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세상 쳐다보기

"전범이 된 조선청년들"전시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

草霧 2013. 11. 15. 20:26

 

 

 

 

"전범이 된 조선청년들"전시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전범이 된 조선청년들"전시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를 추천해 드립니다.
  

 

이번 전시가, 식민지 조선의 아들로 시대를 잘못 태어난 숙명 때문에 인생이 바뀌어 버린 '역사의 희생자'들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전시라는 한정된 공간속에 실려있지 못하는 많은 사실과 증언, 그 이후에 대해서 책을 통해서 더 깊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은 서울역사자료실 신간코너에 배가되어 있습니다

 

 

 


일제 강제동원 그 알려지지 않은 역사

저자
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지음
출판사
돌베개 | 2010-11-22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일본 홋카이도부터 러시아 사할린까지, 65년 전 그곳, 조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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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에 묻히다

저자
우쓰미 아이코, 무라이 요시노리 지음
출판사
역사비평사 | 2012-08-06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적도의 태양 아래 내동댕이쳐진 식민지 조선의 청춘들, 전범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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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범이 아니다

저자
문창재 지음
출판사
일진사 | 2005-04-2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 후 민간인 신분의 군속으로서 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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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저자 출판사 청구기호
일제 강제동원, 그 알려지지 않은 역사 김호경 돌베개SE 911.06 김966ㅇ
적도에 묻히다 우쓰미 아이코 역사비평사911.06 우159ㅈ
나는 전범이 아니다 문창제 일진사911.06 문629ㄴ

 
  

 

'적도에 묻히다'에 실린 시 한편도 함께 소개해 드립니다.

 

 

  
이국땅에서 잠들다
 


적도에 묻히다

저자
우쓰미 아이코, 무라이 요시노리 지음
출판사
역사비평사 | 2012-08-06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적도의 태양 아래 내동댕이쳐진 식민지 조선의 청춘들, 전범이 되...
가격비교

 


이 몸은 이국땅의 사형수
오늘일까 내일일까 집행을 기다리네
오늘도 하루해가 저무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네
 
한 발의 총성으로 스러질 목숨
젊은 사나이의 최후는 사나이답게
야자나무 그늘에 잠들어 있어도
잠시라도 잊을손가 조국의 독립
 
설령 이 몸이 이국 땅에서 썩어버려도
이 마음, 이 정신은 변함없어라
조국의 독립 영원히 지키리
 
피로 눈물로 얼룩진 조국강산
순국의 선열들이 나를 부르네
기필코 나는 가리 선열들의 대열로
선열들은 진심으로 나를 맞으리

 

 

 

 

일제 강제동원 그 알려지지 않은 역사

 

 

일본 전범기업과 강제동원의 현장을 찾아서

 

 

일제 강제동원, 그 잔혹한 역사의 현장으로!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한일 과거사 문제의 최대 쟁점 중 하나인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책『일제 강제동원, 그 알려지지 않은 역사』. 국민일보 현직기자들이 각종 피해자들의 증언과 관련 연구 기록을 토대로 식민지 조선인 강제동원의 실상을 낱낱이 밝힌다.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부터 러시아 사할린, 남양군도까지, 주요 강제동원지를 중심으로 한 일본 전범기업의 만행과 조선인들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동안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전범기업과 강제동원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미발굴 자료, 새로운 증언들이 현장 사진들과 함께 생생하게 담겨 있다.

