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중세미술

중세미술Ⅳ, B. 새로운 세기는 우연히 왔다-2

草霧 2013. 4. 1. 11:10

 

 

 

중세 미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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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초기 개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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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에 회의를 느끼는 대중들, 파업에 동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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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새로운 세기는 우연히 왔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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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Renaissance) 

개념의 확립 

르네상스의 시작

 

르네상스 개척자들

 

 

피렌체의 단테 (Dante)(Durante degli Alighieri, 1265 ~ 1321)<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1308~1321)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Francesco Petrarca, 1304-74)의 칸초니에레(Canzoniere, 1342~48)

인문주의 (humanism)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 ~ 1536)

회화에서 최초의 르네상스인으로 평가받는 사람은 조토(Giotto di Bondone, 1267 ~ 1337)

볼로냐 대학(Università di Bologna)의 바르톨루스(Bartolus, 1313 ~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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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 프렌체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인 로마의 후손이라는 것과 더불어 그리스 로마의 전통을 되살림으로서 새로운 위대한 문화를 창조해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는 중세에 대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인의 시각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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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중세는 위대한 고대와 르네상스 사이에 낀 중간 시대일 뿐 문화적으로는 아주 야만스럽고 혼란한 암흑시대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건축문화를 발전시켰던 중세 말의 시대를 편견에 사로잡혀 고딕 시대라 칭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르네상스 미술을 모든 미술의 최고 모범이자 척도로 보는 이러한 다분히 치우친 생각은 르네상스 시대이래로 일반화되어 18세기 말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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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유산이외에도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지역에 있던 수많은 도시국가들의 경제적 발전과 과학, 기술의 진보, 십자군 파병으로 인한 유럽 밖의 세계와의 만남을 배경으로 해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특징은 고전의 부활, 인간중심주의, 자연에 대한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접근태도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인간과 현실이 주요 관심사였던 고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인간중심주의로 이어지고 이는 과학적 방법의 강조로 연결되어 과학과 예술이 합쳐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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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가들은 특히 수학, 기하학에 매력을 느꼈고, 마침내 수학과 기하학은 미술교육의 기초가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미술과 과학의 이러한 만남의 가장 큰 열매는 선 원근법(linear perspective, 일점 소실 원근법이라고도 부름)의 발견이다. 조각가이자 건축가였던 브루넬레스키는 로마 유적에 대한 연구와 측량 작업을 통해 원근법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 원근법을 이용하면 정확하고 합리적으로 화면에 그려진 대상들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르네상스 미술가들은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이제 미술가들은 2차원의 평면인 화면위에 3차원의 공간, 즉 입체감을 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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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주제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종교적 주제와 더불어 표현되고 있다. 특히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나 성경의 다윗처럼 인간이 얼마나 뛰어났는가를 보여준 남성 영웅들이 많이 그려졌다. 이러한 인간의 능력에 대한 믿음은 인체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 인체 해부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사람은 직접 시체 해부를 해 볼 정도로 이 당시 이탈리아 미술가들은 인체에 관심이 많았다. 또한 그림은 대부분 벽화의 일종인 프레스코, 템페라와 유화로 제작되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은 합리적이고 엄격한 과학적 이론위에서 단순하면서도 균형 잡힌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세계를 우리 앞에 펼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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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기는 대개 1337년에서 1594년까지나 쉽게 14세기, 15세기, 16세기로 구분하기도 한다. 14세기는 르네상스 초기 시대로 중세의 고딕양식이 더 우세하던 시기지만, 조토, 치마부에, 두초 같은 르네상스 미술의 개척자들이 활약해 르네상스 미술의 기초를 다졌다. 15세기는 르네상스 미술의 전성기로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중심으로 마사초, 부르넬레스키, 보티첼리, 도나텔로 등이 빛나는 회화와 조각의 발전을 가져왔고, 이는 16세기 초(1520년경)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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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미술가들은 원근법, 명암법, 삼각형 구도들을 발명해내고 발전시켰다. 16세기에는 미술의 중심지가 피렌체에서 로마, 베네치아로 옮겨간다. 왜냐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같은 위대한 작가들이 이곳에서 활약을 해 회화와 조각에서 뛰어난 업적을 쌓았기 때문이다.

