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Renaissance] 2
전통과 혁신의 수레바퀴
2. 중세적 사고가 무너지기 시작하다 _ 르네상스 이전 - 2
A. 신 중심의 세계관이 흔들리다
▲ [네덜란드 속담] 피테르 브뢰겔,1559년, 오크패널에 유채, 117 x 163 cm, 베를린 시립미술관
B. 농노 (農奴 ; serf)의 굴레를 벗어나
㈎ 중세 봉건사회의 변화
8-12세기 사이의 서유럽의 정치적‧경제적 구조는 지역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공통점을 지닌다. 정치적으로는 지배층 사이의 관계에서 봉토를 매개로 하는 주종관계가 일반화되었다. 이것은 광대한 토지를 정복한 군사적 지배자가 그의 부하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는 대신, 그 댓가로 자신에 대한 군사적 충성을 요구하는 관행으로서 봉토를 수여한 주군과 그 봉토를 받은 봉신간의 관계는 봉토와 충성을 주고 받는 쌍무적 계약관계인 셈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재분봉의 형태를 통해서 말단의 지배계급에게도 적용되었다.
봉토는 단순한 토지가 아니라 그 토지에서 삶을 영위하는 농민들도 포함했다. 따라서 봉신은 자신의 봉토에 살고 있는 일반 민중까지 지배할 수 있었다. 여기서 지배계급과 농민 사이에 지배예속관계가 성립하는데, 역사가들은 이러한 관계를 농노제라 부르고 있다. 농노제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관계로서 지배계급이 농민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농민의 잉여물을 수탈, 자신의 소득원천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경제적 지배예속관계의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농노제란 지배계급인 영주가 농민에게 경제외적 강제를 행사하여 그 결과 농민에 대한 잉여수탈이 이루어질 때 양자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 8-12세기의 농경지 가운데 특히 영주 직영지가 발달되어 있다. 이 경우 특히 영주에 대한 농민의 예속은 철저한 편이었다.
Ⓑ 12세기 이후 농노제는 점차로 그 성격이 변화한다. 장원의 경우 영주의 직영지가 축소되고 농민보유지의 비율이 증대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장원을 순수장원이라 한다. 이러한 변화의 궁극적인 원인은 11세기 전후의 농업생산력의 발전에서 찾아야 한다. 새로운 농업기술이 보급될 경우 영주의 직영지 경영은 갈수록 비현실적인 것임이 드러난다. 영주들은 직영지 경영을 축소하고 그것을 주로 농민에게 임대하는 경향이 높았는데, 이에 따라 영주가 농민에게서 받는 봉건지대 가운데 생산물지대나, 특히 화폐지대의 비중이 높아졌다. 노동지대의 소멸은 곧 농민에 대한 영주 지배력의 약화를 의미한다.
순수장원 아래서 농민의 일부는 잉여물을 축적할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농민층 사이에도 경제적 분화와 편차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농민잉여의 발생은 그 잉여물의 교환장소인 시장의 발전을 가져왔다. 12세기 이후 유럽 각지에서 중세도시가 발전하고 있는데,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십자군 원정 이후 재개된 원격지무역에 힘입었지만, 일차적으로는 농업생산력 발전에 따른 결과이기도 했다. 도시민들은 원래 중세 봉건사회의 질서에 순응하지 못한 한계인 (사회적 일탈자)들이었으나, 점차로 농촌에서 이주하는 사람들에 의해 급증했다. 지대를 둘러싼 영주와의 오랜 투쟁을 거쳐 중세도시는 자치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도시 또한 영주의 지배에서 벗어났음에도 그들 자신의 조직과 질서는 여전히 중세적이었다.
Ⓒ 14-15세기의 인구감소, 화폐기근과 영주의 화폐욕, 영주반동, 지대를 둘러싼 영주-농민간의 투쟁, 농민난, 지주-소작제의 성립 등으로 해체된다.
