울의 중앙업무지구가 형성되어 있으며, 언론·은행·재벌회사 등의 본사가 모여 있어 우리나라 경제력이 집중되어 있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명동·충무로 일대는 유흥 및 상업 중심지를 이루며, 특히 남대문시장을 비롯해 대형 백화점 등이 몰려 있어 서울의 중심상업지역을 이룬다. 청계로와 인접한 지역에는 대규모의 의류시장인 평화시장·동대문종합시장을 비롯한 서울의 대형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중구는 상주인구보다 유동인구가 훨씬 많은 곳이다. 따라서 중구는 서울의 25개 구 가운데 가장 작은 면적과 인구로 형성된 도심지역이 된다. 그리고 을지로 일대에는 인쇄업이 서울에서 가장 발달해 있으며 특히 영세한 소규모의 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청계로·을지로·퇴계로가 동서방향의 교통간선을 이루며, 의주로(義州路태평로(太平路남대문로·삼일로·돈화문길·훈련원로·흥인문로와 장충단길 등이 남북방향의 교통간선을 이룬다. 서쪽에는 우리나라 철도의 시발지인 서울역이 있어 서울의 출입문 구실을 하고, 지하철 1·2·3·4·5호선이 동서남북으로 뻗어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국보 제1호 남대문을 비롯해 덕수궁(경운궁)의 여러 전각과 중명전·석조전(石造殿) 등의 근대건축물이 있으며, 약현성당·명동성당·정동교회·서울성공회성당 등의 각종 종교기관이 있다. 그 밖에 환구단(원구단)의 황궁우와 석고, 장충단비, 남산골 한옥마을의 전통가옥, 경희궁 숭정전 건물과 서울역사·구러시아공사관·한국은행본관 등이 남아 있다. 그리고 남산공원·장충단공원·서울타워(N타워동대문운동장이 있으며, 도심 곳곳에 대형 호텔이 있고 동대문쇼핑타운과 황학동 풍물시장 등이 집중해 있어 외국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12개 교, 중학교 8개 교, 고등학교 12개 교, 국립의료원간호대학·숭의여자대학·서울예술대학과 동국대학교가 있다. 예관(藝館장교(長橋무교(武橋(태평로1(太平路一街태평로2·을지로1(乙支路一街을지로2·을지로3·을지로4·을지로5·을지로6·을지로7·남대문로1(南大門路一街남대문로2·남대문로3·남대문로4·남대문로5·삼각(三角수하(水下수표(水標북창(北倉소공(小公서소문(西小門(순화(巡和의주로1(義州路一街의주로2·충정로1(忠正路一街봉래동1(蓬萊洞一街봉래동2·회현동1(會賢洞一街회현동2·회현동3·남창(南倉저동1(苧洞一街저동2·충무로1(忠武路一街충무로2·충무로3·충무로4·충무로5·명동1(明洞一街명동2·남산동1(南山洞一街남산동2·남산동3·인현동1(仁峴洞一街인현동2·필동1(筆洞一街필동2·필동3·주자(鑄字남학(南學예장(藝場장충동1(奬忠洞一街장충동2·묵정(墨井쌍림(雙林광희동1(光熙洞一街광희동2·방산(芳山주교(舟橋오장(五壯입정(笠井산림(山林(무학(舞鶴흥인(興仁신당(新堂황학(黃鶴중림(中林만리동1(萬里洞一街만리동2가 등 74개 동이 있다.

 

25. 중랑구(中浪區)

 

시의 동북부에 위치한 구. 면적 18.50, 인구 431,406(2008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신내동이다.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九里面)에 속했으며, 1963년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장 때 구리면 상봉·중화·묵동·신내·망우리 등과 성동구 면목동이 동대문구에 편입되어 망우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88년동대문구 망우출장소 관할지역이 분리되어 중랑구가 신설되었다.

 

동쪽은 아차산 줄기와 망우리고개를 경계로 구리시와 접해 있으며, 남쪽은 광진구, 서쪽은 동대문구와 성북구, 북쪽은 노원구와 접해 있다. 대체로 중랑천과 검암산·망우산·용마봉 서쪽 기슭의 중랑천 일대의 충적평야 지대에 주택지가 발달해 있다. 그리고 농경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반면 노동력이 풍부해 잡화·일용품·의류업이 활발하다. 이 지역은 1970년대 초 토지구획정리사업 시행으로 농경지가 주택지로 변모해 대부분 주거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통은 중앙선 철도가 지나고 망우로(忘憂路)를 이어 6번국도 강릉노선과 46번국도 경춘로가 중앙을 횡단하여 강원도로 이어지며, 광진구 화양동에서 상봉동을 거쳐 노원구로 이어지는 동이로(東二路동일로가 개통되어 서울 동부지역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으며 급기야 도심을 거치지 않고 경기북부와 경부고속도로·중부고속도로와 직결되어 도심소통에 크게 기여한다. 또 상봉동에는 상봉시외버스터미널이 있어 경기북부와 강원도 및 경상도로 여행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도모하며, 지하철 7호선이 남북으로 관통하여 도심으로 향한 교통을 원활하게 한다.

 

문화유적은 신경진신도비와 아차산 봉수대지가 있으며, 봉화산에서 고구려보루를 알려져 있는 석축과 도당굿과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산신각(山神閣)인 봉화산제도당이 있다. 망우묘지공원에는 한용운(韓龍雲방정환(方定煥조봉암(曺奉岩오세창(吳世昌) 등 애국독립지사와 순국선열들의 묘소가 있으며, 1907년 의병 봉기를 기념하는 13도창의군탑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22개 교, 중학교 14개 교, 고등학교 10개 교와 서일대학이 있다. 면목(面牧상봉(上鳳중화(中和(망우(忘憂신내(新內) 6개 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