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은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에 따라 개항되었기에, 일찍부터 외국의 문물을 배울 필요성을 감지하였다. 이에 원산 주민과 관리들이 힘을 모아 학교를 세웠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세워진 근대식 학교, 원산학사(1883년)이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과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나라에서도 외국어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외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동문학(1883년)과 육영공원(1886년)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근대식 학교가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것은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서이다. 배재학당(1886년)과 이화학당(1887년) 등이 그런 예였다. 이들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가 등장하자, 정부 또한 이에 자극을 받아 1894년 교육을 통해 나라를 일으킨다는 ‘교육 조서’를 발표하여 소학교, 사범학교 등의 근대식 학교 제도를 만들었다. 새로운 학교 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한성사범학교가 설립(1895년)된 것도 이때이다.
이후 각종 관립학교가 설립되는 한편으로, 우리의 교육을 외국인의 손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뜻을 가진 애국 계몽주의자들이 앞장서서 학교 세우기 운동을 벌여나갔다. 이들은 기호흥학회, 호남학회, 서북학회, 관동학회 등 지역별로 학회를 설립하며 교육을 권장하고 학교 설립을 추진하였으며, 이와 같은 사립학교 열풍으로 1910년 한일합방 무렵에는 전국에 무려 5000여 개의 사립학교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 민족 교육을 담당하던 사립학교는 한일합방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절반 정도 문을 닫았고, 일제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었다. 태평양전쟁 이후로는 사립학교를 강제 폐교, 개명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구한말 개화기 이후 일제에 의한 강점이 점차 노골화되면서 끝내 국권 상실이라는 치욕과 좌절의 겪는 와중에서도, 우리 애국 선조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것은 ‘학교’라는 끈이었다. 100년 전 설립된 근대식 학교는 애국 계몽가들의 꿈과 희망이 총집합된 공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학교 건물들 가운데 몇몇은 100여 년의 오랜 세월을 굳건히 견디어 우리에게 근대화 초창 시기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주고 있다. 국권 상실이라는 좌절 속에서도 희망의 끈으로 남았던 근대 교육의 현장을 찾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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