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중세미술

중세미술Ⅲ, B.신 보다, 인간의 호기심은 강하다-2

草霧 2013. 3. 30. 12:39

 

 

 

 

 

중세 미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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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문화의 이식 그리고 문화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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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야욕이 신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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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신 보다, 인간의 호기심은 강하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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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사수하라’ - “2부 이슬람의 부흥”, “3부 문명충돌

서양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 “3부 오리엔탈리즘을 참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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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문명 발전사의 주역, 압바스조 시대 (7501258)

 

 

인류 역사를 통틀어 그 유례가 드문 과학 황금시대를 이룩함으로써 8세기 후반부터 15세기까지 지속된 중세 아라비아 과학 발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 기간 세계 문명의 한 축을 이루는 주요 문명권으로서 이슬람 세계에는 수학, 천문학, 물리학, 공학, 화학, 의학, 철학 등 여러 과학 이론과 실용적 발명이 동과 서에서 유입된 뒤 다시 발전된 형태로 주변에 전해졌다. 다시 말해 앞서 그리스인, 페르시아인, 인도인들이 이룩한 상당량의 과학 지식을 담은 문헌에 대한 활발한 번역 작업을 통해 압바스조는 이전의 지식을 종합하고 발전시켜 이 분야에서 당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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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중엽에 시작된, 주로 그리스어 문헌의 번역을 목표로 하는 번역 운동은 압바스조 이슬람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이 운동은 그리스어·아랍어 문헌학과 철학, 과학사 분야에서의 중요성을 차치하더라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 사회적 현상이었다는 것 말고는 설명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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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도입되고, 번역 출간 사업이 활기를 띠면서 9세기 중엽 지혜의 전당은 당시 세계 최다 서적을 보유한 도서관이 됐다. 열정적인 칼리프와 압바스조 사회의 관용적인 후원으로 번역 사업은 속도를 내면서 바그다드에는 이슬람 역사에서 학문의 혜성 같은 명사가 몰려들었다. 바그다드는 학문 활동의 허브가 되어 향후 몇 세기간 아랍과 페르시아의 최고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을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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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에 들어와 유럽은 중세 이슬람 학자들이 공들여 쌓아놓은 과학 서적들을 라틴어로 번역해 그 안에 고스란히 보전된 고도의 지식을 쉽게 습득할 수 있었다. 이로써 유럽은 14세기에 시작된 르네상스의 물결을 타고 과학 기술 분야에서, 그리고 그 지식을 이용한 산업 발전을 통해 근대에 세계의 선두주자로 나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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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학, 눈 해부, 세계지도, 과학서적 번역 운동과 이슬람의 지적 혁신

 

