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밥 먹고 도시여행

건강한 먹을거리 찾아 떠나는 여행, 겨울 여수

草霧 2013. 12. 4. 13:02

 

 

 

 

 

 

 

남도 바다의 맛 겨울 여수의 맛

건강한 먹을거리 찾아 떠나는 여행

                                                         

겨울이 되어 좋은 것 중 하나가 바로 굴 때문이다. 순천에서 여수를 잇는 17번 국도를 따라 돌산대교에 접어들면 어디선가 바닷바람에 묻어온 향긋한 굴 냄새가 나는 듯하다. 돌산도 앞바다는 남해안에서 손꼽히는 굴 양식 단지가 들어선 곳. 특히 돌산도 서편 금봉리 앞바다에는 바다 가득 찬 굴 양식장이 넓게 자리하고 있어 또 하나의 장관을 이룬다. 자연스럽게 굴 파는 곳도 굴 요리를 하는 식당도 많으며 겨울에만 문을 여는 굴 구이 집들도 몰려 있다.


굴을 맛나게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참기름 넣고 달달 볶은 미역에 찬물 붓고 한소끔 끓이다 알 굵은 생굴 듬뿍 넣어 다시 한 번 끓여내는 굴 미역국도, 아삭아삭한 무채 썰고 깨끗하게 씻은 굴 함께 넣어 고슬고슬 지어낸 굴밥도, 밀가루 옷 달걀 옷 차례로 입혀 노릇노릇 지져낸 굴전도 좋다. 아니면 달랑 초고추장에만 찍어 청정한 바다의 맛 그대로 배어 있는 생굴 자체만으로도 좋다. 그러나 이맘때 최고의 맛은 다름 아닌 굴 구이다. 울퉁불퉁 딱딱한 껍질 붙은 각굴을 통째로 뜨거운 철판 위에 올려놓고 불을 때기 시작한다. 숯불이나 연탄불도 좋다. 왼손에 목장갑 끼고 오른손엔 작은 칼 하나 들고 굴 껍질이 슬쩍 벌어지기를 기다린다. 다 익어 툭, 소리를 내며 껍질이 벌어지면 통통하게 살 오른 뽀얀 속살이 드러난다. 쫄깃한 맛을 책임질 관자까지 깨끗하게 떼어내 고추장 살짝 찍어 입에 넣어 깨물면 굴은 툭 터지며 짭조름한 바다의 향까지 내어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워진 굴은 더 고소해진다. 어떤 사람들은 굴이 익자마자 먹어야 부드럽고 맛이 좋다고 하지만 바짝 구워낸 굴은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이 얼마나 고마운 맛인지, 이 맛을 위해서라면 여수까지 먼 길 달려온 수고가 아깝지 않다. 게다가 양은 얼마나 푸짐한지. 3만 원을 내면 커다란 양푼 가득 각굴을 가져다주는데 그 양으로 치자면 어른 서너 명이 질리도록 먹을 만하다.

여수의 부엌, 교동시장 나들이

도시 사람들 대부분이 단잠에 빠져 있을 일요일 오전 7시. 여수 구항 앞바다로 흐르는 연등천을 끼고 들어앉은 교동시장은 이미 대낮처럼 욱실욱실하다. 1km 남짓의 시장통은 상인들이 펼친 좌판으로 빈틈 없이 가득 찼고 주말 찬거리를 사러 나온 여수 사람들과 시장 구경에 나선 여행자들이 뒤섞여 내는 유쾌한 소란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미식가들의 간택을 기다리는 매끈한 몸매의 장어와 덩치 좋은 남자의 팔뚝만 한 숭어며 등에 뾰족한 가시를 한껏 세운 감성돔과 잘생긴 참돔, 간재미, 해삼이나 멍게, 온갖 조개 등이 가지런히 누운 좌판이 펼쳐져 있었다. 생선들의 종류가 어찌나 다양한지 난전마다 같은 종류의 생선을 파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싱싱함은 또 어떠한가. 여느 오래된 수산물 시장의 비릿함 따위는 느낄 수 없다.


