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르네상스

르네상스 2 - 2. 중세적 사고가 무너지기 시작하다 -1

草霧 2013. 5. 8. 13:31

 

 

 

 

 

 

 

르네상스 [Renaissance] 2

 

 

전통과 혁신의 수레바퀴

 

 

2. 중세적 사고가 무너지기 시작하다 _ 르네상스 이전 -1

 

 

 

유럽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일어난 문예부흥 운동으로, 과학 혁명의 토대가 만들어져 중세를 근세와 이어주는 시기가 되었다. 여기서 문예부흥이란 구체적으로 14세기에서 시작하여 16세기 말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인식과 재수용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르네상스는 일종의 시대적 정신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유럽은 르네상스의 시작과 더불어 기나긴 중세시대의 막을 내렸으며, 동시에 르네상스를 거쳐서 근세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내려는 운동으로, 그 범위는 사상문학미술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5세기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그때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야만시대,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파악하고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이 야만시대를 극복하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 운동은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이 운동은 곧 프랑스독일영국 등 북유럽 지역에 전파되어 각각 특색있는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근대 유럽문화 태동의 기반이 되었다.

 

볼테르는 1415세기의 이탈리아에 학문과 예술이 부활했음을 지적했으며, J.미슐레는 16세기의 유럽을 문화적으로 새로운 시대라고 하여 처음으로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문화단절론과 연속론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부정적 중세관이나, 19세기 낭만주의 역사가들의 긍정적 중세관은 다같이 5세기 전후 서구문화의 단절을 강조한다. 로마제국의 타락과 그에 따른 문화적 창조력의 쇠퇴기에 게르만족의 진취적영웅적 순수성이 이를 대신함으로써 그후 유럽문화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반면 연속론자들은 게르만사회 성립 이후에도 여전히 고대문화의 존속과 그 영향이 상당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A. 신 중심의 세계관이 흔들리다

 

medieval age

 

A.D. 3세기 이후 로마제국은 정치적으로 잦은 권력투쟁과 쿠데타, 지배계급의 방종과 사치, 경제적으로는 자영농민의 급속한 몰락, 노예제에 의거한 대토지경영의 쇠퇴, 인구감소 등으로 약화되었다.

 

한편 4-6세기에 걸쳐, 변경에서 원시농경생활에 종사하던 게르만족들이 연속적으로 남하하기 시작했으며, 게르만족의 이동과정에서 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유럽은 한동안 정치적 혼란과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었다.

 

이러한 혼란이 사라지고 중세사회의 원형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7-8세기 무렵의 일이다.

 

16세기 인문주의자(humanist)들이나 또는 18세기 계몽주의자들에게 5세기 로마제국 멸망 이후의 유럽사회란 통일적 제국의 부재, 도시문명과 상업의 쇠퇴, 자급자족적 경제생활, 야만과 미신의 지배로 점철된 시대처럼 보였다.

 

인문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로마(1시대)와 자신들의 시대(2의 시대)만이 진정한 문명을 이룩했다고 보고, 그 사이의 시대는 medium aevum이라 하여 무지와 야만이 지배한 시대로 간주했으며 그들의 문화를 gothic이라 불렀다.

 

 18세기의 계몽사상가들 또한 이성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중세의 가톨릭에 매우 적대적이었다. 이들은 인문주의자들의 중세관을 그대로 계승, 중세문화의 가치를 평가 절하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낭만주의 역사가들은 이러한 경향을 비판함과 아울러 중세문화에 대한 전면적인 재평가작업을 시도했다. 그들은 중세의 경건성경허전설민요기사도건축양식을 중시하고 그것이 유럽문화의 지배적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왔음을 강조한다.

 

중세인의 삶

 

빈약한 도구

 

나무(목재)와 쇠() 그리고 돌(석재)

 

중세는 목재의 세계이다. 당시의 기술로는 목재는 가공하기 힘든 재료였지만, 건축이며 선박이며 나무지붕 등 일상생활의 여러 부문에 쓰여졌다. 목재는 값비싼 재료였으므로 세속재산의 상징이 되었다. 카롤링 왕조 이래 철은 유럽인의 중요한 수출품이었다.

 

원래 철은 목재와는 달리 유럽에서는 매우 희귀한 금속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전해진 연금술 덕분에 중세 대장장이들은 철을 가공하는 기술을 습득했다. 그리고 그들이 제조한 상품들이 사라센제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칼은 소수의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일반 민중에게 철은 쟁기와 같은 나무의 보조재료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중세인의 물질생활에서 나무와 경쟁했던 것은 철보다는 돌이었다. 나무와 돌은 중세 건축에서 한 쌍의 기본재료였다. 건축가는 목수이자 석공이었고 건축노동자들은 목재와 석재 노동자들이라 불리었다.

