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양도성 "서울을 품고, 시민의 역사가 됩니다
◈ 서울시, 진정성과 완전성이 조화된 「한양도성 보존․관리․활용 종합계획」발표
◈ 끊어진 한양도성, 2015년까지 성곽복원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전 구간 연결
◈ 군사 및 민간시설 등으로 막힌 탐방로 개방 확대와 주변 문화유적지 연계
◈ 한양도성의 진정성있는 복원을 위하여 시장공관 2013년 3월까지 이전
◈ 국제적 수준의 보존․관리를 위한 ‘한양도성 보존․관리․활용 마스터플랜’ 수립
◈ 전담조직인 '한양도성 도감' 신설, 한양도성 박물관 및 연구소 설립
◈ 시민순성관 등 시민·단체가 함께 지키고 가꾸는 시민참여 확대 방안 추진
◈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목표로 국내․외 분위기 조성 활성화
◈ “시민과 후손에겐 자긍심의 공간, 사람·정신·문화가 살아있는 희망의 공간으로”
□ 서울시는「한양도성 보존·관리·활용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한양도성을 단순한 복원을 넘어 현 세대는 물론 미래세대, 세계인의 문화 향유권 까지 고려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 시켜 나가겠다고 7일(월) 밝혔다.
○ 이번 계획은 지난 1월 31일 박원순 시장이 시민․전문가들과 함께 한양도성을 직접 순성하며 고민한 바를 담았으며, 전문가 자문과 관련부서 회의 등을 거쳐 마련됐다.
□ 종합계획의 주요 골자는▲2015년까지 성곽 복원 및 형상화 등으로 전 구간 연결 ▲'한양도성 보존·관리·활용 마스터플랜' 수립 ▲한양도성 전담관리 조직인 '한양도성 도감' 신설▲한양도성의 체계적 연구와 발전을 위한 박물관 및 연구소 설립 ▲서울시민과 전문가로 구성되는 '한양도성 자문위원회' 발족▲서울시민 한양도성 순성관제 도입을 통한 시민참여 확대 ▲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등이다.
<끊어진 한양도성, 2015년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전구간 연결> □ 1975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을 시작한 한양도성은 현재 숙정문, 광희문, 혜화문등 3개 성문을 포함, 총연장 18.6km중 12.3km 구간의 복원을 완료 하였으며, 성곽 복원 및 형상화 방식 등을 통해 2015년까지 전 구간을 연결한다. 총 길이 | 복원완료 | 복원공사중 | 복원예정 | 도로구간 (형상화) | 사유지구간 (중장기) | 18,627m | 12,344m | 1,049m | 107m | 1,126m | 4,001m |
※ 복원중(1,049m) : 인왕산(213m), 남산(753m), 숭례문(83m) ※ 복원예정(107m) : 시장 공관(86m), 흥인지문 북측(21m)
□ 도로개설로 인해 성곽이 단절된 구간은 차량통행 등 도시기능을 유지하면서 단절 없이 연결될 수 있도록 도로 상부 또는 하부에 형상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 혜화문, 창의문, 시장공관, 흥인지문 등 도로 양쪽에 성곽이 온전히 남아있고, 성곽과 도로의 높이차가 있어 육교형태로 상부 연결이 가능한 구간 9개소 (392m)는 전문가 자문 등 고증을 통해 상부형상화를 하고,
○ 광희문, 장충체육관등 성곽흔적은 있으나 높이차가 없어 상부형상화가 불가능한 36개소 (734m)에 대해서는 도로바닥에 성곽선을 따라 화강석 등으로 흔적을 표현하는 하부형상화를 추진된다.
□ 도심화 및 사유지 점유로 성곽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서소문 일대, 장충동 일대, 정동 일대 등 약 4km 구간은 성곽 추정선에 인접한 길을 따라 성곽 흔적을 알리는 표시물을 바닥에 설치한다. □ 이와 같이 도로개설 및 사유지 점유로 인해 끊어진 성곽 약 5km에 대해 상·하부형상화 및 흔적표시 등 물리적, 시각적 연결작업을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개년에 걸쳐 추진하여 한양도성 전 구간을 연결할 계획이다
□ 또한, 성곽이 훼손된 채 유존하는 사유지(장충동, 혜화동, 홍파동, 정동 등) 4,001m는 문화재청과 협의를 거쳐 중장기적으로 연차적인 매입 등 지속적인 보존 및 복원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예정이다.