 

총론 강제동원과 전범기업
1. 강제동원이란 무엇인가
2. 왜 기업이 문제인가
3. 모리야 요시히코 총괄 인터뷰

1부 일본 3대 재벌의 전쟁범죄
1. 군수산업의 대명사, 미쓰비시
2. 극우진영과 결탁한 최대재벌, 미쓰이
3. 군국주의의 배후 조종자, 스미토모
*강제동원 이것이 궁금했다면―관부연락선

2부 낯선 기업, 숨은 가해자
1. 근로정신대 징용의 주범, 후지코시
2. 일본제철, 철을 녹여 포탄으로
3. 아키타 현 대표 전범기업, 도와홀딩스
4. 아소, 골수 우익 가문의 탄광 잔혹사
5. 공포의 노예노동, 북해도탄광기선
6. 그 밖의 전범기업들
*강제동원 이것이 궁금했다면―문학작품 속에 나타난 강제동원

3부 강제동원 더 깊이 들여다보기
1. 남양군도, 휴양지 속에 깃든 피눈물
2. 사할린, 일본에 버림받고 소련에 억류된 징용자들
3. 국외 동원 그늘에 가려진 국내 동원
4. 미귀환의 상징, 유골 문제
5. 강제징용 최소한의 보상, 미불임금
*강제동원 이것이 궁금했다면―99엔의 굴욕? 35엔짜리 수당 지급도 있었다

4부 투쟁과 좌절, 그리고 희망의 역사
1. 투쟁과 좌절의 역사
2. 영원한 족쇄 한일협정
3. 베를린에서 길을 찾다
4. 전범기업에 승리한 중국인 피해자들
5. 한일 양국과 기업이 나아갈 길
*강제동원 이것이 궁금했다면―박경식의 위대한 첫걸음, 그리고 일본 풀뿌리 NGO의 힘

일본 홋카이도부터 러시아 사할린까지,
65년 전 그곳, 조선인 강제동원의 현장으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 연인원 600~700만 명. 1939~1945년, 그 6년 사이 식민지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나? 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올해, 한일 과거사 문제의 최대 쟁점 중의 하나인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책이 출간됐다. 일본 본토는 물론 사할린, 남양군도까지 일본 전범기업이 조선인 노무자들을 강제 동원했던 작업장을 중심으로 취재한 르포이다. 일제가 조선인 강제동원을 시행하게 된 전후 배경부터 강제동원이 본격화된 1939년 이후의 상황을 피해자의 증언과 관련 연구 기록을 토대로 새롭게 복원했다. 


이 책의 필자는 현직 기자들이다. 2009년 말 미쓰비시에 강제 동원됐던 근로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금 명목으로 99엔 지불을 판결한 일명 ‘99엔 사건’에 충격을 받아 이 문제에 뛰어들게 됐다고 한다. 필자들은 현장 취재를 중심으로 하되, 이와 병행하여 자료조사에도 많은 공력을 들였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이하 강제동원조사위)와 같은 정부 기관과 국내외 연구 기관들의 방대한 자료를 치밀하게 검토하는 한편,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일본 내 사회운동가들이 제공한 각종 문서와 사진자료 등을 취합하고 기존 연구자료와 꼼꼼히 대조해나갔다. 역사적 진실을 다루는 문제인 만큼 작은 통계 수치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2010년 초부터 9월까지 <잊혀진 만행, 일본 전범기업을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연재됐다. 이 책은 그 기획기사를 골격으로 하여, 연재 당시 지면의 한계로 빠진 부분과 취재 때 미진했던 부분들을 대폭 보완하여 엮어낸 것이다. 


이 책은 총론과 본론 4부로 이뤄졌다. 총론에서는 이 책에서 다룰 주제들을 전반적으로 개괄하고 있다. 일제 강제동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독자들을 위해, 조선인 강제동원의 방식과 유형, 과정을 실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사례를 짚어가며 알기 쉽게 설명한다. 또한 강제동원의 한 축으로 작동한 일본 기업들의 숨겨진 역할에 대한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1부에서 2부까지는 일본 본토의 강제동원지를 취재한 글을 각 기업별로 묶었다. 우리 사회에도 잘 알려진 미쓰비시나 미쓰이 등 일본의 굵직굵직한 대기업은 물론 국내에 비교적 덜 알려진 일본 기업들의 조선인 노무자 작업장을 취재했다. 필자들이 찾아간 대부분의 작업장은 폐광됐거나 관광지로 탈바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역사의 흔적을 찾으려는 필자들의 힘겨운 취재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3부는 일본 본토를 제외한 강제동원지인 남양군도, 사할린 등에 대한 현장 취재와 국내 동원, 유골 반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국내 동원의 경우 일제가 조선인들을 석탄을 캐는 일보다 금을 캐는 일에 집중적으로 동원시킨 사례가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4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일본 정부와 기업 간의 피해 배상, 미불임금 보상에 대한 소송 투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반복되는 패소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멈추지 않는 피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그들을 돕는 한일 양국 시민운동가들의 뜨거운 열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강제동원 기간 6년은 ‘전 민족적 수난’
일본 전범기업은 조선인 강제동원에 어떤 역할을 했나?