 

 돌은 나무에 비해 일종의 사치품으로 여겨졌는데, 11세기 이래 대대적인 건축붐은 목조건물을 석조건물로 대체한 데서 비롯되었다. 큰 교회와 수도원건물이 석조로(로만네스크 및 고딕양식) 바뀌었으며, 개인의 경우에도 석조건물을 소유하는 것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농촌기술의 퇴화 _ 휴경

  

 

생존의 경제와 궁핍의 시대 _ ‘풍요의 나라를 동경

 

▲얀 반 에이크 작 '아르놀피니의 결혼'

하위징아가 중세의 가을에서 '가장 순수한 1 5세기 예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은 그림이다.

 

중세의 장원에서는 표준적인 한 가족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일정한 구획의 토지에 농민가족을 정착시키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이것이 바로 농민보유지(Manus) 또는 한 가족의 토지(terra unius familiae)이다. 물론 상층계급에게 생존은 이보다 더 큰 필요의 충족을 의미한다. 그들의 생존의 일부는 외국의 수입품으로, 다른 일부는 민중의 노동을 통해 제공된다.

 

 

노동은 경제적 발전보다는 오히려 생존과 민중의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망탈리테가 지배적인 한, 중세의 경제는 항상 극한상황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었다. 기아의 세계는 민중에게 친숙한 것이었다. 따라서 농민의 민요에는 포만의 꿈이 깃들어 있다. ‘풍요의 나라에 대한 꿈은 중세문학의 보편적인 주제가 되었다.

  

 

 

 

중세인의 세계관과 망탈리테 (mentalites)

 

숲의 이미지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1865>

  

  

유동성, 그리고 세계에 대한 시각 _ 마르코 폴로

 

▲마르코 폴로(Marco Polo,1254~1324) 〈동방 견문록 (1477)〉

 

영국으로 건너간 노르만인들, 동유럽을 개척한 독일 기사단, 십자군 전쟁기 스페인의 영지에 정착한 파리의 기사들은 모두가 그들의 고향을 쉽게 떠나 이동한 사람들이었다. 농민은 영주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시로 도망갔고, 고행하는 수도승이며 순례자들, 대학생과 유랑기사들의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유동성은 물질생활의 궁핍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고향에 집착할 만한 자산을 갖지 못했다. 계기만 있으면 미련 없이 고향을 떠나 먼 미지의 세계로 떠날 뿐이었다. 중세인들은 자연이 우주와 인간을 구성하는 4원소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했다. 중세인들이 생각한 지리적 세계는 이러했다.

 

 

물론 중세인들도 고대 지리학의 영향을 받아 지구가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믿었다. 유럽의 일부와 아시아 및 아프리카는 적대적인 이교도의 세계였으므로 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곳은 이슬람교도와 포악한 몽교족의 세계로 간주되었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1254~1324) 동방 견문록 (1477)의 여행은 이런 편견이 약화되는 시기에나 가능했던 것이다.

  

 

저승 - , 악마 그리고 천사들의 세계

 

 

기독교세계는 숲 속의 빈터라는 이미지처럼 폐쇄적이었지만 하늘에 대해서는 개방적이었다. 지상과 저승을 가로막는 장벽은 없었다. 그러나 대중은 육체적 형태의 신을 연상했다. 신에 대한 물질적 이미지는 유대교적 전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가 신학적 이미지를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신은 이제 봉건영주, 군주, 교황의 모습과 겹쳐졌다. 신인동형설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믿음이었다. 권위와 지배권을 지닌 이러한 신의 이미지 때문에 초기 기독교에서 나타나는 고난의 예수의 모습은 9-10세기에 이르러 점차로 변화를 겪고 있다.

 

수난의 상처는 지녔지만 심판자로서의 예수, 십자가 위에 있지만 왕관을 쓴 예수상으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중세의 경건성과 관련된 예수상은 이와는 다른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경허를 추구하는 수도사와 가난한 농민과 압박을 받는 피지배계급에게 그것은 구세주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마리아와 함께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지배적이었으나, 12세기 이후 그리스도는 고통스러운 모습, 수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십자가의 수난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에 맞서 천상과 지상에서 투쟁을 벌이는 이가 악마였다. 사탄은 중세초기만 해도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것은 11세기에 분명한 모습으로 자리잡는다. 그것은 봉건사회의 산물이다. 그것은 그의 앞잡이인 타락한 천사와 함께 충성서약을 어긴 불량한 봉신의 전형인 것이다. 중세인들은 각기 자신의 수호자 즉 천사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시간 (時計)

