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중세미술

중세 미술 2, 2부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 1 - 라

草霧 2013. 2. 28. 00:00

 

 

 

 

중세 미술 2

 

 

교황과 황제, 충돌과 협력 그리고 새로운 유럽의 시대

 

 

. 중세유럽이 기독교를 이야기하다.

 

 

2부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 1 - 라

 

 

 

 

 

본 연재 글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세미술, 2부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편에서는 2편으로 나누워 연재됩니다. “1부 교황과 황제의 정치 문화사”, “2부 새로운 유럽의 시대로 교황과 황제의 권력다툼으로 변질된 종교이야기와 문화를 통하여 미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 교황과 황제의 정치 문화사

2. 새로운 유럽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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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황과 황제의 정치 문화사

 

 

    

 

중세의 이념 분쟁, 성상숭배와 성상파괴, 악마를 탄생시키다.

 

 

1. 중세 성상숭배성상파괴의 역사적 배경

 

 

종교적인 분쟁을 이용하여 정치적인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용했던 것뿐이었다. 로마 카톨릭교회의 성상숭배문제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에 있어서 크게 분류하면 서로마 카톨릭교회는 성상숭배찬성편이었고 이와 반대로 동방의 비잔틴교회는 성상파괴편이었다. 황제가 교체되고 또 교황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교회의 공의회가 소집될 때마다 성상숭배문제는 양분되어 큰 논쟁을 서로 하면서 찬성과 반대하는 주장이 항상 혼돈되고 뒤바뀌고 있었다.

중세 로마제국의 국가제도의 요소는 기독교였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절대적 권위의 위치에 놓여져 있었음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이른바 그리스도교의 논쟁들이었다. 그리스도교 논쟁은 두 가지로, 첫째는 성상숭배논쟁이고 둘째는 단성론이었다.

신도들의 기도가 성상이나 성상의 그림을 향하여 드려지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로서 절대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성상숭배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이에 대항하여 성상숭배는 우상숭배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성상을 파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은 간단하지만 그 말의 내용에는 정치적으로 관련된 복잡한 문제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중세기 황제의 권위와 로마 카톨릭교회는 수세기 동안 이 문제를 가지고 싸움을 했다.

 

 

신도들이 예수의 성상과 마리아의 성상에 입맞춤을 하기 때문에 역시 우상숭배행위로 규정했다. 신도들이 입맞춤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성상을 높은 장소에 설치해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찬반으로 인하여 몇 세기 동안 종교와 정치적인 싸움을 했다.

AD 726년에 동방 황제 레오 3세는 성상숭배문제가 끝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각료들에게 명령을 내려 모든 성상들을 교회에서 철거시키고 파괴하도록 명령하면서 강경책을 발표했다. 이와 같은 쓰라린 분쟁속에서 종교적인 투쟁을 비종교적인 방법으로 계속하고 있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로마교황 그레고리 3세는 동방 비잔틴황제인 레오 3세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성상숭배를 오히려 더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AD 754년에 레오 3세가 죽은 후에 그의 아들 황제 콘스탄틴 5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대종교회의를 소집하여 성상숭배는 성서에 상반되는 우상숭배이며 반기독교적 행위라고 규정하고 성상숭배금지와 성상파괴령을 강력히 내렸다.

AD 787년에는 제2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로마 카톨릭교회는 동방 비잔틴황제 레오 3세의 성상파괴정책과 그의 아들 콘스탄틴 5세를 맹렬히 비판했다. 왜냐하면 비잔틴제국은 성상숭배반대뿐만 아니라 성상파괴운동을 콘스탄티노플 대종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결의했기 때문이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비잔틴제국의 종교회의 결의를 거부하고 로마 카톨릭교회 독자적으로 성상숭배의 전통을 절대적으로 옹호할 것을 선포했다. 2차 니케아회의에서 로마 카톨릭교회는 예수상과 마리아상 그리고 천사들과 성자들의 형상들을 적극적으로 세우도록 했다.

 

그러나, 로마교회가 제2차 니케아회의에서 결의한 것을 프랑스는 반대했다. 로마 카톨릭교회에 성상숭배를 허락하고 장려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는 794년에 프랑크포트회의를 개최하여 성상숭배를 반대하여 오히려 비잔틴교회 측에 동조하고 있다.

AD 717년에 비잔틴제국의 황제 레오 3세는 성상숭배금지령을 처음 내렸는데 그는 구약성경에 우상을 짓지 말라고 한 모세의 십계명에 근거하여 성상숭배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금지했던 것이다.

 

한편 서로마 카톨릭교회는 동방 비잔틴교회의 성상숭배금지령을 적극 반대함으로서 그동안 유지해오던 우호적 관계가 깨지고 동서교회는 적대적인 대립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비잔틴제국의 성상숭배금지와 성상파괴정책은 842년까지 140년 동안 끄덕없이 계속됐다.

