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중세미술

중세미술Ⅲ, A.예루살렘을 사수하라 - 1부.십자군 전쟁(십자군 전쟁의 영향)

草霧 2013. 3. 28. 08:25

 

 

 

중세 미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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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과 이슬람 부흥 그리고 문명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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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야욕이 신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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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예루살렘을 사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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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재 글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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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미술, 1부 예루살렘을 사수하라 편에서는 3편으로 나누워 연재됩니다. “1부 십자군 전쟁 ”, “2부 이슬람의 부흥”, “3부 문명충돌 로 기독교의 광기와 무슬림의 충돌을 통하여, 문명충돌과 미술의 진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참고로, “2. 이슬람의 부흥편은 본 저의 서양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3 (오리엔탈리즘 편)을 참조하세요.

 

1. 십자군 전쟁

2. 이슬람의 부흥

3. 문명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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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자군 전쟁 (CRUSADE, 1095-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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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콩키스타 (Reconquista, 718-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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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르몽 교회회의 (Council of Clermont, 1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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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십자군 (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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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십자군 원정 (1096-99)

니케아(1097) 도릴라이움(1097) 안티오키아(1097~1098) 마라트 안-누만(1098) 예루살렘(1099) 아스칼론(1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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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국가의 성립 (1098-1291)

아제르 상귀니스(1119) - 몽기사르(1177) - 이나브(1149) - 하틴(1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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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십자군 원정 (1147-49)

리스본 공방전 (1147) - 다마스쿠스 공방전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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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십자군원정(1189-92)

예루살렘의 공방전 (1187) - 아크레 공방전 (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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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 십자군 (발트 십자군, 1193-1236)

독일 십자군 (1096) - 웬드 십자군 (1147) - 리보니아 십자군(Livländischen Kreuzzug 1198~1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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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십자군원정 (1202-4)

콘스탄티노플 약탈(1203-04) - 라틴 제국(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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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 십자군 (Albigenses Crusades 알비파 십자군, 1209-29)

도미니코회와 종교재판 (1223 ~1255) - 퀘리부 함락과 종결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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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십자군 [Children's Crusade]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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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십자군원정(12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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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시아 십자군 원정 (1217-83)

1차 프러시아 십자군 (1217~1228) - 2차 프러시아 십자군 (1230~1283) - 프러시아의 정복 (1237~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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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 십자군원정(1228-40)

예루살렘 탈환(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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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틱 북 십자군 전쟁 (12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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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십자군원정(1248-52)

티발 1세 십자군(1239) - 예루살렘 포위 (1244) - 라 포르비에 전투 (Battle of La Forbie,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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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십자군 (1268~1303)

프랑크 - 몽골 연합 (Franco - Mongol alliance1271) - 아크레 공방전 (Siege of Acre, 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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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들 십자군 (Shepherds Crusade, 1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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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차 십자군 원정(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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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차 십자군 원정(12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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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고네스 십자군(1284-85, 일명 아라곤 십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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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십자군(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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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헝가리 전쟁(1526-52), 니코폴리스 십자군 (1396)

니코폴리스(1396, Bitka pri Nikopol) 바르나 코소보 베오그라드 바슬루이 브레드필드 오트란토 크르바바 평원 모하치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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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르(Tatarlar) 십자군 전쟁 (1398-99)

레그니차 전투(Bitwa pod Legnicą,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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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스파 십자군 (Hussite, 14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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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십자군 전쟁 (14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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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나 십자군 (Crusade of Varna,1444-48)

바르나 전투(1444) -2차 코소보 전투 (második rigómezei csata,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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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란토 십자군 (1480-81)

오트란토 전투(Battle of Otranto, 14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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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십자군 (1529)

(Vienna) 공방전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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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판토 십자군 (Battle of Lepanto, 1571)

레판토 해전 (Proelium Lepanthinum, 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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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합스부르크 십자군 (1663)

 

십자군 전쟁의 영향

비록 십자군은 이슬람의 수중에서 성지를 탈환하지 못하였지만 그 후 유럽과 중동의 역사 및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십자군 원정을 통해서 경제적·정치적으로 가장 혜택을 많이 보았다. 초기에는 아말피, 베네치아, 바리만이 동방과의 무역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러나 이후에 피사,제노바 같은 다른 도시들도 지중해 무역 활동에 함께 동참하게 되면서 이탈리아의 해양 도시들은 십자군에게 무기 및 식료품 등을 대여해주는 조건으로 안티오키아,베이루트,트리폴리,예루살렘,키프로스,알레포,콘스탄티노폴,이집트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다른 여러 도시들에 위치한 주요 무역 거점들을 장악할 수 있었다.

 

 

 

특히 베네치아,제노바,피사는 무역 확장을 위한 전초기지로서 동방과의 무역을 독점하기에 이르렀으며 유럽의 시장들에 철, 모피 등 동방의 진귀한 물품들을 공급하였다. 이들이 획득한 부는 당시 이탈리아의 많은 지역 경제에 기여하여 상업과 공업이 크게 발달하였고 훗날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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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6년 처음 고향을 출발할 당시 무지한 농부 십자군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귀족들도 멀리 다른 지역으로 가본 일도 없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이교도와의 전쟁을 마치자 그들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다른 문명권의 문물을 흡수하고 또한, 교역으로 발전하였으며 전 유럽의 사상에 자각과 반성의 계기를 삼게되었고 교육에 회기적인 변화를 도모하게 되었다. 십자군 원정이 종결되는 시점으로 부터 유럽은 중세의 어둡고 삭막한 터널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십자군 원정이 실패하게 되면서 십자군 전쟁을 주도해온 교황권이 크게 손상을 입게 되었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던 교황권이 약해졌다는 것은 곧 기독교적인 엄격한 권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서유럽은 더욱 가속적으로 분권화되었다. 로마 제국이 무너진 이후 유럽의 동질성을 부여해왔던 종교적 통합의 중심마저 약화되자 각 나라들은 왕권이 강화되어 각개약진의 길로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