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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의 폭발적인 흥행 이유는?

草霧 2013. 8. 14. 11:39

 

 

설국열차의 폭발적인 흥행 이유는?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⑦

하재근(문화평론가) | 2013.08.13

[서울톡톡] 봉준호 감독의 신작 <설국열차>가 개봉하자마자 폭주하고 있다. 한국영화사상 평일 최다 관객이었던 <도둑들>(55만 명)의 기록을 62만 명으로 깨고, 최단 기간 100만 관객 기록을 세웠던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동률로 따라잡더니, 개봉 7일 만에 사상 최단 기간 400만 관객 돌파로 우뚝 섰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아이언맨 3>, <도둑들>, <트랜스포머 3> 등이 세웠던 8일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이 가장 주효했다. 봉준호 감독은 작품성과 흥행성 양쪽에서 모두 검증 받은 사람이다. 그런 감독의 신작이니만큼 기대가 모아지는 것이 당연했다. 신작도 보통 신작이 아니라 무려 450억 원이 들어간 한국영화사상 최대작이다. 게다가 할리우드 스타들이 등장해 마치 할리우드 대작 같은 느낌까지 줬다. 즉, 한국을 대표하는 봉준호 감독의, 450억 원이 투입된, 우리 손으로 만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세 가지 특징이 한국 관객을 흥분시켰다고 하겠다.

과거 심형래 감독의 <디워>도 '우리 손으로 만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성격으로 한국 관객을 흥분시켰었다. <디워> 때도 개봉 초기에 폭발적인 흥행이 있었다. 한국인에겐 할리우드에 대한 열패감이 있기 때문에, 할리우드 못잖은 한국 영화가 등장하면 범국민적인 호응이 나타나게 된다.

<디워> 때와 다른 점은, 당시엔 영화적 완성도는 도외시하고 할리우드 스타일의 대작이라는 사실 그 자체만 가지고도 사람들이 열광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사이에 싸이 신드롬이라든가, 문화적 '국격'의 상승이 있었기 때문에 이젠 할리우드 진출만 가지고 만세삼창을 부르진 않는다. <설국열차>는 그 틈을 작품성으로 메웠다. <디워>보다 현저히 나아진 연기라든가, 완성도, 주제의식 등으로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디워>의 흥행에서 민족주의적 요소가 100이었다면, <설국열차>의 경우는 민족주의 50에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50인 양상이다.

<설국열차>의 작품성 논란도 <디워> 때보다 강한 흥행뒷심을 기대하게 하는 요인이다. <설국열차>는 인류가 멸망하다시피 한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기차에 모여 지구를 순회하면서 연명한다. 기차는 철저한 계급사회여서 앞 칸을 차지한 부자들은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반면, 뒤 칸에 구겨 탄 빈자들은 사람대접도 제대로 못 받으며 겨우 목숨만 부지한다. 그들은 오직 노동력을 재생산할 만큼만 자원을 분배받는다.

이것은 최근에 이슈가 되는 갑과 을, 1대 99, 20대 80의 양극화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1대 99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것이 2008년 금융위기인데, 봉준호 감독도 금융위기 당시의 월가 시위대를 언급하며 이 영화에 대한 사회적 해석에 호응했다. 이래서 <설국열차> 명작론이 탄생하며, 절대적 지지의 흐름이 나타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단순한 오락영화는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지만, 최근엔 사회적 의미를 담은 영화들도 관객의 호응을 받았었다. <배트맨-다크나이트>라든가 <레미제라블>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례적으로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세계적으로도 현 시장질서의 모순을 담은 영화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 흐름이어서,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설국열차>를 보고 감동받았다는 관객이 속출하며, 재관람에 나서는 관객도 늘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영화 흥행에 뒷심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설국열차>가 기대 이하라며 악평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설국열차>의 설정이 사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SF영화에선 일종의 관습이라고 할 정도로 흔하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들을 많이 접하지 않은 사람에겐 신선하고 놀라운 것이지만, 그 반대의 사람에겐 진부하고 평범한 설정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찬반양론의 작품성 논란이 뜨거운데, 그 논란 자체가 흥행을 이끌어낸다.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하면서 극장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현재의 분위기대로라면 당분간 <설국열차>의 흥행질주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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