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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교육의 현장

草霧 2013. 4. 15. 12:58

 

 

근대교육의 현장
 
국권 상실이라는 좌절 속에서도 희망의 끈으로 남았던 근대 교육
 
19세기말 서양 세력이 밀려오자 조선의 교육 제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유교를 가르치는 이전의 학교와는 다른 새로운 교육 기관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원산은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에 따라 개항되었기에, 일찍부터 외국의 문물을 배울 필요성을 감지하였다. 이에 원산 주민과 관리들이 힘을 모아 학교를 세웠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세워진 근대식 학교, 원산학사(1883년)이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과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나라에서도 외국어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외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동문학(1883년)과 육영공원(1886년)을 세우기도 하였다.
    
구 서울대학교 본관 | 고려대학교 본관 | 중앙고등학교 본관그러나 우리나라에 근대식 학교가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것은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서이다. 배재학당(1886년)과 이화학당(1887년) 등이 그런 예였다. 이들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가 등장하자, 정부 또한 이에 자극을 받아 1894년 교육을 통해 나라를 일으킨다는 ‘교육 조서’를 발표하여 소학교, 사범학교 등의 근대식 학교 제도를 만들었다. 새로운 학교 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한성사범학교가 설립(1895년)된 것도 이때이다.

 

이후 각종 관립학교가 설립되는 한편으로, 우리의 교육을 외국인의 손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뜻을 가진 애국 계몽주의자들이 앞장서서 학교 세우기 운동을 벌여나갔다. 이들은 기호흥학회, 호남학회, 서북학회, 관동학회 등 지역별로 학회를 설립하며 교육을 권장하고 학교 설립을 추진하였으며, 이와 같은 사립학교 열풍으로 1910년 한일합방 무렵에는 전국에 무려 5000여 개의 사립학교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 민족 교육을 담당하던 사립학교는 한일합방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절반 정도 문을 닫았고, 일제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었다. 태평양전쟁 이후로는 사립학교를 강제 폐교, 개명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구한말 개화기 이후 일제에 의한 강점이 점차 노골화되면서 끝내 국권 상실이라는 치욕과 좌절의 겪는 와중에서도, 우리 애국 선조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것은 ‘학교’라는 끈이었다. 100년 전 설립된 근대식 학교는 애국 계몽가들의 꿈과 희망이 총집합된 공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학교 건물들 가운데 몇몇은 100여 년의 오랜 세월을 굳건히 견디어 우리에게 근대화 초창 시기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주고 있다. 국권 상실이라는 좌절 속에서도 희망의 끈으로 남았던 근대 교육의 현장을 찾아가보자.

 
 

 

 
구 서울대학교 본관(사적 제2778호)

현재 동숭동에 남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청사로 쓰이고 있는 건물이 바로 경성제국대학 당시 대학 본부로 사용되었던 본관 건물이다. 벽돌로 쌓은 장방형의 이 3층 건물이 준공된 것은 1928년, 설계는 우리나라 건축계의 선구자인 박길룡 씨가 맡았고, 공사는 일본인 회사 미야카와구미가 맡았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2778호)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
 
고려대학교 본관(사적 제285호)

1933년 9월 짓기 시작하여 1934년 9월에 준공된 고려대학교 본관의 설계는 우리나라 근대 건축의 선구자인 박동진이 맡았으며, 시공은 후지따 고오기로오가 담당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285호)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중앙고등학교 본관(사적 제281호)

중앙고등학교 본관은 2층 건물로 중앙에 4층 탑부를 두고 있으며, 좌우가 대칭되는 H자형 평면으로, 당시 같은 중앙학원 재단에 속한 고려대학교(당시 보성전문학교) 본관 및 도서관 등을 설계한 박동진에 의해 설계되었다. 따라서 건축 양식도 그와 거의 동일하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281호) 서울 종로구 계동 중앙고등학교
 
구 서북학회 회관(등록문화재 제53호)

반지하가 도입된 지상2층 벽돌 건물의 중앙에는 돌출된 현관부가, 좌우에는 3개의 창호 배열되었다. 해방 후 소유권이 이전되며 건국대학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1976년 도시 계획으로 철거 위기에 처하자 1977년 해체 1985년 지금의 건국대 캠퍼스로 이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등록문화재 제53호) 서울 광진구 화양동 1
 
옥천 죽향초등학교 구교사(등록문화재 제57호)

1926년 신축한 죽향공립보통학교의 교사가 현재 죽향초등학교 교정 오른쪽에 남아 있다. 옛 학교 건물은 지상1층 규모의 일식 목조 건물로, 1936년 지금의 자리에 규모를 늘려 재건축되었다가, 1977년과 1985년에 각각 증축되었으며, 1994년에 보수된 바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등록문화재 제57호) 충북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 83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등록문화재 제60호)

논산에 가장 먼저 세워진 근대식 교육기관, 1905년 4월 사립학교 보명학교로 개교 하였으나, 07년 공립학교 강경공립보통학교, 38년 강경중정공립심상소학교, 41년 강경 중정공립초등학교, 46년 강경 제일공립초등학교, 49년 강경 중앙초등학교 등으로 개칭되어오다 96년 강경 중앙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등록문화재 제60호) 충남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 155
 
구 목포시립도서관(사적 제289호)

목포에 세워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1900년 1월에 짓기 시작하여 12월에 완공된 일본영사관 건물. 06년 목포 이사청(통감부의 지방 기관)으로 사용되었고, 합방 후 에는 목포부청사로, 광복 후에는 시청사로 이용되어 오다가 74년부터 목포시립도서관으로 이용되었으며, 90년부터는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289호) 전남 목포시 대의동 2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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