이 책은 기존 국내에 출간된 강제동원 자료집과 피해자들의 증언록과는 뚜렷이 차별되는 내용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이 책은 일제시대 강제동원 분야 중 징병과 군 위안부 부분은 거의 다루지 않고 징용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징병과 군 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 반면, 피해자 규모 면에서는 훨씬 압도적인 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일반적 관심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 필자들이 학계의 연구 결과를 검토한 바에 따르면, 1939년부터 해방 전까지 6년 동안 매년 조선 인구의 30%나 되는 600~700만 명이 일제의 강제동원 현장에 투입됐다. 그리고 이렇게 동원된 노무자 중 적게는 10~20만 명, 많게는 50만 명이 작업장에서 죽음을 맞았다. 필자들이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전 민족적 수난’이었다고 기술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다음으로 이 책은 기존 국내 연구들이 간과해온 강제동원의 주요 축인 일본 기업들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39년경 일본 대기업들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조달할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군수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당시 대기업들은 생산 인력에 필요한 인원을 모집하기 위해 식민지에 눈을 돌렸다. 대기업들이 고용한 브로커들이 조선 현지로 찾아가 모집 활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노무자 인솔부터 작업장 관리까지 기업의 손이 미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필자들은 조선인 강제동원지로 알려진 나가사키 조선소, 미쓰이 탄광 등의 당시 강제동원 작업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일본 기업들이 강제동원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실증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증언과 자료를 찾는 데 주력했다.


셋째, 이 책에는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필자들의 다각적인 노력과 고민의 과정이 담겨 있다. 전문가 집단의 자문, 외국 사례의 검토, 중국인 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 배상 청구 소송으로부터 화해를 이끌어낸 사례를 점검한다. 이를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는 결코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아님을 역설한다. 특히 필자들은 독일의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EVZ)의 사례를 주목하면서, 전범기업들이 전후 일본 정부에 맡긴 미불임금에 대한 공탁금 등을 토대로 일본 정부와 함께 기금을 창설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중국인 강제연행 피해자들이 니시마츠건설과 화해를 이끌어내어 보상금을 받아낸 데에는 중국 정부의 노력과 중국 국민의 여론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투자 ? 영업 활동에 제약을 줄 수 있는 압박 수단들을 강구할 수 있다면, 전범기업들이 지금처럼 강제동원 문제를 미온적으로 대응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 피해자 보상 문제 그렇게 어려운가?
소수자의 문제로 방치된 과거사!

