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중세미술

중세미술Ⅳ, B. 새로운 세기는 우연히 왔다-1

草霧 2013. 3. 31. 11:31

 

 

 

중세 미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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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초기 개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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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에 회의를 느끼는 대중들, 파업에 동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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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새로운 세기는 우연히 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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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Renaissance)

 

 

중세와 근세 사이(1416세기)에 서유럽 문명사에 나타난 역사 시기와 그 시대에 일어난 문화운동을 일컸는 용어이다. 르네상스는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 ·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어의 renaissance, 이탈리아어의 rina scenza, rinascimento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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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그리스 ·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내려는 운동으로, 그 범위는 사상 ·문학 ·미술 ·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5세기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그때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야만시대,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파악하고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이 야만시대를 극복하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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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운동은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이 운동은 곧 프랑스 ·독일 ·영국 등 북유럽 지역에 전파되어 특색 있는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근대 유럽문화 태동의 기반이 되었다. 이때의 르네상스 외에도 문화부흥 현상이 보인 기타의 시대에 대해서도 이 용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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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 오토 왕조의 르네상스, 12세기의 르네상스, 상업의 르네상스, 로마법의 르네상스 등이 이에 속한다. 르네상스 미술은 유럽을 남북으로 나누는 알프스 산맥 남쪽인 이탈리아와 북쪽인 북유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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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전으로 복귀

 

 

우리 말로 다시 태어나다’, ‘다시 살아나다라는 뜻의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말은 이 당시에 이탈리아인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전통을 되살렸다는 데서 나왔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이때 이탈리아가 활발한 무역의 중심지로 부를 쌓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이루어냈고, 고대 로마의 유적과 유물이 곳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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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휴머니즘

 

 

그리스, 로마의 문화전통, 즉 고전의 부활을 기초로 한 르네상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모든 것이 기독교 중심이던 중세의 생각방식이 마침내 인간중심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중심의 태도는 인간의 존엄성과 재능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과학적인 방법을 강조하여 과학과 미술이 만나게 했다. 중세말까지 단순한 기술자에 지나지 않았던 미술가들은 드디어는 자신이 하나님처럼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위대한 존재라는 자신감을 갖게 되어 미술공부 외에도 철학, 문학, 의학, 물리학 등 다방면에 거쳐 지식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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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천재 등장

 

 

따라서 르네상스시대의 미술가들 중에는 건축, 조각, 그림, 문학등 여러 가지를 다 할 수 있었던 천재들이 여럿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다. 학문 분야 중에서 특히 수많은 미술가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수학과 기하학, 인체해부학이었다. 수학, 기하학, 인체해부학은 실제 세계와 인간을 그림과 조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데 매우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과 조각을 실제 사람과 건물처럼 생생하고 입체감 있게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르네상스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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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 확립

F.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인문학'(litterae humanae)

고대를 문화의 절정기로 보는 반면, 중세를 인간의 창조성이 철저히 무시된 암흑시대라고 봄으로써 문명의 재흥(再興)과 사회의 개선은 고전학문의 부흥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인문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던 크나큰 확신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단순한 라틴 학문의 부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지적(知的) ·창조적 힘을 재흥시키려는 신념에 차 있었다.

L.브루니(Leonardo Bruni, 1370~1444)피렌체사 Historiarum Florentini populi libriⅩⅡ〉(1610)

16세기의 미술가 G.바자리(Giorgio Vasari, 1511 - 1574)는 저서 이탈리아의 가장 뛰어난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생애, <이탈리아 미술가 열전>에서 재생(rinascita)’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볼테르(François Marie Arouet, 볼테르 (Voltaire, 1694~1778)

이탈리아어로 Il Rinascimento(Rinasimento)라는 어원을 가진 이 말은 프랑스 역사가인 미슐레가 프랑스어인 Renaissance라는 말로 확립시켰으며 이것이 영어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인간성의 해방과 인간의 재발견, 그리고 합리적인 사유(思惟)와 생활태도의 길을 열어 준 근대문화의 선구라고 보고 이와 같은 해석의 기초를 확고히 닦은 학자는 스위스의 문화사가 J.부르크하르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860년에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문화를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시대로서의 르네상스라는 사고방식이 정착하여 오늘까지의 연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르네상스의 시작

보통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리적으로 이슬람 세계, 비잔틴 세계와의 접촉을 유지하여 서유럽과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11세기 이후 상업의 발달과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도시의 활성화로 도시는 점차 도시국가 형태의 자치도시가 되었다. 13세기 말의 경제성장기에는 사회계층의 변화가 심해져서 특유의 시민문화가 형성되었는데 도시국가는 그 특성상 고대의 도시국가와 유사한 점도 있어 로마법이나 정치제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들은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발생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오스만투르크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1453)

 

그것은 대포와 화약이 전쟁의 중심으로 들어온 전환점이 된 전쟁이었고 천년 넘게 그리스-로마의 문화를 간직해온 비잔티움의 멸망으로 많은 그리스인들이 이 도시를 떠나 서유럽으로 망명했고 그들이 가져온 지식과 문서들, 고대 그리스-로마의 전통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실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그리스 학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훨씬 이전의 일이지만 그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이 이슬람에 의해 연구된 그리스-로마의 고전들이 서유럽으로 대거 유입되게 된 것은 분명하다. 역사학자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을 중세를 마감하고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중요한 사건으로 보고 있으며, 아울러 이 시점을 근대의 시작으로 본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1부 끝.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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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