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밥 먹고 도시여행

과학문화재

草霧 2013. 4. 16. 11:57

 

과학문화재
 
50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이어진 우리의 과학기술

   

 과학 기술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서양의 것을 떠올린다.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과학 기술이 17세기 서양에서 크게 발달했고, 또 전세계가 철저하게 서양의 과학 기술을 배우고 발전시키려 애써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사라고 할 때에도 흔히 서양을 중심으로, 서양의 것만이 유일한 과학 발전의 역사인 것처럼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찍부터 농경과 중앙 집권적인 국가 체제를 발전시켜온 중국과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나름의 과학 기술 문명을 발달시켜왔고, 과학 기술의 발달이 근대 서양에서 일어나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 문화유산 가운데에도 서양의 것보다 더 일찍부터 과학적이며 창조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것들이 적지 않다.

서울 남산 봉수대지 | 경주 석빙고 | 경주 첨성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비파모양 청동검과 청동거울, 일본에까지 전해준 철기 문화, 신라시대의 석굴암, 청동 범종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고려시대의 금속활자, 청자 제조 기술, 화약과 화포 제조 기술, 특히 조선 왕조 초기인 세종 때에 일구어낸 여러 가지 과학적인 업적 은 그 양과 질에서 볼 때 유례없는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서양 과학 기술이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 전통은 중국 문명으로부터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경우 중국의 과학과 기술은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자연과 기후, 풍토에 어울리는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했고, 또 그런 과학 기술의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것들은 창조적인 과학 기술 능력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히려 근대화를 거치면서 우리 조상들의 발달된 과학을 계승, 발전시키지 못했다. 꾸준히 발전하던 우리의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스스로 독특한 기술을 만들어 내기보다 막강한 힘으로 밀고 들어온 서구 기술을 뒤쫓아 가기에 바빴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부지런히 50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이어진 우리의 과학 기술의 문화 전통 속에 담긴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를 찾아 배우고 익혀, 이를 바탕으로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 지속 발전 가능한 미래의 과학을 개척해 나갈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서울 남산 봉수대지(서울기념물 제14호)

서울 남산에 있는 경봉수는 남산의 옛 이름을 따 '목면산 봉수' 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왕이 있는 서울의 도성에 위치하여 매일 보고되는 전국의 봉수 정보를 신속히 보고 받아 왕에게 종합 보고하는 역활을 하였다.
탐방하기지역보기-(서울기념물 제14호) 서울 중구 예장동 8-1
 
경주 석빙고(보물 제66호)

빙실의 규모가 폭 5.85m, 길이 19.8m, 홍예 높이 약 4.73m 규모로 가장 큰 규모이다. 남쪽에 마련된 출입구는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가게,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은 경사지게 되어 있으며, 바닥 중앙에 배수구를 두었다. 아치형 지붕에는 3곳에 환기통을 마련하여 바깥 공기와 통하게 하였다.
탐방하기지역보기-(보물 제66호) 경북 경주시 인왕동 449-1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다. 천체 관측과 관련한 건축물로서 매우 아름답고 과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첨성대를 이룬 돌 하나하나가 천문과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국보 제31호)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창경궁 관천대(보물 제851호)

화강석으로 5단을 쌓은 장방형의 석축(가로 2.4m, 세로 2.3m) 위에 갑석을 두르고 갑석 네 귀퉁이에 홈을 파서 기둥을 박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판석을 둘러 돌난간을 꾸미고, 대의 한 가운데에 허리가 잘록한 네모난 돌(간의대석)을 놓은 천문 관측 시설(높이2.2m)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보물 제851호) 서울 종로구 와룡동 2-1
 
진천 농다리(충북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

전천읍에서 남쪽 방향에 위치한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 세금천을 가로지르는 진천 농다리는 정확한 축조 시기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현존하는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경 봉암사 대웅전 왼쪽에는 봉암사의 창건주인 지증대사의 부도와 부도비가 있다. 지증대사 부도는 통일신라 하대에 세워진 대표적인 부도들과 마찬가지로 규모가 크고 돋을새김의 조각이 아름답다. 지증대사가 입적한 직후인 883년에 세웠다.
탐방하기지역보기-(충북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135번지
 
서울 수표교(서울유형문화재 제18호)

수표교'란 이름은 수표 곧, '수중주석표'라는 말에서 생겨났다. 수표교는 조선시대 500여 년 동안 물길을 건너는 교통 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홍수의 조절을 위해 수량을 재는 역활을 했던 중요한 다리였다.
탐방하기지역보기-(서울유형문화재 제18호)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인근 성동천
 
순천 선암사 승선교(보물 제400호)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무지개다리 가운데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한 곡선미를 지닌 다리로 꼽힌다. 크기에 대소의 차이가 있을 뿐 축조 방법이나 겉모습에는 큰 차이가 없는 작은 무지개다리와 큰 무지개다리 두 개가 있는데, 이 가운데 큰 무지개다리가 보물 제400호로 지정된 승선교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보물 제400호) 전남 순천시 승주읍 신성리 산 802
 
강진 고려청자 도요지(사적 제68호)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 말인 9~14세기까지 600여 년간 청자를 굽던 전남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우리나라 청자 문화를 꽃피운 아주 특별한 고장으로, 우리나라 청자의 변화 과정을 일복 요연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68호)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117번지
 
광주 조선 백자 도요지(사적 제314호)

분원리 가마터였던 분원초등학교의 뒤편에는 여러 종류의 조선 백자와 가마터 발굴 당시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는 분현도자박물관이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314호) 경기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116번지
 
경주 성덕여왕 신종(국보 제29호)

신라 혜공왕 때인 771년에 주조된 것으로, 본래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으나 자신의 대에 완성을 보지 못하고 아들인 혜공왕 때 완성을 보았는데, 처음에 봉덕사에 달아두었다 하여 봉덕사 종이라 부르기도 하고, 전설에 따라 에밀레종이라고도 부르는 그 종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국보 제29호) 경북 경주시 인왕동 118
 
오대산 상원사 동종(국보 제36호)

신라 성덕왕 때인 725년에 만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다. 성덕대왕 신종보다 제작 시기가 45년이나 앞선다. 높이 1.67m, 입지름 91cm로 성덕대왕 신종보다 작은 규모이지만, 조각 장식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 종소리도 매우 아름다워 범종의 걸작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탐방하기지역보기-(국보 제36호)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산 1

  

 

'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 > 밥 먹고 도시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궁궐탐방  (0) 2013.04.19
동학농민운동의 자취 탐방  (0) 2013.04.18
근대 교통  (0) 2013.04.16
근대교육의 현장  (0) 2013.04.15
구한말 역사의 현장  (0) 2013.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