 

성상파괴운동을 시기적으로 나누어 제1기와 제2기로 나누어 성상파괴운동의 시기라 칭한다.

 

2기 성상파괴운동 시기는 815년부터 842년까지이다. 하지만 제2시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성상을 파괴하는 대신 다만 신자들이 성상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는 정도로 변화되고 있었다.

그런데 비잔틴교회는 AD 842311일에 성상수배를 공인하는 역사적 변혁이 발생했다. 140년 동안이나 금지됐던 성상숭배가 다시 허용됨으로서 이 날을 보수정통주의의 승리의 날로 지금까지 동방교회는 축제로 지키고 있다.

 

성상숭배가 우상숭배이며 성서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극히 명백한 사실을 레오 3세 자신이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개혁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비잔틴교회의 대다수 교인들의 굳건한 지지를 획득하고 있음을 확신함으로서 그는 과감하게 성상숭배금지령과 성상파괴령을 법적으로 내릴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황제 레오 3세는 성상파괴령을 내림으로서 비잔틴제국에서 단일중앙집권제도를 확립하려 했다. 즉 비잔틴제국의 황제와 비잔틴교회의 총대주교가 서로 일체감으로 함께 단합함으로서 중앙집권제도를 창설하고 전권을 공고히 하기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상숭배를 배척하는 반면에 그는 십자가숭배를 강조했다. “황제는 십자가 아래 서서 신의 위임을 받았음으로 그리스도의 양떼를 다스리는 지상의 대리자이다.” 성상숭배를 우상숭배라고 비난하면서 성상파괴운동을 명령했다.

 

 비잔틴제국의 황제인 레오 3세는 그 무게중심이 동쪽으로 이동해 오기를 기대하면서 로마 카톨릭 교회와 정면대결을 감행하여 성상파괴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다. 그때 당시 서구 유럽 전역에서 수도원운동이 대대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비잔틴제국에서도 수도원운동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과 영향력을 가히 무시할 수 없었다.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수도원을 압박했던 것이다.

 

비잔틴왕조의 정통을 튼튼히 확립하고 굳건한 정치력을 발휘하려고 무척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당시 수도원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큰 영향력은 성상숭배의 전통이었다. 비잔틴교회의 중심이 되는 힘이 바로 수도원의 성상숭배였다. 그런데 이것을 금지할 뿐만아니라 성상파괴를 명령한 것은 수도원의 개혁과 혁명을 핑계 삼아 수도원의 폐쇄를 의미하는 처사였다.

 

 

 

2. 중세 성상숭배성상파괴의 역사적 의미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에서 성상숭배가 제도화가 된 것은 그리스도 양성론에 근거한 제도화였다. 양성론은 그리스도는 참 신이며 또한 참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양성론이라고 한다. 이와 반대로 단성론이 있다.

 

단성론은 그리스도는 오직 신격의 존재로서 이 세상에 참 신으로 오셨다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는 양성론단성론으로 분열되어 대립되고 있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양성론을 주장하기 때문에 인간 예수를 상징하는 성상과 성화와 조각물들 그리고 또 많은 인간 예수를 상징하는 작품들이 파도처럼 생산 되고 있었다.

 

그런데 수도원에서 성상숭배가 성행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부패된 세속정권과 타락한 교회에서 탈피하여 깊은 산이나 광야에 나가서 도피적인 수도생활을 했다. 수도사들이 수도원에서 명상과 금욕적인 삶의 훈련을 하고 있으면서 오로지 영적인 삶을 추구하고 또 추구할수록 수도사들은 인간 예수의 삶을 사모하고 동경하게 됐다.

 

인간 예수에 대하여 깊이 사색하고 사모하다가 성경적인 내용보다는 오히려 인간적인 예수의 인간성에 더 가까이 접근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인간성의 예수를 추구함에 의하여 성상숭배의 전통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적인 예수를 인간적으로 닮고 싶은 욕망에 기인하여 예수와 관련된 성상이나 성화 또는 성물들을 간직하게 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는 일반 평신도 민중들을 무식하게 만들기 위해서 1400년 동안 예수에 대하여 오직 성상숭배만을 허락했다. 일반 평신도 민중들을 위하여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것을 1,400년 동안 금지했으며 설교도 민중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로만 하고 있었다.

 

 

 

 교회의 교권중심 체제를 만들어 놓았다. 평신도 일반 민중들이 성경을 배울 수 있는 길을 차단하여 민중들이 신과 직접 대면하여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막아 버렸다. 그럼으로 평신도 일반 민중들은 오직 신부들이 보여 주는 성체와 성상에만 눈으로 접촉함으로서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유태영 박사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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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끝. 2부에서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