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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남아있는 `서울의 집성촌`을 찾아서

草霧 2013. 11. 27. 12:18

 

 

 

아직도 남아있는 `서울의 집성촌`을 찾아서

 

 

 

 

시민기자 채경민 | 2013.11.26

 

 

[서울톡톡] 집성촌은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이 모여 사는 촌락을 말한다. 씨족 중심의 사회였던 과거에는 가족과 일가친척이 한 지역에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레 집성촌이 형성됐지만, 산업화가 시작되고 인구 이동이 많아지면서 집성촌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2005년 서울시는 서울에 남아있는 집성촌이 7곳 정도 있다고 밝혔지만, 현재는 그 현황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수백 년의 세월 속에서도 전통을 지키며 남아있는 서울의 집성촌 중 한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강동구 '가래여울마을'이다.

 

 

한강을 끼고 자리한 강변 마을

올림픽대로를 타고 달리다 강동대교 남단이 만나는 지점에서 아래쪽을 바라보면 비닐하우스와 오래된 주택 단지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이 남평 문씨 집성촌인 가래여울마을이다. 한강으로 흘러드는 두 여울이 갈라져 흐르는 곳이라 하여 '가래여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강가에 가래나무가 많아서 붙여졌다는 한자식 지명 '추탄(楸灘)'도 있어 추탄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직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남평 문씨 집성촌 가래여울마을 모습, 비닐하우스와 오래된 주택 단지들이 즐비하다.

 

 

강일동에는 원래 두 곳의 집성촌이 있었다. 청송 심씨 집성촌이었던 '벌말'과 남평 문씨 집성촌인 '가래여울마을'. 한때 4백여 가구가 모여 살았을 정도로 큰 규모의 집성촌이었던 '벌말'은 재개발과 함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더 이상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행히 가래여울마을은 그린벨트 내 취락지구로 지정되면서 개발의 바람을 피해 아직까지 집성촌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50년 전통이 숨 쉬는 공간

남평 문씨가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이다. 현재 가래여울마을에는 30가구가 살고 있는데, 한때 10가구가 넘었던 남평 문씨는 6가구만이 남아 있고, 이들과 사돈이 된 김해 김씨 3가구가 함께 살고 있다. 주민들 대부분은 밭농사를 짓는데, 대부분 고령자가 많아 그 규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3~4가구 정도는 매운탕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 매운탕은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집성촌답게 동네 주민들 중에는 혼맥으로 이어진 일가친척들이 많았는데, 거리에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예전에 강원도 정선에서 화목 상인들이 통나무 뗏목을 강으로 내려 보냈는데, 이곳이 계류장 역할을 했었어요. 상인들이 머무르면서 식사도 하고 잠도 자면서 마포에 물건을 팔러 가기도 했던 중요한 길목이었죠. 이런 유서 깊은 마을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참 소중하지요." 마을 안내를 자처한 문종철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올림픽대로가 생기기 전에는 더 멋있었다니까. 집 앞에 바로 나가면 강변이 펼쳐졌어요. 고기 잡는 배도 다녔고, 여름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기도 했어요. 아주 넉넉하지는 않아도 일가가 모여사니 주민 모두가 즐겁고 마을에 활기가 넘쳤어요." 문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는 동안 어디선가 나타난 주민들이 말을 거들었다. 알고 보니 이 주민들 역시 문 할아버지와 사돈 사이였다.

 

 

마을 제방에 올라서서 바라본 한강 풍경,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다리가 강동대교다.

 

 

주민들을 따라 마을 옆으로 난 제방에 올라서니 갈대가 어우러진 한강 풍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 일몰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킬 정도라 주말에는 카메라를 든 출사객들이 몰린다고 한다. 때마침 길을 따라 난 자전거 도로에는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려는 자전거족들이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다.

 

 

피해갈 수 없는 세월의 흔적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간판도 없는 오래된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 가게의 상호는 '추탄상회'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린 시절 보았던 시골 가게 풍경이 그대로 나타났다. "신기하다고 사진 찍어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44년째 이 자리에서 가게를 운영한다는 노부부는 낯선 이의 방문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골 가게 풍경을 꼭 빼닮은 추탄상회(위 사진), 44년째 가게를 지키고 계신 할아버지(아래 사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할아버지가 봉투에서 서류들을 꺼내 가지런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어서 집을 다시 지으려 했는데, 이 땅이 공유지분으로 되어 있어요. 공유자들끼리 협의가 잘 안돼서 어찌 할 수도 없고 참 어렵습니다. 마을을 재정비하려면 집들을 우선 고치고 단장을 해야 하는데..."

 

 

가래여울마을 풍경

 

 

여행자의 시선으로는 그저 옛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곳이지만 실제로 가래여울마을 주민들 중에는 불편함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았다. 추탄상회 할아버지 사연처럼 집을 개축하고 싶어도 지분을 공유한 사람들끼리 이해관계가 얽혀 어려움을 겪는 경우, 신축을 하더라도 군사보호시설, 상수원보호구역 등 각종 규제 구역에 묶여 있다 보니 마을 정비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지적, 노인정과 같은 편의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노인분들이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주변에 대형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마을과 인접해 있는 경기도 하남시에 또 다시 대규모 아파트 신축 공사가 진행되면서 주민들의 불안감도 커져가고 있었다.

 

"오래된 마을을 아름답게 정비하고 가꾸는데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우리 마을은 점점 낙후된 동네로 인식될 것이고, 언젠가는 개발을 피할 수 없을 지도 몰라." 친절하게 마을 안내를 해주었던 문 할아버지가 깊은 한숨과 함께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굴다리를 지나 찻길 하나를 건너자 고층 아파트 단지가 위압적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서로에 대한 관심도 없는 단절된 삶을 살아가면서도 아파트에 사는 것이 어느새 성공한 중산층의 표상처럼 여겨지는 사회다. 시간의 흐름을 비껴간 듯한 강변 마을. 형제, 친척, 사돈이 어울려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람냄새 가득한' 이 마을의 모습이 유난히도 더 소중한 이유다.

 

 

채경민 시민기자 채경민 시민기자는 기자·PD 생활을 거쳐 현재도 방송 관련 일을 계속 하고 있다.
도시화로 인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골목길, 그 길에 담긴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삶을 기록하기 위해 그가 카메라를 들었다. 골목길에 오면 늘 마음이 편해진다는 채경민 리포터, 우리가 살았던 삶의 흔적이 덧없이 사라지기 전에 그와 함께 마음이 편해지는 골목길 기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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