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역사의 숲을 산책하다
조선왕릉
[ 朝鮮王陵,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
STORY BOOK - 5
조선왕릉은 42기(북한소재 2기 포함), 원은 13기, 묘는 64기이다.
조선 왕릉은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된다.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陵)이라 하고,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私親 : 종실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임금의 생가 어버이)의 무덤을 원(園)이라 하며, 나머지 왕족, 즉 왕의 정궁의 자식인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와 서녀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의 무덤을 묘(墓)라 일컫는다. 광릉이 자리 잡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는 세조의 능인 광릉 이외에 2기의 원이 더 있다. 휘경원과 순강원이 그것이다. 조선왕릉 120기(능40, 원14, 묘66) 중 현재 비공개하고 있는 지역은 사적 12곳임(능3, 원4, 묘5)입니다
조선 건국 초기 국가 기반을 잡은 왕
태조(건원릉)-정종(후릉)-태종(헌릉)
조선의 문화를 꽃 피운 왕
세종(영릉)-문종(현릉)
죽음조차 알릴 수 없었던 비운의 왕
단종(장릉)-세조(광릉)-추존왕 덕종(경릉)-예종(창릉)
육신을 잃고 떠돌고 있는 넋
성종(선릉)-연산군(연산군묘)
당파 싸움에 시달린 왕
중종(정릉)-인종(효릉)-명종(강릉)
전란을 겪은 왕
선조(목릉)-광해군(광해군묘)-추존왕 원종(장릉)
청나라에 맞서 싸운 왕
인조(장릉)-효종(영릉)-현종(숭릉)
당쟁에 휩싸인 왕
숙종(명릉)-경종(의릉)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힘쓴 왕
영조(원릉)-추존왕 진종(영릉)-추존왕 장조(융릉)-정조(건릉)-순조(인릉)-추존왕 익종(수릉)
세도정치에 시달린 왕
헌종(경릉)-철종(예릉)
황제가 된 왕
고종황제(홍릉)-순종황제(유릉)
조선조(朝鮮朝) 왕릉(王陵)
왕릉 전관 조선조(朝鮮朝)의 역대 왕릉(王陵)에 대한 접근은 그 외형적 특징만으로도 당대(當代)의 역사적 사실들을 반증(反證)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대상입니다. 조선조의 왕릉(王陵)은 27대 왕(王)과 왕비(王妃) 혹은 계비(繼妃), 그리고 추존(追尊)된 왕들을 포함해 전체 44기의 능(陵)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태조(太祖)의 비(妃)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제릉(齊陵)과 정종(定宗)과 비(妃) 정안왕후(定安王后)를 모신 후릉(厚陵)만 북한 지역[개성시]에 있어 우리가 아직 답사할 수 없는 지역에 있고, 거리상으로는 유일하게 강원도 영월에 조성된 단종(端宗)의 장릉(莊陵)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과 경기도에 산재(散在)해 있습니다.
특히 경기도 구리시의 동구릉(東九陵 : 건원릉(태조), 현릉(문종), 목릉(선조), 휘릉(인조 계비), 숭릉(현종), 혜릉(경종 비), 원릉(영조), 수릉(익종-추존), 경릉(헌종))이나 경기도 고양시의 서오릉(西五陵 : 경릉(덕종-추존), 창릉(예종), 명릉(숙종), 익릉(숙종 비), 홍릉(영조 비)), 서삼릉(西三陵 : 희릉(중종 계비), 효릉(인종), 예릉(철종)), 그리고 경기도 파주시의 파주삼릉(坡州三陵 : 공릉(예종 비), 순릉(성종 비), 영릉(추존 진종과 비))은 왕릉군(王陵群)을 이루고 있는 필수 답사(踏査)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란에 시달리거나 요절한, 비운의 왕과 왕비들의 능
파주삼릉(공릉(恭陵) 순릉(順陵) 영릉(永陵)) · 장릉(長陵)
파주 삼릉은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에 위치한 조선시대 왕릉군이다.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5호로 지정되었다. 왕릉군의 앞머리를 따서 공순영릉(恭順永陵)으로도 불린다. 조선의 제8대 임금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 한씨를 모신 공릉(恭陵)과 제9대 임금 성종(成宗)의 원비 공혜왕후 한씨를 모신 순릉(順陵), 그리고 제22대 임금 정조의 양아버지 진종(眞宗)과 효순왕후 조씨를 모신 영릉(永陵)이 있는 곳입니다. 장순왕후와 공혜왕후는 한명회(韓明澮)의 딸로 서로 자매 사이입니다. 사적 제205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서 2009년 6월 등재되었습니다.
파주삼릉에 꽃다운 나이로 잠든 두자매 이야기
파주 삼릉이라고 일컫는 공릉, 순릉, 영릉 중 공릉과 순릉은 공통점이 있다. 이 두 능에 잠든 예종 비 장순왕후, 성종 비 공혜왕후는 모두 한명회의 딸로서 친가에서는 자매지간이지만, 시가인 왕실에서는 숙모와 조카며느리가 되는 사이였다. 두 딸을 모두 왕가로 출가시킨 한명회는 당대 보기 드문 지략가였다. 그 권력으로 자매가 나란히 왕비에 오른 예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로서,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당시 한명회의 권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삼릉을 이루고 있는 공릉, 순릉, 영릉에 잠들어 있는 조선조 8대 예종 원비 장순왕후, 9대 성종 원비 공혜왕후, 영조의 맏아들이며 사도세자의 형인 추존왕 진종과 효순소황후가 영원히 잠들어 있는곳이다.
시대를 풍미했던 한명회의 딸 장순왕후, 공혜왕후 그리고 추존왕 진종과 효순왕후
왕실을 둘러싸고 있는 절대권력가인 한명회가 제일 뚜렸하게 떠오른다. 궁지기로 시작한 벼슬이 세조의 왕권찬탈에 1등공신으로 인정받아 영의정까지 오르면서, 두딸을 한꺼번에 왕실에 출가시키는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두딸들이 왕비로서의 부귀영화를 얼마 누리지 못하고, 피지도 한 아름다운 꽃이 17세와 19세에 단명하는 비통은 권력도 어쩔수 없었다.