2010년 11월 2일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9대 정책을 제안했다. 이 의원은 “해방된 지 65년이 지났지만 일제 강점기 아래 강제 동원된 근로자 문제에 대해 양국 간 과거사 청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제안의 취지를 밝혔다. 이 의원이 제시한 9대 정책은 일본 전범기업들의 기금 마련이나 포스코와 같은 한일협정 대일청구권자금의 수혜 기업들의 기금 조성 등, 이 책의 필자들이 제시한 해법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와 관련한 해법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이 논의되어왔다. 그중에 몇몇 제안들은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문제의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왜일까? 필자들은 그 주된 이유가 우리 정부의 의지 부족에 있다고 본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대일청구권 문제는 끝났다는 입장이고, 과거 정부와 기업들이 행한 범죄 사실을 먼저 나서서 밝힐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필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에 도의적 책임을 묻기 전에 우리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를 보다 치밀하게 조사하고 피해자들의 보상 해법을 강구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현황 조사는 물론이고 미불임금 규모, 일본 내 미귀환 유골 파악 등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인 사전조사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배상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 정부와 기업들을 제대로 압박하지도 못했다. 2004년 특별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보상 문제도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럼 그동안 정부는 이 문제에 왜 이렇게 소극적으로 대처했을까. 필자들은 강제동원의 문제가 한편으로 소수자 문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피해자들 대부분이 고령에다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실제 통계를 보면 강제동원 피해자의 대다수가 오늘날까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보통 마을에서 가장 못 배우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징용 대상자로 뽑혀 끌려갔다. 그들은 한창 경제적 활동을 할 나이에 돈 한 푼 없이 귀향해야 했고, 그중에는 부상자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그들은 고국에 돌아와서도 수십 년간 사회적 ? 경제적으로 낮은 지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소수자인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다.


그러다 2003년 청와대 앞에서 사건이 터졌다. 자신들의 호소에 무관심한 국가를 향해 일제 피해자 단체 회원들이 강력한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일명 ‘국적 포기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정부는 2004년부터 위로금 지원 사업을 시작한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돌려주어야 할 돈을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대신 주겠다는 것이다.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부상자의 유족, 생환자 등을 구별하여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필자들은 우리 정부가 이만큼이나마 강제동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환영할 일이나, 여전히 여러 가지 면에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먼저 강제동원 노무자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록이 빈약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기록은 주로 일본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일본 정부와 기업으로부터는 기초적인 자료들밖에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보다 전략적으로 일본 정부의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는 게 필자들의 생각이다. 그 밖에 국내 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지원되지 않는 점, 미불임금 지급금이 현대 물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필자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바른 한일관계 어떻게 만들 수 있나
피해자, 가해자 모두가 기억해야 진정한 화해 가능

고(故) 박경식의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은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로, 1965년 한일협정이 맺어진 해에 출간됐다. 그는 서문에서 “조선과 일본의 우호친선과 진정으로 평등한 국제 연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국가 간에 진정한 우호관계가 형성되려면 두 나라의 과거사 청산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강제병합 100주년에 즈음하여 일본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가 있었다. 다음 100년을 내다보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구축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국내 여론들은 담화 내용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한일 강제병합 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발언도 없었고, 군 위안부나 징용 노무자 등 전쟁 피해자들의 보상 문제에 대한 언급도 찾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알맹이는 모두 빠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 과오에 대한 분명한 청산 없이 한일관계의 미래를 얘기할 수 있을까? 이것은 필자들이 이 책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또한 필자들은 우리 정부와 사회 또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 너무 무관심해왔다고 지적한다. 민주정부가 들어서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강제동원 문제가 불거진 것도 점도 그렇고,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일제의 침략전쟁 과정에 벌어진 피해 사실들을 제기하며 일본 정부를 압박하지 못했던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어쩌면 정부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가 우리 사회 일반의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필자들은 일본 현지 취재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준 일본인 사회운동가들에게 깊은 감동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자비를 들여 평생을 걸쳐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연구해온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비교하면 크게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오는 11월 27일에 윤도현 밴드가 교토에서 단바망간기념관 재건을 위한 기금 마련 자선 공연을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단바망간기념관은 고(故) 이정호 씨가 단바 지역의 망간광산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으로 2009년 폐관됐다. 우리 사회의 의식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중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그 역사를 제대로 알 때에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므로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프리모 레비의 이 말은 역사의 피해자나 역사의 가해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2003년 8월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 ‘일제 강제연행 한국 생존자협회’, ‘나눔의 집’, ‘시베리아 삭풍회’ 등 일제 피해자 단체 회원 약 300여 명이 청와대 앞에서 국적 포기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과 대일 관계를 이유로 희생자들을 외면하고 있다”고 절규했다. 나라를 잃어 타국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청춘을 바친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그 국가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일 만큼 비극적인 게 또 있을까. 막다른 곳에 다다른 고령의 피해자들이 최후의 선택을 한 것이다. ―본문 521쪽

