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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大韓民國) 역대 능(陵) - 11 삼국시대부터 현재 대통령까지의 왕릉

草霧 2013. 8. 20. 13:13

 

 

 

대한민국(大韓民國) 역대 능(陵) - 11

 

 

신들의 정원

 

 

역사의 숲을 산책하다

 

 

 

조선왕릉

 

 

[ 朝鮮王陵 ,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

 

 

 

() - 11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왕릉

 

 

 

 

왕릉은 조선 시대의 역대 왕과 왕비, 추존된 왕들의 무덤을 총칭하는 말이다.

 

 

 

 

 

 

 

조선왕릉은 42(북한소재 2기 포함), 원은 13, 묘는 64기이다.

 

조선 왕릉은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된다.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이라 하고,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私親 : 종실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임금의 생가 어버이)의 무덤을 원()이라 하며, 나머지 왕족, 즉 왕의 정궁의 자식인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와 서녀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의 무덤을 묘()라 일컫는다. 광릉이 자리 잡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는 세조의 능인 광릉 이외에 2기의 원이 더 있다. 휘경원과 순강원이 그것이다. 조선왕릉 120(40, 14, 66) 중 현재 비공개하고 있는 지역은 사적 12곳임(3, 4, 5)입니다

 

 

사후에 왕()으로 추존(追尊)된 왕릉(王陵) 5()

폐위(廢位)된 묘() 2()

황제릉(皇帝陵) 2()

왕릉 35

 

 

 

 

 

 

1. 추존이라는 미명으로, 역사세우기

 

추존(追尊)함길도 8

 

2. 왕조, 문을 열다

 

1대 태조 (太祖, 1335-1408) _ 건원릉健元陵, 제릉齊陵, 정릉 貞陵

건원릉建元陵 | 조선 건국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

정릉貞陵 | 조선 최초의 국모 신덕왕후

 

2대 정종 (定宗, 1357-1419) _ 후릉 厚陵

 

3대 태종 (太宗, 1367-1422) _ 헌릉 獻陵

헌릉獻陵 | 철권으로 조선의 기틀을 잡은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4대 세종 (世宗, 1397-1450) _ 영릉 英陵

영릉英陵 | 조선의 문화를 꽃피운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5대 문종 (文宗, 1414-1452) _ 현릉 顯陵

현릉顯陵 | 세종의 분신 문종과 현덕왕후

 

6대 단종 (端宗, 1441-1457) _ 장릉莊陵, 사릉思陵

장릉莊陵 | 비운의 왕 단종

사릉思陵 | 가장 슬픈 왕비 정순왕후

 

7대 세조 (世祖, 1417-1468) _ 광릉 光陵

광릉光陵 | 계유정난으로 등극한 세조와 정희왕후

 

추존(追尊)왕 덕종 (德宗, 1438-1457) _ 경릉 敬陵

경릉敬陵 | 요절한 덕종과 파란의 소혜왕후

 

8대 예종 (睿宗, 1450-1469) _ 창릉昌陵, 공릉恭陵

창릉昌陵 | 유약한 왕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9대 성종 (成宗, 1457-1494) _ 선릉宣陵, 순릉順陵, 회묘 懷墓

공릉恭陵과 순릉順陵 그리고 영릉永陵 | 시대를 풍미했던 한명회의 딸 장순왕후, 공혜왕후 그리고 추존왕 진종과 효순왕후

선릉宣陵 | 비극의 씨앗을 남긴 성종과 정현왕후

 

3. 왕조, 산을 넘다

 

10대 연산군(燕山君, 1476-1506) _ 연산군묘 燕山君墓

 

11대 중종(中宗, 1488-1544) _ 정릉靖陵, 온릉溫陵, 희릉禧陵, 태릉 泰陵

정릉靖陵 |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

온릉溫陵 | 치마바위 전설로 유명한 단경왕후

희릉禧陵 |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한 장경왕후

태릉泰陵 | 불교를 사랑한 문정왕후

 

12대 인종 (仁宗, 1515-1545) _ 효릉 孝陵

효릉孝陵 | 독살설과 함께 잠든 인종

 

13대 명종(明宗, 1534-1567) _ 강릉 康陵, 순창원 順昌園

강릉康陵 | 외척의 농단에 휘둘린 명종 그리고 인순왕후

 

14대 선조 (宣祖, 1552-1608) _ 목릉 穆陵, 성묘 成墓, 순강원 順康園

목릉穆陵 | 서자 출신 왕 선조와 의인왕후 그리고 인목왕후

 

4. 조선, 또 다시 위기를 맞다

 

15대 광해군 (光海君, 1575-1641) _ 광해군묘 光海君墓

 

추존(追尊)왕 원종 (元宗, 1580-1619) _ 장릉 章陵

장릉章陵 | 재위하지 않았던 왕 원종과 인헌왕후

 

5. 왕조, 반석을 다지다

 

16대 인조 (仁祖, 1595-1649) _ 장릉 長陵, 휘릉 徽陵, 소경원 昭慶園, 영회원 永懷園

장릉長陵 | 가장 용렬한 왕 인조와 인렬왕후

휘릉徽陵 | 예송논쟁에 휘말린 장렬왕후

 

6. 조선, 당쟁에 휩싸이다

 

17대 효종 (孝宗, 1619-1659) _ 영릉 寧陵

영릉寧陵 | 북벌을 주창했던 효종과 인선왕후

 

18대 현종 (顯宗, 1641-1674) _ 숭릉 崇陵

숭릉崇陵 | 외국에서 태어난 왕 현종과 과격한 성품의 명성왕후

 

7. 환국정치로 왕권을 다지다

 

19대 숙종 (肅宗, 1661-1720) _ 명릉明陵, 익릉 翼陵, 대빈묘大嬪墓, 소령원昭寧園

명릉明陵 | 차마폭에 휩싸였던 숙종과 인현왕후 그리고 인원왕후

익릉翼陵 | 꽃피우지 못하고 잠든 인경왕후

 

20대 경종 (景宗, 1688-1724) _ 의릉懿陵, 혜릉惠陵

의릉懿陵 | 식물임금 경종과 선의왕후

혜릉惠陵 | 세자빈 신분에서 왕후로 추존된 단의왕후

 

8. 조선, 르네상스를 맞다

 

21대 영조 (英祖, 1694-1776) _ 원릉元陵, 홍릉弘陵, 수경원綏慶園, 수길원 綏吉園

원릉元陵 | 묻히고 싶은 곳에 잠들지 못한 영조와 정순왕후

홍릉弘陵 | 무수리 출신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정성왕후

 