그는 한평생 권력과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두 딸을 먼저 보내고 7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사건에 연루되었다하여, 죽은뒤에 무덤을 파헤쳐, 부관참시를 당하는 변을 겪기도 하였다.
경기도 파주시 205호
공릉(恭陵)은 조선 제8대 왕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章順王后) 한씨의 능이다.
순릉(順陵)은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정비 공혜왕후(恭惠王后) 한씨의 능이다.
영릉(永陵)은 조선 추존왕 진종(眞宗)과 효순왕후(孝純王后) 조씨의 능이다. 진종은 영조의 맏아들이다.
소령원
수길원
왕실의 장례를 치르고 왕릉을 조영, 관리하는 일은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이었던 유교의 예법을 충실히 따르며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는 과정이었으므로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다. 따라서 능의 입지 선정, 조영된 능의 관리감독, 천장 등 왕릉과 관련된 사항에는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같이 했다.
출세를 위해 수단을 꾸몄다고 의심 받은 순릉의 능참봉
『중종실록』 1528년(중종 23) 1월 18일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삼공(三公)이 아뢰기를,
“순릉(順陵) 참봉 송현(宋俔)은 전 이조 판서 신공제의 집에 분경(奔競 : 관직을 얻으려고 갖은 수단을 쓰는 일)한 것으로 추고를 받았습니다. 의금부는 송현이 판서의 집에 출입한 것으로 의심하여 3차 형문할 것을 계청하였고, 전하는 이를 윤허하셨습니다.
그러나 간관(諫官)이 ‘그가 직령(直領)을 입었었으니 만일 재상을 찾아가 배알하려 했다면 절친한 사이가 아니고서야 어찌 직령을 입고 갔겠는가?’ 하였으니, 간관이 어찌 헛된 말을 아뢰었겠습니까? 조관(朝官)이 확실치 않은 일로 여러 차례 형문을 받으니 정상이 실로 애매합니다. 직령을 입었었는지 여부는 그 금란 서리(禁亂書吏)를 심문하소서.”
하니, 전교하였다.
“아뢴 말이 지당하다. 나도 서리를 심문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간관은 증거인으로 추고해서는 안 된다고 하므로 부득이 3차로 형추하게 하였다. 발명(發明)한 후에는 자연 공사(公事)가 있을 것이다. 전에 분경죄를 철저히 밝히지 않는다는 말이 여러 차례 소장(疏章)에 진술되었기 때문에 이제 송현을 3차로 계하(啓下)한 것이다. 지금 그 서리를 심문한다 하더라도 어찌 다른 말을 하겠는가?”
위의 기록은 순릉 참봉 송현이 전 이조판서의 집에 출세를 위해 드나들었다는 의심을 사고 있어 그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내용이다. 왕릉을 관리하는 공직은 고려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능권무직의 형태로 이어지다가 세조가 관제개혁을 한 이후 능참봉직이 생겼다.
능참봉직은 비록 종9품에 해당하였지만, 임금의 능을 관리한다는 상징성 때문에 관료진출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뿐 아니라 이제 막 관직에 발을 들여놓은 자들의 청직(淸職)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능참봉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양반의 신분이어야 했다. 보통 생원, 진사 혹은 유학 중에서 임명이 되었으며, 어린 사람보다는 연륜이 있는 자가 임명되었다.
공릉과 순릉에 잠든 두 자매
파주 삼릉이라고 일컫는 공릉, 순릉, 영릉 중 공릉과 순릉은 공통점이 있다. 이 두 능에 잠든 예종 비 장순왕후, 성종 비 공혜왕후는 모두 한명회의 딸로서 친가에서는 자매지간이지만, 시가인 왕실에서는 숙모와 조카며느리가 되는 사이였다. 두 딸을 모두 왕가로 출가시킨 한명회는 당대 보기 드문 지략가였다.
궁지기로 시작한 벼슬
한명회는 1415년(태종 15)에 예문관 제학 한상질의 손자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한기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불우한 소년 시절을 보냈으며 과거에도 늘 실패하여 공신의 자손을 관리로 특채하던 문음(門蔭) 제도에 의해 38세 때인 1452년(문종 2) 궁을 지키는 일로, 다소 보잘 것 없는 경덕궁직을 맡게 되었다.
궁지기에서 일등공신으로
그가 말단관직에 간신히 올랐을 때에는 이미 문종이 승하하고 어린 나이의 단종이 즉위하였을 때이다. 이 때 그는 지인 권람 등을 이용하여 단종의 삼촌이었던 수양대군과 결탁, 정치적 야망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수양대군의 책사로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을 성공시켰다. 계유정난이 성공하여 수양대군이 실권을 잡은 후 한명회는 1등 공신에 올랐으며,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좌부승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두 차례의 단종 복위 사건을 좌절시키며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였고, 1466년(세조 12)에는 영의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일개 궁지기에 불과했던 그가 13년 만에 최고의 관직에 오른 것이다.
자매를 나란히 왕비로 올린 한명회
한명회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자녀들을 모두 왕가의 며느리로 들여 더욱 권력의 기반을 공고히 했다. 주지하듯이, 그의 슬하의 1남 4녀 중 맏딸은 세종의 사위 영천부원군 윤사로의 며느리가 되었고, 둘째 딸은 영의정 신숙주의 맏아들과 혼인하였으며, 셋째 딸은 예종의 비, 넷째 딸은 성종의 비가 되었다. 자매가 나란히 왕비에 오른 예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로서,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당시 한명회의 권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딸의 이른 죽음
한명회로 하여금 두 번이나 왕실의 장인어른으로서의 권세를 누리게 한 그의 딸들은 꽃다운 나이에 모두 요절하였다. 공릉에 잠든 예종비 장순왕후는 세자빈일 때 원손 인성대군을 낳고 일주일이 채 안되어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순릉에 잠든 성종비 공혜왕후는 왕비의 자리에 오른지 5년 만에 열아홉의 나이로 승하한 것이다.
당대의 권력가 한명회의 최후
세조 이래 성종조까지 절대권력을 행사해 온 한명회는 네 차례에 걸쳐 1등 공신으로 책록되어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두 딸을 먼저 보내고 1487년(성종 18) 7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생모 윤비의 폐사에 찬성했다 하여 부관참시를 당하는 변을 겪기도 하였다.