㈏ 근대화란 무엇인가
지속적인 인구증가를 가능케 할 만한 경제규모의 팽창 (즉, 경제성장률>인구증가율)이 이루어진 사회로의 이행을 근대화로 간주한다. 이 경우 근대화란 공업화이다. 한편 전통적인 사회경제사학에서는 근대화는 곧 자본주의화이다. 이 경우 근대화는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내포적 발전, 사회적으로 부르주아지와 노동자계급이라는 양대계급의 발전, 정치적으로는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지배(시민민주주의)가 확립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가능케 하는 사회경제구조의 변화 또는 자본주의사회로의 이행, 이것들은 16세기 이후 특히 서유럽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비롯되었다. 근대사에서 서유럽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비교우위를 갖게 된 것은 이곳에서 최초의 근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1) 서유럽의 특이성
Ⓐ 봉건제와 수탈
경제적인 관점에서 한 사회의 성장은 그 사회가 생산한 잉여자원을 어느정도,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회적 생산에 투하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전근대사회가 전반적으로 정체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생산력의 낙후로 말미암아 잉여생산이 보잘 것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잉여생산물마저도 대부분 지배계급의 낭비적 소비에 충당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적 전제군주사회와 다르게, 서유럽의 경우 봉건제 자체는 지방분권적인 다양한 세력들로 분열되어 있었으므로 개별 지배세력의 힘만으로 직접생산자에 대한 효율적인 수탈을 감행하는 데에는 제약이 뒤따랐다. 유럽에는 몇몇 고딕식 건물을 제외하면 지배계급의 거대한 건축문화나 토목공사의 유적이 별로 없다.
Ⓑ 농노제 해체
서유럽에서는 봉건지배세력의 경제적 기반인 농노제가 14, 15세기에 해체국면에 들어갔다. 11세기 이후 농업생산력 발전으로 농민층의 분화와 아울러 농민잉여의 가능성이 증대되었다.(순수장원시대의 농민경제의 다양화와 화폐취득) 또 시장과 원격지무역이 발전하면서 동방상품이 유입되고 전반적으로 영주의 화폐지출이 높아졌는데, 농노제의 비효율성을 감안하면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영주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었다. 더욱이 14세기 중엽 흑사병의 만연에 의한 인구격감(전 유럽인구의 1/3 감소)은 영주경제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 영주경제의 위기에 영주들은 첫째, 중소영주들은 직영지경영을 축소하고, 그것을 임대하거나 또는 자신이 직접 날품팔이농민을 고용하여 상업적 농업으로 전화했다. 이 경우 농업부문의 생산관계는 지주-소작제 내지 원시적 형태의 농업자본주의이다.
둘째, 대부분의 대영주들은 수입증대를 위해 직영지경영을 확대 강화하고 기존의 농민 노동력에 대하여 노동지대를 높힘으로써 착취를 강화했다. 그 결과는 농민의 도망, 생활수준 저하로 인한 사망률의 상승, 대규모 농민난의 발생 등이었다. 대영주들은 이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직영지 경영을 축소하고 그것을 소작으로 내주는 일뿐이었다. 요컨대 14, 15세기에 농노제는 해체되고, 그 대신에 지주-소작제, 독립자영농제, 농업자본주의 등 여러 경영형태가 농업부문에 병존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여러 경영형태의 병존은 농촌사회에 활력을 가져왔으며, 농민잉여 가운데 이전보다 더 많은 몫을 농민에게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 민족국가들의 경쟁과 문화접변
▲ 루이14세 (Louis XIV ; 1638.9.5~1715.9.1) ▲ 베르사유 광장
유럽은 봉건제 붕괴 이후 민족국가들이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국가도 달랐을 뿐만 아니라 문화 또한 다양했다. 이 결과 서유럽 각국은 상호간에 문화적 충격과 문화접변에 의한 변화의 과정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16세기 인쇄술의 보급과 더불어 각 지역에서 경쟁적으로 축적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다른 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것은 또 다른 지식과 정보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경쟁적인 민족국가들의 병존이 서유럽 문화일반의 발전을 가속시켰던 것이다.