추존(追尊)왕 진종(眞宗) _ 영릉永陵

 

추존(追尊)왕 장조(사도세자 莊祖) _ 융릉隆陵, 의령원 懿寧園

융릉隆陵 | 장조로 추존된 장헌세자와 헌경왕후

 

22대 정조(正祖, 1752-1800) _ 건릉健陵, 휘경원徽慶園, 효창원 孝昌園

건릉健陵 | 개혁군주 정조와 효의왕후

 

9. 조선, 세도정치에 휘둘리다

 

23대 순조 (純祖, 1790-1834) _ 인릉仁陵

인릉仁陵 | 순조와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근원지 순원왕후

 

추존(追尊)왕 익종 (翼宗, 문조 文祖) _ 수릉綏陵

수릉綏陵 |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

 

24대 헌종 (憲宗, 1827-1849) _ 경릉景陵

경릉景陵 | 풍류를 사랑했던 헌종과 효현왕후 그리고 효정왕후

 

25대 철종 (哲宗, 1831-1863) _ 예릉睿陵

예릉睿陵 | 강화도령 철종과 철인왕후

 

10. 오백 년 왕조, 문을 닫다

 

26대 고종황제 (高宗, 1852-1919) _ 홍릉洪陵, 영휘원永徽園, 흥원 興園

홍릉洪陵 | 망국에 중심에 서 있던 고종과 명성황후

 

27대 순종황제 (純宗, 1874-1926) _ 유릉裕陵, 영원英園, 숭인원 崇仁園, 회인원 懷仁園

유릉裕陵 |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과 순명효황후 그리고 순정효황후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왕릉

 

 

 

 

 

 

 

왕릉(王陵)은 군주·이 묻혀 있는 무덤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왕릉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조선왕릉, 충남 공주시에 있는 무령왕릉, 경주시의 신라 고분군을 들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소를 허가 없이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능제(陵祭)를 지내는 왕릉 지역은 예외로 두었는데, 덕분에 부근 백성들은 소고기 요리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왕릉 부근에 소 갈비 음식점이 많은 이유는 이러한 풍습과 관련깊다.

 

 

 

우리나라 역대 왕조의 능의 변천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왕릉의 변천

 

 

삼국시대

삼국 형성 초기에는 국가마다 제각각의 무덤 형식을 갖추었으나 후기로 가면서 굴식 돌방무덤을 채택하는 공통점을 보인다.

 

고구려

고구려의 왕실은 돌무지무덤을 사용하다가 5세기에 접어들면서 외형은 돌무지무덤이고 내부의 매장 시설은 돌방인 방식을 사용하였다. 지안(集安)시의 장군총이나 태왕릉이 이러한 방식이다. 그 후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면서 외부도 원형 봉토분을 쌓는 형식으로 변한다.

 

백제

백제의 왕족은 5세기까지 고구려식 돌무지무덤 방식을 사용하였으나 웅진으로 천도한 후 굴식 돌방무덤을 사용한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이 대표적이다

 

신라

초기 신라의 왕묘는 나무로 짠 덧널무덤을 이용하였으나 5세기 이후로는 돌무지 덧널무덤을 크게 발달시킨다. 화려한 장신구들이 출토되는 천마총, 황남대총이 이에 해당된다. 6세기로 들면서 신라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굴식 돌방무덤을 사용한다.

 

가야

신라와 마찬가지로 나무로 짠 덧널무덤을 사용하였으나 중기에는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크게 발달한다. 돌로 덧널을 만들고 위에서부터 시신을 안치시킨 후 커다란 판석으로 뚜껑을 삼고 봉토를 씌우는 형식이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등이 대표적이다. 6세기 중엽에 들면서 백제의 영향을 받아 굴식 돌방무덤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통일신라시대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유행하였고, 고분 양식도 거대한 돌무지 덧널무덤에서 점차 작은 굴식 돌방무덤으로 바뀌었다. 봉토 주변에 12지신상을 조각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고려 시대 왕릉은 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산에 택지를 하였다. 삼국시대의 돌방무덤의 형식과 유사하나 내부보다는 외부를 견고하게 만든 특징이 있다. 병풍석, 난간석, 상석, 망주석, 석수, 정자각 등 능의 상설 방식은 조선 왕릉의 기본이 된다.

 

조선시대

유교와 풍수를 기준으로 왕릉을 조성하였다. 풍수로 보아 명당발복하기 좋은 곳과 세종때 만든 『국조오례의』 의 왕릉 조성양식을 기본으로 하였다.

 

대한제국고종이 황제로 승하하자 명나라의 태조의 효릉 양식을 본 떠 황제릉의 격식에 맞추어 조성하였다. 풍수적인 석물들(망주석, 장명등)을 제외한 석인들과 석수들은 일자각 앞으로 옮기고 석수(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를 추가하였다.

      

 

왕릉의 공간구성

능역은 크게 능침(성역) - 제향(성역과 속세가 만나는 공간) - 진입(속세)의 세 공간으로 나뉜다. 풍수사상에 따라 능역 그 자체가 자연 환경의 일부라 생각되도록 조영하는 자연 친화적인 방식은 같은 동양권인 중국과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이다. 능역의 크기나 봉분 조영 방식, 문 · 무석인 등의 석물과 기타 시설물 배치 등은 기본적으로 조선왕릉의 상설 제도(象設制渡)를 따랐으나 왕릉 조성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가감과 변화가 적용되었다. ‘상설’은 ‘형상을 설치한다’는 뜻의 말로, 능역에 설치한 모든 시설물과 석물을 일컬으며, 이에 해당하는 배치 규범은 ‘상설 제도’라 한다.


상설 가운데 특히, 석물 곧, 병풍석과 난간석, 문 · 무석인 등의 크기나 조각 양식은 시대에 따라 그 예술성을 달리하여 조선왕릉을 시대적 정서를 읽어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능침(성역)공간

능침 공간의 핵심이 되는 시설은 봉분이다. 봉분은 주변 산세와 지형에 따라 단릉 · 쌍릉 · 합장릉 · 삼연릉 · 동원이강릉 · 동원상하릉 등 다양한 양식으로 조성되었다. 왕릉 부분은 원형의 봉분 양옆과 뒤쪽 삼면으로 곡장을 두르고, 그 둘레에 소나무를 심어 봉분의 존재를 강조하였으며, 봉분 둘레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르고, 봉분을 수호하는 각 두 쌍의 석호, 석양을 세우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그런가 하면 병풍석이나 난간석에 십이지상을 조각하거나 글씨로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으며, 연꽃, 모란 무늬 등을 새겨 아름답게 장식 하였다. 능침 공간은 가로 방향으로 장대석을 설치하여 3단계로 나누는데, 가장 위쪽은 선왕의 영혼이 깃든 상계이며, 그 아래 단(중계)은 문인의 공간, 맨 아래 단(하계)은 무인의 영역으로 표현되었다. 상계에는 곡장과 봉분, 석호 · 석양 · 혼유석과 망주석 등을 놓고, 중계에는 장명등과 문석인과 석마, 하계에는 무석인과 석마를 세웠다. 능침 공간은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므로 성역시 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다.

