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미술 8 <!--[if !supportEmptyParas]--> <!--[endif]--> 기독교 미술의 종합판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고딕 미술 (Gothic art) - 2
<!--[if !supportEmptyParas]--> <!--[endif]--> B. 높이와의 싸움 (13~14C) - 사실주의의 부활
고딕 건축의 유물인 하늘로 솟구친 첨탑과 스테인드 글라스, 성서를 옮겨 놓은 듯한 조각들, 성경 필사본, 섬세한 표현의 공예품 등은 모두 중세인들의 신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나타낸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자연적이고 사실적인 힘이 고딕 양식의 핵심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중세 유럽에서 성당은 "신의 집"이자 모든 생활 문화의 중심지로,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점차 대규모 성당이 들어서게 됐다. 고딕 성당은 지역 주민들에게 일종의 긍지의 상징이었으며, 신분을 초월하여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성당 건립에 참여할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로마네스크 건축과 비교해 볼 때 고딕 건축은 첨탑으로 인해 수직선이 강조되어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육중한 벽과 기둥 대신 가는 기둥과 넓은 창을 가진 내부는 신비롭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새로운 미술 양식의 등장은 늑골 궁륭(Ribbed Vault)과 공중 부벽(Flying Buttress)이라는 외부 버팀목의 발명 덕분이었다.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프랑스의 노트르담·샤르트르·아미앵 대성당, 영국의 웨스트 민스터 사원, 독일의 쾰른 대성당 등이 손꼽힌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로마네스크 건축과 비교해 볼 때 고딕 건축의 특성은 ① 수평선보다는 첨탑이 솟아오르는 수직선이 강조 되고, ② 안정감과 권위가 아니라 신비롭고 경건한 분위기를 주며, ③ 육중한 벽과 기둥 대신 가는 기둥과 넓은 창을 갖고 있으며, ④ 프레스코 대신 스테인드 글라스가 장식된다.
그래서 때로는 로마네스크는 `뚱뚱한 라틴계 남자`, 고딕은 `늘씬한 북방의 여인` 에 비교되기도 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프랑스의 노트르담, 사르트르, 아미앙 대성당, 영국의웨스트민스터 사원, 독일의 쾰른 대사원 등이 대표작이다. 로마네스크 미술에 이어 12세기 중기에 그 싹이 터서 13세기에 프랑스·영국에서 명확한 양식이 확립되었다. 그 후 2세기 동안 서유럽 전체에 전파되어 더욱 발전·변화해서, 15세기 초부터 이탈리아에서 형성된 르네상스 미술이 대표하는 근세미술로 바뀔 때까지 존속하였다. 고트인들은 이 미술의 형성에는 직접 관계가 없었지만, 약간 모멸적인 뜻으로 말한 것이 이러한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고딕 건축은 유럽의 지역 교회들과 대수도원, 그리고 수많은 대성당의 건축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많은 성, 궁전, 마을 회관, 협회, 종합대학, 그리고 주택까지 이러한 건축 양식이 쓰인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큰 교회와 성당, 그리고 고딕 양식이 가장 강력하게 표현된 수많은 시민 건물들에서 찾을 수 있는데, 감정에 호소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교회 건물들은 이때부터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작은 것도 자주 건축학적으로 구별되는 구조물들이다. 반면, 많은 큰 교회들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작품으로 여겨지며 세계 유산 지역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이러한 까닭에 고딕 건축의 연구는 크게 보면 성당과 교회의 연구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고딕 복고 양식이 영국에서 18세기 말에 시작되어 19세기를 걸쳐 유럽에 퍼져 20세기에 교회와 종합대학 구조물로까지 이어졌다 먼저 건축에서, 특히 성당 건축에서 실현되었지만, 여기에 어울려서 형성된 조각·회화·공예에 대해서도 총괄적으로 이 양식의 명칭이 적용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또한 고딕 양식은 건물 내부를 프레스코화 대신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하는 특징을 보인다. 높이 솟구친 내부를 가진 구조물 덕분에 건축가들은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나타난 작은 창문만 달린 육중한 벽 대신, 커다란 스테인드 글라스를 설치하여 밝은 빛이 내부로 들어올 수 있게 하였다. 이처럼 빛에 의한 아름다운 채색 효과를 보여주는 스테인드 글라스 고딕 예술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16세기의 인물인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는, 그의 유토피아적인 텔렘 수도원의 정문 위에, "고트족(Gotz)"과 "동고트족(Ostrogotz)"에 대한 경멸적인 언급으로 "여기는 위선자와 고집쟁이는 들어갈수 없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고딕 미술의 특징은 조각, 스테인드 글라스, 태피스트리 등과 같은 장식물에서도 나타난다. 성당은 예배를 보는 장소이며, 동시에 구원의 길을 설교하는 수많은 장식물로 이루어진 성소였다. 