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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계단장

草霧 2013. 11. 7. 11:52

 

 

그림 감상, 골목 계단이 어때서요

이태원 계단장에서 ‘그림상점’ 서혜진 씨를 만나다

 

시민기자 이나미 | 2013.11.06

 

[서울톡톡]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이태원 이슬람 사원 뒤쪽 계단에서 그럴싸한 장터가 들어선다. 이곳 '이태원 계단장'에서 전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들을 들고 나와 판매하는 예술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태원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길, 골목에는 수시로 차가 지나가고, 차를 피할 자리도 없을 정도로 협소했다. 여기에 빗방울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목에는 우산을 쓰고 길게 준 선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때, 길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조용히 챙기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비오는 날임에도 골목에 줄선 시민들

그녀의 이름은 서혜진. 올해 28살이고 'SSEO'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다. 동시에 한 달에 한 번 이태원 계단장에서 미술장터를 펼치는 '그림상점' 대표이다. 기자는 서혜진 씨를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왜 계단장에 나오는지가 궁금했다.

"원래 다른 분이 이태원 근처에 작품 판매 공간을 마련해 상점을 운영하셨어요. 막상 운영해보니 그 분의 의지만으로 상점을 운영하기엔 뭔가 부족하단 생각이 드셨데요. 그런 와중에 우연히 제가 만든 잡지를 보신 후, 저에게 연락을 하셨어요. 서로 만나보니 두 사람이 추구하는 방향이 같았어요. 그 뒤 전 운영자를 돕고자 상점에 합류하였죠."

작품을 구매한 시민들(사진 : 그림상점)

이후, 최초 운영자의 개인 사정으로 더 이상 그가 상점을 이끌기 어려워지자, 서혜진 씨가 상점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그녀는 상점을 '공간'이 아닌 '골목'에 두고, 장터에서 물건 팔듯 시민들에게 예술을 공유하고 있다. 미술작품을 '골목'에서 선보이게 된 배경이 알고 싶었다.

"그 분과 제가 동일하게 추구했던 방향은 바로 '문턱 낮은 미술'이었어요. 솔직히 일반 시민들이 세계적인 거장들의 대규모 기획전이 아니면 관심을 갖기 힘들어요. 미술시장에서 작품을 구매할 때도 인지도로 구매하는 경향이 있고, 컬렉터 방식도 수입 목적에 가까운 편이죠. 또한 전시장에 와서 작품을 관람만 하지 구매하지는 않아요. 작품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죠. 저는 그런 인식, 관습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시장에서 물건 구경하듯 미술을 편하게 즐기고, 소유도 가능함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이 골목에서 상점을 여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어요."

서혜진 씨는 정식으로 미술을 교육받은 미술학도다. 그녀는 학교(추계예술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한 뒤, 2년 동안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였고, 잡지 제작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녀는 많은 고민을 했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림상점` 대표이자 `SSEO`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서혜진 씨(위), 서혜진 씨가 직접 수작업한 잡지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아래)(사진 : 그림상점)

"전시장에서 작품을 대할 때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는 일반 시민들만 겪는 말 못할 고민이 아니라, 미술을 업으로 살아가는 저 조차도 공감하는 부분이거든요. 저는 사람을 좋아하고 일상에서 소소함을 즐기는 게 더 좋아요. 제 작품도 갤러리 보단 거리에서 보여주면서 나누고 싶어요."

일상에서 작가와 시민이 만나 교감하는 것과 부담 없는 작품가격이 그림상점만의 매력이다

그녀가 '그림상점'의 대표를 맡은 건, 돈이 없어도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시민에게 작가를 연결해주는 중간역할을 하겠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뜻을 갖고 작가들이 전시장이 아니어도 대중들과 밀접하게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림상점에서 실현하는 게 그녀의 운영목표다. 참여작가에게 별도의 참가비는 안 받는다. '열정', 상점에 참여할 작가를 선정할 때, 그녀가 가장 우선으로,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보는 게 '순수한 열정'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서혜진 씨는 오늘 평소보다 철수가 늦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림상점] 초상화 작업 모습

"이번 참여작가들 중 한 분이 2,000원만 내면 현장에서 멋진 초상화를 그려줘요. 상점 시작하자마자 지금까지 줄이 끝이 보이지 않네요. 아무래도 오늘 그림상점은 저 작가분이 가장 많이 벌 것 같아요."

비가 오는 굳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날 길게 줄을 선 이유 바로 2,000원의 초상화를 구매하고자 한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문턱 낮춘 미술'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대중과 진정으로 교감하고 호흡하는 그녀의 순수한 열정에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이태원 계단장은 10월로 마무리됐고, 서혜진 아티스트와 그림상점 이야기는 블로그(http://blog.naver.com/grim_store)를 통해 계속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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