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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장군의 전설이 깃든 신림동 굴참나무

草霧 2013. 11. 19. 10:25

 

 

신림동 굴참나무, 나이가 무려 1000살?

강감찬 장군의 전설이 깃든 신림동 굴참나무

 

시민기자 김종성 | 2013.11.18

 

[서울톡톡] 끊임없는 개발과 들고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무가 긴 역사를 간직하고 오래 살아남는 일은 그리 쉽지 않는 일이다.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노거수(老巨樹) 나무들이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밀려나야 하는 운명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신림동에는 그런 서글픈 도시 나무의 운명을 짊어진 채 수백 년 넘게 생명과 역사를 지켜온 천연기념물(제271호) 굴참나무가 있다.

 

 

도시에서 용케 살아남은 고목나무가 대견하다

 

 

굴참나무는 참나무 과의 나무로 크고 실한 도토리를 낳아 시골 어른들은 주로 도토리나무라고 더 많이 부른다. 경기도 지방에서는 '골'을 '굴'이라 하는데, 껍질에 굴이 진다하여 참나무에서 굴참나무가 된 것이라고 한다. 참나무 과의 나무는 모두 이렇게 도토리를 낳는다. 대표적인 형제들로는 갈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있다. 참나무에 속하는 이들 나무들을 구분하는 건 무척 어렵다. 그래도 굴참나무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데, 바로 수피(樹皮) 덕이다. 굴참나무의 수피는 매우 두껍고 만져보면 푹신푹신하다. 우리의 조상님들이 이 껍질을 채취하여 굴피집이라 하는 집의 지붕재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껍질을 '굴피'라 하여 방부 특성과 내후성이 좋다고 한다.

 

세로로 골이 진 굴참나무

 

얘기를 다시 돌려 신림동 굴참나무로 돌아가보면, 이 나무에는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한국의 마을 풍경에서 오래된 노거수 나무는 전설이요, 신화였다. 마을 어귀에 어김없이 자리 잡은 당산나무는 때로 귀목으로, 때로 마을의 섬김을 받는 신목으로 당산제를 지내는 등 융숭한 대접을 받아왔다. 이 나무는 도심 속에서도 여전히 당산제를 지내는 당산나무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20여 년간 당산제 맥이 끊겼다가 굴참나무 옆에 있는 작은 절 은천사(당시 화승사)에서 18년 전부터 당산제 맥을 잇고 있다.

 

아직도 제상을 받는 신림동 굴참나무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난초가 많이 있는 골짜기라 해서 '난곡(蘭谷)'이라는 옛 이름을 가진 신림동 지역은 고려시대 때 강감찬 장군이 태어나 자라고 천하를 호령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 신림동 언덕배기 위에는 도시 개발로 들어선 아파트들이 빼곡하다. 길게 이어지는 아파트 단지 끝 부분까지 걸어 오르면 나무가 나타난다. 언덕 위쪽으론 고층아파트가 번듯이 솟아올라 있고 주차장과 쓰레기 분리수거대가 있는 단지 앞마당 한쪽에 움푹 파인 공간에 나무가 퐁당 빠지듯 서있다.

 

 

아파트단지 앞마당 한쪽에 움푹 파인 공간에 나무가 퐁당 빠지듯 서있다

 

 

기묘한 나무 위치가 궁금해 경비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가파른 언덕 비탈 위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려다 보니 나무의 보금자리가 이렇게 움푹 패였단다. 도시개발로 금싸라기가 된 땅에 나무가 자리할 넓은 땅은 언감생심이었을 거다. 낮은 지대에 위치하여 옆 주차장에서 자동차가 배출하는 매연을 고스란히 들여 마셔야 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프다. 사정이 있었겠지만 천연기념물 나무 옆에 이렇게 주차장을 놓아야 했나 원망과 아쉬움이 남는다.

 

이 굴참나무는 강감찬 장군이 이 마을을 지나다 우물가에서 물 한 잔 얻어 마신 뒤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은 게 자라난 나무라고 한다. '강감찬 나무'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은 것. 이런 전설과 함께 강감찬 장군이 살았던 시대를 생각하여, 나무의 나이는 대략 1000살쯤이라고 게시판에 쓰여 있다. 한편 원래 나무는 고사해 죽고 이 나무는 후계목으로 약 250살 정도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굴참나무의 진짜 나이가 어찌됐든 이미 몇 배년을 살아온 노거수임에 틀림없을 터. 이 나무를 사람 다루듯 전설이나 혼이 깃든 나무로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나무를 아끼고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비록 힘겹게 지지대를 하고 서 있지만 나무는 키 17미터, 가슴높이 둘레 2.5미터로 노거수답게 장대하고 위엄이 있다. 줄기는 위로 곧게 솟아오르면서 여러 가지로 나누어져 멋들어진 수형(樹形)을 갖추었다. 하늘을 향해 기묘하게 뻗친 가지들과 굵고 깊게 진 세로 주름이 무척 인상적이고 원숙한 아름다움까지 느껴진다. 세상에 나이가 들고 늙어가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것은 나무 밖에 없는 것 같다.

 

천연기념물 나무답게 위용이 둔중하고 멋지다

 

오래된 고목나무를 보면 볼수록 나무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사람살이가 아름다운 곳에서 나무는 그만큼 아름답게 서있고, 사람살이가 고단하고 거친 곳에서는 나무 역시 고단한 표정으로 사람을 맞이한다. 결국 '나무가 아름다운 곳은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이고, 나무가 죽어가는 곳에서는 사람도 살 수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

 

 

소재지 : 서울시 관악구 신림13동 721-2(난곡 초등학교 옆, 건영2차 아파트 단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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