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미술 8
기독교 미술의 종합판
3. 고딕 미술 (Gothic art) - 4
C. 그대는 어디 있는가 _ 건축과 조각, 미술 이야기
로마네스크 미술에 이어 12세기 중기에 그 싹이 터서 13세기에 프랑스·영국에서 명확한 양식이 확립되었다. 그 후 2세기 동안 서유럽 전체에 전파되어 더욱 발전·변화해서, 15세기 초부터 이탈리아에서 형성된 르네상스 미술이 대표하는 근세미술로 바뀔 때까지 존속하였다. 고딕이란 명칭은 르네상스의 이탈리아인이 중세건축을 조야(粗野)한 만족(蠻族) 고트인(Goth 人)이 가지고 온 것이라고 비난한 데서 유래한 것인데, 19세기 이래 서유럽 중세미술의 한 양식을 가리키는 미술사상(美術史上)의 용어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 중세미술에 명확한 형식을 부여한 것은 북프랑스였지만, 결국 전 서유럽적(的) 현상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고트인들은 이 미술의 형성에는 직접 관계가 없었지만, 약간 모멸적인 뜻으로 말한 것이 이러한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고딕 미술의 양식은 먼저 건축에서, 특히 성당 건축에서 실현되었지만, 여기에 어울려서 형성된 조각· 회화·공예에 대해서도 총괄적으로 이 양식의 명칭이 적용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고딕 건축의 특징은 두꺼운 벽에 의존하지 않고도 건축물의 구조가 수직으로 높이 올라갈 수 있게 되고 따라서 건물을 유지시키는 기둥과 골조구조사이에는 거대한 공간이 생겨나고, 이제 벽 위에 채색을 하던 벽화는 유리창에 채색을 하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대체 되었다. 스테인드 글라스로 둘러싸인 고딕성당의 내부는 환상 그 자체였다.
고딕 미술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기독교 미술의 절정기의 양식이다. 높은 건물과 첨탑, 첨두 아아치로 수직적 상승감을 나타내는 건물 양식이 대표적이다. 또 건물에 좁고 긴 창문의 스테인드 글래스도 특징할 만하다. 대표적인 고딕 성당으로 아미앵 성당, 스테인드 글래스로 유명한 샤르트르 성당, 노트르담 성당, 랭스 성당, 퀼른 성당, 웨스트민스터 성당이 대표적이다.
1140년에 세운 생 드니사원의 예배당과 성가대석은 최초의 순수한 고딕 건물로 추정된다. 그 외의 순수한 고딕 건물로는 1163년에 시작된 파리의 노트르담과 브르주, 라용 등이 있다. 생 드니는 고딕 성당의 특징들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서쪽 정면은 장미창이, 서쪽 현관에는 신학의 교과 과정이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다. 아미엥 역시 순수한 고딕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를테면, 기둥은 네 부분으로 된 궁륭의 리브들과 연결되고 성가대석 주위의 회랑은 측랑과 이어지며 세 개의 입구가 있는 서쪽 정면은 네이브와 측랑의 윤곽을 반영한다. 영국에서 이러한 양상은 캔터베리 성당 성가대석에서 보여진다.
13세기초의 고딕 양식은 큰 교회당 양식을 중단하고 수도원 건축, 지역교구교회, 가정 건축에서 사용되는 요소들을 채택함으로써 국가별, 지역별로 다양해졌다. 건축은 고딕시대를 결정짓는 대표물로서 1140년부터 16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전형적인 고딕 조각의 발전은 렝스와 방베르 성당 조각들과 함께 13세기초에야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된다. 그 작품들은 고전적인 균형과 자연적인 것에 대한 충실함으로 특징 짓는데, 여기에서 로마네스크 건축 조각의 육중한 엄격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 기념비적이고 영웅적인 것으로부터 복잡하고 친밀한 것으로 발전하는데 비례는 과장되고, 감정은 강조되며, 콜로뉴 대성당 성가대석의 사도 인물상에서처럼 주름장식이 인체를 감싼다.