제향 공간

산 자가 죽은 자를 맞이하여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홍살문을 들어서면 가마에서 내린 왕 또는 제관이 배위에서 사배하는 것을 시작으로 제례가 시작된다. 왕과 제관들은 참도(신도와 어도)를 따라 제수가 진설된 정자각으로 이동한다. 정자각 주위에는 축문을 태우는 예감, 능을 지키고 제수를 준비하는 수복방과 수라간, 비각 등이 있다.

진입 공간

평소 왕릉의 관리와 제례 준비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왕릉 관리인(능참봉이 책임자)이 머무는 재실이 있으며, 전사청이 있다. 재실을 지나 속세와 성역의 경계가 되는 금천교를 건너면 제향 공간이 시작되는 홍살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풍수상 비보를 위해 마련한 연못인 지당(池塘)이나 왕릉군이 있는 곳에 능역의 신성함을 나타내기 위해 조성하는 외홍살문 등이 세워지기도 한다.

 

왕릉의 공간구성도
1 곡장 : 왕릉을 보호하기 위하여 삼면으로 둘러놓은 담장
2 봉분 :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서 만든 무덤
3 석양 : 죽은 이의 명복을 빌며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설치함
4 석호 : 능침을 지키는 호랑이 모양의 수호신. 석양과 함께 능침을 수호하는 의미로 밖을 지켜보는 형태로 설치함
5 혼유석 : 일반인의 묘에는 상석이라 하여 제물을 차려놓는 곳이지만, 왕릉은 정자각에서 제를 올리므로 혼령이 앉아 노는 곳이라 함
6 망주석 : 봉분 좌우측에 각 1주씩 세우는 기둥, 그 기능에 대해서는 육신에서 분리된 혼이 육신을 찾아들 때 멀리서 봉분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표시의 기능을 한다는 설,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기능을 한다는 설, 왕릉의 풍수적 생기가 흩어지지 않게 하는 기능을 한다는 설 등 여러 주장이 있음
7 장명등 : 왕릉의 장생발복을 기원하는 뜻으로 세웠다. 조선 왕조 최초로 만들어진 정릉의 장명등은 사각지붕이었는데, 초기에는 팔각지붕이다가 숙종 명릉부터 다시 사각기붕으로 양식이 변함
8 문석인 : 장명등 좌우에 있으며, 언제든지 왕명에 복종한다는 자세로 양손으로 홀을 쥐고 서 있음
9 석마 : 문석인과 무석인은 각각 석마를 대동하고 있음
10 무석인 : 문인석 아랫단에 석마를 대동하고 있으며, 왕을 호위하고 왕이 위험에 처했을 때 신속하게 대처한다는 뜻에서 장검을 짚고 위엄 있는 자세를 취함
11 산신석 : 정자각 뒤 오른쪽, 보통 예감과 마주보는 위치에 설치한 것으로 장사 후 3년간 후토신(땅을 관장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사용됨
12 예감 : 정자각 뒤 서쪽에 제향 후 축문을 태우던 곳으로, 석함(石函)이라고 하며, 소대(소전대), 망료위(望燎位)라고도 함.
13 비각 : 비석이나 신도비를 안치하는 곳. 신도비(神道碑)는 능 주인의 생전의 업적을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
14 정자각 : 제향을 올리는 곳으로 황제는 일(日)자 모양으로 침전을 조성하고, 왕은 정(丁)자 모양의 정자각을 조성함. 정자각에 오를 때는 동쪽으로 오르고 내려올 때는 서쪽으로 내려옴
15 소전대 : 축문을 태우는 곳이었으나 조선 3대 태종 헌릉 이후로는 예감에 그 기능이 포함되면서 소전대는 생략되었다.
16 참도 :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폭 3미터 정도로 돌을 깔아놓은 길. 왼쪽의 약간 높은 곳은 신이 다니는 신도(神道)라 하며, 오른쪽의 임금이 다니는 길은 어도(御道)라고 하여 약간 낮음
17 수복방 : 능을 지키는 수복이 지내던 곳으로 정자각 동쪽에 지었음
18 수라방 : 제사 음식과 제물을 준비하던 장소
19 배위 : 홍살문 옆에 한 평 정도 돌을 깔아놓은 곳. 판위(板位), 어배석(御拜石), 망릉위(望陵位)라고도 함. 제향행사 등 의식 때 망릉례(제사를 지내러 왔음을 알리는 의식) 등을 행하는 곳
20 홍살문 : 홍살문은 능, 원, 사당 등의 앞에 세우며,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 붉은 칠을 한 둥근 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살을 박아놓음. 홍문(紅門)또는 홍전문(紅箭門)이라고도 함
21 금천교 : 배산임수의 풍수지리에 따라 물을 가로질러 놓은 다리       

 

능역의 상설제도

 

조선 왕릉이란?     

 

조선 최고 통치자의 무덤, 왕릉

조선왕조는 1392년 탄생 이래 왕조의 문을 닫은 1910년까지 518년의 세월을 이어오면서 27대에 걸친 왕과 왕비를 배출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왕과 왕비를 포함한 왕실 가족의 무덤을 신분에 따라 능(陵)ㆍ원(園)ㆍ묘(墓)로 구분하였는데, 왕과 왕비 및 추존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私親 · 왕의 자리에 오른 왕의 친부모)의 무덤을 ‘원’, 나머지 왕족의 무덤을 ‘묘’라 부른다. 능ㆍ원ㆍ묘에 관계된 조선 왕실의 무덤은 모두 119기로, 이 가운데 능이 42기, 원이 13기, 묘가 64기이다.