2) 초기자본주의 발전
Ⓐ 16, 17세기 서유럽경제
16세기는 인구증가, 가격상승, 대서양 및 동방무역의 활발한 전개가 이루어졌던 시기이다. 반면, 17세기는 인구정체, 가격하락이 두드러진 시기이다. 그러나 17세기 경제적 침체의 예외지역이 있었는데, 그것은 영국과 네덜란드 등 북서유럽이었다. 16세기 국제무역이 활성화하면서 유럽과 비유럽세계의 상품교환에서 유럽인의 주요 환금 공산품은 모직물이었다. 국제무역을 주도한 나라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었지만, 모직물공업은 이들 지역보다는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발전했다.
▲ 중세 프랑스의 한 상점 ▲ 중세 베네치아 모습
Ⓑ 자본주의(capitalism)의 개념
단순히 생산기술 차원에서 자본을 사용하는 생산방식 또는 우회생산(roundabout production)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역사 속에서 생성‧발전하는 특정한 사회경제체제를 의미한다. 자본주의가 특정한 사회경제체제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사용된 것은 188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3) 근대 서구에서 ‘근대성’의 문제
16세기 이후 서구에서 전개된 새로운 문화적 변화는 분명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발전과 자본주의사회의 발전이라고 하는 경제 및 사회구조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따라서 16세기 이후 서구문화의 기본적 성격은 자본주주의 추진주체인 부르주아지의 형성과정에 의해 어느 정도 규정받으며, 그 문화의 ‘근대성’ 또한 부르주아적 세계관과 비슷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 형성과정에는 전통적인 귀족문화와, 그리고 이행기에 그들의 삶의 외연을 확장시켰던 일반 민중의 문화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5,16세기에 그 맹아가 나타나고 19세기에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난 근대서구문화의 기본적인 요소들로는 흔히 개인주의, 합리주의, 세속주의(비경건성), 자유와 관련된 여러 가치들(자유‧독립‧자존‧자조‧경쟁)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은 16세기 이래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 시민혁명 등의 일련의 역사적 경험들을 통하여 서구문화의 이면에 분명하게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 1500년대의 유럽지도
Ⓐ 개인주의(個人主義, individualism)
㉠ 개인의 함몰 _ 영웅 · family
서구문화에서 개인주의 요소는 근대사회 성립 이전만 하더라도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으며, ‘개인’의 정립에 긴요한 제반 관념들 (예를 들어 자유‧자율‧자조‧독립 등) 또한 맹아적인 형태로만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로마사회에서는 자유로운 시민들도 종족단체에 함몰되어 있었고 오직 소수의 지배자와 영웅들만이 역사 속에서 그들의 개성을 표출하였을 뿐이다. 중세에도 개인은 의미가 없었다. 활동영역이 넓었던 도시에서조차 상인이나 수공업자들은 제각기 동업조합 (guild)의 규제 아래 생활하였으며 그 밑에서 일하는 직인이나 도제들은 마스터의 가족의 일원으로 간주되어 독립적인 인격을 갖지 못했다.
▲ 로빈 후드 (2010)
㉡ 개인의 출현
중세 말에 이르러 봉건적 지배와 촌락공동체적 규제와 길드적 통제가 점차로 약화되면서, 그와 함께 개인이 사회의 전면에 부상하기 시작했다. 농촌에서는 농노제의 질곡에서 풀려난 해방농민(즉 자영농민)이, 도시에서는 길드의 통제권 외부에 있는 소영업자들이 그 나름의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부를 축적하여 후일 부르주아지라고 하는 새로운 사회세력 내지 계급을 이루었으며 근대 자본주의경제의 추진주체가 되었다.
소상품생산자와 부르주아지가 다같이 거대한 사회세력으로 성장하였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독자적인 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했던 시기에 개인의 문제는 그들의 사회적 상승 및 그 상승을 위한 투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세속적이며 영리를 추구하는 소상품생산자들(혹은 부르주아지)은 그들의 삶의 실천과정에서 그 삶을 반영하는 여러 관념 및 가치체계를 발전시켰다.
▲우신예찬
그것은 개인을 `자율적’ 존재로 간주하는 새로운 인간관으로 나타났다. 이제 인간은 신 앞에 선 인간, 숙명을 받아들이는 인간, 집단속에 함몰된 인간이 아니라 그의 삶을 그가 책임지는 인간으로 전화했다. 16세기의 르네상스 휴머니즘과 종교개혁, 그리고 자연법적 사회이론 등에서 개인을 자율적 존재로 인식하는 이 새로운 인간관을 발견할 수 있다.