구파발로 이어지는 박석고개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에서 구파발로 넘어가는 고개를 박석고개라고 부른다. 갈현동과 불광동을 양쪽에 끼고 통일로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에는 북한산이 솟아 있고, 서쪽에는 낮은 구릉성 산지가 남북으로 뻗어 있다.
박석고개 명칭의 유래
박석고개는 서오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풍수지리적 요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맥(地脈)이 깎이지 않도록 박석을 깔았던 데서 고개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한편 이 고개 근처에 왕실의 전답이 있었으므로 그곳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흙을 밟지 않게 하려고 넓고 얇게 뜬 돌인 박석(薄石)을 깔아서 박석고개라는 명칭을 얻었다고도 전해진다.
한양을 드나드는 중요한 길목
박석고개는 서울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이었기 때문에 서울로 들어오고 나가는 행인은 물론 상인과 관료, 중국 사신들도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곳이다. 서울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일 뿐만 아니라, 역사의 숱한 애환 또한 안고 있다. 파주 삼릉을 이루고 있는 공릉, 순릉, 영릉에 잠들어 있는 8대 예종 원비 장순왕후, 9대 성종 원비 공혜왕후, 영조의 맏아들이며 사도세자의 형인 추존왕 진종과 효순소황후의 장례행렬 역시 이 고개를 넘었다.
현재의 박석고개
현재는 지명만이 남았을 뿐 박석을 찾아볼 수 없고,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뻗어 있다. 또한 도로공사로 고개가 낮아져서 고개라는 느낌 또한 들지 않는다. 그러나 박석고개 옆, 통일로 주변으로 위치한 파주의 삼릉에서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잠들어 있는 왕족들의 슬픈 내력과 애처로운 사연들이 여전히 묻어나고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도성 80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벗어난 왕릉들
영릉(英陵), 영릉(寧陵), 영월 장릉(莊陵)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은 대한민국 사적 제195호로, 조선 제4대 세종과 그 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능인 영릉(英陵)과 제17대 효종과 그 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능인 영릉(寧陵)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있다. 두 개의 왕릉은 700m 거리를 두고 있는데, 이를 잇는 오솔길은 짧지만 조붓한 흙길이라 정감이 있고, 숲이 아늑하고 한산해 걷기 좋다. 5월 중순부터 10월초까지만 산책로로 개방한다. 약간의 오르막과 약간의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이라 가볍게 걸을 만하고, 이리 휘고 저리 돌며 길이 이어져 있다.
경기도 여주시 195호
영릉 전시관의 여러 유물이 다른 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창덕궁 측우대(昌德宮測雨臺): 보물 제844호. 서울특별시 중구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이전
앙부일구(仰釜日晷): 보물 제845호. 서울시 중구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전
효종의 능인 영릉(寧陵)이 바로 옆에 위치한 세종의 능인 영릉(英陵)과 음이 같아 혼동이 되어서, 효종의 영릉을 녕릉으로 읽기도 한다. 잘 단장된 영릉(英陵)과 달리 바로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릉(寧陵)은 찾는 이가 적어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은 모두 봉분 앞까지 올라가서 봉분을 볼 수 있다.
영릉의 천장지 결정에 관여한 사람들
조선 4대 임금인 세종과 그의 비 소헌왕후가 함께 잠들어있는 능 영릉은 1446년(세종 28)에 조영되었다가 예종대에 그 입지가 불길한 곳이라는 주장에 따라 여주로 옮겨왔다. 『예종실록』1468년(예종 즉위) 9월 13일자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 등이 영릉에 가서 장지를 보고 돌아와서 아뢰기를,
“영릉 근방에는 쓸 만한 땅이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 등이 수고하였으나, 다시 가서 살펴보는 것이 좋겠는데, 다만 높은 곳은 필요하지 않다.” 하였다.
『예종실록』1468년(예종 즉위) 12월 1일자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상당군 한명회(韓明澮), 예조판서 임원준(任元濬), 한성부 윤 서거정(徐居正)을 불러서 지리서를 참고하여, 영릉 산세의 길흉을 의논하게 하니, 한명회가 아뢰기를,
“옛 임강현의 터가 능침을 쓸 만한 땅입니다. 청컨대 거주하는 백성들을 옮기고 초목(草木)을 기르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승정원으로 하여금 그 편부(便否)를 원상(院相)에게 물어 보게 하였다.
위와 같이 영릉을 정하는 데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인지, 한명회, 서거정 등이 참여하였다.
정인지(鄭麟趾, 1396~1478)
조선 초기의 문신 겸 학자이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수양대군을 도와 좌의정이 되고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책록,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에 봉해졌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세종 ~ 문종 대에는 문화 발전에, 단종? ~성종 대에는 정치 안정에 기여하였다.
영릉(英陵)
영릉(英陵)은 조선 제4대 세종과 그 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동봉이실합장릉이다. 조선왕릉 최초의 합장릉이다. 광주(廣州, 현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릉(憲陵)에 있던 것을 1469년(예종 1년)에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지세는 층층이 해와 달의 모습을 띠면서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내려오는 형국이라, 최고의 명당자리라고 한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재실과 세종대왕 동상이 오른쪽에 서 있고, 왼쪽에는 세종대왕 기념관인 세종전이 있다. 세종전 안에는 집현전 학사도를 비롯한 여러 유물들이 대왕의 업적을 기리며 모작 혹은 진품으로 진열되어 있고, 세종전 밖의 잔디밭엔 해시계·자격루·관천대 등이 전시돼 있다.봉문 앞에는 4개의 돌로 받친 혼유석 2개를 놓아 합장릉임을 표시했다. 봉분 둘레는 돌난간을 두르고 동자기둥에 십이지를 문자로 새겨 넣었다. 그 앞에 팔각으로 다듬어진 장명등과 능 앞으로 석상·석마·문인석·무인석을 배치했다. 정자각은 합장 봉분에 축이 맞추어진 배치이나, 홍살문의 위치가 틀어져 있어 참도는 꺾인 축형이 되었다. 현재의 홍살문은 후대에 옮겨진 듯하며 원래의 위치에 초석이 남아 있다. 또한 수복방과 수라간의 위치가 정자각 바로 옆까지 올라간 특수한 예에 속한다. 1977년 능역 성역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마다 이곳에서 한글날을 전후하여 각종 행사가 열리며, 평소에도 찾는 이들이 많다. 매년 5월 15일(양력)에 세종대왕릉 정자각 일원에서 세종대왕탄신 숭모제전(崇慕祭奠;탄신일을 기념하여 올리는 제사)을 봉행하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세기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15세기를 세종대왕의 세기라고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유학이 학문의 으뜸으로, 과학이나 기술학은 이에 비해 경시되었다. 또한 과학자들은 장인(匠人)이라 하여 명예를 누리지 못하였고, 경제적으로도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세종은 과학기술이 국가의 근간을 다지는 중요한 발판이라고 여기고 선진 과학기술을 수용하고 고유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결과적으로 15세기에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에 이르렀다.