 

유교와 풍수사상, 조선왕릉의 바탕정신

능역조성의 기본풍수조선왕릉은 도성인 한양으로부터의 거리, 주변 능역과의 거리, 주변 산세, 관리의 목적 등에 따라 입지를 결정했다. 기본적으로 도성인 한양을 중심으로 4킬로미터 밖 40킬로미터 이내의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갖춘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땅을 풍수적 길지(吉地)로서 능역으로 선정하였으며, 주변 산이나 지형지물 등을 이용하여 주변의 다른 시설물과 능역을 격리시킴으로써 능역이 신성한 공간임을 드러내왔다. 조선왕릉이 서울 근교의 풍부한 녹지 공간에 자리하여 현대인에게 도심 속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풍수사상과 시대상을 바탕으로 하여 왕릉의 입지가 결정되면, 성(聖)과 속(俗)의 위계적 질서를 반영한 유교 예법에 따라 능역의 공간을 구성하였다. 기본 묘제는 고려를 계승하였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능에서 치르는 각종 제례 절차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적절한 모습의 조선왕릉으로 일정한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상장례(喪葬禮)는 《주자가례》를 바탕으로 조선 왕실의 현실에 맞게 예법을 정리한 《세종실록 오례의》와 《국조오례의》를 따랐으며,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임시기구인 3도감을 설치하여 상장례를 담당케 했다. 3도감은 장례를 총괄하는 국장도감(國葬都監), 시신을 임시 안치할 빈소의 설치와 매장을 준비하는 빈전도감(殯殿都監), 무덤을 조성하는 산릉도감(山陵都監)이다.

 

 

 

 

 

 

산릉제례

조선왕조의 제례는 위로는 왕릉에서부터 일반 사대부 및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거행한 의례였다. 무덤에서 치르는 제례는 사람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삶을 사는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의식이다.

 


조선왕조는 나라의 문을 열고 왕릉을 조성하기 시작한 이래 산릉제례를 엄격하게 지켜왔으나, 1910년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면서 산릉제례를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 후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이 소임을 맡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없는 산릉제례의 오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산릉제례로 인하여 조선왕릉은 단순한 건축적 기념물이 아니라 21세기에도 살아 있는 전통 문화유산이 되고 있다.

 

산능제례 절차

제관
제관
예조에서 제관을 선정 한다.
출궁
출궁
임금의 행렬이 궁궐을 나서서 산릉에 도착하는 행차 의식
제수진설
제수진설
제례 의식 전에 전사관과 능사가 제수를 진설하는 의식
예능소
예능소
임금이 제례를 행하기 위해 소여를 타고 홍살문 앞에 도착하는 의식
예판위
예판위
임금이 정자각의 판위에 서쪽을 향하여 서는 의식
참신
참신
신을 맞이하기 위하여 모든 제관이 네 번 절하는 의식
관세취위
관세취위
제관이 손을 씻고 정해진 위치에 나아가는 의식
감작
감작
제주를 따르는 것을 살펴보는 의식
초헌례
초헌례
초헌관이 첫째 잔을 신위전에 올리고 대축이 축문을 낭독하는 의식
독축
독축
축문을 읽는 의식
아헌례
아헌례
아헌관(영의정)이 둘째 잔을 신위전에 올리는 의식
종헌례
종헌례
종헌관(좌의정)이 셋째 잔을 신위전에 올리는 의식
사신
사신
신을 보내기 위하여 네 번 절하는 의식
망료
망료
제례에 쓰인 축문을 태우는 의식
환궁
환궁
임금의 행렬이 다시 궁궐로 돌아가는 행차 의식
철찬
철찬
전사관과 제관들이 제찬을 거두는 의식

 

왕릉관련기록

조선왕조는 국가에서 중요한 행사를 치르면 전 과정을 일일이 기록하여 책으로 남겨놓았다. ‘의궤’로 알려진 기록물이 그것이다. 국장을 치를 때에도 당연히 의궤로서 기록을 남겼다. 국장 관련 의궤는 상장례를 담당하는 임시 기구인 국장도감, 빈전도감, 산릉도감 세곳에서 제작하였다. 이들 의궤는 나라에서 왕릉을 만들 때 어떤 의도로 터를 잡고 누가 왕릉 조성을 주관했으며 거기에 들어간 경비나 자재는 무엇이었고 국장이 언제 시작하여 언제 끝났는지를 소상히 기록하고 있으며, 때로는 상세한 그림까지 곁들여서 국장 행렬이나 왕릉이 어떤 모습으로 조성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의궤가 있기에, 장례의 절차가 아무리 복잡하고 까다로워도, 설령 왕릉 중 일부가 불의의 사고로 훼손되거나 본래 모습을 상실했다해도 그 원형을 그대로 유지, 복구할 수 있었다.

 


의궤 외에 각 능에서는 능의 유래와 특징, 능 관리상의 주요 사항을 글로 정리한 ‘능지’를 제작해왔다. 이들 능지는 조선시대 왕릉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그밖에도 조선왕릉과 관련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 《국조오례의》등이 있다. 왕릉 조성과 관련된 이같이 많은 문헌 기록은 유례가 없어 조선왕릉의 문화적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정조국장도감의궤 반차도 중 전부고취와 의장 행렬 부분

 

 

 

 

 

 

신라 왕릉

 

한반도 최초의 통일 국가, 신라!


신라는 뱃길을 통해 해상 왕국의 꿈을 실현했고, 종교를 통해 불국토의 이상을 꿈꿨으며 황금의 나라로 불릴만큼 번성한 문화와 과학을 가졌던 나라다. 박혁거세를 시작으로 마지막 경순왕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지켰던 천년왕국. 그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꽃 피웠던 왕들의 삶과 죽음이 신라 왕릉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신라는 시조인 박혁거세로부터 56대 경순왕으로 이어지는 왕조를 건설했다. 992년간 천년 왕국을 이룩한 역대 56명의 왕, 그들의 마지막이 신라의 도읍지 경주를 중심으로 한 왕릉에 묻혀있다. 동 시대를 살았던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의 왕릉이 거의 확인되지 못하거나 현존하지 않는 것에 비해 신라는56대왕 중 37왕의 능묘가 확인·추정되며 19왕의 능묘만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신라왕릉은 1961년부터 1975년까지 무열왕릉으로 시작해 경순왕릉을 마지막으로 모두 31지역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지역의 규모를 합치면 최소 2,870평에서 최대 6만 2100평… 신라 왕국의 웅장함과 번성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으로 신라를 고분의 나라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한 신라왕릉의 분포지역을 살펴보면 신라 마지막 왕인 제56대 경순왕의 능만이 경기도 연천군에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경주시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는 경주가 명실상부한 신라의 도읍이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신라왕릉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은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지하에 무덤광을 파고 상자형 나무덧널을 넣은 뒤 그 주위와 위를 돌로 덮은 다음 다시 그 바깥을 봉토로 씌운 신라 귀족의 특수무덤이다. 돌무지덧널무덤은 금관, 과대, 유리잔를 비롯하여 화려한 부장품이 많았는데 이는 거대한 봉토로 덮여있어 도굴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천마총, 황남대총, 금관총 등이 유명하다. 이러한 돌무지덧널무덤은 고구려, 백제와는 전혀 다른 신라만의 뚜렷한 역사와 개성을 갖고 있다. 신라왕릉은 거의 모두 원형토분이고, 오릉을 비롯하여 초기의 능들은 일반 분묘와 같이 특별한 시설을 하거나 의물을 설치하지 않았다.

