草霧의 세상구경을 시작합니다./정리는 청소이다.

다큐~ 마을공동체 14- 은평구 신사동 <산새마을>

草霧 2013. 8. 6. 11:10

 

 

마을이 변했다, 사람들이 바뀌었다

다큐~ 마을공동체 14- 은평구 신사동 <산새마을>

 

시민기자 김영옥 | 2013.08.05

 

 

[서울톡톡] "가을에 굵은 고구마를 얻기 위해서는 이렇게 땅을 두둑하게 돋우어 주고, 검은 비닐로 단단히 덮어줘야 해요. 이렇게 해 놓으면 수분 증발도 막아주고 햇빛 흡수도 잘 돼서 고구마가 튼실하게 잘 자라거든요. 애지중지, 다 정성이 필요한 거지요."

 

20여 일 가까운 장마가 잠시 주춤한 틈을 이용해 <마을공동텃밭>을 살피러 나 온 산새마을 대표 최복순 씨는 호미를 들고 고구마순 사이로 흙을 돋우고, 검은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주민들이 만들고 주민들이 공동으로 가꾸는 이 <마을공동텃밭>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은 참으로 각별했다.

 

작년 봄, 30여 년 간 방치됐던 개 도축장과 폐가, 그 주변으로 쓰레기가 수년 동안 가득 쌓였던 200여 평의 공터를 주민들은 합심해 <마을공동텃밭>으로 만들었다. 마을주민 약 20여명이 팔을 걷어붙였고, 40여 톤의 쓰레기를 약 한 달간 치웠다. 개 목줄 수 백 개가 나왔는가 하면 폐가를 뜯어내고 분리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마을의 흉물이었던 폐가와 공터의 쓰레기들이 사라지고 말끔해진 땅에 주민들은 각종 농작물을 재배했고, 그 수확물을 마을의 독거노인들과 무상급식소에 공급하고 있다.

 

 

전면 철거와 뉴타운식 재개발에서 탈피, 주민 참여형 도시재생의 가능성 보여준 곳

은평구 신사2동 237번지 봉산자락에 위치한 <산새마을>은 1970년대 철거이주민 택지로 조성된 곳이다. 2001년부터 재개발을 희망했지만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건설업체들조차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던 곳이다. 이렇다보니 산새마을은 점차 낡은 다가구․다세대 주택과 비좁은 골목길, 부족한 주차 공간으로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손꼽혔던 곳이었다. 마을길은 낡고 도로 폭이 좁아 마을버스가 들어오지 않는 것은 물론 소방차 진입도 어려웠다. 봉산자락에 위치한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겨울이면 더 추워, 주민들의 주거만족도가 더욱 떨어졌던 곳이다. 이런 산새마을에 2011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40여 년만의 일이다.

 

재개발 대신 주민들이 직접 마을을 가꾸자는 방안이 제안됐다. 은평구는 산새마을을 두꺼비하우징 시범지역으로 선정했고,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와 도시재생사업을 상담하고 컨설팅 하는 사회적 기업 (주)두꺼비하우징이 산새마을을 대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주거환경실태 설문조사가 실시됐고, 마을주민들과 마을을 돌며 불편사항과 개선점을 파악해 마을지도도 만들었다. 자유롭게 의견을 묻고 들을 수 있는 마을학교도 열어 주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했다. 30년 이상 노후화 된 집들이 54%인 산새마을 주민들 대부분은 주택개보수와 주택관리가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1년부터 (주)두꺼비하우징에서는 창문, 창호, 단열, 양변기, 보일러 싱크대, 배수구, 화장실, 전기배선, 부품교체 등 20여 가구에게 무료로 주택관리서비스를 실시했다. 뿐만 아니라 울퉁불퉁한 마을의 도로와 보도를 매끈하게 정비하고, 집과 마을 계단을 새로 꾸미고 나무 화단도 집집마다 설치했다. 칠이 벗겨져 흉물스런 마을 골목길, 담장에는 주민들과 인근 대안학교 학생들, 은평미술협회 회원들이 벽화를 그려 넣었다. 산새마을 어디를 가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정겨운 벽화는 산새마을을 더 환하고 따뜻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사는 환경이 불편해서 마을을 떠나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10년, 20년 한 곳에서 살 때에는 불편함이 적어야 하거든요. 주택을 개보수하고 마을길을 정비해 놓으니 변화를 낮설어 하던 주민들도 차츰 호응을 보이게 됐죠. (주)두꺼비하우징은 마을 주민들에게는 주거 개선 효과를, 마을 전체로 보면 마을 경관 개선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주택개보수 작업은 마을 만들기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어요." 서울형 사회적 기업 (주)두꺼비하우징의 윤전우 마을만들기팀장의 기분 좋은 증언들이다.