㉢ 르네상스와 휴머니즘
르네상스 인문주의문화가 정태적이고 변화저항적인 농촌이 아니라 세속적 인간활동의 중심무대였던 도시 속에서 나타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원래 인문주의(humanism)의 어원은 중세 대학의 고전교과를 지칭하는 것이었으나(human- itatis), 16세기 이 고전학자들(휴머니스트)들이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재해석하여, 인간중심적인 요소들과 인간의 개성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주의 또는 인문주의라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이러한 활동은 바로 중세의 질곡에서 서서히 풀려나기 시작한 그 ‘개인’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이것은 개성과 세속주의는 르네상스 문화 전반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페트라르카의 연애시, 마키아벨리의 세속정치, 에라스무스의 풍자, 다빈치의 팔방미인적 재능은 모두가 개인의 삶을 중시하며 개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그 시대 사람들의 잠재적 열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 3대 천재 중 한 사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모나리자’.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작품과 아이디어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프로테스탄티즘에서 개인의 문제
개인주의 요소는 루터나 깔뱅의 새로운 종교관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루터는 구원의 문제를 성사가 아니라 개인의 양심과 관련된 것으로 간주한다. 이제 구원은 한 개인이 그의 내면에서 신을 따르고 있는가라는 문제 (즉, 내면적 신앙)에 달려있다. 이러한 교설은 깔뱅에 이르러 예정설이라는 극단적인 도그마로 전화하였지만, 존 번연(John Bunyan)의 天路歷程The Pilgrim's Progress에서 가족을 버리고 개인의 문제로 귀착되었던 것이다.
▲성 도미니크
Ⓑ 합리주의(合理主義, rationalism)
㉠ 자연관찰자들
오늘날 ‘합리적’이란 말은 효율성을 지향하는 태도 내지 사고방식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합리주의는 이성(판단능력)에 의거하여 사물을 인식하는 태도를 뜻하지만, 원래 그것은 사물과 세계를 법칙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16, 17세기의 자연관찰자들의 태도에서 발전된 것이다. 중세에 자연은 우연과 섭리에 의해 지배받는 세계였다. 자연에 대한 관찰은 오직 자연에 작용을 가하는 신의 섭리를 이해하기 위한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7세기의 자연관찰자들은 자연 그 자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이것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자연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이윤증식을 꾀하려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 1564 ~ 1642), 뉴턴(Sir Isaac Newton, 1643~1727)을 비롯한 그 시대의 관찰자들은 자연과 인간이 어떤 법칙에 의해 운행되고 있으며, 그 법칙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녔다.
▲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Nicolaus Copernicus, 1473~1543)
㉡ 합리주의의 새로운 함의 _ ‘과학혁명’
17세기 새로운 자연관찰자들의 탐구는 ‘과학혁명’이라 불리울 만큼 새로운 지식의 축적을 가능케 했다. 이러한 합리적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태도는 그 시대의 사회관찰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이른바 사회과학을 탄생시켰다. 인간의 새로운 지식은 새로운 자신감과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창출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제 합리적 사고란 어떤 목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방법의 문제, 그 방법을 추구하는 태도를 뜻하게 된 것이다.
▲이탤릭체로 출판한 단테의 ‘신곡’(1502년).