세종의 과학 장려 정책
세종은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를 조성하여 집현전 학자들에게 일종의 연구를 위한 안식년인 ‘사가독서(賜暇讀書)’제도를 두어 연구에 전념하게 하였다. 한편 기술혁신을 위한 지속적인 정책을 전개하여 과학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하였으며 기술개발을 위한 거시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기술 습득을 위해 인재를 뽑아 중국에 유학시키고 이들을 두뇌 집단화하여 공동연구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세종과 그의 아들 문종의 휘하에는 장영실, 정초, 정인지, 이천 등의 우수한 과학자들이 몰려들어 훌륭한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왕립 천문대 간의대
세종은 관료와 학자, 기술자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간의대(簡儀臺) 사업을 성공리에 완수할 수 있었다. 1432년(세종 14)부터 7년여에 걸쳐 추진된 왕립 천문대를 건설하는 간의대사업에는 정초, 정흠지, 정인지, 이천, 장영실, 박연 등이 참여하였다.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약 10m 높이의 노대를 만들고 돌난간을 둘러 만든 간의대에는 혼천의, 혼상 등을 부설한 대간의를 설치하였다. 매일 밤 5명의 관리가 숙직하며 천체를 관측하였고, 24절기를 확정하여 농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종, 징, 북이 울려 시간을 알리는 자격루
자격루는 1434년(세종 16)에 장영실 등이 제작한 물시계로서 종과 징, 북이 저절로 울리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를 부착한 것이다. 자격루의 원리는 맨 위에 있는 큰 물그릇에 넉넉히 물을 부어주면 그 물이 아래의 작은 그릇을 거쳐, 제일 아래쪽 길고 높은 물받이 통에 흘러든다.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떠 있는 잣대가 점점 올라가 미리 정해진 눈금에 닿으며, 그곳에 장치해 놓은 지렛대 장치를 건드려 그 끝의 쇠 구슬을 구멍 속에 굴려 넣어준다. 이 쇠 구슬은 다른 쇠 구슬을 굴려주고 그것들이 차례로 미리 꾸며놓은 여러 공이를 건드려 종과 징·북을 울리기도 하고, 또는 나무로 만든 인형이 나타나 시각을 알려주는 팻말을 들어 보이기도 한다.
빗물을 재는 그릇 측우기
1441년(세종 23)에는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하였다. 측우기는 강우량을 측정하는 도구로, 이름 또한 ‘빗물을 재는 그릇’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정육면체의 받침돌이 동그란 통을 받치고 있는 간단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통에는 주척이라고 하는 자가 있어 통 안에 고인 빗물을 잴 수 있게 만들었다. 각 지방에서는 측우기를 이용하여 비가 내리기 시작한 시각과 비가 개인 시각을 기록하고, 비가 그친 후에 그릇에 고인 빗물의 깊이를 약 2mm 단위까지 측정하여 중앙에 보고하였다. 이러한 절차를 통하여 조선 초기인 당시에도 전국적인 강우량을 측정할 수 있었으며 이는 대다수 백성들의 생업이었던 농업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새 글자를 탄생시킨 발상의 전환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
1446년(세종 28) 9월,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 글자인 한글이 반포되었다. 세종대왕이 일반 백성들이 문자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새로운 글자를 창제하여 반포한 것이다. 이는 정치적, 학문적으로 매우 파격적인 발상이자 사건이었다.
한글의 과학성
한글은 1443년(세종 25) 음력 12월에 창제를 완성하여 3년 동안 다듬고 이를 실제로 써 보아 그 부족함이 없음을 확인한 연후 반포되었다. 초성(初聲) 17자는 사람의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기본 글자를 만들고 이에 획을 더하여 나머지 글자를 만들었으며, 중성(中聲) 11자는 천, 지, 인(天, 地, 人)의 모양을 본떠서 기본 글자를 만들고 나머지 글자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음양의 대립으로 배합하여 만들었다. 이는 음운의 자질이 반영된 문자 체계로 보기 드문 독창성을 띠고 있다.
한글의 보급
한글은 점차 백성들 사이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되었다. 『삼강행실도』, 『소학』등의 교화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백성들에게 보급되었으며 선조 임금 대에는 한글로 쓴 교서를 내리기도 하였다. 이는 백성들 사이에 한글이 상당히 보급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사대부 계층에서도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이가 늘어났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글 사용을 확대하는 데에는 여성들의 역할도 매우 컸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간찰 중에는 여성이 한글로 쓴 것들이 많으며, 여성을 독자로 하는 책들 또한 주로 한글로 간행되었다. 17, 18세기에는 한글 소설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한글 보급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한글이 불러온 인쇄술의 발달
한글은 인쇄술의 혁신마저 가져왔다. 세종대왕은 새로 만든 글자를 보급하기 위하여 학자와 기술자들로 하여금 활자를 주조하고 서적을 출판하게 하였다. 훈민정음의 반포 이후에 한글활자를 사용하여 인쇄한 것이 『석보상절』이다. 그 이후 한글 활자를 이용한 다양한 서적들이 간행되며 인쇄술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었다.