<군사 및 민간시설 등으로 막힌 탐방로 개방 확대 추진> □ 내사산 능선을 따라 축조된 한양도성에 인접한 군사시설과 민간시설 등으로 막힌 탐방로에 대해서도 당해 시설의 관리기관과 지속적인 협의·설득 및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개방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 북악산·인왕산의 군 초소 등에 대해 관계기관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이전 및 개방을 추진하고, 낙산 배드민턴장, 학교시설 등 사유시설 소유자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막힌 탐방길 개방 확대를 추진한다.
□ 탐방로 개방확대와 더불어 주변 역사문화유적지를 시민과 관광객들이 편리하게 접근하여 유적가치를 향유할 수 있도록 접근체계를 개선하고, 시민참여 프로그램도 적극 개발할 계획이다.
<시장공관 2013년 3월 이전까지 이전하고 성곽 원형복원> □ 박원순 시장은 이러한 한양도성 인접 시설 정비에 모범을 보이고 한양도성의 진정성 있는 복원을 위해 시장공관을 늦어도 2013년 3월 이전까지는 이전키로 결정하고, 공관이전 장소를 현재 물색 중이다.
○ 시장공관 이전후 공관구간 성곽 86m 복원과 함께 인왕산, 남산구간 등 원형복원이 가능한 부분 1,156m는 전문가 자문 및 고증을 거쳐 2014년까지 복원을 추진, 진정성과 완전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한양도성 보존․관리․활용 마스터플랜’수립> □ 그동안의 복원사업이 일제 강점기와 도시 개발 과정 속에 강제 철거․훼손된 수난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번 마스터플랜은 단순 복원을 넘어 세계 문화유산에 걸맞은 지속적인 보존․관리 체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 우선 올 하반기에 한양도성에 대한 국제적 수준의 보존․관리에 관한 청사진이라 할 수 있는 ‘한양도성 보존·관리·활용 마스터플랜’ 수립에 착수한다.
□ 시는 마스터플랜을 통해 한양도성 보존에 영향을 미치는 제반 요인과 도성의 관리 실태, 기존 탐방로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세부 관리․정비기준, 활용방안, 접근성 및 개선대책 등을 마련한다.
□ 아울러 유네스코가 요구하는 ‘진정성’과 ‘완전성’에 맞게, 무분별한 복원보다는 고증을 철저히 거쳐 복원 한다든가, 이미 복원된 곳도 잘못이 있는지 고증을 거쳐 수정해 가는 내용, 주변수목의 단계적 정비 등이 포함된다.
<전담조직인 '한양도성 도감' 신설, 한양도성 박물관 및 연구소 설립> □ 체계적인 한양도성의 관리·운영을 위하여 전담조직인「한양도성도감」을 금년 하반기 신설, 책임자로 ‘도제조’를 두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내 약 1,500㎡공간을 활용해 한양도성 박물관 및 연구소도 설립한다. ○ 조직명칭 : (가칭) 한양도성도감(漢陽都城都監) - 우리 시는 고려~조선시대에 국가 중대사무를 관할하기 위해 설치한 전담기구에 붙인 “도감(都監)”을 활용, 조직 명칭부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작명함으로써 진정성 있는 유적 보존․관리 의사를 대내외에 표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사료됨
【조선시대 한양도성 사업단의 명칭】 ▶ 태조 때 초축 당시 1395년 <도성조축도감(都城造築都監)> 신설 - 총 156명의 관원으로 구성하고, 총 197,501 여명의 민정(民丁)을 동원 ▶ 세종 때 중수 위해 1421년 <도성수축도감(都城修築都監)> 신설 - 총 231명의 관원으로 구성하고, 석성 수축 위해 군사 322,460명, 공장(工匠) 2,211명을 동원 ▶ 세종 때 수축 후 관리위해 1426년 <수성금화도감(修城禁火都監)> 신설 - 1422년 성문도감과 1426년 신설된 금화도감을 통합, 수성금화도감을 운영했는데 정확한 관원수는 확인되지 않음 ▶ 숙종 이후로는 중수 시 별도의 도감을 두지 않고 삼군영(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에서 구간을 분담하여 중수 또는 보수 |
○ 조직의 장 : 도제조(都提調) - 오늘날 한양도성과 같은 형태의 석성의 틀이 완성된 세종 때 도성수축도감의 장이 도제조(좌․우의정 등)였음을 고려함 | <시민․전문가로 구성되는 한양도성 자문위원회 발족> □ 한양도성의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한양도성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시민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적극 발굴해 정책화할 계획이다.