진골로서 처음으로 왕위에 오른 제29대 무열왕의 능에 처음으로 능비를 세우고 봉토밑에 자연석을 장치하는 등 신라의 능묘제도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제31대 신문왕의 능에는 봉토 밑에 돌아가면서 가공석으로 성을 쌓듯이 여러 단을 쌓아 올리고 다시 삼각형의 가공석을 수십 개 받쳐 놓아 봉토 외호석을 보호하고 있다.


이후 신라 능묘제는 진일보하여 장판석, 탱주, 지대석 등으로 능 주위가 보강되고, 다시 석사자, 문인석, 무인석, 12지신상 등 수호석으로 장식하게 되었다. 4세기 전반에 일어나서 6세기 전반에 소멸한 돌무지덧널무덤 양식은 가장 번성했던 신라 왕들의 또 다른 왕국이었던 것이다. 신라는 경주 평야에 있던 여섯 부족의 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면서 건국된 나라이다. 건국 초기부터 935년 멸망할 때까지 장장 992년간 신라의 도읍이었던 곳이 바로 경주이다.


그로부터 천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경주는 신라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도시이다. 경주에는 천년도 더 전에 살았던 신라왕들의 무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경주시 황남동에 자리잡은 대릉원이다. 약 12만 5,400 평의 평지에 23기의 고분이 솟아 있는 대릉원은 고분군의 규모로는 경주에서 가장 크다. 황남대총, 천마총, 미추왕릉 등의 돌무지덧널무덤이 밀집한 곳으로, 미추왕을 ‘대릉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에 따라 대릉원이라 이름 붙였다 이중에서도 황남대총은 동서 80 m, 남북 120 m, 높이 23 m로 신라 고분중 가장 큰 규모다. 거대한 표주박 모양의 쌍무덤으로 남쪽 무덤에서는 남자의 뼈 일부 및 유물이 나왔고 북쪽 무덤에서는 금관과 부인대 라는 글씨가 있는 은팔찌 등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각각 남자와 여자의 무덤 즉 부부의 무덤을 붙여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황남대총과 더불어 대릉원을 유명하게 한 고분군이 있는데 155호 고분인 천마총이다. 1973년 발굴된 천마총은 지름 47m, 높이 12.7m의 규모로 5세기 말~6세기 초의 전형적인 단곽식 돌무지덧널무덤이다. 이 무덤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제21대 소지마립간 이라는 설과 지증마립간 이라는 설이 있을 뿐이다. 주인이 없는 155고분이 천마총이라 불리게 된 것은 출토된 말다래에 천마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릉원의 23기의 고분 중 신라의 왕을 모신 고분이 있으니 바로 미추왕릉이다.


신라 13대 왕인 미추왕(262~283)은 김씨로는 최초의 왕이며 여러차례 백제의 공격을 막아내고 농업을 장려했다. 미추왕릉은 원형봉토분으로 높이 10m, 직경 20m 로 내부 구조는 돌무지덧널무덤일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 시내 평지 고분 가운데에서도 대형분에 속한다. 능 앞에는 혼이 머무는 자리인 ‘혼휴석’이 있다. 천년왕국 신라를 세운 시조, 박혁거세. 그의 마지막 흔적 또한 이곳 경주에 있다. 경주 서남쪽 평지에 위치한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 무덤인 신라 오릉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박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있다. 내부는 알 수 없으나 무덤의 겉 모습은 경주시내에 있는 다른 삼국시대 신라 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봉토무덤으로, 1호 무덤이 높이 10 m 로 가장 크며 2호 무덤은 표주박형으로 봉분이 두개인 2인용 무덤이다 천년 신라 56대 왕 중 확인ㆍ추정된 37 왕의 능묘는 대부분 경주 곳곳에 산재해 있다. 찬란한 역사를 꽃 피웠던 신라의 왕들이 천년고도 경주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경주 북서쪽 선도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구릉위에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의 능이 있다. 첫 진골 출신 왕으로 당과 연합하여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고 통일 대업의 기반을 닦았던 무열왕. 그의 능은 밑둘레 114m, 높이 8.7m의 대형능으로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이 쓴 ‘태종무열대왕지비'라는 글씨가 돋을 새김 되어있어 능의 주인이 누구인지 말해주고 있다. 바닷길을 열어 전남 완도의 청해진을 두고 장보고를 대사로 삼아 해상권을 장악, 해상왕국으로서의 신라를 만든 왕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흥덕왕이다.

 

신라 42대왕인 흥덕왕의 능은 밑둘레 65m, 높이 6.4m로 신라 역대왕릉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형식이 갖춰진 왕릉이다. 이 능의 둘레에는 호석에 십이지신상을 새겼고 그 주위로 난간을 둘렀다. 네 모서리에는 돌사자가 있고 앞쪽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을 세웠는데 무인석은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있어 당시 신라가 서역과 활발한 교류활동을 펼쳤음을 알 수 있다.

경주 선도산 자락에 신라 23대왕 법흥왕의 릉이 있다. 법흥왕은 처음으로 병부를 설치하는 등 신라의 국가체제를 정비했으며 건원이라는 신라 최초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법흥왕 15년에는 불교를 공인하여 국교로 정한 왕이다. 법흥왕릉은 지름 13m, 높이 3m의 흙으로 쌓아 올린 타원형의 무덤이다.

