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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역사문화길…연산군묘와 은행나무길을 걷다

草霧 2013. 12. 3. 11:49

 

 

연산군을 마지막까지 지킨 호위나무

도봉역사문화길…연산군묘와 은행나무길을 걷다

 

 

 

 

 

시민기자 임영근 | 2013.12.02

 

서울톡톡] 노거수에는 늘 이야기가 쌓이기 마련, 제법 겨울다운 날씨에도 색을 잃지 않고 노란 은행잎과 함께 역사 이야기가 가득 쌓여있는 은행나무를 찾았다. 도봉구 방학동 산 77번지에 위치해 있는 이 은행나무는 서울지정보호수 제1호로서 무거운 세월의 무게를 이고 있지만, 높이는 24m, 둘레 9.6m에 이르는 남다른 위용을 자랑한다.

방학동 은행나무

수령은 800~1000년으로 추정되는데, 최근 조사에 따르면 500여 년이라 밝혀졌다. 이 은행나무는 예로부터 신성한 나무로 여겼으며, 나무에 불이 날 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생겼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1년 전에도 나무에 화재가 났다고 한다. 나무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이 워낙 각별한 터라 나무가 고사 위기에 처했을 때, 나무가 편히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나무 옆 빌라를 철거해 나무를 위한 공간으로 꾸몄을 정도다.

좌측 연산군묘 우측 거창군부인 신씨묘

나무 바로 위쪽에는 폭군으로 알려진 조선왕조 제10대 임금 연산군(1475~1506) 묘가 있다. 연산군은 성종의 아들로 태어나 19세 때 임금이 되었다. 시를 잘 짓는 똑똑한 왕이었지만, 12년에 불과한 짧은 재위 기간 동안 두 차례나 피바람을 일으키며 폐위됐다. 강화도로 추방된 연산군은 31세로 일생을 마치고 그곳에 묻혔다가 7년 후인 1531년, 연산군의 왕비인 거창군부인 신씨(1472~1537)의 요청으로 이곳 방학동으로 옮기게 된다. 1537년, 신씨도 그의 곁에서 잠들었다.

연산군의 묘는 왕릉치고는 그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조선시대 전기 능묘석물의 조형이 잘 남아있다

폐위가 된 왕이기에 그가 영면한 곳은 왕릉이라기보다 묘에 가깝다. 그러나 간소하면서도 조선시대 전기 능묘석물의 조형이 잘 남아있다. 연산군묘를 지키고 있는 방학동 은행나무, 그 마지막 모습을 지켜서일까? 호위무사처럼 흐트러짐 없이 500여 년 세월을 버티고 서 있었다.

도봉구는 최근에 방학동 은행나무와 연산군묘를 중심으로 역사문화길을 조성했다. 인근에는 세종의 차녀 '정의공주'와 부마인 '안맹담' 묘도 자리하고 있고, 가뭄이 심해도 마른 적이 없는 '원당샘'도 있다. 원당샘은 조선시대 명문가 가운데 하나인 파평 윤씨 가문이 600여 년 전 정착할 때 만들어져 지금까지 쓰고 있다. 도봉구 역사문화길,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따라 쉬엄쉬엄 걸어보면 어떨까.

버 스 : 간선 130, 101 / 지선 1144, 1161, 1120 / 마을버스 도봉 05, 06
길안내 : 02-954-2566 도봉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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