○ 역사, 건축, 도시계획, 관광, 시민단체, 언론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한양도성 자문위원회를 2012년 하반기까지 구성하여 주요정책을 사전검토하고, 시민 아이디어를 시책에 반영하는 등 협조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한양도성 주변환경과 조화되는 도시관리 유도> □ 도성주변의 체계적 도시관리 기틀을 마련하기 위하여「4대문안 역사문화 도시관리 기본계획」수립을 연구중에 있다.
○ 한양도성의 미와 가치를 고려하고, 주변경관과 어울리는 도시관리 추진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시민순성관제 도입, 한양도성 인간띠잇기등 시민참여 확대> □ 한양도성 축성 당시 전국 8도에서 인력이 동원되었던 사실에 착안하여 축성 담당구역에 맞추어 전국 8도 출신 서울 시민들을 대상으로 ‘시민순성관제’를 모집하여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 한양도성 준공일을 기념하여 10월 마지막 주를 “한양도성 주간”으로 선포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대한 염원을 담은 ‘한양도성 인간 띠잇기’ 행사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 한양도성 준공일인 10월 26일∼10월 31일이 속하는 10월 마지막 주를 한양도성 주간으로 선포하고, 도성관련 사진전, 국제학술세미나 개최, 순성놀이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도성의 아름다움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도록 할 계획이다.
○ 또한, 이 기간 동안 세계유산 등재를 염원하고 시민과 함께하는 도성 가꾸기를 위해 서울시민 18,627명(1m당 1명)을 공모를 통해 모집하여 한양도성 전 구간을 인간띠로 잇는 행사를 2013년에 개최할 계획이다. 한양도성 준공일(漢陽都城 竣工日) : 10.26일 또는 10.31일
▶ 태조실록에 따르면 도성 축조 공역은 1396년 1월 9일(양력 2월 18일)부터 2월 28일(양력 4월 6일)까지 시행〔세종실록지리지 상의경도한성부조는 시공, 준공날짜가 다르게 기록 되어있는데 1월15일(양력 2월 24일)부터 2월 29일(양력 4월 7일)까지 공사 시행〕되었는데 이렇게 해서 쌓은 도성이 1396년 7월 수해로 일부 무너지자 1396년 8월 역사를 다시 시작하여 9월 24일(양력 10월 26일)〔세종실록지리지 상의 기록에 의하면 8월13일(양력 9월15일)부터 9월 29일(양력 10월 31일)까지 시행〕완료 하였다. |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추진> □ 서울시는 지난 4월 20일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결정을 계기로, 2015년까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최종 등재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 2012년 하반기 국제학술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고, 2013년부터는 연차별로 개최한다는 방침아래 총서 및 자료집을 발간하고, 이를 바탕으로 2014년초 세계문화유산 등재신청서를 제출하면 이코모스의 실사를 거쳐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정기총회에서 최종 등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세계 수도 가운데 도성을 세계유산으로 보유한 유일한 사례가 되며, 600년의 전통을 품고 있는 역사도시 서울을 널리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양도성에 대한 복원․관리는 형식보다는 진정성과 완전성을 바탕으로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민과 후손에겐 세계유일의 성곽도시라는 자긍심의 공간, 외국인 관광객도 누구나 찾아오는 세계인의 명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 특히, 박 시장은 “미래의 한양도성은 탁월한 세계 보편적 가치, 진정성과 완전성을 갖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물질보다는 사람․정신․문화가 살아있는 공동체 모두의 희망공간으로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한양도성의 역사와 가치> □ 한편, 한양도성은 조선 태조가 한양천도 후 궁궐, 종묘, 사직단에 이어 국도 방어와 백성의 안위를 위해 1396년 내사산[백악산(북), 인왕산(서), 남산(남), 낙산(동)]의 정상과 능선을 따라 총길이 18.6km의 규모로 축조되었다
○ 태조는 국왕으로서 본인 안위만 생각하지 않고 백성까지 보호하기 위해 넓은 도성을 쌓아 민본주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현존 유사유적 중 세계적으로 최장기간(514년:1396년∼1910년) 도성역할을 수행하였고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 또한 풍수사항에 기반하여 내사산 능선을 따라 축조되고 지형과 일체화된 독창적 축조기술로 노동력의 낭비를 줄인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기도 하다.
○ 도성의 성곽과 문루들은 내사산의 굴곡과 도성 안팎이 함께 조망되는 역사도시 경관을 보유하고 있어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등 당대 거장들의 그림과 문학작품 소재가 되는 등 저명한 문학과 예술 창조의 원천이 되었다.
