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밥 먹고 도시여행

남산 기슭에 얽힌 이야기 따라 걷는 길

草霧 2013. 12. 5. 10:53

 

 

 

남산 생원은 왜 나막신을 신었나?

남산 기슭에 얽힌 이야기 따라 걷는 길

 

 

 

 

 

시민기자 박미령 | 2013.12.04

 

[서울톡톡] 조선시대 남산 기슭에 생원들이 모여 살았는데, 이곳에 사는 생원을 ‘남산골샌님’, ‘남산골 딸깍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샌님은 생원님이 변한 말이고, 딸깍발이는 가난한 생원이 화창한 날에도 비 오는 날 신는 나막신을 신고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다녀 붙은 별명이다.

 

 

N서울타워

 

 

그럼 왜 맑게 갠 날에도 남산 생원은 나막신을 신었을까? 지금 충무로 전 중국대사관 뒤에서 세종호텔 뒷길로 이어지는 길에 야트막한 고개가 있었다. 그 이름이 '진고개'이다. 비가 오면 남산 토사가 쓸려 내려와 땅이 무척 질었다. 오죽하면 한자로 진흙 니(泥), 고개 현(峴)을 써서 이곳을 '이현'이라고도 불렀겠는가. 그래서 이곳에 사람들의 필수품은 비 올 때 신던 굽이 높이 달린 나막신이었다.

 

생활이 넉넉지 못한 생원은 짚신을 따로 살 형편이 못 되어 맑은 날도 그냥 나막신을 신고 다녔다. 당시 남산골 생원의 모습은 이희승의 수필 <딸깍발이>에도 등장한다. 의복과 행색은 볼품없었어도 고지식하면서도 기개만은 꼿꼿했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일본 사람들은 경치 좋은 남산 기슭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생활의 편리를 위해 미츠코시 백화점(신세계 백화점)과 조선은행(한국은행 본관 사적 280호)을 세웠다. 남산 아래 명치정1정목(명동)과 본정통(충무로)에도 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상권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남산 팔각정(좌)과 봉수대(우)

 

 

남산순환버스를 타고 정상에 다다르면 팔각정과 봉수대가 있다. 봉수대는 평화 시에 1홰(봉수 신호)에 불을 올리고 적이 나타나면 2홰, 국경에 접근하면 3홰, 국경을 넘으면 4홰, 접전이 시작되면 5홰에 횃불이 비친다. '우리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통신 강국이 아니었을까'하는 상상해 본다.

 

손꼽히는 서울의 명소 'N서울타워'와 함께 늘 푸른 소나무, 철 따라 낭아초, 산수유, 밥태기 나무, 벚나무, 쉬땅나무 등이 살아 숨쉬는 도심 속 쉼터 남산, 이 산이 서울에 있어 참 좋다.

 

 

 

■ 봉수대 봉화의식 : 순찰 의식, 수위 의식, 봉수 의식(정오)
 때 : 연중 상설(월요일 휴무) 10:30~12:30
 곳 : 남산 봉수대

■ 남산 봉수대 전통문화 공연
 내용 : 민속공연 및 전통무예 시범
 때 : 연중 상설(월요일 휴무) 15:00~16:00
 곳 : 남산 팔각정 광장

■ 남산 가는 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1번 출구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남산순환버스 02, 03, 05(남산타워, 남산팔각정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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