 

 

11 ·12세기의 상업의 부활과 십자군 운동의 참여를 통하여 도시 활성화 시작

12세기에는 중북부의 많은 도시가 자치도시로 조직로 도시국가(이탈리아의 코무네)의 형태

13세기 후반의 경제적 발전기에는 사회계층의 변화도 심하여, 이탈리아 특유의 시민문화의 기반을 형성

이와 같이 특수한 사회구조와 독자의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잔틴과 이슬람 문화권과의 접촉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탈리아 코무네가 르네상스운동의 진원지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의 특징은 고대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신문화를 만들어내려는 자각적인 태도로서, 고대가 지난 후 암흑시대가 있었고 이제 새로운 재탄생의 시대가 도래 하였다에 기초하고 있다.

고전연구, 인문학, 인문주의자, 휴마니타스(Humanitas), 페트라르카를 출발점

14세기 조토, G.바사리, 바르톨루스

15세기 피렌체를 중심으로 인문주의자 _ C.살루타티 시민적 인문주의(civic humanism)’, L.브루니 피렌체국민사

공화정은 로마의 귀중한 유산이며 그것을 보존하는 일은 피렌체의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로마공화정시대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이 가장 크게 열린 시대였으나, 카이사르를 비롯한 독재자들이 국민의 자유를 빼앗아 버렸으므로 피렌체의 이상은 로마공화정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인문주의자들은 고대의 역사와 학문을 배우고 여기에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정치와 도덕의 원리를 구하려고 노력하였다.

텍스트 연구

 

조토(Giotto, 1267-1337)

두초(Duccio, 1255/60-1315/18)

마사초(Masaccio, 1401-1428)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

보티첼리(Botticelli, 1446-1510)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

라파엘로(Raphael, 1483-1520)

티치아노(Tiziano, 1490-1576) 

 

 

북유럽 르네상스, 인문주의

북방 르네상스가 진전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쇄술의 발달과 종교개혁을 빼놓을 수 없다. 구텐베르그 성경을 비롯한 인쇄 기술 및 이미지는 북방 르네상스 성립 배경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북유럽 르네상스 문인들 중에서 특히 독일의 문인들은 종교개혁가들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Johannes Reuchlin, Hutten과 루터, 루터, Melanchthon 그리고 Sebastian Brant는 북유럽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간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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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북유럽 미술은 고유의 지역적 특징과 이탈리아의 영향을 잘 결합시켜 새로운 발전을 이루었고, 이는 17세기 초 바로크 미술이 유행할 때까지 계속된다. 또한 이 지역이 종교개혁의 본거지가 됨으로서 미술 역시 그 영향을 받았다. 미술가들 중에서도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신봉자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림의 주제도 종교개혁과 관련된 것이 그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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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후기 고딕

재 발견될 만한 고대의 유물이 거의 없던 이 지역에서 고전의 부활이란 그리스, 로마의 예술전통의 되살림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의 순수한 종교적 열정의 부활과 자연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사실주의를 뜻한다. 이런 독자적인 흐름은 16세기 초에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이 지역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때까지 계속된다. 북유럽은 이탈리아보다 고딕 전통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이탈리아가 고딕과의 결별을 통해 르네상스를 이루어낸 데 비해 북유럽은 고딕 양식을 거름으로 삼아 르네상스로 나아갔다. 그래서 북유럽의 초기 르네상스를 후기 고딕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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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사실주의와 초상화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고전의 부활 강조, 인간중심의 세계관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이용해 눈에 보이는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규칙을 연구하고 표현하는데 관심이 있었다면, 북구 르네상스는 겉모습 자체에 대한 세밀하고 정확한 묘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북구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그림을 현실 세계의 거울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 같은 매우 정밀한 묘사방법은 이 지역에서 유화가 발명되어 가능하게 되었다. 물감에다 기름을 섞어 칠하는 유화 기법은 마르는 속도가 느려 색채를 혼합할 수 있어 빛과 어둠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입체감을 표현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유화의 발명과 사실주의 기법의 발달은 이 지역에서 특히 초상화가 두각을 나타내는데 밑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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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대기 원근법'(atmospheric perspective)

 

 

자연에 대한 치밀하고 정확한 관찰에서 북유럽에서는 독자적인 원근법 체계가 발전되었다. 빛과 공기, 사물의 형태, 색채의 상호작용에 대한 끈질긴 연구에서 '대기 원근법'(atmospheric perspective)이 등장한 것이다. 대기 원근법은 사물이 보는 사람의 눈에서 멀어질수록 희미하게 보인다는 점에 착안해 그림의 앞면에서 뒤쪽으로 갈수록 흐릿하게 그리는 방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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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종개개혁의 본거지, 플랑드르 미술