과거에 대한 피해의식 차원이 아니라, 역사의 퇴행을 막기 위한 작은 안전장치로서 이 책이 독자들의 역사 인식에 보탬이 되기를 소망한다. 피해자가 기억하고 가해자도 기억해야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고 미래도 열린다. 어설픈 초월이나 망각은 역사의 교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프리모 레비가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에서 던진 명제를 상기한다. “과거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므로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 「들어가는 글」 10쪽

 

 

김호경 , 권기석 , 우성규 지음

출판사  돌베개 | 2010.11.22

서강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곳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탐사기획팀, 정치부에서 일했다. '월남越南 1세대, 그들이 사라진다', '한국 속 난민, 그들은 누구인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 10년 긴급 점검' 등의 기획 보도를 했다. '사형수 63인 리포트' 기획 보도로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에 이어 관훈언론상을 수상했다.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전공과 무관한 길을 택해 1997년 국민일보에 입사했다. 주로 정치부 정당팀과 사회부 사건팀·법조팀에서 일했다. 문화부에서도 약 2년 근무하며 미술·출판 분야 등을 담당했다. 사회부 사건팀장 시절 고위공직자 등의 '쌀 직불금 부당수령' 사건 보도로 동료들과 함께 삼성언론상, 한국신문상을 수상했다.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국제부, 사회부, 정치부, 탐사기획팀을 거쳤다. 선배 기자와 함께 고위공직 후보자 논문 문제를 탐사 보도해 한국기자상과 한국신문상을 수상했다. '이명박 대선 후보 위장전입' 추적 보도, '기후변화-조용한 재앙' 특별기획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적도에 묻히다

 

 

 

독립영웅 혹은 전범이 된 조선인들 이야기

 

 

독립영웅 혹은 전범이 된 식민지 조선 청춘들의 삶을 추적하다!
식민지 조선의 청춘들을 위한 진혼곡『적도에 묻히다』. 공동저자인 우쓰미 아이코, 무라이 요시노리 부부가 평생을 바쳐 인도네시아 조선인 군무원들의 삶과 투쟁을 추적한 치열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태평양전쟁의 이름으로 일본군의 일원이 되어 멀고 먼 적도의 땅까지 흘러들어 간 조선의 청춘들은 다른 나라의 식민지 해방 전쟁에 투신하여 조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독립 영웅이 되거나, 혹은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중 굴레에 허덕이다 전범으로 내몰려 승리한 제국의 감옥에 갇히거나 사형을 당했다.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사회의 완전한 이방인’으로 살아온 조선인 전범자들의 절망적인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린 이 책은 일제의 만행을 이야기하며, 전쟁의 상처로 고통 받고 있는 조선 전범자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 세계는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
시작하며
1부 조선인 군무원의 탄생
가네미쓰 나리! / 하늘에서 내려온 신병 / 황군의 일원으로 / 탈출구 없는 청춘 / 무궁화꽃들 / 노구치 부대의 맹훈련
2부 죽음의 철도, 허기진 비행장
남쪽으로, 남쪽으로 / 자바 포로수용소 / 죽음의 타이-미얀마 철도 / 굶주림의 비행장 / 죽음의 바다, 반다해
3부 암바라와의 항일 반란
허구의 내선일체 / 충칭을 향하여 / 고려독립청년당의 결성 / 혈맹당원의 결집 / 암바라와의 반란 / 반란의 기억 / 화교와의 연계 공작 / 스미레호를 탈취하라! / 체포, 군법회의 그리고 8·15
4부 남의 나라 전쟁이 끝난 날
석방, 그 날은 / 코타 거리의 해방구 / 전범으로 추궁당하며 / 네덜란드의 전범 재판 /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 / 독립 전사를 위한 진혼
후기 / 옮긴이 후기 / 전하는 말_이상문
부록_추기 / 주석 / 참고문헌