오늘날의 한글
한글은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들 중에서 창제자와 창제년도가 명확히 밝혀진 몇 안 되는 문자이다. 또한, 그 창제 정신이 '자주, 애민, 실용'에 있다는 점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로 평가받는다. , 유네스코(UNESCO)에서 해마다 세계에서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주고 있을 정도로 한글은 가장 배우기 쉬운 글자로 평가되고 있으며, 독자적인 글자가 없는 소수민족들에게 한글이 보급되고 있고, 세계적으로 한글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IT기기 등에 입력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글자로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기술발전에 큰 경쟁력이 되고 있다.
영릉(寧陵)
영릉(寧陵)은 조선 제17대 효종과 그 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동원상하봉릉이다. 구리(九里) 건원릉(建元陵) 부근에서 1673년(현종 14년)에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정자각 뒤 봉분은 오른쪽이 왕비릉이고 왼쪽이 효종릉이다. 왕비릉엔 둘러쳐진 곡장이 없고 왕릉에는 곡장이 있다. 영릉은 다만 쌍릉이면서 앞뒤로 엇비슷하게 위치를 잡고 있어 지형과 상관 없이 애당초 ‘나란히’ 놓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의 석물들은 똑같이 갖춰져 있는데, 배치와 양식은 조선전기 '국조오례의'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영릉의 재실은 조선왕릉 재실 중 기본형태가 가장 잘 남겨져 있어 보물 제1532호로 지정되어있다. 또한 재실 안에 심어진 수령 300년의 회양목은 키가 크고 나무의 모양이 양호한 노거수로 평가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사적 196
현황(現況)
조선조 王室世系表 [ 27대, 517년, 1392 - 1910 ]
원(園) 13기(基)
숭인원(崇仁園 : 사적 제361호) :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 내
영원(英園 : 사적 제207호)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금곡동(金谷洞)
영휘원(永徽園 : 사적 제361호) :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 내
효창원(孝昌園 : 사적 제200호)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휘경원(徽慶園 : 사적 제360호)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진접읍(榛接邑) 부평리(富坪里)
의령원(懿寧園 : 사적 제200호)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수경원(綏慶園 : 사적 제198호)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수길원(綏吉園 : 사적 제359호) : 경기(京畿) 파주시(坡州市) 광탄면(廣灘面) 영장리(靈場里)
소령원(昭寧園 : 사적 제358호) : 경기(京畿) 파주시(坡州市) 광탄면(廣灘面) 영장리(靈場里)
영회원(永懷園 : 사적 제357호) : 경기(京畿) 광명시(光明市) 노온사동(勞溫寺洞)
소경원(紹慶園 : 사적 제200호)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순강원(順康園 : 사적 제356호)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진접읍(榛接邑) 내각리(內閣里)
순창원(順昌園 : 사적 제198호)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사후에 왕(王)으로 추존(追尊)된 왕릉(王陵) 5기(基)
익종(翼宗) 一 수릉(綏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장조(莊祖) 一 융릉(隆陵 : 사적 제206호) : 경기 화성시 태안읍(台安邑) 안녕리(安寧里)
진종(眞宗) 一 영릉(永陵 : 사적 제205호) : 경기 파주시 조리읍(條里邑) 봉일천리(奉日川里)
원종(元宗) 一 장릉(章陵 : 사적 제202호) : 경기 김포시 김포읍(金浦邑) 풍무동(豊舞洞)
덕종(德宗) 一 경릉(敬陵 : 사적 제198호)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폐위(廢位)된 묘(墓) 2기(基)
제15대 광해군(第十五代 光海君) 一광해군묘(光海君墓 : 사적 제363호) :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眞乾邑)
제10대 연산군(第十代 燕山君) 一 연산군묘(燕山君墓 : 사적 제362호) : 서울 도봉구(道峰區) 방학동
황제릉(皇帝陵) 2기(基)
제27대 순종(第二十七代 純宗) 一 유릉(裕陵 : 사적 제207호)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제26대 고종(第二十六代 高宗) 一 홍릉(洪陵 : 사적 제207호) : 경기(京畿) 남양주(南楊州)시
왕릉 35기
제25대 철종(第二十五代 哲宗) 一 예릉(睿陵 : 사적 제200호)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제24대 헌종(第二十四代 憲宗) 一 경릉(景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제23대 순조(第二十三代 純祖) 一 인릉(仁陵 : 사적 제194호) : 서울 서초구(瑞草區) 내곡동(內谷洞)
제22대 정조(第二十二代 正祖) 一 건릉(健陵 : 사적 제206호) : 경기 화성시(華城市) 태안읍(台安邑)
제21대 영조(第二十一代 英祖) 二 홍릉(弘陵 : 사적 제198호)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제21대 영조(第二十一代 英祖) 一 원릉(元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제20대 경종(第二十代 景宗) 二 혜릉(惠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제20대 경종(第二十代 景宗) 一 의릉(懿陵 : 사적 제204호) : 서울 성북구 석관동(石串洞)
제19대 숙종(第十九代 肅宗) 三 대빈묘(大嬪墓 : 사적 제198호)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제19대 숙종(第十九代 肅宗)二 익릉(翼陵 : 사적 제198호)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용두동