 

 

북유럽 르네상스를 선도했던 지역은 플랑드르였다. 플랑드르 지역의 브뤼셀, 브뤼헤, 헨트, 루뱅, 하렘 등의 도시들은 이탈리아의 로마나 피렌체 못지않게 예술이 발달한 곳이었다. 이 지역 미술의 특징인 세밀하고 정확한 사물묘사와 빛나는 색채, 광선처리는 이탈리아까지 명성이 자자할 정도였다.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는 휴머니스트의 왕자로 알려져 있다. 영국 르네상스는 16세기~17세기로 튜더-스튜어트 시대, 토머스 모어, Sir Walter Ralegh (1552-1618), Frances Bacon, 스펜서, 셰익스피어, 밀튼, 프랑스 르네상스는 Jean FroissartChronicles, 몽떼뉴, D'etaples, Budé, RabelaisGargantua and Pantagruel, Letter from Gargantua to his son Pantagruel, Marguerite de NavarreThe Heptameron, 스페인의 르네상스는 세르반테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북유럽에서도 과학 분야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갈릴레오, Johannes Kepler, 홀란드의 Zacharias Jansen이 만든 최초의 복합 현미경, 의학-해부학 분야에서 Andreas Vesalius, Paracelsus의 혁명적인 의학, Tycho Brahe, 셰익스피어(햄릿) , 세르반테스(돈키호테), 몽테뉴, 갈릴레이, 행성 운행의 법칙을 발견한 케플러, 에라스무스(우신예찬;교회타락비판), 토머스 모어(유토피아;농촌현실비판)

반 아이크(Jan Van Eyck, 1390-1441)

보쉬(Hieronymous Bosch, 1450-1516)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

뒤러(Albrecht D?rer, 1471-1528)

그뤼네발트(Matthias Gr?newald, ?-1528)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 

 

  

르네상스의 종말 (1530)

 

 

A. 신성로마 황제 카를 5세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간에 벌어진 이탈리아 전쟁’ (1521~44)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종말

 

130년간 지속되던 르네상스는 1530년경 끝이 났다.

1494년 프랑스의 샤를 8세는 샤를마뉴의 꿈을 재현해 보려는 듯 나폴리 침공

에스파냐와 독일 합스부르크 왕가 및 프랑스 발루아 왕가간의 세력 다툼

후기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였던 로마가 1527년 황제군에 의하여 약탈당하면서 많은 문화재가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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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 ~ 1506)의 신대륙 발견(1492)

 

그 후에는 북서부 유럽의 상인들이 무역상품을 리스본과 안트웨르펜을 통해 거래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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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 (1517)

 

이로 인해 서유럽 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교회로 분열되었다. 이 분열은 이탈리아를 풍요롭게 했던 자본의 고갈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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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매너리즘(Mannerism)

 

 

라파엘로가 죽은 1520년 이후에는 점점 제자리 상태에 머물게 된다. 이시기를 르네상스 후기, 또는 매너리즘의 시대라고 한다. 매너리즘(Mannerism)이란 명칭은 이 당시 미술이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미술 기법을 본보기로 삼았다는 데서 나왔다. 매너리즘 미술가들은 자연에 대한 충실한 모방보다는 예술적 상상력과 개성을 중시했다. 따라서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의 균형과 조화, 사실성 대신 불안한 화면구성과 괴상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람이나 물체는 화면 한쪽으로만 몰려 있어 안정감이 없고, 인물들은 뱀처럼 길게 늘어나 있거나 뒤틀려 있다. 색채는 원색을 많이 사용하여 운동감의 느낌을 강조하고 들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내고 있고 빛과 어둠의 표현은 자연스럽지 않고 인공적이다.