여수에서 가장 큰 규모의 어시장인 교동시장의 시작은 지난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항구를 낀 여느 바다 도시의 시장처럼 바다에서 잡은 수산물들을 내다파는 상인들과 손님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생겨난 이 ‘반짝 시장’은 이후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 상설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교동시장은 새벽 서너 시쯤이면 장이 선다. 새벽 한 시 무렵의 수산물 경매가 끝난 뒤 곧바로 이곳에서 도매거래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이면 이른 장을 보러 온 여수사람들로 시장의 활기는 절정에 이르고 오후 두 시가 되면 교동시장은 다시 적막해진다. 새벽을 연 생선 장수들이 집으로 돌아가 내일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생선 장수를 제외한 일반 상인들은 길 건너 서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장을 연다.
시장 탐험은 교동시장 골목과 바로 붙어 있는 여수 수산시장으로 이어진다. 수산시장은 활어회를 파는 골목과 말린 생선을 파는 골목으로 나눠져 있다.

 

여행정보

 

1 말린 생선과 건어물을 파는 골목이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기는 여수 수산시장.

 

 

 

2 여수하면 떠오르는 동백꽃. 사진은 지난 봄에 촬영한 것이다. 3 여수 오동도에는 아치모양의 대나무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4 여수 앞바다에는 굴 양식장이 넓게 자리해 장관을 이룬다.

말린 생선과 건어물 파는 곳이 참 재미나다. 노란색 나트륨 등불 아래 말린 생선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가지런히 누웠다. 여수의 특산품인 서대를 비롯해 양태나 참돔, 굴비, 장어 등 꼬들꼬들 해풍 맞아가며 잘 마른 것들이다. 저런 것들은 특별한 요리법도 필요 없지 싶다. 기름 살짝 두른 팬 위에 생선을 올려 앞뒤로 잘 구운 다음 쪽파 쫑쫑 썰어 넣은 새콤달콤한 양념장 얹어 먹으면 기가 막힐 것 같다. 아니면 간간하게 양념해 자박자박 졸여 먹어도 맛나겠다.

미식가의 도시, 여수

시장 구경을 했더니 뱃속이 아우성이다. 이제 여수를 맛볼 차례다. 남도의 여러 도시 중 여수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이름난 미식(美食)의 도시다. 아름다운 바다를 품었으니 당연히 아름다운 맛도 가졌을 터.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은 그의 고향이 여수였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식객’에 등장하는 음식 중 직접 여수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도 꽤 많다. 갓김치가 여수의 맛 1번이다. 갓김치는 여수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초록의 싱싱한 갓 단이 산처럼 쌓인 갓김치 가게에선 아주머니들이 넓은 철판 위에서 쉴 새 없이 갓김치를 만들고 있다. 지나가는 누구에게라도 선선히 맛을 보게 한다. 특이하게도 갓김치는 담그자마자 먹어도 맛나고 적당히 익어도 맛나고 묵은지로 푹 익어도 맛나다.


갓김치 중 특별히 돌산읍에서 난 갓과 파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 멸치액젓과 생새우 등을 갈아 만든 양념을 쓱쓱 버무린 것이 돌산 갓김치다.

 

갓 특유의 쌉싸래하면서도 겨자처럼 톡 쏘는 맛과 곰삭은 젓갈, 매콤한 고춧가루가 어우러져 입맛을 한껏 돋워준다.


갓김치 다음엔 돌게장을 맛봐야 한다. 그 쪼그만 돌게, 무에 먹을 게 있나 싶겠지만 얕봐선 안 된다. 몸집은 서해안 꽃게에 비해 1/3밖에 되지 않지만 속살은 더없이 푸짐하다. 유명한 집들은 봉산동 게장거리에 모여 있다. 황소식당이나 두꺼비식당 등 이름난 게장 백반집 메뉴는 단 하나, 게장백반뿐이다.


1인분에 8,000원 하는 게장백반을 시키면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이 함께 등장한다. 남도식으로 끓여낸 조기찌개와 갓김치와 두어 가지 젓갈과 지난가을 잘 갈무리해둔 묵나물, 조물조물 무쳐낸 몇 가지 반찬이 등장한다. 실은, 여러 번 갔지만 조기찌개 말고는 뭐가 나왔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청양고추 넣고 칼칼하고 짜지 않게 담근 간장게장과, 갖은 양념 아끼지 않고 매콤달콤하게 양념한 양념게장을 양손에 쥐고 숨 쉬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쪽쪽 빨아댄 것밖에는. 특히 달곰삼삼한 간장게장의 맛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계속 생각날 정도다. 게다가 이들 게장들은 모두 원하는 만큼 다시 채워 달라 청해도 상관없다.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게딱지에 고슬고슬 지어낸 흰 쌀밥을 딱 한 숟가락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늘 생각한다. 천국이 별건가, 지금 내 입안이 바로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