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의 시간을 품은 마을, 노고산동노고산동에 가다 [서울톡톡] 사람들에게 '서울'은 어떤 곳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고층 빌딩, 복잡한 지하철 등으로 묘사할 것이다. 나 또한 '서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강남의 시원하게 뻗은 넓은 대로와 양 옆으로 세워진 으리으리한 빌딩들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서울이 가진 모든 것은 아니다. 사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서울을 둘러본다면 아직 주민들의 손 떼가 가시지 않은 보석 같은 마을을 찾아볼 수 있다. 신촌 인근에 있으면서,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고 있는 마포구 노고산동이 바로 그런 마을 중 하나이다. 노란색, 파란색 등 통일되지 않은 색으로 칠해진 1·2층의 주택들과 그 위로 보이는 파란 하늘, 사람 한 명이 지나갈 만한 구불구불한 골목길, 간간이 보이는 기와 지붕들…. 이것이 노고산동 구석구석을 걸으며 보는 풍경이다. 골목길에서 하수구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서울에서 그렇게 하늘과 가까이 걸을 수 있는 마을이 몇이나 되겠는가! 또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틈만 나면 나오는 계단은 아파트 단지의 잘 닦인 도로를 걷던 내게 의외의 즐거움을 준다. 갓 담근 고추장 보다 1년, 2년 묵은 고추장이 더 맛있는 것처럼 노고산동은 40년이란 세월이 녹아들어 더욱 매력적인 동네로 자리잡았다. 노고산동 인근 지역들은 이미 전면적 재개발로 인해 수십 층의 고층 빌딩들이 가득 들어섰다. 노고산동 또한 이러한 재개발이 이루어질 뻔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피해갈 수 있었다. 다시금 노고산동이 재개발 대상에 오르려면 몇 년은 더 걸릴 것이다. 40년이라는 세월이 있다보니 노고산동은 어떻게든 개선이 필요한 지역이기는 하다. 하지만 노고산동의 40년 시간을 허물지 않고 그 모습을 유지하면서 발전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겨울, 수업의 일환으로 영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누가 영국 아니랄까봐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길을 가던 중 작은 돌담이 눈에 띄었다. 돌담에는 짙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있었다. 관광객들이 잔뜩 돌아다니는 길 한복판에 이끼 낀 돌담이라니! 처음 돌담이 눈에 띈 이유는 바로 이러한 당황스러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든 생각은 런던스럽다는 것이다. 과장일 수도 있지만 영국의 습한 기후와 이끼가 낀 모습은 너무 잘 어울렸고 자연스러웠다. 돌담의 이끼가 무성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도 서울 한 복판에 이끼 낀 돌담이 있었다면 바로 제거했을 것이다. 물론 습한 날씨에서 살아가는 영국 사람들에게 돌담의 이끼는 너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내가 느낀 바는 전혀 쓸모 없어 보이고 쾌적하지 않은 것들이라고 해도 그 속에서 역사와 시간이 읽힌다면 그 가치를 깨닫고 보존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노고산동을 이루고 있는 골목길들 또한 마찬가지다. 노고산동의 골목길은 좁고 지저분해 보일 수 있지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면 런던 한복판의 이끼 낀 돌담처럼 매력적인 길이 될 수 있다. 돌 계단 역시 주민들에게는 삶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찬찬히 바라보면 계단에서도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처음 계단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보이고, 이 계단을 오르내렸을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 이러한 '시간성'을 품은 마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다. 노고산동, 무조건 다 부수고 전면 재개발하는 것이 정답일까? 노고산동이 노고산동답게 유지되길 바라는 건 단지 나 뿐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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