제19대 숙종(第十九代 肅宗) 一 명릉(明陵 : 사적 제198호)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제18대 현종(第十八代 顯宗) 一 숭릉(崇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제17대 효종(第十七代 孝宗) 一 영릉(寧陵 : 사적 제195호) : 경기 여주시(驪州市) 능서면(陵西面)
제16대 인조(第十六代 仁祖) 二 휘릉(徽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제16대 인조(第十六代 仁祖) 一 장릉(長陵 : 사적 제203호) : 경기 파주시(坡州市) 탄현면(炭縣面)
제14대 선조(第十四代 宣祖) 二 성묘(成墓 : 사적 제365호) :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眞乾邑)
제14대 선조(第十四代 宣祖) 一 목릉(穆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제13대 명종(第十三代 明宗) 一 강릉(康陵 : 사적 제201호) : 서울(Seoul) 노원구(蘆原區)
제12대 인종(第十二代 仁宗) 一 효릉(孝陵 : 사적 제200호)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洞)
제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四 태릉(泰陵 : 사적 제201호) : 서울(Seoul) 노원구(蘆原區)
제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四 태릉(泰陵 : 사적 제201호) : 서울(Seoul) 노원구(蘆原區)
제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三 희릉(禧陵 : 사적 제200호)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제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二 온릉(溫陵 : 사적 제210호) : 경기(京畿) 양주시(楊州市) 장흥면(長興面)
제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一 정릉(靖陵 : 사적 제199호) : 서울 강남구 삼성동(三成洞) 테헤란로
제9대 성종(第九代 成宗) 三 회묘(懷墓 : 사적 제200호)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제9대 성종(第九代 成宗) 二 순릉(順陵 : 사적 제205호) : 경기 파주시 조리읍(條里邑) 봉일천리(奉日川里)
제9대 성종(第九代 成宗) 一 선릉(宣陵 : 사적 제199호) : 서울 강남구 삼성동 테헤란로(Teheran路)
제8대 예종(第八代 睿宗) 二 공릉(恭陵 : 사적 제205호) : 경기(京畿) 파주시(坡州市) 조리읍(條里邑)
제8대 예종(第八代 睿宗) 一 창릉(昌陵 : 사적 제198호)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제7대 세조(第七代 世祖) 一 광릉(光陵 : 사적 제197호) :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와 포천군
제6대 단종(第六代 端宗) 二 사릉(思陵 : 사적 제209호)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진건읍(眞乾邑)
제6대 단종(第六代 端宗) 一 장릉(莊陵 : 사적 제196호) : 강원(江原) 영월군(寧越郡) 영월읍(寧越邑)
제5대 문종(第五代 文宗) 一 현릉(顯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제4대 세종(第四代 世宗)
제3대 태종(第三代 太宗)
제2대 정종(第二代 定宗)
제1대 태조(第一代 太祖) 三 정릉(貞陵 : 사적 제208호) : 서울 성북구 정릉2동
제1대 태조(第一代 太祖) 二 제릉(齊陵) : 개성직할시(開城直轄市) 판문군(板門郡) 상도리(上道里)
제1대 태조(第一代 太祖) 一 건원릉(健元陵 : 사적 제193호) : 경기 구리시 인창동
비공개 지역(12곳)
파주 | 양주 | 구리 | 남양주 |
사적제203호 장릉 사적제359호 수길원 사적제358호 소령원
| 사적제210호 온릉
| 사적제364호 명빈묘
| 사적제360호 휘경원 사적제209호 사릉 사적제363호 광해군묘 사적제366호 안빈묘 사적제367호 영빈묘 사적제356호 순강원 사적제365호 성묘 |
능(陵)의 위치(位置)
왕릉 담당지 | 왕릉 명칭 | 왕릉 왕명 | 건립 시기 | 사적 유무 | 주소 |
홈페이지
|
동구릉
| 건원릉 | 태조 | 1408년 (태종8) | 제193호 | 구리시 인창동
| |
현릉 | 문종 | 1452년 (단종 1) | ||||
목릉 | 선조 | 1600년 (선조33) | ||||
휘릉 | 인조왕비 (장렬왕후) | 1688년 (숙종14) | ||||
숭릉 | 현종 | 1674년 (숙종즉위) | ||||
혜릉 | 경종왕비 (단의왕후) | 1718년 (숙종44) | ||||
원릉 | 영조 | 1776년 (정조즉위) | http://donggu.cha.go.kr/n_donggu/index.html | |||
수릉 | 문조 (추존) | 1890년 (고종27) | http://donggu.cha.go.kr/n_donggu/index.html | |||
경릉 | 헌종 | 1849년 (철종즉위) | http://donggu.cha.go.kr/n_donggu/index.html | |||
명빈묘 |
| 1479년 (성종10) | http://donggu.cha.go.kr/n_donggu/index.html | |||
홍유릉
| 흥릉 | 고종황제 | 1919년 | 제207호 | 남양주 금곡동 |
|
유릉 | 순종황제 | 1926년 |
| |||
선정릉 | 선릉 | 성종 | 1495년 (연산군1) | 제199호 | 강남구 삼성동 |
|
정릉 | 중종 | 1562년 (명종17) | ||||
헌인릉
| 헌릉 | 태종 | 1420년 (세종2) | 제194호 | 서초구 헌인릉 | |
인릉 | 순조 | 1856년 (철종7) | 서초구 내곡동 | |||
융건릉
| 융릉 | 장조 (사도세사) | 1789년 (정조13) | 제206호 | 화성시 안녕동 | |
건릉 | 정조 | 1800년 (순조1) | ||||
사릉
| 사릉 | 단종왕비 (정순왕후) | 1521년 (중종16) | 제209호 |
남양주 진건읍 사능리
| |
광해군묘 |
| 1641년 (인조19) | 제363호 | |||
안빈묘 |
| 1693년 (숙종19) | ||||
성묘 |
| 1577년 (선조10) | ||||
광릉 | 광릉 | 세조 | 1468년 (예종1) | 제197호 | 남양주 진전읍 부평리 | |
온릉 | 온릉 | 중종왕비 (단경왕후) | 1557년 (명종12) | 제210호 |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 |
태강릉 | 태릉 | 중종왕비 (문정왕후) | 1565년 (명종20) | 제201호 | 노원구 공릉동 | |
강릉 | 명종 | 1567년 (선조1) | ||||
의릉 | 의릉 | 경종 | 1724년 (영조1) | 제204호 | 성북구 석관동 | |
영휘원 |
| 1911년 | 제361호 | 동대문구 홍릉길 | ||
숭인원 |
| 1922년 | ||||
