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밥 먹고 도시여행

작가는 이런 곳에서 글을 쓰는구나~상허 이태준 가옥인 수연산방

草霧 2013. 8. 12. 11:39

 

 

 

 

[서울톡톡] 서울 문학기행, 그 두 번째 장소는 상허 이태준 가옥인 수연산방이다. 상허 이태준은 강원도 철원 출신 소설가로 <달밤>, <돌다리>, <황진이>, <무서록>, <왕자 호동> 등 많은 작품을 집필했으며 구인회 동인으로 이상, 김유정, 유치진, 김기림, 정지용 등의 문인들과 함께 문학 활동을 했다. 상허 이태준을 알게 된 건 <돌다리>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천금이 쏟아진대두 난 땅은 못 팔겠다. (…) 땅 없어 봐라, 집이 어딨으며 나라가 어딨는 줄 아니? 땅이란 천지만물의 근거야. 돈 있다구 땅이 뭔지두 모르구 욕심만 내 문서쪽으로 사 모기만 하는 사람들, 돈 놀이처럼 변리만 생각허구 제 조상들과 그 땅과 어떤 인연이란 건 도시 생각지 않구 헌신짝 버리듯 하는 사람들, 다 내 눈엔 괴이한 사람들루밖엔 뵈지 않드라."<돌다리> 中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 후, 땅에 대한 아버지의 신념을 존중해주는 아들의 모습을 그린 장면을 보고 이태준이라는 소설가를 더욱더 알고 싶어졌다. 상허 이태준의 작품을 찾아보게 되었고, 그러던 중 서울에 상허 이태준이 작품을 집필한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로 그곳이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수연산방이다.

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머물면서 <달밤>, <돌다리>, <황진이> 등의 작품을 집필한 곳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의 대표적인 명소로 1977년 서울시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상허 이태준의 외종손녀가 당호인 수연산방(壽硯山房)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가옥이 후손의 손길로 찻집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게 궁금해 수연산방을 찾아가보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잔잔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한 바퀴 휘 둘러보니 왼쪽에는 야외 테이블과 구인회 북카페, 오두막이 있고 오른쪽에는 본채와 안방 앞에 누마루를 두었는데 누마루는 삼면이 유리창이어서 안에서도 바깥 풍경을 운치 있게 구경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수연산방은 개량한옥으로 지어서 그랬는지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수연산방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 왼편에는 상허 이태준이 집필한 책과 원고, 가족사진, 졸업장이 장식되어 있었다. 이곳저곳에 시인들의 시가 걸려 있기도 했다. 과연 문인들이 모이는 산속의 작은 집이구나, 라고 감탄하며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다. 주문한 차가 나오기 전에 방을 둘러보았는데 주전자와 다기 등이 아기자기하게 진열되어 있어 기다리는 동안 그것들을 구경하며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차가 나오고 몸을 훈훈하게 덥혀주는 따뜻한 기운을 즐기며 상허 이태준을 떠올렸다. 이런 곳에서 작품을 집필하고 구인회 동인들과 문학 토론을 벌였다고 생각하자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이곳에 없는데도 후손이 뒤를 이어 문인들을 맞이해주고 있으니, 어찌 부럽지 않을 수가 있을까. 상허 이태준은 수연산방에서 작품을 집필하는 것을 즐겼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제가 없다면 오늘이 이처럼 새로울 수 없다. 어제를 망각하고 오늘에만 의식이 있다면 거기는 암매(暗昧)한 동물만이 존재할 것이다. 사람은 어제 때문에 받는 구속이 물론 크고 무겁다. 그러나 어제 때문에 받는 궤도와 이상(理想)은 한 아름다운 샘물로서, 크게는 대하로서, 인생의 먼 바다를 찬란히 흐를 수 있는 것이다."<무서록> '역사' 中

며칠 전 읽은 상허 이태준의 <무서록>에 실린 글 하나를 떠올리며 수연산방 곳곳에 심어진 이태준의 글에 천천히 녹아들어갔다.

■ 수연산방 찾아가는 길
 -지하철 :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여 20분 거리.
              성북2동 주민센터 옆 골목

 -버스 : 지선버스 1111번, 2112번 쌍다리 하차
 -문의 : 02)764-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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