마을의 작은 변화에 주민들은 드디어 마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마을의 변화에 주민들의 힘이 보태지다

주택과 마을의 외양이 조금씩 바뀌면서 주민들은 자신들이 수년 동안 살아온 마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전에는 동네가 바뀔 수 있으리란 생각이 없었던 주민들은 어느새 자발적으로 마을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어떤 동네를 만들지 논의하기 위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흔한 경로당조차 없던 산새마을에 주민들은 자비를 들여 <마을사랑방>을 만들었다. 지난해 초, 월 25만 원의 임대료를 내는 주민 커뮤니티공간이 만들어졌다. 동네 주민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마을회의를 열어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와 각종 마을살이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지난해 이 곳 마을사랑방에서는 어르신 영정 사진 촬영도 진행됐고, 청소년들이 참가한 마을미디어 신문기자 활동도 열렸다. 마을사랑방에 모여 주민들은 친환경 수세미와 비누를 만들어, 은평구 내의 두레생협에서 개당 2천원에 판매해 마을의 재원을 마련하기도 했다.

 

산새마을 아이들이 많이 다니고 있는 상신초등학교의 운동장 개방 요구에 학교 측은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우범화 되거나 쓰레기가 쌓일 것이라 난색을 표했고, 주민들은 마을회의를 통해 청소를 하고 마을 순찰을 돌기 위한 <마을지킴이단>을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등록인원만 30여명에 이르는 마을지킴이단은 가로등 교체는 물론 밤에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귀가도 살피고 있다.

 

 

마을의 변화는 계속된다

마을의 낡은 주택들에 대한 개보수로 주택과 마을길 등 마을 경관이 바뀌고, 마을 주민들의 마을에 대한 애정이 커지면서 <마을 살이>를 위한 자발적인 주민들의 참여가 자연스레 생겨났다. 주민 20-30명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며 운영되는 텃밭관리위원회가 그렇고, 마을의 치안유지 활동 뿐 아니라 주변 경관 정비와 청소년들의 탈선을 막고, 바른 길로 계도하는 역할을 하는 마을지킴이단이 또한 그랬다.

 

협소했던 마을커뮤니티공간이 올해는 조금 넓어질 예정이다. 마을사랑방이 이전을 준비 중인 때문이다. 넓어진 마을사랑방에서는 주민들의 소모임이 더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고, 마을의 젊은이들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모임들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주민들의 염원이던 공영주차장과 공원도 만들어질 것이다. 마을과 가까운 봉산자락에 자리한 잣나무 숲은 마을숲 힐링 캠핑장으로도 구상 중이다.

 

또한 산새마을은 마을의 수익을 낼 수 있는 텃밭캠핑, 도시민박과 마을여행 등에 대한 콘텐츠를 개발 중이다. 자신의 집 빈 방을 게스트 하우스․게스트 룸으로 내놓겠다는 주민들도 있어 마을 안에서 '나눠 쓰고 같이 쓰는' 활동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마을에 대한 이야기들을 정리해 다양한 콘텐츠들을 개발하고, 마을 동화를 시리즈로 만들어 책을 만들 계획도 세워 놓았다.

 

900여 세대가 거주하는 산새마을에서 진행된 <마을 만들기>는 낡은 주택에 대한 기존의 전면 철거와 신축으로 대표되던 재건축이 아닌 기존 주거지를 정비하고 보존하는 관리방식으로, 주민들이 마을에 머무를 권리를 보장하면서 불편한 곳을 하나씩 바꿔 나가는 도시재생의 새로운 방식이었다. 또한 산새마을의 특징은 민간과 사회적 기업, 행정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실현 가능했다. 특히, 행정과 민간이 공동적으로 주거 환경 개선을 희망했다는 점과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좋은 사례를 남겼다.

 

 

마을공동체가 주목을 받기 훨씬 전부터 지역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발빠르게 취재해온 김영옥 시민기자. 지역 신문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그녀가 취재 노트를 펼쳤다.
지난 12월 '공동주택 공동체 활성화 우수단지'로 뽑힌 아파트 공동체들을 시작으로
마을공동체 다큐멘터리를 써내려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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