 

적도의 태양 아래 내동댕이쳐진 식민지 조선의 청춘들, 전범이 되어,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이 되어 남쪽 나라에서 죽어간 젊은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

‘대동아전쟁’의 이름으로 ‘일본군’의 일원이 되어 멀고 먼 적도의 땅에 흘러들어간 조선의 청춘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라 잃은 설움에 눈물 흘렸고, 귀국의 희망을 발견한 순간 전범으로 내몰려야 했다. 식민지에서 나고 자란 청춘들은 또 다른 식민지 인도네시아 형제들과 함께 독립전쟁에 몸을 바치기도 했다. 그러나 제국 일본도, 고국 대한민국도, 그들을 기억하거나 그들을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 이 책은 부부이기도 한 공동 저자 우쓰미 아이코와 무라이 요시노리가 평생을 바쳐 인도네시아 조선인 군무원들의 삶과 투쟁을 추적한 치열한 기록으로서, '역사 르포르타주'라 불릴 만하다. 또한 번역자인 김종익 씨는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로 인해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회사에서 순식간에 강제사임되고 지분마저 강제이전당하면서 하루아침에 ‘불량국민’의 처지로 떨어졌던 인물이다. 검찰의 2차 조사가 완료된 지금 시점에도 여전히 잃어버린 권리와 인권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는 “불의한 정치권력이 장악한 국가를 상대로 개인이 ‘보편세계의 가치’를 주장하는 일은, 삶의 부조리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허망의 반복”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이 책의 번역은 한 미천한 영혼이 불의한 정치권력에 맞서 싸우며 끝내 자기 파멸에 빠지지 않겠다는 절규를 내질렀던 시간의 증표”였다고 말한다. 식민지 조선의 백성으로서 일제의 전쟁에 휘말려 머나먼 적도의 땅에서 죽어가야 했던 조선인 군무원들의 이야기가, 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국가에 의해 배신당하고 박해당한 ‘선량한 시민’에 의해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은 역사가 준비한 또 하나의 운명적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반만 년 역사에 빛이 나련다. 충위의 군병아 돌격을 해라. 피 흘린 선배들의, 분사한 동지들의, 원한을 풀어주자 창을 겨눠라.”


1944년 12월 29일 깊은 밤, 웅아란 산기슭 스모오노 연병장의 취사장에서 신음소리 같은 낮은 노래 가락이 은은하게 새어나왔다. 희미한 램프 불빛 아래에서 열 명의 조선인 군무원이 기립하여 긴장된 표정으로 고려독립청년당 당가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가 3절까지 이어지자 감정이 복받쳐 흐느껴 우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이제 막 칼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베어 뚝뚝 떨어지는 생생한 피로 흰 천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난 참이었다

 

저자 우쓰미 아이코  

저서(총 6권)
우쓰미 아이코1941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교 제1문학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조선연구소 연구원, 인도네시아 국립파자자란대학교 문학부 강사, 게이센여학원과 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1964년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 교사를 할 때 한 권의 책을 통해 칸토 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 사건을 알고 충격을 받았는데,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대학을 졸업한 것이 부끄러워 일본근현대사를 다시 공부하기 위해 교사 일을 그만두고 대학에 편입하였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학, 마이너리티 연구를 전공하면서 재일 조선인 문제를 파고들었다. 1975~1977년에 인도네이사 파자자란대학의 일본어 교사가 되어 반둥에 머무르며 조선인이 인도네시아의 독립 영웅이 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귀국 후『적도 하의 조선인 반란』을 썼다. 그 후 역시 인도네이사와 싱가포르에서 전범이 된 조선인의 이야기인『조선인 B·C급 전범의 기록』을 집필했다. 우쓰미 교수는 조선인 B·C급 전범에 관한 연구와 실천을 함께 해 온 일본의 양심적 학자로 그 동안 수많은 저작을 냈을 뿐 아니라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동진회와도 투쟁을 함께 해

 

 