□ 한양도성은 1396년(태조5) 초축 이후 1422년(세종4)과 1710년(숙종36)에 대규모로 개축되고, 영조·정조·순조·고종 연간에 걸쳐 보수하는 등 지속적으로 보존·관리되어 왔다
○ 서울 한양도성은 세종년간 및 숙종년간에 대대적인 개축을 하고 여러 번 수리를 하면서 각 시기별로 성을 쌓는 방법, 성돌의 크기와 모양이 달라 성 쌓는 기술의 변천사를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며, 우리 조상들의 호국정신이 깃든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 지금도 인왕산, 북악산 전구간과 남산 일부구간은 서울을 지키는 군사시설로 사용되고 있어 오늘날까지도 수도방위를 위한 한양도성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조선왕조 500년을 함께한 한양도성은 1905년 일본에게 외교권 상실 후 일제강점기동안 교통상의 편의나 근대적인 도시계획 시행이라는 미명하에 , 광복이후에도 도심부 개발과정에서 훼손되는 등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 대한제국 국권침탈 이후 1907년에는 일본 왕세자 교통편의를 위해 숭례문 성벽이 헐리고, 1908년에는 또다시 흥인지문 좌우측 성벽과 오간수문 성벽이 철거되었다
○ 1914년에는 도로확장과 서소문일대 총독부 고위 간부들의 관사 건립을 위해 서소문과 일대 성벽이 철거되고, 1915년 도로확장과 교통편의 명목으로 또다시 4대문중 서문에 해당하는 돈의문이 당시 단돈 205원(쌀 17가마)에 땔감용으로 팔려 철거되기도 하였다.
○ 1928년에는 조선총독부에서 보수공사에 투입될 재원이 없다는 이유로 혜화문과 광희문 문루를 철거하고, 이어서 도로확장과 교통편의를 이유로 혜화문 하부 체성과 좌우 성벽마저 철거되고 만다.
□ 조선왕조 500년을 함께 했으며, 1905년 일본에게 외교권을 상실한 후 일제강점기동안 교통상의 편의나 근대적인 도시계획 시행이라는 미명하에 많은 곳이 강제 철거되고, 광복이후에도 도심부 개발과정에서 추가 훼손되는 등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 서울시는 향후 이러한 문제점이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미래세대의 문화유산 향유권까지를 고려한 종합적인 정비계획을 마련하여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혜화문 성관 형상화 | 현재 (도로개설로 성곽 멸실) | | 성곽 형상화 예시 |
| 현재 | | 도시관리 이전 아파트 건축시 | | 도시관리 이후 한옥 |
성북동 와룡공원 성곽 외측
낙산 배드민턴장, 경로당
서울 한양도성 "서울을 품고, 시민의 역사가 됩니다."_02 한양도성의 역사와 세계유산적 가치
□ 한양도성의 역사 1. 도성은 언제, 어떻게 쌓여졌나? ○ 1394년 태조의 한양 천도 후 통치의 핵심시설인 궁궐․종묘․사직단 축조에 이어 국도(國都) 방어와 백성의 안위 확보를 위해 1396년(태조5) 초축된 ‘도성(都城)’으로서 한양을 감싸고 있는 내사산〔內四山 : 백악산(북), 인왕산(서), 남산(남), 낙산(동)〕의 정상과 이들 산의 능선을 따라 총길이 18.6km 규모로 축조됨
▲ 한양도성 배치도 각도의 백성이 구간을 나누어 단시일 내(태조 98일 / 세종 38일)에 세계 최대 규모(총길이 18,621m / 내부면적 : 16,657㎡)의 도성 축조
○ 도성은 태조 때의 초축 이후 1422년(세종4), 1710년(숙종36) 대규모로 개축되고, 영조․정조․순조․고종 연간에 걸쳐 지속적인 보수를 통해 진정성있게 보존․관리되어 옴.