  

 

천년왕국 (千年王國 the millennium)의 꿈

 

 

생존의 경제에 매달려야 하는 중세인들은 그 고통을 천상에서의 구원으로 보상받을 수 있었지만, 그와는 다른 보상의 길이 있었다. 천년왕국에 대한 꿈이 바로 그것이다. 중세 초기의 정치적 혼란과 기근이며 대역병과 같은 파국이 반복될수록 이러한 꿈은 더욱 깊어졌다. 이러한 종말론적 환상이 강화되는 가운데 8세기경에 적그리스도의 환상이 완성된다. 이 같은 환상에서 중요한 점은 적그리스도와 그의 적 세계종말의 황제가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용되었고 성직자는 물론 민중의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다.

 

인식론 (Epistemology)

 

 

▲14세기 이탈리아 화가가 그린 토마스 아퀴나스의 벽화(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내부)

 

 

중세철학에서 인식론은 실재론(externalism)과 명목론(nominalism)으로 나뉜다. 실재론자들은 개별적인 존재보다 더 진실한 것은 보편적 전체라고 생각한다. 이에 비하여 명목론자들은 인간의 죄라 할 때 인간이라는 보편적 실재는 없고 개개인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 Raffaello Sanzio(1483~1520), The school of Athens(아테네학당), 1509, Fresco,

width at the base 770 cm, Stanza della Segnatura, Palazzi Pontifici, Vatican

 

기사문학

 

▲ 롤랑의 노래

 

  ▲ 니벨룽의 노래

 

중세 봉건제라고 하는 제도의 산물이자 지배세력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망탈리테(mentalites)이다. 기사도에서 덕목으로 나타나는 것은 충성, 기독교적 신앙, 용맹, 부녀자 및 약자에 대한 보호, 이단타도 등이다. 이러한 망탈리테(mentalites)는 봉건제 출현 이후 게르만적 전통과 사라센 이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서 봉건제 자체를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망탈리테(mentalites)가 봉건제를 지탱하고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중세건축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Abbey)

노틀담사원(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퀼른대성당(Cologne Cathedral)

 

 

 

(좌)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Westminster Abbey)

(우) 노틀담 사원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옆) 퀼른 대성당 (Cologne Cathedral)

 

 

 

 

 

 

 

 

 

 

 

 

 

 

중세 초기에는 돌을 다루는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다. 원래 게르만족들은 지중해세계와는 달리 커다란 석조건물 문화를 갖지 않았고 로마세계의 석조건축 방식은 혼란기에 사라졌다. 중세초기 사람들의 건물은 대체로 목조에 돌담벽을 쌓거나 또는 벽토를 바른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붕은 갈대를 베어이었다. 11세기 이후 대대적인 건축 붐이 일었으며, 이것은 중세사회의 안정과 인구증가, 그리고 농업생산력 발전 및 상업부활로 표현되는 중세경제의 번영과 직접 관련된다. 이 시기에 돌을 다루는 석공집단이 출현했는데, 그들은 국경을 넘어 이 공사장에서 저 공사장으로 이동하면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생활양식을 견지했다.

 

 

 

자유석공(Freemason) 조직인 로지(lodge)는 후일 비밀결사의 조직으로 활용되었다. 11세기 이래 대성당과 수도원, 영주의 성채들이 신축 혹은 개축되었다. 이 무렵의 건축들은 로마시대의 양식에 둥근 아치형의 회랑이 특징인 로만네스크식 건축이었다. 이 건축물들은 벽이 두껍고 창이 적어 하중이 무거웠으며, 따라서 건물높이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12세기 이후 높은 첨탑으로 이루어진 고딕양식이 유행했다. 이 양식은 게르만인의 숲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일까? 어쨌든 이 시기는 교회의 권위가 절정에 달한 시기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늘을 치솟아 오른 첨탑은 신학적으로는 구원에의 희구를 상징하는 것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의 지배와 권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중세의 건축가들은 고딕식건축을 축조하면서 높이 올라갈수록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에 봉착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첨탑의 높이에 비례하여 긴 창을 많이 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리창들은 성화와 스테인드 글라스와 모자이크 양식으로 꾸몄으며 그것들은 단순히 건축의 아름다움을 배가한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민중에게 기독교 교리를 교육할 수 있는 일종의 시청각자료인 셈이었다.