고딕 건축의 시초로 보는 12세기에 회화 범위는 제한되어 있었다. 사실상 벽 공간이 점차로 제거된 것은 회화를 위한 공간이 없는데서 연유한다. 그 대신 스테인드 글래스 창문이 디자인과 색채계를 표현하였다. 고전적인 주름, 고딕적 흔들림과 같은 필사본의 서정적 세련성등은 전형적이고 새로운 특징으로 간주된다. 하인리히 폰 펠텍케의 「에나이트」, 브누아 드 쌩모아레의 「트로이 로맨스」 등을 들 수 있다. 또 14세기에 둣치오의 「시에나성당 마에스타」에서 패널화가 일반화되었다. 14세기초 지오토로 시작하여 15세기말 로지에 반데르 바이덴이나 보티첼리로 회화의 발전은 집약되고 그 특징은 양식화, 선적인 특질, 고딕식 흔들림이라 할 수 있다.
중세기 문화는 그리스도교의 신본주의적인 사상에 입각한 신세계와 새낙원을 건설하려는 정신에서 발전된 것이며 자유정신이 넘치는 새 세계를 동경하여 발전된 것이다.
【조각】
고딕 조각은 로마네스크의 그것보다 한층 조각적(彫刻的)이며, 건축에 대해서는 비종속적이다. 12세기중엽에 확립된 스콜라 철학의 원리에 좇으면 각각 독립된 부분이 하나의 단위가 되어 질서와 조화를 이룬 전체상을 창출(創出)해 냈다. 조각도 성당이라는 전체상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는 한 그의 독립성은 인정된다. 그 하나의 표징은 로마네스크 시대의 '한계의 법칙'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팀펀은 이미 입구 상부의 아치를 덮는 장식 부분으로서 배설(配設)되는 것이 아니라 입구 전체의 장식으로서 건축상 필수적이며, 그 주위를 포함한 커다란 공간 속에서 구성된다. 본사원 오턴(로마네스크)과 파리의 노트르담 또는 샤르트르 본사원의 팀펀을 비교하면, 후자는 주제(主題)의 양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의 가치관계나 각 인물이 보여 주는 이야기로서의 전개가 정리되어 알기 쉽게 표현되어 있다. 로마네스크 시대에 융성을 보인 주두조각(柱頭彫刻)은, 이 시대에는 뛰어난 것이 드물다. 수직선에 의한 상승감을 강조하고 있을 때, 그것을 가로지르는 구실을 하는 주두에 뜻있는 장식을 부여함으로써 상승감을 시각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좋은 것이 못 되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점차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나 단순한 형체로 교체되었다.
오히려, 고딕 조각 중에서 그 특색을 가장 잘 발휘하게 된 것은 원주(圓柱)에 조각된 인물상이다. 이러한 인물상은 정문 입구의 양쪽에 줄지어 서 있는 원주에 등을 대고 서 있는 것이 보통이나 교회 내부의 주열(柱列)에 붙어서 설교자와 같은 모양을 한 것도 있다. 전체적으로 세로로 긴 원통상(圓筒狀)으로 길게 늘인 모양으로 입구에 배열되어 있는 성자의 군상은 완성된 성당의 리듬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원주 조상군(圓柱彫像群)과 조화된 팀펀에 의하여 교회 입구 자체가 하나의 군상(群像)을 형성했다.