역대 56명의 신라왕 중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 경주 동남쪽 낭산(浪山) 중턱에 선덕여왕의 능이 자리한다. 백제와 고구려의 공략을 받아 많은 국토를 잃었으나 선정을 베풀어 민생을 안정시켰다. 또한 첨성대를 만들고 분황사, 황룡사 9층 목탑을 축조하는 등 신라 건축의 금자탑을 이룬 여왕이다. 밑둘레 74m, 높이 6.8m, 지름 24m 되는 이 능의 겉모양은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형태이며 아랫 부분에는 능을 보호하기 위한 2~3 단의 자연석 석축이 있다. 신라는 이슬람 사절도 인정한 ‘황금의 나라’였다. 유독 황금을 사랑했던 신라인들은 5~6세기 화려한 장신구 문화를 꽃피웠다.

 

이는 신라왕릉에서 발굴된 국보급 유물들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관총에서 발굴된 이 금관은 국보 제87호로 높이 44.4cm, 대륜 지름 19cm인 신라시대 금관이다. 이마 위에 얹히는 대륜의 둘레에 단순하게 도식화한 수목형 입식 3개와 녹각형 입식 2개를 세워 장식해놓았다. 이 의장은 신라 보관의 기본형이다. 금관총에서 출토된 허리띠와 드리개는 곱은옥, 물고기, 칼, 유리병, 숫돌 등 20여개의 장식이 달려있다. 5~6세기 것으로 추정되며 허리띠 길이는 10.9 cm 드리개 길이는 54.5m로 국보 제88호다.

신라고분 가운데 호화로운 유물이 가장 많이 발견된 천마총 그 대표적인 것이 국보 제189호인 금모자다. T자 모양과 곱은 모양 당초 무늬등을 맞새김한 얇은 금판 여러장을 붙여 만든 모자로 헝겊이나 가죽 등으로 된 모자위에 덧쓰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식리총에서 출토된 금동신발. 식리란 장식 신발이란 뜻이다. 얇은 청동판을 금 도금하여 이어 만든 것으로 신 바닥 가장자리에는 두 줄의 구슬 무늬와 꼰 무늬 사이에 불꽃 무늬가 새겨져 있다. 신라는 육로와 해로의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 문물을 받아들인 선진화된 국제 무역국가였다. 중국은 물론 중앙아시아를 넘어 이슬람 세계와도 활발히 교류했다는 증거들은 신라왕릉의 유물에서 찾을 수 있다.

경주 미추왕릉 지구 C지구 3호분에서 상감옥 목걸이가 출토되었다. 서역인이 그려져 있는 이 목걸이는 5~6세기 것으로 짐작되며 보물 제634호다. 보물 제635호인 보검은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14호분에서 나온 5,6 세기 경의 유물이다. 이러한 보검은 그리스, 로마, 이집트, 서 아시아에서 유행하던 형식으로 특히 5세기 훈족의 아틸라왕 때 성행했다고 한다. 이것은 5세기 전후 중앙아시아와 신라인과의 교류를 증명해주고 있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리그릇은 고구려, 백제, 가야에서는 보이지 않는 유물로 신라문화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유리그릇들은 남러시아, 지중해 주변 서 아시아에서 출토된 로마 유리 제품과 형태나 제작 수법이 비슷하기 때문에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키 큰 물병은 지중해 지방에서 포도주를 담는 용기인 오이노코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삼국통일 영웅들의 능, 묘(태종 무열왕릉, 문무대왕릉, 김유신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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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의 왕릉

     

    고구려 왕릉

     

     

     

     

     

     

     

     

     

     

     

     

     

     

    고려 왕릉

     

     

     

     

    가야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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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경상북도 신라 문무왕릉 신라 제 30대 문무왕의 능

    16 경상북도 신라 대왕암 신라 제 30대 문무왕의 왕비능으로 추정

    17 경상북도 신라 신문왕릉 신라 제 31대 신문왕의 능

    18 경상북도 신라 괘릉 신라 제 38대 원성왕의 능

    19 경상북도 신라 흥덕왕릉 신라 제 42대 흥덕왕의 능

    20 경상북도 신라 문성왕릉 신라 제 46대 문성왕의 능

    21 경상북도 신라 헌안왕릉 신라 제 47대 헌안왕의 능

    22 경상북도 신라 배리 삼릉 신라 제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능

    23 경상북도 신라 경애왕릉 신라 제 55대 경애왕의 능

    24 경기도 신라 경순왕릉 신라 제 56대 경순왕의 능

    25 경상남도 가락국 김수로왕릉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능

    26 경상남도 가락국 김수로왕비릉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 진주태후허씨 능

    27 경상남도 금관가야 전 구형왕릉 금관가야 제 10대 왕의 능으로 김유신의 증조부

    28 충청남도 후백제 견훤왕릉 후백제의 시조 견훤왕의 능

    29 인천광역시 고려 석릉 고려 제 21대 희종의 능

    30 인천광역시 고려 곤릉 고려 제 22대 강종의 비 원덕태후의 능

    31 인천광역시 고려 홍릉 고려 제 23대 고종의 능

    32 인천광역시 고려 가릉 고려 제 24대 원종의 비 순경태후의 능

    33 경기도 고려 공양왕릉 고려 제 34대 공양왕과 순비노씨의 능

    34 경기도 조선 건원릉(동구릉) 조선 제 1대 태조의 능

    35 서울 조선 정릉 조선 제 1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

    36 서울 조선 헌릉(헌인릉) 조선 제 3대 태종과 비 원경왕후 민씨의 능

    37 경기도 조선 영릉(영녕릉) 조선 제 4대 세종과 비 소헌왕후 심씨의 능

    38 경기도 조선 현릉(동구릉) 조선 제 5대 문종과 비 현덕왕후 권씨의 능

    39 강원도 조선 장릉(영월) 조선 제 6대 단종의 능

    40 경기도 조선 사릉 조선 제 6대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

    41 경기도 조선 광릉 조선 제 7대 세조와 비 정희왕후 윤씨의 능

    42 경기도 조선 경릉(서오릉) 조선 제 7대 세조의 아들 덕종(추존)과 소혜왕후 한씨의 능

    43 경기도 조선 창릉(서오릉) 조선 제 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

    44 경기도 조선 공릉(공순영릉) 조선 제 8대 예종의 비 장순왕후 한씨의 능

    45 서울 조선 선릉(선정릉) 조선 제 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

    46 경기도 조선 순릉(공순영릉) 조선 제 9대 성종의 비 공혜왕후 한씨의 능

    47 경기도 조선 회묘(서삼릉) 조선 제 9대 성종의 비, 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의 묘

    48 서울 조선 연산군 묘 조선 제 10대 연산군과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