 

 

파르미자니노(Parmigianino, 1503-1540)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

 

 

르네상스 영향,

17세기의 과학 혁명(Scientific Revolution)

과학적 측면에서 보는 르네상스의 중요성은 근대과학의 진원지로서가 아니라, 종래의 학자적 사고의 전통과 수공업에 종사하는 직인의 전통이 결합하는 계기가 되어 실험과 실용의 정신을 낳았다는 데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르네상스 정신은 중세를 이어온 과학의 변화와 더불어 16 ·17세기의 J.케플러, 갈릴레이 등을 낳게 하였으며, 이는 다시 뉴턴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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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나 종교개혁과 더불어 근대 사상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사건은 17세기의 과학 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었다. 이에 따라 오랜 기간 동안 종교적 계시에 종속되어 있었던 이성은 마침내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었고 중세의 세계관은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과학 혁명으로 인해 고무된 이성에 대한 신뢰는 훗날 계몽주의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서양 문화의 광범위한 변화를 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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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 의해서 구분되는 근대의 개념이 서구 중심적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세계사적인 차원에서 근대를 구분할 수 있는 틀로 근대 과학의 발달에 주목했다. 과학혁명의 성과에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연구방법의 공식화와 과학이 인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확립이 포함된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과 르네 데카르트(Renè Descartes, 1596~1650)는 과학혁명을 설명하는데 빼놓지 말아야 할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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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영국의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아이작 뉴턴(Issac Newton, 1642~1727)이 코페르니쿠스, 케플러의 천문학과 갈릴레오의 물리학이 결합된 천체역학을 제시함으로써 해결된다.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관 그리고 실험을 통한 이론을 검증하는 연구 방법론은 (차후에 살펴보게 될)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여는 주춧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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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대 과학 사상의 재발견

 

현실을 이해하는 열쇠로서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고대 피타고라스(Pythagoras, 580~507 B.C.)와 플라톤(Platon) 사상의 재발견 역시 과학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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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르네상스 예술

 

 

훗날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와 케플러(Kepler)의 천문학 그리고 갈릴레오(Galileo)의 물리학에 나타나는 새로운 자연관의 탄생을 촉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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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신비주의 사상 (Hermeticism)

 

 

근대 천문학의 선구자 중 하나인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의 사상에는 신비주의로부터 받은 영향이 뚜렷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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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텍스트 번역

 

당시 피렌체의 통치자였던 코지모 데 메디치(Cosimo dé Medici)가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로 하여금 이를 연구하고 라틴어로 번역을 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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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Nicholas Copernicus, 1473~1543)의 지동설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 찬양, 새로운 우주관의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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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변호, 실험 물리학의 확립, 권위에 대한 도전, 갈릴레오의 종교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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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의 망원경 발견

신비주의적 발상에 대한 이성적 검토, 과학적 방법론의 활용, 행성운동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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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The 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 출판, 뉴턴의 운동법칙, 하나로 통일된 우주, 방법론

 

중세의 사상과 배경, 용어 개념에 대하여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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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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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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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미술 연대기 (500 ~ 1500)

 

청동기 시대

(3650-1100 BC)

에게 미술

중세 미술

(500 ~ 1500)

중세 초기(Early Middle Ages, 476-1000)

중세 중기(High Middle Ages, 1000-1300)

중세 후기(Late Middle Ages, 1300-1453)

중세의 몰락(1453)

콘스탄티노플의 함락(1453)

인쇄기의 발명(1456)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1492)

종교 개혁(1517)

르네상스

고대 그리스

(1100-146 BC)

고대 그리스 미술 1

고대 그리스 미술 2

고대 로마

(753~476 BC)

로마 황제 연대표

고대 로마 미술 1

고대 로마 미술 - 2

 

비잔틴 제국

(476BC-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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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황제 연대표

십자군 연대표

동방 정교회

라틴제국

비잔틴 미술 - 1

비잔틴 미술 - 2

성서의 가르침을 그림으로 읽는다. - 1

성서의 가르침을 그림으로 읽는다. - 2

로마의 분할과 중세의 시작 - 1

로마의 분할과 중세의 시작 - 2

로마의 분할과 중세의 시작 - 3

로마의 분할과 중세의 시작 4

로마의 분할과 중세의 시작 - 5

서양 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 1

서양 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 2

서양 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3 -

서양 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3 -

서양 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3

기독교 만 존재한다. - 1

기독교 만 존재한다. - 2

기독교 만 존재한다. - 3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신 보다, 인간의 호기심은 강하다

신이여! 구원하소서!

아메리카 문명

(300~1533)

고대 아메리카 미술-1

고대 아메리카 미술-2

고대 아메리카 미술-3

아프리카 미술

(BC 3300~1800)

미술의 탄생

원시미술 -2

메소포타미아 미술

이집트미술

아프리카 미술-1

아프리카 미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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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초기 미술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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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