■ 한양도성은 조선 전기~후기에 걸친 각 시대의 성곽 축조기술의 ‘전시장’
■ 선진적인 공사 실명제가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실시돼! 성벽 또는 여장 내부에는 축조 연대와 축조주체를 알 수 있게 하는 글자 (‘각석’이라고 함)가 현재까지 총 115개가 확인되는데, 시대별로 아래와 같은 특징이 있음 - 태조 때 축성구간 - 600척마다 “천자문(天에서 弔까지)”이 새겨짐 - 세종 때 축성 구간 - 성 쌓기에 동원된 군사들의 “출신 지역명”이 새겨짐 - 숙종 때 이후 축성 구간 - “개축(改築) 연대와 추진 관부(官府), 참여자 명단” 등이 더 자세히 새겨져 있음
태조(崗字六百尺) (천자문 48번째)
세종(醴泉始面) (예천 지역에서 축조)
1706년(숙종32) 훈련도감 개축 기록 |
○ 이러한 각 시대에 걸친 도성의 축조와 개축, 부분 보수와 관련해서는 『실록』․『승정원일기』․『비변사등록』 등 사료에 자세한 기록(확인된 것만 약 49,400개)이 남아있어 각 시대별 축조배경 및 사유, 공사주체, 공사기간, 석재의 조달처 등을 확인 가능한 바 이는 세계유산 등재 기준 중 하나인 진정성(authenticity)의 중요한 입증자료가 됨 ■ 태조실록 9권 - 1396년(태조 4) 1월 9일 徵慶尙ㆍ全羅ㆍ江原道及西北面安州以南、東北面咸州以南民丁十一萬八千七十有奇, 始築都城。 旣度城基, 分定字號, 始自白岳之東, 起天字, 終于白岳之西, 止弔字, 幷西山石嶺, 得地凡五萬九千五百尺。 每六百尺爲一字號, 凡九十七字。 每一字分六號, 每二字置監役、判事ㆍ副判事各一員、使副使判官十二員。 計各道州郡民戶多少, 自天字止日字東北面, 月字止寒字江原道, 來字止珍字慶尙道, 李字止龍字全羅道, 師字止弔字西北面。 督役者不分日夜, 上以寒甚, 禁夜役。 경상·전라·강원도와 서북면의 안주(安州) 이남과 동북면의 함주(咸州) 이남의 민정(民丁) 11만 8천 70여 명을 징발하여 처음으로 도성을 쌓게 했다. 이미 성 쌓을 터를 측량하여 자호(字號)를 나누어 정하였는데, 백악(白岳)의 동쪽에서 ‘천(天)’ 자(字)로 시작해, 백악의 서쪽으로 ‘조(弔)’ 자(字)에서 그치게 하였다. 서쪽 산 돌재[石嶺]까지 합해서 땅의 척수가 무릇 5만 9천 5백 척(尺)이요, 6백 척마다 한 자호(字號)를 붙였으니, 모두 97자(字)이며, 한 글자마다 6호(號)로 나누고, 두 자(字)마다 감역(監役)을 두고, 판사(判事)·부판사(副判事)는 각 1원(員)을 두고, 사(使)·부사(副使)·판관(判官)은 12원(員)을 두었다. 각도 주군(州郡)의 민호(民戶)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천(天)’ 자로부터 ‘일(日)’ 자까지는 동북면이, ‘월(月)’ 자에서 ‘한(寒)’ 자까지는 강원도가, ‘래(來)’ 자에서 ‘진(珍)’ 자까지는 경상도가, ‘리(李)’ 자에서 ‘용(龍)’ 자까지는 전라도가, ‘사(師)’ 자에서 ‘조(弔)’ 자까지는 서북면이 맡게 하였다.
역사를 감독하는 사람이 낮이나 밤을 가리지 않고 시키니, 전하께서 날씨가 심히 춥다고 하여 밤의 역사는 못하게 하였다.
■ 세종실록 14권 - 1421년(세종 3) 12월 10일 以右議政鄭擢爲都城修築都監都提調, 增置提調三十三, 使、副使、判官、錄事幷百九十人。 初, 兵曹參判李明德主其事, 發諸道丁夫摠四十三萬。 代言等啓于上曰, “竊考太祖初定都漢陽, 築城丁夫二十餘萬。 今則修之耳, 何若是之多耶。 ” 上啓太上王, 命減之, 明德固執前議, 太上王命三議政議之, 皆請減, 乃減十餘萬。 於是, 實簽丁夫, 京畿二萬一百八十八名, 忠淸道五萬六千一百十二名, 江原道二萬一千二百名, 黃海道三萬九千八百八十八名, 全羅道四萬九千一百四名, 慶尙道八萬七千三百六十八名, 平安道四萬三千三百九十二名, 咸吉道五千二百八名, 凡三十二萬二千四百名。 工匠二千二百十一名。 每一差使員兼領三邑軍, 又令諸道經歷, 幷領其道軍。 赴京領軍經歷、守令凡百十五人。
우의정 정탁으로 도성수축도감 도제조(都城修築都監都提調)를 삼고, 제조(提調) 33명과 사(使)·부사(副使)·판관(判官)·녹사(錄事)를 합하여 1백 90명을 더 두었다. 처음에 병조참판 이명덕이 그 일을 주관하여 여러 도(道)의 정부(丁夫)를 합계 43만 명을 징발하였다. 대언 등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가만히 살펴보건대, 태조께서 처음으로 한양에 도읍을 정하여 성(城)을 쌓는데, 정부가 20여만 명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이를 수축할 뿐인데 어찌 이와 같이 많습니까.”