정릉 | 정릉 | 태조왕비 (신덕왕후) | 1409년 (태종 9) | 제208호 | 성북구 정능동 산87 | |
삼릉 | 공릉 | 예종왕비 (장순왕후) | 1461년 (세조 7) |
제205호
|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 |
순릉 | 성종왕비 (공혜왕후) | 1474년 (성종 5) | ||||
영릉 | 진종 (추존) | 1729년 (영조 5) | ||||
장릉 (파주) | 장릉 | 인조 | 1731년 (영조 7) | 제203호 | 파주시 탄현면 | |
장릉 (김포) | 장릉 | 원종 (추존) | 1627년 (인조 5) | 제202호 | 김포시 김포읍 풍무리 | |
서오릉
| 경릉 | 덕종 (추존) | 1457년 (세조 3) | 제198호 | 고양시 용두동
| |
창릉 | 예종 | 1469년 (예종 2) | ||||
익릉 | 숙종왕비 (인경왕후) | 1680년 (숙종 6) | ||||
명릉 | 숙종 | 1701년 (숙종27) | ||||
흥릉 | 영조왕비 (정성왕후) | 1757년 (영조33) | ||||
순창원 |
| 1563년 (명종18) | ||||
수경원 |
| 1764년 (영조 40) | ||||
대빈묘 |
| 1701년 (숙종 27) | ||||
광명 | 영희원 |
| 1718년 (숙종44) | 제357호 | 광명시 노온사동 | |
서삼릉
| 희릉 | 중종왕비 (장경왕후) | 1537년 (중종 32) | 제200호 |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 |
효릉 | 인종 | 1545년 (인종1) | ||||
예릉 | 철종 | 1863년 (철종 14) | ||||
소경원 |
| 1645년 (인조 24) |
| |||
의령원 |
| 1752년 (영조 28) | ||||
효창원 |
| 1786년 (정조 10) | ||||
희묘 |
| 1482년 (성종 13) | ||||
영릉 | 영릉 | 세종대왕 | 1469년 (예종 1) | 제195호 |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 |
영릉 | 효종 | 1673년 (현종 14) | ||||
장릉 (영월) | 장릉 | 단종 | 1581년 (선조 14) | 제196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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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릉 | 제릉 | 태조왕비 (신의왕후) | 1391년 (공양왕) | 미지정 | 개성시 판문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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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릉 | 후릉 | 정종 | 1412년 (태종12) | 미지정 |
| |
연산군묘 | 연산군묘 | 연산군 | 1506년 (중종 1) | 제362호 | 도봉구 방학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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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朝鮮王陵)의 계보
목조 안사(덕릉)+효공왕후(안릉)
익조 행리(지릉)+정숙왕후
도조 춘(의릉)+경순왕후(순릉)
환조 자춘(정릉)+의혜왕후
1 태조(건원릉)+신의고황후(제릉), 신덕고황후(정릉)
1335~1408 57세 6년 2개월 父 항조(이자춘) 母 의혜왕후최씨,
1392년 조선왕조 건국
태조고황제 성계(건원릉 - 구리시 동구릉)
2 정종 방과(후릉)+정안왕후
1357~1419 41세 2년 2개월 태조의 적자,
제1차 王子의 난으로 방석을 살해하고 등극
(후릉 - 개성시 령정리)
3 태종 방원(헌릉)+ 원경왕후-4대 세종 도(영릉)+소헌왕후
1367~1422 34세 17년10개월 태조의 5적자,
제2차 王子의 난으로 정종의 선양 유발 형제세습
(헌릉 - 강남구 내곡동)
4 세종
1397~1450 22세 31년 6개월 태종의 3적자, 세자(양녕대군)을 폐하고 등극함
(英릉 - 여주군 왕대리)
5 문종 향(현릉)+현덕왕후
1414~1452 37세 2년 3개월 세종의 적장자
(현릉 - 동구릉)
6 단종 홍위(장릉)+정순왕후(사릉)
1441~1457 12세 3년 2개월 문종의 적장자(독자), 숙부에게 王위 피탈
(莊릉 - 영월읍 영흥리)
7 세조 유(광릉)+정희왕후-덕종(추존) 장(경릉)+소혜왕후
1417`1468 39세 13년 3개월 세종의 적차자, 왕위찬탈(단종의 숙부)
(광릉 - 남양주군 부평리)
8 예종 황(창릉)+장순왕후(공릉), 안순왕후
1450~1469 19세 1년 2개월 세조의 적차자,형(兄) 의경세자의요절로 등극함
(창릉 - 고양시 서오릉)
9 성종 혈(선릉)+공혜왕후(순릉), 폐비, 정현왕후
1457~1494 13세 25년 2개월 세조의 손자이며 의경세자의 적차자
(선릉 - 강남구 삼성동)
10 연산군(폐위) 융
1476~1506 19세 11년 9개월 성종의 적장자, 중종반정으로 폐위됨
(연산군묘 - 도봉구 방학동)
11 중종 역(정릉)+단경왕후(온릉), 장경왕후(희릉), 문정왕후(태릉)
1488~1544 19세 38년 2개월 성종의 차적자(이복형(兄)
연산군을 폐하고 왕위에 옹립)
(정릉 - 강남구 삼성동)
12 인종 호(효릉)+인성왕후
1515~1545 30세 9개월 중종의 적장자
(효릉 - 고양시 서삼릉)
13 명종 환(강릉)+인순왕후-순회세자 부
1534~1567 12세 22년 중종의 적차자(형(兄) 인종으로부터 세습
(강릉 - 노원구 공릉동)
14 선조 균(목릉)+의인왕후, 인목왕후
1522~1608 16세 40년 7개월 중종의 7서자(덕흥군)의 3자,
명종의 유지로 등극
(목릉 - 동구릉)
덕흥대원군
15 광해군 (폐위) 혼
1575~1641 34세 15년 1개월 선조의 차서자, 이조반정으로 폐위
(광해군묘 - 남양주군 송승리)
16 인조 종(장릉)+인렬왕후, 장렬왕후(휘릉)
1595~1649 29세 26년 2개월 정원군(선조의 5서자)의 적정자,
직접군사를 지휘하여 반정에 성공, 등극(長릉 - 파주군 갈현리)
원종(추존) 부(장릉)+인헌왕후-16대 인조
17 효종 호(영릉)+인선왕후
1619~1659 31세 10년 5개월 인조의 차적자,
형(兄)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적통을 제치고 계승
조선조 유일하게 청나라 심양에서출생(寧릉 - 여주군 왕대리)
소현세자
18 현종 연(숭릉)+명성왕후
1641~1674 19세 15년 3개월 효종의 적장자 (독자)
(숭릉- 동구릉)
19 숙종 순(명릉)+인경왕후(익릉), 인현왕후, 인원왕후
1661~1720 14세 45년 10개월 현종의 적장자 (독자)
(명릉 - 서오릉)
20 경종 균(의릉)+단의왕후, 선의왕후
1688~1724 33세 4년 2개월 숙종의 서 長子, 母는 장희빈
(의릉 - 성북구 석관동)
21 영조 금(원릉)+정성왕후(홍릉), 정순왕후
1694~1776 31세 51년 7개월 숙종의 서 次子 異腹兄
경종으로부터 왕위 세습.