 

 

 

 

나는 전범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 후 민간인 신분의 군속으로서 전장에 끌려간 한국인 중 148명이 전범으로 처벌받았고, 그 가운데 23명이 처형당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은 태평양 전쟁 때 연합국 포로 감시요원으로 끌려가 억울하게 전범이 되어버린 이들의 기막힌 사연과 피해자들의 피맺힌 절규를 담고 있다. 내일신문 논설위원인 저자는 일본 당국에 의해서 철저히 은폐되고 같은 동포끼리는 '일본군 협력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배척당하며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을 집중 취재해 조명하고, 전범처리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밝힌다. 관련 사진과 전범으로 처형된 사람들의 절필원고와 도표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우리가 왜 전범인가
끝나지 않은 전쟁
어떤 죽음
출소 후의 생활
동진회 탄생
인디안 비스킷
사형수 감방
세기의 유서
반장된 죄
광복, 그리고 전범
손가락 재판

뺨 한 대에 징역 10년
전범 재판
콰이강의 노예들
포로가 없는 군대
포로 감시원이 되어
죽음의 섬
민간인 억류소
고려독립청년당
탈주의 종말

버려진 백성들
인도네이시아 독립의 별
전쟁은 끝났어도
끝없는 투쟁은 시작되고
가족의 슬픔
일본 국가 배상 소송

한국인 전범들의 절필 유고

참고 자료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에 한국인 전범들의 절규!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 때문에 한국인 148명이 전범으로 처벌받았고, 그 가운데 23명이 사형을 당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우리 현대사에 결락된 이 얘기는 엄연한 사실로서, 그 피해자들은 아직 일본 정부를 상대로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일진사가 발행한 『나는 전범이 아니다』는 태평양 전쟁 재일 한국인 전범 출신자 모임인 동진회(同進會) 회원들이 50년이 넘도록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보상 투쟁을 기자의 감각으로 고발한 논픽션이다.


1990년대 도쿄 특파원 출신인 저자(문창재.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실장)는 일본 근무 중 동진회의 법정 투쟁 취재 보도를 계기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후 10수년 동안 취재와 관찰을 계속하면서 소송 기록과 관련 자료들을 섭렵해 이 책을 저술하였다.

일본은 전쟁 중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등 수십만 명의 연합국 포로가 붙잡히자 1942년 8월에 식민지인 조선과 대만 청년들을 감시원으로 징발해 동남아시아 각지의 전장에 마련한 포로 수용소에 보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태국 지역에서는 콰이강 철도공사에 수많은 연합국 포로가 강제 노동에 동원되어 '침목 하나에 사람 하나가 죽었다'는 말이 생겼을 만큼 혹독한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그들을 지휘 감독해야 했던 한국과 대만인 감시원들 다수가 전후 전범으로 몰렸다.

옥중 절필(絶筆) 사본 첫 공개
이 책에는 유기징역형 복역자가 사형 집행을 앞둔 동료들에게서 받아 보관해 온 옥중 절필 사본이 처음 공개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교수형 또는 총살형으로 이국땅 옥중에서 짧은 생애를 마감한 사형수들은 모두가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면서 '조금만 이 세상에 더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런 기록들과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연합국 전범 재판이라는 것은 보복성이 강한 '감정 재판'이었다. 고발장도, 고소장도, 증거도, 변호인도 무시된 형식만의 재판에서부터 피해자의 손가락질 한번으로 기소되는 '손가락 재판'의 실태, '뺨 한대에 징역 10년'이란 말로 상징되는 감정 재판의 실상이 가감 없이 수록되었다.


유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 한국이 독립국이 된 뒤에도 일본 도쿄 스가모 형무소로 이감되어 남은 형을 살아야 했다. 국적이 달라졌는데도 범죄를 저지를 당시의 국적이 일본이었다는 이유였다.