라고 하였다. 전하께서 태상왕에게 아뢰어, 태상전하께서 이를 감하도록 명하였으나, 명덕이 그전 의논을 고집하므로, 태상전하께서 삼 의정(議政)에게 명하여 이를 의논하게 하니, 모두 감하기를 청하므로, 이에 10여만 명을 감하였다. 이에 실제로 뽑은 정부는, 경기가 20,188명이요, 충청도가 56,112명이요, 강원도가 21,200명이요, 황해도가 39,888명이요, 전라도가 49,104명이요, 경상도가 87,368명이요, 평안도가 43,392명이요, 함길도가 5,208명이니, 모두 322,400명이요, 공장(工匠)이 2,211명이다. 차사원(差使員) 한 사람마다 세 고을의 군사를 겸해 거느렸고, 또 여러 도의 경력(經歷)으로 하여금 모두 그 도의 군사를 거느려 서울로 오게 하였으니, 군사를 거느린 경력과 수령이 모두 1백 15명이다.
■ 승정원일기 - 1774년(영조 50) 6월 5일 又以兵曹言啓曰, 卽接西道參軍牒報, 則訓鍊都監所授彰義門北邊近處體城七間半許, 今日崩頹云, 令繕工監爲先把子圍排, 分授軍門, 急速修築, 而把守軍兵, 亦令該軍門, 量宜定送, 修築間各別守直之意, 分付, 何如。 傳曰, 允。 또 병조에서 아뢰기를, “서도 참군의 첩보에 따르면 훈련도감이 맡고 있는 창의문 북쪽 근처 체성 7칸이 오늘 무너졌다고 합니다. 선공감으로 하여금 우선 바자울을 두르고 해당 군문으로 하여금 속히 수축하도록 하고 파수군도 해당 군문이 정해 보내 수축기간 중 엄중히 지키도록 분부하소서” 하니 전하께서 “윤허한다.”고 하였다.
■ 승정원일기 - 1774년(영조 50) 6월 9일 又以訓鍊都監言啓曰, 都監分授都城彰義門北邊體城頹落處改築所入石子, 今月初九日, 西郊碌磻峴近處, 浮出取用之意, 敢啓。 傳曰, 知道。 또 훈련도감에서 아뢰기를, “도감에서 맡고 있는 도성 창의문 북쪽 체성의 무너진 곳 개축에 드는 석재는 이번달 9일 서교의 녹번(碌磻) 근처에서 떠 쓰도록 하겠습니다.” 하니 전하께서 “알았다.”고 전지하셨다.
■ 승정원일기 - 1774년(영조 50) 6월 26일 又以訓鍊都監言啓曰, 都監分授都城彰義門北邊體城頹落處, 今月二十六日始役之意, 敢啓。 傳曰, 知道。 또 훈련도감의 보고를 가지고 아뢰기를, “도감에서 맡고 있는 도성 창의문 북쪽 체성 무너진 곳은 이번 달 26일 공사를 시작하겠습니다.” 하니 전하께서 “알겠다.”고 말씀하셨다.