원주 조상을 하나하나 보면 스콜라 철학에 의한 명석판별(明析判別)의 원리는, 독립의 상(像)으로서 나타나 있다. 로마네스크에서는 벽에 부수(附隨)되는 부조가 주된 것이었으나 고딕에서는 요철(凹凸)이 뚜렷한 환조에 가까운 것으로 오히려 환조가 원주에 붙어 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고딕 초기에 해당하는 샤르트르 본사원의 <왕의 문(門)>의 여러 조각에는 전 시대의 정면성(正面性) 법칙이나 고부조(高浮彫)의 면모가 남아 있으나, 성숙기(13세기)에는 샤르트르의 <아름다운 신(神)>, 랭스의 <수태고지(受胎告知)>를 비롯한 여러 상(像)은 균형과 조화를 이룬 고전적인 걸작이다. 거기에는 중세초기부터 지배하여 온 추상적인 요소 대신에 강한 자연주의를 인지(認知)할 수 있다. 자연스런 형체의 여러 상이 대중에게 친숙하기 쉽게 교화(敎化)되어, 신의 세계로의 친근감을 보여 주고 있다. 장엄한 그리스도, 미소짓는 마리아 등의 표정에 기품 높은 정신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은 전성기 고딕 조각의 또 하나의 특색인 것이다.
조각의 독립은 인간에 대한 재인식(再認識)과 결부된다. 14세기 이후, 사회의 변천과 더불어 예술의 중심은 교회에서 세속적인 것으로 옮겨진다. 조각도 사실적인 경향이 진전됨에 따라 점차 작가의 개성이 중시된다. 세기말 부르고뉴 공(公) 휘하에 있던 스류타스는 종교조각의 형식을 타파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독일에서는 전체적으로는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으나 나움부르크나 프라이부르크 본사원의 조각군에 개성적인 입체감이 있는 작품의 예를 볼 수 있다. 라인강 유역과 보헤미아 지방에서는 사실적인 채색을 한, 종교감이 강한 목각의 그리스도 가형상(架刑像)이나 마리아상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 고딕의 영향과 더불어 고대 로마의 전통에 대한 재인식이 대두되어, 피렌체의 피사노 부자(父子)를 중심으로 인간미가 넘치는 르네상스를 향한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고딕의 성당은 ‘돌의 성서’라고 할 만큼 수많은 조상군(彫像群)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것들은 주로 성당의 정면·입구 및 문 위의 팀파눔(tympanum), 그것을 둘러싼 몇 층의 아치와 입구 양 옆의 열주(列柱), 그 아래의 돌벽에만 보이지만, 단지 그리스도교적 주제(主題)의 것뿐만이 아니고, 다채로운 주제가 풍부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정면 입구 주변을 장식하는 수많은 조상군과 부조(浮彫) 등에 의해 서유럽의 독자적인 인간상(人間像)이 비로소 확립되었다고 해도 좋다. 샤르트르대성당의 서쪽 정면 ‘왕의 문’을 비롯해서, 파리 부근의 12세기 후반의 성당 입구 조각은 원주인상(圓柱人像)의 새 요소가 있었으나, 양식상으로나 도상상(圖像上) 로마네스크 조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13세기에 들어와서, 샤르트르·파리·아미앙·랑스 등 잇달은 대성당의 장식과 조각에서 고딕 양식은 확립되었다.
샤르트르는 12세기 중반의 서쪽 정면을 그대로 보존하고, 13세기 초에 남북에 새로 큰 문을 냈고, 13세기 중반에 거기에 대규모 조상군과 부조를 장식해 놓았는데, 도상(圖像)의 풍부한 내용과 짜임새에서는 첫째 가는 예이다. 중세 그리스도교 신앙의 인간화 경향의 하나로 보이는 민중의 성모숭배(聖母崇拜)에 대응하여 성모에게 입구 장식을 바치게 된 것은 고딕 미술의 새로운 일면으로, 그 형식이 정해졌다. 13세기 고딕 도상은 복음서적인 《묵시록》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였던 로마네스크 시대의 신비주의와 서사시적(敍事詩的) 경향에 대신해서, 신앙의 기초를 지성(知性)에 의해 다지고, 또한 인간적 감정과 융화하는 도상을 구하였다. 즉, 13세기 고딕 조각의 이상주의를 양식상으로나 내용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옛 성자의 숭배에도 실제의 농민이나 기사의 모습을 같이 결부시켜 그 도상을 만들었다.