아라비아반도 주변 지역을 정복한 후 아랍인이 처음 세운 이슬람 우마이야 제국은 최초의 아랍 도서관 문을 열었다. 연금술, 의학 등 과학 분야 관련 그리스어 기독교 서적을 수집, 보관하면서 서서히 문명의 디딤돌을 놓았다. 우마이야조의 뒤를 이어 집권한 압바스조 시대(750~1258)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그 유례가 드문 과학 황금시대를 이룩했고, 8세기 후반부터 15세기까지 지속된 중세 아라비아 과학 발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문명의 주인공이 바뀌는 가운데 인류는 과학 지식을 후대에 전달하면서 과학을 발전시켰고, 이슬람 문명은 중세 문명을 담당한 주역이었다. 아라비아 숫자나 세계 지도, 알칼리 등의 화학용어 등은 이슬람 문명이 전해준 과학문명의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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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1000년 기간이 중세 유럽에서 학문의 암흑기라고 한다면, 750~900년의 기간은 이슬람 문명권의 핵심 세력인 압바스조가 이끄는 학문의 전성기였다. 그러한 차이는 이슬람의 관용적 특성과 이슬람 영토의 확대, 이슬람 제국 통치자들의 개방적 태도 등에서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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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집트인과 수메르인은 수학, 자연과학, 의학 등 과학지식을 탄생시킨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중동과 가까운 그리스는 고대 오리엔트 문명을 계승하면서도 독창적인 문명을 창출해 이후 서양 문명의 모체가 되는 그리스 문명을 이룩해 냈다. 그렇게 축적된 그리스의 과학지식은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의 동방 정복을 통해 오리엔트의 건축술, 의술 같은 실증적 지식과 결합해 세계화된 헬레니즘 과학으로 발전했다. 당시 이집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수학, 역학, 천문학 등을 포함하는 헬레니즘 과학의 중심지였다. 로마 시대에는 주로 그리스의 과학과 기술이 응용됐으며, 여전히 활동하던 그리스 과학자들에 의해 고대 과학이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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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프 알 마으문은 국가적 규모의 재정 뒷받침을 요하는 거대과학(big science)’에 재정지원을 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150년경 사망)의 수학과 천문학에 관한 탁월한 저작 수학적 집성(Syntaxis mathematica)’알마게스트(Almagest·위대한 책)’라는 아랍어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었다. 천동설을 중심으로 하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이론을 확인하기 위해 학자들에게 천문 관측 업무를 맡기기도 했다. 그 결과물이 실증된 천체표(al-Zij al-Mumtahan)’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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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 중세에 들어와서 유럽은 봉건제도와 기독교 교의의 지배하에 과학기술을 포함하는 그리스 고대 문명의 지적 성과가 빛을 잃는 암흑시대(400~ 1000)를 맞이했다. ‘천상의 왕국을 꿈꾸는 기독교 신학의 영향으로 그리스 사상과 과학지식은 학문에서 배제됐다. 소중한 그리스 과학 유산이 사라질 위기의 시기에 고전 문명 지식의 파수꾼을 자처한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 아닌 이슬람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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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인 이븐 이스하끄(877)는 번역한 서적들 중에는 플라톤의 철학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의학서들, 유클리드와 아르키메데스의 수학 관련 연구서 등이 있다. 특히 그는 고대 그리스 의학자 갈레노스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 정맥과 동맥의 해부에 관하여’ ‘신경의 해부에 관하여등과 같은 갈레노스의 중요한 저작들을 번역했다. 번역에 자신이 독창적으로 발견한 연구결과를 추가하기도 했는데, 그중에 860년 쓰인 ()에 관한 10편의 논문은 인간의 눈에 대한 최초의 해부도가 있는 책으로, 안과학에서 최초의 체계적인 교재로 간주된다. 후나인의 번역을 통해 당대와 이후 이슬람 세계와 유럽 기독교 지역에서는 갈레노스 의학이 지배적인 추세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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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교의에 대한 지식을 우선시하지만 이슬람교는 전반적인 학문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향후 무슬림들이 이슬람 국가 발전에 필요한 지식을 구하는 일에 앞장서도록 하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이는 과학 지식은 단지 교회에 봉사해야 한다며 학문을 등한시한 중세 기독교의 태도와는 대조되는 진취적인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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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수학(代數學)의 아버지로 간주되는 알 크와리즈미(Muhammad ibn Musa al-Khwarizmi·850년경 사망)는 아랍인들에게 인도 숫자를 소개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지리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무엇보다 그의 최대 업적은 대수학(algebra)에 관한 탁월한 저서였다. 용어 algebra(엘저브러)도 그의 저서 키탑 알 자브르(Kitab al-Jabr·등식 계산에 관한 책)’의 아랍어 제목에서 유래한다. 이 책에서 그는 대수 방정식을 푸는 법칙과 단계를 최초로 설정했으며, 이것은 오늘날 algorithm(알고리듬, 연산)으로 알려져 있다. 계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 알고리듬은 알 크와리즈미의 라틴어식 이름 알고리트무스(Algorithmus)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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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슬람의 광범위한 영토 점령으로 이집트-페르시아-인도를 잇는 길이 열리자 다시 문명의 강은 그 흐름을 되찾았고, 이를 통해 동서 간에 농산물, 원자재, 제조 물품, 용역, 기술, 사고와 사상 등의 문물이 자유로이 만나게 됐다. 이러한 팍스 이슬라미카’(pax Islamica·이슬람 평화시대)에 이슬람 제국 안에서는 무역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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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라스 전투(Battle of Talas, 751)와 종이