■ 승정원일기 - 1774년(영조 50) 7월 13일 蔡弘履以訓鍊都監言啓曰, 都監分授都城彰義門北邊體城頹落處, 今已畢築, 女墻仍爲始役, 把守軍兵, 依例撤罷之意, 敢啓。 傳曰, 知道。 채홍이가 훈련도감의 보고를 가지고 아뢰기를, “도감에서 맡고 있는 창의문 북쪽 체성 무너진 곳 축조는 이미 다 마치고 여장 축조를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파수군은 전례대로 해체하고자 합니다.” 하니 전하께서 “알았다.”고 전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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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도성의 동서남북에는 유학에서 사람이 갖추어야 할 네가지 덕목인 인(仁)․의(義)․예(禮)․지(智)를 상징하는 4대문〔四大門 : 흥인지문(동), 돈의문(서), 숭례문(남), 숙정문(북)〕을 내고, 각 대문 사이에는 대문보다 규모가 작은 4소문〔四小門 : 광희문(남동), 혜화문(북동), 창의문(북서), 소의문(남서)〕을 두어 4대문과 4소문을 통해 도성이 상징적으로 전국 8도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함 4대문 | | 성벽과 연결되어 있는 숭례문 (1905년) | | 흥인지문 (1890년대) | | 돈의문(연대불명) 1915년 전차 이동의 편의를 위해 일본의 조선총독부에 의해 훼철됨 | | 숙정문(1950년대 문루 복원 전) |
4소문 | | 혜화문(1890년대) 1928년 보수비가 없다는 사유로 문루 훼철되고, 1938년 도로 확장을 위해 하부 체성마저 허물어짐 | | 광희문(1890년대) 1928년 보수비가 없다는 사유로 혜화문과 함께 문루 훼철되고, 1975년 문루 복원됨 | | 창의문(1890년대) | | 소의문(1905년) 1914년 일본의 조선총독부에 의해 경매에 부쳐지며 훼철 |
○ 도성은 군사시설이었지만 도성 사람들에게는 일상 삶의 터전으로 문학과 예술의 주요 소재가 되고, <순성(巡城)> 등 놀이의 무대가 되기도 함
■ 겸재 정선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내사산과 도성과 성문의 아름다운 모습
필운상화(弼雲賞花) : 1750년(영조 26) 경, 개인소장
■ 겸재 정선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내사산과 도성과 성문의 아름다운 모습
인왕제색(仁王霽色) : 1751년(영조 27) 경, 리움미술관 소장
동문조도(東門祖道) : 1746년(영조 22), 이대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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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조사연구- 한양도성연구소에서는 그동안 이루어 졌던 연구 성과와 자료를 모으고 오늘날의 한양도성 안팎 마을을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 한양도성 관련 연구 및 문헌, 사진, 그림 자료 등을 수집, 정리하는 일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양도성전시관 전시- 한양도성전시관은 서울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한양도성을 서울시민과 국내외 방문객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상설전과 특별전 개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한양도성 교육프로그램 운영- 시민들이 한양도성에 대해 잘 이해하고 관심과 흥미를 갖도록 한양도성에 대한 학술행사와 여러 가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총 4개 코스(낙산코스, 북악산코스, 인왕산코스, 남산코스) '서울 한양도성 탐방'은 1회 신청 시 4개 코스가 4주에 걸쳐서 진행된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출발하여 흥인지문, 낙산공원을 거쳐 혜화문에서 마무리하는 낙산코스(A)와 혜화문에서 출발하여 와룡공원, 숙정문, 북악산을 거쳐 창의문에서 마무리하는 북악산코스(B), 서대문역에서 출발하여 경교장, 인왕산, 윤동주 문학관에서 끝나는 인왕산코스(C), 장충단공원에서 시작하여 남산N타워를 거쳐 숭례문에서 마무리하는 남산코스(D)로 준비되어 있다. 연결하면 서울 한양도성을 한 바퀴 완주하는 셈이 된다 탐방코스 A 동대문역사관→이간수문→청계천 오간수문 터→흥인지문→낙산→삼군부 총무당→혜화문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동대문역사관) ➊번 출구 B 혜화문→와룡공원→숙정문→북악산→창의문 4호선 한성대입구역 ➎번 출구 이용→ 혜화문 앞(*신분증 지참) C 서대문역→경교장→홍난파 가옥→딜쿠샤 집→인왕산→윤동주 문학관 5호선 서대문역 ➍번 출구 D 장충단공원→수표교→장충체육관 뒤편 신당동 한양도성길→반얀트리 서울 →국립극장→남산→봉수대→백범광장→숭례문 3호선 동대입구역 ❻번 출구(사각정)
