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밥 먹고 도시여행

폐허로 변한 소설가의 집터, 부암동 현진건 집터

草霧 2013. 8. 12. 11:37

 

 

 

[서울톡톡] 서울 문학기행, 그 세 번째 장소는 부암동 현진건 집터이다. 빙허 현진건은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불>, <고향>, <무영탑> 등을 집필하고 백조 창간 동인으로 활동한 소설가이자, 동아일보 사회부장을 맡았던 언론인이기도 했다.

"이 눈깔! 이 눈깔! 웨 나를 바루 보지 못하고 천정만 보느냐, 응?"

하는 말 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신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놓았는데 웨 먹지를 못하니, 웨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드니만……"<운수 좋은 날> 中

위 글은 많은 사람들이 읽고, '패러디'한 빙허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의 일부분이다. 현진건은 1920년대 사실주의 단편소설의 확립자라고 불리는 소설가이다. 서울 문학기행을 통해 빙허 현진건을 더욱 알아 가보자.

검색을 통해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빙허 현진건 집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 오는 날 경복궁역에서 버스를 타고 언덕을 올랐다. 20분 후 부암동 주민센터 정류장에서 내렸고 토독토독, 가볍게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카페와 살기 좋아 보이는 단독주택, 수도방앗간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니 서서히 빙허 현진건 집터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내 현진건 집터에 다다르고, 전봇대 옆에 있는 작은 비석과 그 일대로 펼쳐져 있는 폐허를 보고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제멋대로 자란 시든 잡풀과,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 공터 뒤에는 버려진지 오래 되어 낡을 대로 낡은 작은 한옥 한 채. 달랑 비석 하나만 두고 있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빙허 현진건 집터인지 분간이 잘 되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으스스한 분위기였는데 비까지 와서 집터에 을씨년스러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찾아온 곳이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자 마음에 실망감이 가득 차올랐다.

사실 빙허 현진건 집터는 안평대군 이용의 집터와 붙어 있다. 지도를 찾아보면 빙허 현진건 집터가 아닌 안평대군 이용 집터라고만 나와 있다. 빙허 현진건 집터가 안평대군 집터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현진건 집터 뒤로 안평대군 이용 집터가 있는데 그곳은 무계정사이다. 안평대군이 부암동 일대를 거닐다 이곳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과 흡사하다며 세운 정자가 바로 무계정사인 것이다. 1974년에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지만 현재는 입구에 쇠창살이 쳐져있어 들어가 볼 수는 없다. 무계정사 또한 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과거 '무릉'의 풍경과 흡사했다는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부암동 빙허 현진건 집터와 안평대군 이용의 집터는 유난히도 우여곡절이 많은 장소이다. 우리가 현진건의 문학작품을 높이 사는 것처럼, 안평대군을 명필이라 칭송하는 것처럼, 그들이 후대에게 남긴 흔적을 소중히 여겼으면 지금의 집터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맞은편의 멋스럽게 꾸며진 카페와 식당, 드라마에 나올 법한 단독주택들의 모습과 을씨년스러운 모습의 집터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변하고 무어고 간에 아모것도 없드마.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얼씬을 않드마."

"그러면 아주 폐동(廢洞)이 되었단 말씀이오?"

"흥, 그렇구마. 무너지다가 담만 즐비하게 남았즈마. 우리 살든 집도 터야 안 남았겠는기요 암만 찾어도 못 찾겠드마. 사람 살든 동리가 그렇게 된 것을 혹 구경했는기요?"하고 그의 짜는 듯한 목은 높아졌다.

"썩어 넘어진 새까래, 뚤뚤 구르는 주추는 꼭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혀놓은 것 같드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요? 백여 호 살든 동리가 십 년이 못되어 통 없어지는 수도 있는기요? 후!"

하고 그는 한숨을 쉬며 그때의 광경을 눈앞에 그리는 듯이 멀거니 먼 산을 보다가 내가 따라준 술을 꿀꺽 들이켜고

"참! 가슴이 터지드마, 가슴이 터져." 하자마자 굵직한 눈물 두어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고향> 中

-  찾아가는 길 :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경복궁역 정류장에서 7022번, 1020번, 7212번 승차, 부암동 주민센터 하차

문학의 향기가 느껴지는 서울 곳곳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다니는 글 쓰는
'고딩' 이신후 리포터. 당차고 솔직하면서도 매끄러운 글 솜씨로 
써내려가는 '서울 문학기행'은 독자들을 의미있는
여행지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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