조선의 역대 왕중 最長壽王.(원릉 -동구릉)
22 정조 산(건릉)+효의선황후
1752~1800 25세 24년3개월 영조의 次子인 사도세자의 적 장자.
(건릉-화성군 안령리)
진종소황제(추존) 행(영릉)+효순소황후
장조의황제(추존) 선(융릉)+헌경의황후
의소세손
정조선황제 산(건릉)+효의선황후
23 순조 공(인릉)+순원숙황후
1790~1834 11세 34년4개월 정조의 서차자인 문효세자의 요절로 등극.
영조의 계비 정 순왕후 김씨가 20세까지 섭정. 안동김씨 세도정치 시작.
(인릉 - 강남구 내곡동)
문효세자
24 헌종 환(경릉)+효현성황후
1827~1849 7세 14년 7개월 순조의 적장자(효명세자)의 독자.
순조비 순원왕후 김씨가 2년간 섭정.(경릉 - 공구릉)
문조익황제 영(수릉)+신정익황후-24대 헌종성황제 환(경릉)+효현성황후
25 철종 변(예릉)+철인장황후
1831~1869 19세 14년 6개월 정조의 서第(은언군)의 적손.
헌종의 절손으로 신정왕후(조 대비)가 지명.
학문을 연마한 적이 없어 순원왕후 김씨가 2년간 섭정.
(예릉 - 서삼릉)
장조의황제 서자 은언군-전계대원군 광- 25대 철종장황제 변(예릉)+철인장황후
26 고종 형(홍릉)+명성태황후
1852~1919 11세 43년 9개월 인조의 3자 인평대군 계열.
흥선대원군의 3적자, 철종의 절손으로 신정왕후 조씨한테 입적시키고 지명.
대원군 이 20세까지 섭정.
(홍릉 - 미금시 미금동)
장조의황제 서자 은신군-남연군 구(인조 3남 인평대군 6대손 남연군에게 양자)
흥선대원군 하응-26대 고종태황제 형(홍릉)+명성태황후
황후 : 명성태황후 민씨(明成太皇后 閔氏, 1851년~1895년)
후비 : 순헌황귀비 엄씨 (純獻皇貴妃 嚴氏)(1854년~1911년)
후궁 : 영보당귀인 이씨(永寶堂貴人 李氏):이순아(李順娥;1843년~1928년)
후궁 : 귀인 장씨(貴人 張氏)
후궁 : 광화당귀인 이씨(光華堂貴人 李氏)
후궁 : 보현당귀인 정씨(寶賢堂貴人 鄭氏)(1882년~1943년)
후궁 : 복녕당귀인 양씨(福寧堂貴人 梁氏)(1882년~1929년)
후궁 : 내안당귀인 이씨(內安堂貴人 李氏)(1847년~1914년)
후궁 : 삼축당상궁 김씨(尚宮 三祝堂尚宮 金氏):김옥기(金玉基;1890년~1972년)
후궁 : 정화당상궁 김씨(貞和堂尚宮 金氏)
후궁 : 궁인 서씨(宮人 徐氏)
후궁 : 궁인 김씨(宮人 金氏)
후궁 : 궁인 장씨(宮人 張氏)
27 순종 척(유릉)+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
1874~1926 33세 3년 1개월 고종의 적장자. 조선의 멸망과 함께 폐위.
(유릉 - 미금시 금곡동)
순종효황제 척(유릉)+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
목조-덕릉 효공왕후 이씨-안릉 익조-지릉 정숙왕후 최씨-숙릉 , 손씨 도조-의릉 경순왕후 박씨-순릉, 조씨 환조-정릉 의혜왕후 최씨-화릉, 이씨, 정빈 김씨 태조-건원릉 신의왕후 한씨-제릉 신덕왕후 강씨-정릉 정종-후릉 정안왕후 김씨-후릉 태종-헌릉 원경왕후 민씨-헌릉 세종-영릉 소헌왕후 심씨-영릉 문종-현릉 현덕왕후 권씨-현릉 단종-장릉 정순왕후 송씨-사릉 세조-광릉 정희왕후 윤씨-광릉 예종-창릉 장순왕후 한씨-공릉 안순왕후 한씨-창릉 성종-선릉 공혜왕후 한씨-순릉 폐비 윤씨-회묘 정현왕후 윤씨-선릉 연산군-연산군묘 폐비 신씨-연산군묘 중종-정릉 단경왕후 신씨-온릉 장경왕후 윤씨-희릉 문정왕후 윤씨-태릉 인종-효릉 인성왕후 박씨-효릉 명종-강릉 인순왕후 심씨-강릉 선조-목릉 의인왕후 박씨-목릉 인목왕후 김씨-목릉 광해군-광해군묘 폐비유씨-광해군묘 인조-장릉 인렬왕후 한씨-장릉 장렬왕후 조씨-휘릉 효종-영릉 인선왕후 장씨-영릉 현종-숭릉 명성왕후 김씨-숭릉 숙종-명릉 인경왕후 김씨-익릉 인현왕후 민씨-명릉 인원왕후 김씨-명릉 경종-의릉 단의왕후 심씨-혜릉 선의왕후 어씨-의릉 영조-원릉 정성왕후 서씨-홍릉 정순왕후 김씨-원릉 정조-건릉 효의왕후 김씨-건릉 순조-인릉 순원왕후 김씨-인릉 헌종-경릉 효현왕후 김씨-경릉 효정왕후 홍씨-경릉 철종-예릉 철인왕후 김씨-예릉 고종-홍릉 명성황후 민씨-홍릉 순종-유릉 순명효황후 민씨-유릉 순정효황후 윤씨-유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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