아랍인의 중동지역 정복으로 알렉산더 대왕 이래 1000년간 헬레니즘 영향권 하에 있던 지역과 그 안의 민족들이 통합됐던 반면, 비잔틴 제국은 여전히 존속하면서 이슬람 제국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잔틴 제국 내 기독교 교회의 분열은 역설적으로 이슬람 제국의 학문 발전에 도움을 주는 결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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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o.wikipedia.org/wiki/%ED%83%88%EB%9D%BC%EC%8A%A4_%EC%A0%84%ED%88%AC

 

311년 비잔틴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뒤 신학상 교리에 대한 의견 차이로 교회는 분열되었다. 비잔틴 제국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통일성을 승인한 칼케도니아 공의회 결정을 정통파 교리로 채택하고, 거기에서 벗어난 네스토리우스 신학파(그리스도 양성론)나 알렉산드리아 신학파(그리스도 단성론) 등을 배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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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리아파는 페르시아 지역으로 옮겨가는 등, 비잔틴 제국 내에서 탄압받던 기독교도들은 종교 탄압이 없는 이슬람 제국으로 옮겨가 살면서 자신들의 언어인 그리스어나 옛 시리아어를 통해 이슬람 문명 발전의 협력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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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알킨디(al-Kindi·800~873)는 최초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번역, 주해해 아랍인에게 소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알 크와리즈미와 함께 인도의 10진법을 이슬람 세계에 도입하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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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정복으로 인해 새로운 환경에서 활동한 이 학자들의 특징은 전통적 학문 분야의 살아 있는 대표주자들로서 각 분야의 전문가였다는 점이다. 다국어를 구사했던 그들은 그리스어 외에 옛 시리아어나 페르시아어 같은 다른 언어들로 쓰인 과학 문헌들을 볼 수 있었으며, 서로 만나 교류할 수 있었다. 압바스조(750~1258)가 과학자들을 후원하고 번역 사업을 지원하는 결정을 하면 궁정에는 이러한 학자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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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리스어나 페르시아어 자료를 아랍어로 번역하는 활동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다분히 시대의 필요에 의해 임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즉 그리스어나 페르시아어를 말하는 피지배층 사람들을 통치하기 위한 필요에서 행정, 관료, 정치, 상업상의 문서를 번역하는 일에 국한됐다.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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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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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미술 연대기 (500 ~ 1500)

 

청동기 시대

(3650-1100 BC)

에게 미술

중세 미술

(500 ~ 1500)

중세 초기(Early Middle Ages, 476-1000)

중세 중기(High Middle Ages, 1000-1300)

중세 후기(Late Middle Ages, 1300-1453)

중세의 몰락(1453)

콘스탄티노플의 함락(1453)

인쇄기의 발명(1456)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1492)

종교 개혁(1517)

르네상스

고대 그리스

(1100-146 BC)

고대 그리스 미술 1

고대 그리스 미술 2

고대 로마

(753~476 BC)

로마 황제 연대표

고대 로마 미술 1

고대 로마 미술 - 2

 

비잔틴 제국

(476BC-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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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황제 연대표

십자군 연대표

동방 정교회

라틴제국

비잔틴 미술 - 1

비잔틴 미술 - 2

성서의 가르침을 그림으로 읽는다. - 1

성서의 가르침을 그림으로 읽는다. - 2

로마의 분할과 중세의 시작 - 1

로마의 분할과 중세의 시작 - 2

로마의 분할과 중세의 시작 - 3

로마의 분할과 중세의 시작 4

로마의 분할과 중세의 시작 - 5

서양 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 1

서양 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 2

서양 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3 -

서양 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3 -

서양 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3

기독교 만 존재한다. - 1

기독교 만 존재한다. - 2

기독교 만 존재한다. - 3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예루살렘을 사수하라시리즈

아메리카 문명

(300~1533)

고대 아메리카 미술-1

고대 아메리카 미술-2

고대 아메리카 미술-3

아프리카 미술

(BC 3300~1800)

미술의 탄생

원시미술 -2

메소포타미아 미술

이집트미술

아프리카 미술-1

아프리카 미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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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여! 구원하소서!” 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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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