현실과의 접촉은 조상(彫像)의 현실감에 충실해야 한다는 욕구에 부응하여 고딕 조각의 사실주의로 나타나고, 중세인이 이상으로 삼은 인간상이 현실감을 가지고 표현된다. 13세기 중반부터 이미 사실주의의 진행은 고전주의를 깨뜨리고, 14세기는 개성화를 진전시켜 초상 및 초상적 작품의 예와 우아하고 아름다운 매너리즘의 조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도 조각가들의 힘찬 사실주의로 그 때까지의 우미(優美)한 매너리즘을 타파하고 성격적인 극적 조상을 실현하여, 건축에서 독립한 15세기 조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후기 로마네스크에서 고딕 양식에 걸쳐 독일 조각은 훌륭하였으며, 13세기의 조상군, 13∼14세기의 슈트라스부르크의 조각은 프랑스에 못지 않은 힘 있는 성격적 표현을 이어왔다. 15세기에는 제단 조각(祭壇彫刻)으로 발달하고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는 목조주상(木彫鑄像)에 많은 명장(名匠)을 배출하였다.
이탈리아 조각은 피자노부다와 기베르티에 의하여 크게 진전되었다.(피사 성당의 대리석 설교단-피자노, 이삭의 희생-기베르티)
샤르트르 대성당 서쪽 정면에 있는 ‘왕의 문’
‘왕의 문’을 장식하고 있는 인물상 원주.
서쪽 정면에 있는 ‘왕의 문’ 남쪽 입구 위를 장식하고 있는 문설주 조각.
전형적인 고딕조각은 13세기 북프랑스에서 나타나며, 파리·샤르트르(남부정면)·랭스·아미앵 등의 대성당에는 여러 개의 입상,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인간과 동식물의 표현은 로마네스크의 추상적인 경향에서 벗어나서, 자연주의 내지 인간주의로 진전하였다. 내부엔 성서의 내용으로 보이는 부조 작품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샤르트르대성당 정면의 원주인상군(圓柱人像群)은 원기둥 모양의 형태와 의복주름의 장식적인 선각(線刻)에서 로마네스크의 흔적을 남기고 있으나, 얼굴에는 인간적인 감정과 고딕양식의 흐름이 나타난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조각 이 세기에는 또 신학이 융성하여, 성당을 장식하는 조상군(彫像群)은 <돌의 성서>라고 표현되듯이 명확한 종교적 질서에 의하여 통일되었다. 정면의 중앙입구에는 중심기둥을 뒤로 그리스도상을 놓고, 좌우의 벽면에 6명씩의 사도상을 둔 입구 양쪽에는 성모자와 여러 성자가 배치되며, 입구의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띠 모양의 아치에는 천사와 예언자의 상이 늘어서고, 그 주위의 벽면에는 미덕과 악덕을 표시하는 우의상(愚意像)과 <12개월의 행사>에 연유한 인간상이 끼워진다. 신으로부터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의 인간상이 다양하게 표현되었으며, 중세적 인간주의를 반영하는 새로운 미술영역이 개척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조각에서도 독자적 양상을 보였는데, 선구자는 N. 피사노와 그 아들 지오반니다. 피사노가 1260년에 피사에서 최초로 제작한 설교단의 부조와 그 건축세부에는 남이탈리아에서 체득한 것으로 여겨지는 2양식이 명료하게 식별된다. 지오반니는 건축가로서 시에나대성당의 정면(하부), 기타 설계를 하였으며, 조각으로서는 피스토이아의 성안드레아성당의 설교단이 고딕양식에 정통했음을 보여준다.
랭스 성당의 수태고지와 성모방문 (샤르트르 성당의 문성주)
조각은 건물의 수직성과비례하여, 수직으로 길게 변형된 인체가 성당건축의 일부로 포함되어 제자되었다.
4부 끝. 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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