    49 서울 조선 정릉(선정릉) 조선 제 11대 중종의 능

    50 경기도 조선 온릉 조선 제 11대 중종의 비 단경왕후 신씨의 능

    51 경기도 조선 희릉 조선 제 11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

    52 서울 조선 태릉(태강릉) 조선 제 11대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 윤씨의 능

    53 경기도 조선 효릉(서삼릉) 조선 제 12대 인종과 비 인성왕후 박씨의 능

    54 서울 조선 강릉(태강릉) 조선 제 13대 명종과 비 인순왕후 심씨의 능

    55 경기도 조선 목릉(동구릉) 조선 제 14대 선조와 비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의 능

    56 경기도 조선 성묘 조선 제 14대 선조의 후궁, 광해군의 생모 공빈김씨의 묘

    57 경기도 조선 광해군 묘 조선 제 15대 광해군과 문성군부인 유씨의 묘

    58 경기도 조선 장릉(김포) 조선 제 16대 인조의 아버지 원종(추존)과 인헌왕후 구씨의 능

    59 경기도 조선 장릉(파주) 조선 제 16대 인조와 비 인열왕후 한씨의 능

    60 경기도 조선 휘릉(동구릉) 조선 제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

    61 경기도 조선 녕릉(영녕릉) 조선 제 17대 효종과 비 인성왕후 장씨의 능

    62 경기도 조선 숭릉(동구릉) 조선 제 18대 현종과 비 명성왕후 김씨의 능

    63 경기도 조선 명릉(서오릉) 조선 제 19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 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

    64 경기도 조선 익릉(서오릉) 조선 제 19대 숙종의 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

    65 경기도 조선 대빈 묘 조선 제 19대 숙종의 후궁 희빈장씨의 묘

    66 서울 조선 의릉 조선 제 20대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

    67 경기도 조선 혜릉(동구릉) 조선 제 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 심씨의 능

    68 경기도 조선 원릉(동구릉) 조선 제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능

    69 경기도 조선 홍릉(서오릉) 조선 제 21대 영조의 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

    70 경기도 조선 영릉(공순영릉) 조선 제 21대 영조의 1남 진종(추존)과 비 효순왕후 조씨의 능

    71 경기도 조선 융릉(융건릉) 조선 제 21대 영조의 2남 장조(추존)와 비 혜경궁 홍씨의 능

    72 경기도 조선 건릉(융건릉) 조선 제 22대 정조와 비 효의왕후 김씨의 능

    73 서울 조선 인릉(헌인릉) 조선 제 23대 순조와 비 순원왕후 김씨의 능

    74 서울 조선 수릉(동구릉) 조선 제 23대 순조의 1남 익종(추존)과 비 신정왕후 조씨의 능

    75 서울 조선 경릉(동구릉) 조선 제 24대 헌종과 비 효현왕후 김씨, 계비 효정왕후 홍씨의 능

    76 경기도 조선 예릉(서삼릉) 조선 제 25대 철종과 비 철인왕후 김씨의 능

    77 경기도 조선 홍릉(홍유릉) 조선 제 26대 고종과 비 명성황후 민씨의 능

    78 경기도 조선 유릉(홍유릉) 조선 제 27대 순종과 비 순명효황후 민씨,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의 능

    79 서울 대한민국 이승만 묘 대한민국 제 1~3대 대통령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여사 묘

    80 서울 대한민국 허정 묘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1960. 4. 19 과도정부), 6대 국무총리

    81 서울 대한민국 윤보선 묘 대한민국 제 4대 대통령 윤보선과 공덕귀 여사 묘

    82 경기도 대한민국 장면 묘 1960, 4, 19 혁명후 내각책임제하의 국무총리

    83 서울 대한민국 박정희 묘 대한민국 제 5~9대 대통령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 묘

    84 서울 대한민국 김대중 묘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 김대중 묘

    85 경상남도 대한민국 노무현 묘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 노무현 묘

                                                      

     

     

    * () - 왕과 왕비의 무덤을 의미합니다.

    * () - 개국군주,국난을 치른 왕, 나라의 정통이 중단된 것을 다시 일으킨 왕

    * () -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문물을 융성케 한  왕

     

     

     

     

     

     

     

    현황(現況)

     

     

     

     

     

     

     

     

    조선조 王室世系表 [ 27, 517, 1392 - 1910 ]

     

     

     

     

     

     

     

     

     

     

    () 13()

    숭인원(崇仁園 : 사적 제361) :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 내

    영원(英園 : 사적 제207)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금곡동(金谷洞)

    영휘원(永徽園 : 사적 제361) :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 내

    효창원(孝昌園 : 사적 제200)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휘경원(徽慶園 : 사적 제360)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진접읍(榛接邑) 부평리(富坪里)

    의령원(懿寧園 : 사적 제200)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수경원(綏慶園 : 사적 제198)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수길원(綏吉園 : 사적 제359) : 경기(京畿) 파주시(坡州市) 광탄면(廣灘面) 영장리(靈場里)

    소령원(昭寧園 : 사적 제358) : 경기(京畿) 파주시(坡州市) 광탄면(廣灘面) 영장리(靈場里)

    영회원(永懷園 : 사적 제357) : 경기(京畿) 광명시(光明市) 노온사동(勞溫寺洞)

    소경원(紹慶園 : 사적 제200)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순강원(順康園 : 사적 제356)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진접읍(榛接邑) 내각리(內閣里)

    순창원(順昌園 : 사적 제198)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사후에 왕()으로 추존(追尊)된 왕릉(王陵) 5()

    익종(翼宗) 수릉(綏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장조(莊祖) 융릉(隆陵 : 사적 제206) : 경기 화성시 태안읍(台安邑) 안녕리(安寧里)

    진종(眞宗) 영릉(永陵 : 사적 제205) : 경기 파주시 조리읍(條里邑) 봉일천리(奉日川里)

    원종(元宗) 장릉(章陵 : 사적 제202) : 경기 김포시 김포읍(金浦邑) 풍무동(豊舞洞)

    덕종(德宗) 경릉(敬陵 : 사적 제198)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폐위(廢位)된 묘() 2()

    15대 광해군(第十五代 光海君) 광해군묘(光海君墓 : 사적 제363) :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眞乾邑)

    10대 연산군(第十代 燕山君) 연산군묘(燕山君墓 : 사적 제362) : 서울 도봉구(道峰區) 방학동

    황제릉(皇帝陵) 2()

    27대 순종(第二十七代 純宗) 유릉(裕陵 : 사적 제207)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26대 고종(第二十六代 高宗) 홍릉(洪陵 : 사적 제207) : 경기(京畿) 남양주(南楊州)