 

중세교회의 변화

 

 국교가 된 이후 교회의 최고수장은 황제였고 그 황제를 대신하여 4대교구(로마,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들이 실제로 교회를 관장했다. 로마교구가 4대교구 가운데 특별한 위치를 갖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로마는 제국의 정치중심지였고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순교지이며, 특히 로마교회 자체가 베드로가 순교한 곳에 세워졌다는 역사적 사실이 로마교구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케 만들었으리라고 추론할 수 있다.

 

국교화 이후 로마의 주교는 베드로의 후계를 자처하였고,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뒤로 로마교구의 주교(교황)는 동로마제국의 관할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권위를 갖게 되었다. 특히 프랑크왕국의 수장 클로비스가 로마주교의 권유로 집단개종을 했다든가, 피핀이 롬바르드를 점령하여 그 영토를 교황에게 기진하였고 또 그의 손자 샤를마뉴가 로마교황의 집전을 받아 서로마황제의 대관식을 가졌다는 것은 로마교회가 프랑크왕국의 정치력을 교회존립의 후견으로 이용했음을 보여준다.

 

                ▲성 도미니크

 

교회와 프랑크왕국의 이같은 상호관계가 없었다면 중세교회의 발전은 어려웠을 것이다. 로마교회는 교황 다마수스 1(366-84)때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레오 대교황(440-61)은 훈족 추장 아틸라를 설득시켜 로마에 대한 공격을 방지함으로써 그 권위를 높혔다. 6세기에는 수도원출신이 교황에 취임하여 교회의 정화를 시도했다.

 

구원관

 

교회는 현세의 구원이 아니라 내세의 구원, 달리 말하면 영혼의 구제를 강조한다.

 

구원은 일종의 제식행위인 성사(sacrament)를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이루어지며, 그 제식행위의 주관자가 바로 사제(성직자)였다. 사제의 권위란 바로 이러한 구원관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교회가 제도화한 7가지 성사(영세, 견진, 성체, 고해, 종부, 신품, 혼배)는 각기 독특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현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최후의 만찬을 상징화한 일종의 秘敎的 의식이었다.

 

성속(成俗)의 투쟁과 교회의 고뇌

 

중세초기에는 교황권이 프랑크왕국의 정치력에 의존하여 다른 게르만국가의 지배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였지만, 중세성기에 이르러서는 정신적 권위를 갖는 교황권이 세속적 권위인 왕권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교회의 이러한 자신감은 특히 11세기말 그레고리우스 7세의 자체개혁과 정화에서 힘입은 바 컸다.

 

이후 12시기와 13세기 초에 걸쳐 교황권의 권위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속권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교회의 세속화는 오히려 교회의 약화를 초래했다. 특히 프랑스, 영국 등의 국민적 통합이 가속화되고 왕권이 급속히 신장하면서 상대적으로 교황권은 점차 위축되었다.

 

▲롤라드파

 

 14세기 초에 성직자 과세문제를 둘러싸고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프랑스 필립 4세와의 투쟁에서 패퇴한 것은 교황권의 위축을 가속화한 결정적인 계기였다. 물론 지나친 세속주의에 대한 교회 내부의 비판 움직임도 간헐적으로 전개되었다. 교회의 역사에서 세속화에 대한 저항은 특히 수도원운동을 통해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수도원교단도 차례로 교회와 함께 세속화되었다. 수도원의 세속화에 반대한 새로운 신앙공동체 운동으로서 프란체스코교단이나 도미니쿠스교단과 같은 탁발승단이 조직되었지만, 이들도 후일에는 體制內化의 경향을 보여준다.

 

민중 신앙과 종교적 망탈리테(mentalites)

 

중세의 일반민중은 14-16세기 사이에 이단자들에 대한 종교재판 기록과 마녀재판 기록에 의거하여 중세말 일반민중의 종교적 망탈리테에 관하여 단편적인 면모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들 자료를 검토하면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중세말의 민중 가운데 상당수가 교회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또는 그것을 자의적으로 왜곡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란스 프랭큰 2. 악마의 연회. 캔버스. 1607

 

중세 말에 이단재판을 받은 사람들은 농민, 수공업자(특히 땜장이, 방앗간 주인 등), 가난한 과부 등 하층민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은 교회의 교리와 어긋나는 이설을 퍼뜨렸다는 죄목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때로는 화형당했다. 영국의 경우 이들은 롤라드파(Lollards)로 알려졌으며, 1401-1521년간 100명 이상이 화형에 처해졌다. 기독교가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민중은 기독교교리와 그들의 전통적인 토속신앙과 동방의 점성술과 본초학과 마녀신봉이 결합된, 지배계급의 종교관과는 상당히 다른 종교적 망탈리테(mentalites)를 가졌다.