고딕 성당은 "돌의 성서"라고 할 만큼 수많은 조상군(彫像群)으로 장식되었는데, 주로 성당의 정면, 입구, 문 위의 팀파늄, 벽 등에 성서의 내용들이 조각되었다. 초기에는 기독교적인 교리가 반영된 주제들이 대부분이었으며, 로마네스크 조각의 양식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종교적 이상주의와 인물의 자유스러운 묘사가 결합되면서, 로마네스크의 상징적이고 비사실적인 경향에서 멀어져 인체의 비례와 표정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어졌다. 또한 12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플랑부아이앙(flamboyant)' 양식은 고딕 건축의 최종 단계로서, 이것은 고딕 양식의 직선적인 구조가 불꽃이 피는 듯한 화려하고 복잡한 형태로 변화함을 보여준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고딕 미술의 주역(主役)은 건축으로 일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카페 왕조의 지배하에 놓여있던 북프랑스가 주된 무대였다. 수도원장 슈제르가 세운 생드니 교회나 상스 본사원(둘 다 12세기 전반)이 시초가 되어, 그 후 약 1세기 동안에 건축의 고전이라고도 할 건축이 속속 나타났다. 교회 대형화의 문제는 궁륭구조와 그것을 떠받치는 벽체공법(壁體工法)의 엄청난 발전으로 단번에 해결을 볼 수 있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첫째는 교차궁륭의 완성이다. 로마네스크 시대에 그 원형(原型)은 있었으나 힘이 모이는 교차부분(交叉部分)의 완성이다. 로마네스크의 통형궁륭 대신에 내 개의 통형궁륭을 직교(直交)시켜, 하중(荷重)을 네 곳으로 분산시키는 공법이다. 로마네스크 시대에 그 원형(原型)은 있었으나 힘이 모이는 교차부분(交叉部分)에 석재의 아치로 보강하고 더 나아가 첨두(尖頭) 아치를 병용하는 것으로서 크기와 높이 모두가 자유롭게 만들어졌다. 둘째는 네이브 외벽(外壁)에 얹혀 있는 궁륭의 중량(重量)을 떠받치기 위해 종래에는 두꺼운 벽이 필요했으나, 고딕식(式)에서는 아일의 벽 밖에 지벽(支壁)을 만들어 이것에 신랑(身廊)에서 아치형(形)의 비량(飛樑)을 가설하여 횡압력(橫壓力)을 밖으로 배출하여 벽 자체는 얇게 경량화하였다. 이 두 가지 공법의 완성에 의해 건물은 측벽(側壁)의 가느다란 기둥과 지벽(支壁)만 필요하게 되어 두꺼운 측벽은 없어지게 되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12세기 후반의 레옹 본사와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은 아직 측벽을 높은 위치에까지 부설(敷設)한 것이었으나 후일 13세기에 접어들어서는 이 부분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메워졌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북방(北方)에서는 창을 크게 만드는 것도 자연적 요구의 하나였다.
이 시기에는 유럽의 주요한 성당 대부분이 만들어지는데 특히 샤르트르, 랭스, 아미앵의 세 성당은 전형적인 예이다. 내부는 주열(柱列)이 역학적인 구조로 배열되었으며 시각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지주(支柱)는 높이 가설된 아치와 직결되어 수직의 상승감을 내고 있으나, 후기에는 벽체와 그에 따르는 트리븐(司敎座)이 트라이포리엄(교회 입구의 아치와 지붕 사이)이 없어지고 또한 리브에 연결된 장식소주(裝飾小柱)를 지주에 붙이게 되므로 내부의 천상계(天上界)로 향하는 상승감은 한층 더 강해진다.
아미앵 본사원의 신랑(身廊) 내부의 높이는 42m가 된다. 서쪽 정면의 문 상부에는 커다란 장식으로 둥근 창이 뚫리고 여기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장식한다. 건물의 외면은 정면으로 세개의 입구가 배열되어 있고 각각 입구로부터 속까지가 길게 되어 있다. 팀펀에는 로마네스크식(式)과 마찬가지로 조각으로 꾸며져 있고, 또 문의 양쪽과 후부 제실(祭室)의 외부도 마찬가지로 되어 있다. 또 정면의 양 옆구리에는 한쌍의 탑이 서 있어 당당한 풍격을 나타내고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14세기 이후에 들어와서는 특히 내장면(內裝面)에서의 장식 과잉의 경향이 일어난다. 강조된 수직선에는 마룻바닥에서 아치까지 똑바로 연결되는 보조주(補助柱)와 방사상(放射狀)으로 퍼져 있는 장식 리브가 부착되어 있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영국에서는 링컨 본사원과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의 경우와 같이 천장 부분에 장식 리브가꽃과 같이 펼쳐져 교차하는 성상궁륭(Starvault)으로 발전하여 복잡한 아름다움을 보인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창의 장식에도 대륙의 내외를 불문하고, 첨두(尖頭) 아치에 둘러싸인 상부에 복잡한 곡선을 휘감게 하여 불타는 화염(火焰)을 연상시키는 형식(플랑부아이앵 양식)이 탄생되었다. 독일이나 에스파냐에서는,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쾰른 본사원, 프라하 본사원, 톨레도 본사원, 바르셀로나 본사원 등이 건립되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밀라노 본사원, 피사의 칸포산트 등이 건립되었는데 수직선의 풍취(風趣)를 살리면서, 상승감보다는 크기를 강조하는 데 힘썼다.
아시지의 성 프란체스코 사원, 시에나 본사원 등은, 한편으로는 고딕 양식을 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로마네스크의 수평선적 요소를 강조하며 또 색대리석을 풍부하게 사용한 아름다운 것이다. 14세기 후반 고딕 건축은 북방에서도 종교건축에 한정되지 않고, 도시와 길드의 발달에 따라 세속적 건축에도 채택되었다. 브뤼셀 시청사(市廳舍)와 루앙 재판소는 그 좋은 예이다.
2부 끝 . 3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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