성북구 제1회 한양도성문화유산축제 ‘풍류순성(風流順城)’ 5월11일~12일 700년 겹겹이 쌓인 한양도성을 걷다보면 풍치 있고 멋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역사를 담은 도성! 사람을 품은 도성! 마을 키우는 도성! 제1회 한양도성문화유산축제 ‘풍류순성(風流順城)’ The 1th HanYang City walls festival of SeongBuk ‘Walking Tasteful City walls’ ▮ 5월11일 토요일 09:00 ~ 12:00 ▮ 5월12일 일요일 13:00 ~ 19:00 ▮ 한양도성 성북구 구간 (삼선동 장수마을 ~ 성북동 북정마을) [ 역사 ] 해설 탐방 ▯ 인문, 지리, 향토사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며 가족, 친구, 연인이 함께 걷는 올레길 [ 체험 ] 사생대회, 편지쓰기, 보물찾기 ▯ 역사문화유산 자녀교육의 체험 : ‘한양도성 어린이 사생대회’ (혜화문) ▯ 역사문화유산 유실구간 편지전시 : ‘한양도성에게 말을 걸다’ (혜화문 옆 유실구간) ▯ 역사문화유산 보물찾기 : ‘성곽마을 보물찾기’ (삼군부 총무당 : 삼선어린이공원) [ 공연 ] 성곽마을주민과 예술가들의 문화예술 두레 향연 ▯ 스토리텔링 : 삼선동 장수마을 주민 (영용균/유성주 이외2명) 성북동 북정마을 주민 (황남현 내외/백현정 이외5명) ▯ 공연 : 하땅세(극단), 서울괴담(극단), 친구네옥상(다원예술), 프락시스(교육극단) ▯ 음악 : 모리슨 호텔(싱어송라이터), 최용석/박희원(판소리), 이근석(대금연주) 성북구는 서울시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기념하며 한양도성 성북구 구간의 아름다운 전경과 함축된 의미를 나누며 함께 즐기기 위해 지역 주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제1회 한양도성문화유산축제 ‘풍류순성(風流巡省)’을 개최한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복원과 활용을 위하여 ‘한양도성 보존. 관리. 활용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한양도성도감」을 신설하고, 「한양도성 박물관」 및 「한양도성연구소」를 설립하여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목표로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성북구는 성곽마을 주민 활동과 풍부한 문화예술 자원을 연결하여 서울시 한양도성 구간 중 가장 걷기 좋은 환경을 조성중이다. 특히 이번 축제를 주관하는 성북문화재단은 2012년 10월 <성북진경 페스티벌>에서 ‘도성을 거닐다’라는 한양도성 역사문화예술 탐방 프로그램을 실행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2013년 5월 12일 제1회 한양도성문화유산축제 ‘풍류순성(風流巡省)’에서는 서울을 대표하는 한양도성 문화유산 축제 모범사례를 가꾸어 나갈 예정이다. 이번 제1회 한양도성문화유산축제 ‘풍류순성(風流巡省)’은말 그대로 한양도성 성북구간에서 ‘풍류(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 와 ’순성(도성을 돌며 경치를 감상하고 소원을 빌던 놀이)‘을 경험하자는 취지로서 오늘날 바쁜 현대인에게 도성에 얽힌 선조들의 흔적과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역사를 담은 도성] [사람을 품은 도성] [마을을 키운 도성]이라는 이야기로 준비되어지고 있다. [역사를 담은 도성] 5월11일(토) 오전 9시부터 도성과 마을, 자연(풍경) 속에 깃든 역사, 인문, 지리, 향토사 등의 해설을 들으며 걷는 탐방 프로그램으로서 「삼군부총무당(삼선어린이공원) - 낙산공원 – 장수마을 – 혜화문 – 유실구간 – 성북쉼터 - 와룡공원 - 북정마을」코스로 이어져 진행된다. [사람을 품은 도성] 5월12일(일) 오전 11시부터 한양도성 유실구간 초입의 혜화문 앞에서 ‘갤러리 버튼(대표:함성은)’과 함께 한양도성 어린이 사생대회와 유실된 한양도성에게 편지를 쓰고 붙임으로써 잃어버린 기억과 흔적을 기념하는 특별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아이들과 가족들의 사전접수를 받아 진행 된다. (문의 02-929-0883 성북구민여성회관) [마을을 키운 도성] 5월 12일 오후 2시부터 삼군부 총무당(삼선어린이공원)에서 출발하여 「삼선동 장수마을-유실구간 – 성북동 북정마을」로 진행되며 특히 주목할 것은 성곽마을주민과 예술가들이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참여한다는 것이다. 성북동 성곽마을에서는 북정마을 주민과 자칭 북정마을상주극단 「서울괴담(대표:유영봉)」 과 「친구네 옥상(대표:한관희)」이 함께 ‘북정마을이야기’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발표하며 연극, 퍼포먼스, 노래, 사물놀이 등의 다양한 공연을 선보인다. 그리고 삼선동 성곽마을에서는 삼선동 거주 극단 「하땅세(대표:윤시중)」가 장수마을 거주 단원과 주민들이 함께 성곽 길과 마을 곳곳에서 연극, 인형극, 국악 연주 등을 펼치며, 장수마을 아이들과 「교육극단 프락시스(대표:김지연)」가 함께 ‘성곽마을 보물찾기’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며 다양한 주민_예술가 협력 프로젝트를 펼칠 예정이다. ※ 성북문화재단 페이스북: fb.com/seongbukculture 풍류순성 페이스북: fb.com/pongryu 풍류순성 트위터: twitter.com/pongryu 문의 02 929 0833 성북구민여성회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