 

이 시기의 민중 가운데 소수는 미지의 세계나 초월자에 관하여 신플라톤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모든 생명체는 정신에 의해 활력을 얻고 모든 피조물 가운데 기본적인 단일자가 존재하며, 정신과 물질간의 명백한 구별은 없다. 우주는 유기적 통일체이며 누적된 영혼으로 가득차 있다. 그들은 이런 인식 아래 相似(correspondence)表徵(signature)의 원리라고 하는 두 신앙체계를 통하여 세계를 해석했다. 이 결과 중세말의 민중은 기독교 교리와 토속신앙을 적절하게 결합하여 그들 나름의 지식체계를 수립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해몽술, 본초학, 점성술 등이었다.

 

마녀신봉과 마녀사냥

 

▲ 마녀사냥

 

마녀란 위와 같은 민중적 지식체계에 밝은 농촌의 지식인이었다. 자연의 지배에 무력할 뿐만 아니라 생존의 경제를 벗어나지 못했던 민중에게 그들의 지식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마법사는 충고조언산파부인병 치료점성술에 뛰어났고, 남자 마법사는 남자나 가축의 질병치료도둑탐지 능력 등이 있는 점성술사인 경우가 많았다.

 

악한 마녀에 대한 공포와 민중의 불행, 그리고 지배층의 정교한 상징조작 등 여러 요인이 겹쳐져서 14-16세기에 유럽 전역에서 대대적인 마녀사냥과 마녀재판이 있었다.

 

 

 

한 추정에 의하면 이 시기에 전 유럽에서 3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마녀로 몰려 처형당했다. 이러한 마녀재판은 궁핍했던 시대의 일반민중의 정서불안과 사회적 광기를 나타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불행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그것을 응징함으로써 감정의 정화작용을 가지려는 민중의 집단무의식의 발현이기도 했다. 더욱이 당시 교회와 지배세력은 이를 조장하고 재판을 주도함으로써 기존 질서에 대한 민중적 불만을 엉뚱한 곳으로 돌렸던 것이다.

 

오늘날 전설과 민담과 동화와 만화영화에서 등장하는 마녀의 인상은 마녀신봉과 마녀사냥의 시대에 형성된 일종의 환상이다. 음침한 동굴, 늙은 노파, 개와 고양이는 언제나 무수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그들은 그 시대의 거대한 광기와 지배세력의 상징조작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이었다.

 

▲ 잔다르크 

 

 

 

1부 끝.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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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erms.naver.com/entry.nhn?cid=3001&docId=266295&mobile&categoryId=3029

http://terms.naver.com/entry.nhn?cid=3001&docId=266919&mobile&categoryId=3032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르네상스 연대기 (1400 ~ 1600)

 

청동기 시대

(3650-1100 BC)

에게 미술

중세 미술

(500 ~ 1500)

중세 초기(Early Middle Ages, 476-1000)

중세 중기(High Middle Ages, 1000-1300)

중세 후기(Late Middle Ages, 1300-1453)

중세의 몰락(1453)

콘스탄티노플의 함락(1453)

인쇄기의 발명(1456)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1492)

종교 개혁(1517)

르네상스

고대 그리스

(1100-146 BC)

고대 그리스 미술 1

고대 그리스 미술 2

고대 로마

(753~476 BC)

로마 황제 연대표

고대 로마 미술 1

고대 로마 미술 - 2

 

비잔틴 제국

(476BC-1453)

 

비잔티움 황제 연대표

십자군 연대표

동방 정교회

라틴제국

비잔틴 미술 - 1

비잔틴 미술 - 2

성서의 가르침을 그림으로 읽는다. - 1

로마의 분할과 중세의 시작 - 1

서양 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 1

기독교 만 존재한다. - 1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신 보다, 인간의 호기심은 강하다

신이여! 구원하소서!

새로운 세기는 우연히 왔다.

중세 초기 미술

비잔틴미술

로마네스크 미술

고딕미술

 

 

 

 

아메리카 문명

(300~1533)

고대 아메리카 미술-1

고대 아메리카 미술-2

고대 아메리카 미술-3

아프리카 미술

(BC 3300~1800)

 

 

미술의 탄생

원시미술 -2

메소포타미아 미술

이집트미술

아프리카 미술-1

아프리카 미술-2

르네상스 (14 ~ 16C)

1. 르네상스(Renaissance)이 후대에 남긴 것

 

 

“3. 르네상스, 인간 중심의 세상이 열리다편에서 계속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