    왕릉 35

    25대 철종(第二十五代 哲宗) 예릉(睿陵 : 사적 제200)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24대 헌종(第二十四代 憲宗) 경릉(景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23대 순조(第二十三代 純祖) 인릉(仁陵 : 사적 제194) : 서울 서초구(瑞草區) 내곡동(內谷洞)

    22대 정조(第二十二代 正祖) 건릉(健陵 : 사적 제206) : 경기 화성시(華城市) 태안읍(台安邑)

    21대 영조(第二十一代 英祖) 홍릉(弘陵 : 사적 제198)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21대 영조(第二十一代 英祖) 원릉(元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20대 경종(第二十代 景宗) 혜릉(惠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20대 경종(第二十代 景宗) 의릉(懿陵 : 사적 제204) : 서울 성북구 석관동(石串洞)

    19대 숙종(第十九代 肅宗) 대빈묘(大嬪墓 : 사적 제198)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19대 숙종(第十九代 肅宗)익릉(翼陵 : 사적 제198)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용두동

    19대 숙종(第十九代 肅宗) 명릉(明陵 : 사적 제198)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18대 현종(第十八代 顯宗) 숭릉(崇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17대 효종(第十七代 孝宗) 영릉(寧陵 : 사적 제195) : 경기 여주시(驪州市) 능서면(陵西面)

    16대 인조(第十六代 仁祖) 휘릉(徽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16대 인조(第十六代 仁祖) 장릉(長陵 : 사적 제203) : 경기 파주시(坡州市) 탄현면(炭縣面)

    14대 선조(第十四代 宣祖) 성묘(成墓 : 사적 제365) :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眞乾邑)

    14대 선조(第十四代 宣祖) 목릉(穆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13대 명종(第十三代 明宗) 강릉(康陵 : 사적 제201) : 서울(Seoul) 노원구(蘆原區)

    12대 인종(第十二代 仁宗) 효릉(孝陵 : 사적 제200)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

    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태릉(泰陵 : 사적 제201) : 서울(Seoul) 노원구(蘆原區)

    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태릉(泰陵 : 사적 제201) : 서울(Seoul) 노원구(蘆原區)

    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희릉(禧陵 : 사적 제200)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온릉(溫陵 : 사적 제210) : 경기(京畿) 양주시(楊州市) 장흥면(長興面)

    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정릉(靖陵 : 사적 제199) : 서울 강남구 삼성동(三成洞) 테헤란로

    9대 성종(第九代 成宗) 회묘(懷墓 : 사적 제200)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9대 성종(第九代 成宗) 순릉(順陵 : 사적 제205) : 경기 파주시 조리읍(條里邑) 봉일천리(奉日川里)

    9대 성종(第九代 成宗) 선릉(宣陵 : 사적 제199) : 서울 강남구 삼성동 테헤란로(Teheran)

    8대 예종(第八代 睿宗) 공릉(恭陵 : 사적 제205) : 경기(京畿) 파주시(坡州市) 조리읍(條里邑)

    8대 예종(第八代 睿宗) 창릉(昌陵 : 사적 제198)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7대 세조(第七代 世祖) 광릉(光陵 : 사적 제197) :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와 포천군

    6대 단종(第六代 端宗) 사릉(思陵 : 사적 제209)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진건읍(眞乾邑)

    6대 단종(第六代 端宗) 장릉(莊陵 : 사적 제196) : 강원(江原) 영월군(寧越郡) 영월읍(寧越邑)

    5대 문종(第五代 文宗) 현릉(顯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4대 세종(第四代 世宗)

    3대 태종(第三代 太宗)

    2대 정종(第二代 定宗)

    1대 태조(第一代 太祖) 정릉(貞陵 : 사적 제208) : 서울 성북구 정릉2

    1대 태조(第一代 太祖) 제릉(齊陵) : 개성직할시(開城直轄市) 판문군(板門郡) 상도리(上道里)

    1대 태조(第一代 太祖) 건원릉(健元陵 : 사적 제193) : 경기 구리시 인창동    

     

     

     

    조선왕릉(朝鮮王陵)의 계보

     

     

     

     

     

     

     

     

    목조-덕릉 효공왕후 이씨-안릉

    익조-지릉 정숙왕후 최씨-숙릉 , 손씨

    도조-의릉 경순왕후 박씨-순릉, 조씨

    환조-정릉 의혜왕후 최씨-화릉, 이씨, 정빈 김씨

    태조-건원릉 신의왕후 한씨-제릉 신덕왕후 강씨-정릉

    정종-후릉 정안왕후 김씨-후릉

    태종-헌릉 원경왕후 민씨-헌릉

    세종-영릉 소헌왕후 심씨-영릉

    문종-현릉 현덕왕후 권씨-현릉

    단종-장릉 정순왕후 송씨-사릉

    세조-광릉 정희왕후 윤씨-광릉

    예종-창릉 장순왕후 한씨-공릉 안순왕후 한씨-창릉

    성종-선릉 공혜왕후 한씨-순릉 폐비 윤씨-회묘 정현왕후 윤씨-선릉

    연산군-연산군묘 폐비 신씨-연산군묘

    중종-정릉 단경왕후 신씨-온릉 장경왕후 윤씨-희릉 문정왕후 윤씨-태릉

    인종-효릉 인성왕후 박씨-효릉

    명종-강릉 인순왕후 심씨-강릉

    선조-목릉 의인왕후 박씨-목릉 인목왕후 김씨-목릉

    광해군-광해군묘 폐비유씨-광해군묘

    인조-장릉 인렬왕후 한씨-장릉 장렬왕후 조씨-휘릉

    효종-영릉 인선왕후 장씨-영릉

    현종-숭릉 명성왕후 김씨-숭릉

    숙종-명릉 인경왕후 김씨-익릉 인현왕후 민씨-명릉 인원왕후 김씨-명릉

    경종-의릉 단의왕후 심씨-혜릉 선의왕후 어씨-의릉

    영조-원릉 정성왕후 서씨-홍릉 정순왕후 김씨-원릉

    정조-건릉 효의왕후 김씨-건릉

    순조-인릉 순원왕후 김씨-인릉

    헌종-경릉 효현왕후 김씨-경릉 효정왕후 홍씨-경릉

    철종-예릉 철인왕후 김씨-예릉

    고종-홍릉 명성황후 민씨-홍릉

    순종-유릉 순명효황후 민씨-유릉 순정효황후 윤씨-유릉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