Ⓒ 세속주의(世俗主義, secularism)
㉠ 비경건성
현실생활에서 중세적 경건성의 상실은 르네상스기 이래 분명한 경향으로 나타난다. 개인의 출현은 인간활동의 증대를 가져오며, 헤겔의 표현을 빌린다면, “현실적인 것”이 곧 “이성적인 것”이 된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새로운 직업윤리는 현실생활을 신의 소명으로 간주하나 그러한 인식의 변화 자체가 바로 경건성의 약화를 의미한다. 루터와 깔뱅의 교설은 신의 섭리로서의 직업의 신성성을 강조했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자신의 현세 직업의 성취를 신의 섭리로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중세 고딕건축과 회화의 현란함은 인간의 향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을 경외하고 신에게 귀의하기 위한 경건성의 발로였다. 16-18세기의 문화일반에 나타나는 화려함은 신에의 경배보다는 인간의 만족과 향락을 위한 것이었다. 르네상스예술과 건축의 정형성에서 벗어난 17세기 바로크(baroque) 건축양식과 예술은 바로 이 같은 경건성의 상실을 반영한다. 그것은 평면의 조화보다는 공간의 풍요함을, 질서보다는 개방과 풍만함과 역동성을 강조한다. 18세기 프랑스나 특히 독일에서 개화한 로코코(rococo) 양식의 특징은 이전 세기의 그것과 대조적이지만, 그것 또한 비경건성의 시대정신을 표현한다.
㉡ 귀족문화 · 부르주아지(Bourgeoisie) 문화 · 속물근성(俗物根性)
비경건성은 16-18세기의 귀족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이와 아울러 부르주아지의 생활양식과 그들의 문화일반도 귀족문화를 모방하는 가운데 비경건성을 더욱 강렬하게 표출하고 있다. 다만 이들의 문화는 귀족문화의 모방 속에서도 암묵적으로 부르주아지의 가치체계(특히 경쟁과 능력)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더욱 더 세속적이라 할 만하다. 16-17세기 절대주의시대의 귀족문화는 중세 봉건문화의 해체기에 봉건지배세력이 새롭게 모색한 세련된 문화이다. 그것은 바로크나 로코코양식에서 절정에 달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Il Principe》
그것이 이전보다 더욱 더 정교한 자기과시적 낭비성, 지적 현학성, 세련됨과 우아함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 있다. 바로크 및 로코코시대에 상층 부르주아들은 상승하는 소생산자의 생활에서 비롯된 단순한 생활양식을 곧바로 지양한다. 그러나 이같은 상층 부르주아지의 문화는 점차로 귀족문화를 모방함으로써 부르주아지로의 귀속의식을 배제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른바 정체성의 혼돈을 보여주는 것이다. 귀족문화의 향수자에게 그것은 속물근성(snobism)의 여러 양식으로 간주된다. 고전음악에서 낭만파음악으로의 전환, 영국 젠트리 문화의 여러 형태로 발전한다.
Ⓓ 부르주아[bourgeois]적 가치
▲우피치 미술관 기둥에는 메디치 가문이 후원한 20여 명의 쟁쟁한 문화예술인들의 실물조각이 봉안돼 있다.
①단테 ②미켈란젤로 ③다빈치 ④마키아벨리.
㉠ 자유(freedom, liberty)와 독립(獨立)의 가치(freedom) _ 열망
봉건사회에서 해방된 소생산자들의 자기발전과정은 상품생산과 분업과 경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시장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독립이며, 그러한 독립을 가능케 하는 것은 자조(self-help)와 자존이다. 자조와 독립을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조건은 그 사회 안에서 소생산자가 신체 및 영업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노동의 결과물을 자기 소유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 사회적인 평등도 그들의 열망의 주요 부분이다. 이러한 가치와 열망은 역사적으로 영국혁명기의 수평파의 강령이나, 프랑스혁명기 상퀼로트의 주장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나 19세기에 부르주아지가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이러한 소생산자 가치는 진보적인 성격을 상실한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간판 소장품인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10등신 몸매를 자랑하는 비너스의 모델이 된 여성은 당시 ‘피렌체의 연인’이란 별명을 갖고 있던 ‘시모네타’라고 전해진다.
㉡ 상품성 _ 대중문화(大衆文化, mass media)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관계는 사실상 상품관계로 전화한다. 문학과 예술 자체도 상품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고전주의예술만 하더라도 그것은 특정 부류만을 대상음로 삼았을 뿐 예술의 소비자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9세기 낭만주의 또는 사실주의 문학과 예술은 생산자-시장-소비자라는 상품관계의 구조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부르주아문화에 나타난 이같은 상품성은 그 이후 19세기말 이래 대중문화의 출현과 함께 더욱 더 심화되어 왔다.
2부 끝.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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