일본인 중요 전범들이 다 풀려나고, 공직에서 추방되었던 전쟁 협력자들까지 복귀한 뒤에야 한국인 전범들은 가석방 형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고국에 돌아갈 여비를 주지 않아 모두가 그곳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국적이 달라졌으니 원호도 보상도 못해주겠다는 논리였다. 전후 극심한 혼란기에 아무 연고도 없는 남의 나라 땅에서 온갖 신고(辛苦)를 겪던 두 사람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보상 투쟁을 이끌고 있는 동진회 이학래 회장은 ?지옥 같은 콰이강 철도 공사장이나 비행장 활주로 공사장에 포로들을 동원한 것이 어떻게 말단 '군속용인' 신분인 포로 감시원들 책임이냐?고 가슴을 치면서, 2년 계약으로 끌려갔다가 3년을 근무한 감시원들도 모두 피해자인데 전범 혐의란 너무 억울했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은 피해자들의 요구나 사죄에 묵묵부답
일본은 피해자들에게 단 한 마디 사죄의 말도, 원호나 보상도 없이 피해자들의 요구를 묵살과 무시로 일관해 왔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민간인 청구권이 공식 소멸되자 피해자들은 마지막으로 사법부의 양심에 호소하는 길을 택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최고재판소마저도 '보상해 주어야 마땅하지만 실정법이 없어 어쩔 수 없다'는 논지로 기각 및 각하 판결을 내렸다.


그래도 피해자들은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정부측에 입법을 권고한 부언(付言) 판결을 근거로 일본 정부와 정계에 입법 청원 운동을 계속하고 있지만 전망은 어둡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서문을 통해 '평생을 정신병원 격리 병동에 갇혀 있다가 외롭게 죽은 한 전범 출신자의 고별식을 취재하면서 견딜 수 없는 분노로 몸이 떨렸다'고 적고 있다. 포로 감시원으로 3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7년, 정신병에 걸려 격리 병동에서 40년, 이렇게 꼭 50년을 이국땅에서 고통 속에 살다 간 그의 죽음을 일본 정부가 숨기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죽은 사람에게 문상도 영결식도 허용하지 않은 조치를 그 증거로 제시한 지은이는 '한 인간의 일생을 그렇게 해 놓고도 양심의 가책은커녕 미안한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고 토로하면서, 현대사의 결락을 보완하는 기분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고국에서도 배척받은 버려진 백성
이들은 고국에서도 배척받는 이중 고통을 겪어왔다.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본 일이 없는 한국 정부는 1965년 일본에게서 받은 청구권 자금을 선심 쓰듯 극히 일부 피해자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이들만은 제외시켰다. 1945년 이후의 일은 보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민간에서는 일본의 전쟁에 협력하다가 전범이 되었다는 이유로 백안시하는 풍조가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판결을 앞둔 전범 피의자들이 탄원서를 보내달라고 하소연해도 아무도 거기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 세태였다. 그런 친일파 취급은 뒷날 뼈라도 고국에 묻고 싶어 돌아오려던 사람들의 발길을 막았다. 그래서 지은이는 이들을 '버려진 백성'이라고 표현하였다.

 

저자 문창재

문창재1946년생. 강원 정선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와서 양정고와 고려대 국문학과를 나왔다. 1972년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하여 1981년에 일본 게이오 대학교 신문연구소를 수료하였으며, 논설위원 재직 중 한양대학교 언론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신문사에서는 동경특파원, 국제부장, 사회부장, 정치2부장, 편집국 국차장, 논설위원실장 등으로 일하였고, 2004년 정년퇴직하였다. 퇴직 후 내일신문 객원논설위원으로 일하다 2009년 논설고문이 되었다. '동경특파원 보고서', '역사는 하늘보다 무섭다', '나는 전법이 아니다', '지구촌 한국인'(공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전 육군참모총장 백선엽, 전 해군참모청장 함명수, 전 해병대사령관 공정식, 창군 간호장교 조귀례 등 군 원로들의 회고록을 집필하였다. 신문사 재직 중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감사, 관훈클럽 서기 등 언론단체 임원으로 봉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