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중세미술

중세 미술 6 - 2. 비잔틴 미술 - 7

草霧 2013. 4. 12. 09:52

 

 

 

중세 미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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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속의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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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잔틴 미술 (Byzantine art) - 7

 

 

 

F. 신이 황제로 나타났다 _ 건축과 조각, 미술 이야기

비잔티움(Byzantium,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블)을 중심으로 동로마 제국에서 5세기부터 약 1천년간 계속된 기독교 미술로 초기 기독교 미술을 계승하고 여기에 소아시아. 시리아 등의요소가 가미되면서 5세기부터 발달하였다. 시대적 지리적 위치로, 고대 헬레니즘 미술의 뒤를 이어 고대 아시아의 전통과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영향 등을 더하고, 신흥 그리스도교를 정신적 기초로 새로운 에너지를 가지고 발전하였으며 이슬람 미술과도 어느 정도 교류하면서, 약간의 시대적 변화와 어떤 종류의 일관성을 가지고 10세기 동안이나 계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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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미술의 특징은 차분한 우아함,감정의 절제,얼어붙은 듯한 권위에 찬 경건함 등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성경말씀이 하나의 생생한 현실로 적용됨에 따라 단순히 진리를 전하는데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작용하는 바를 보여주길 원했고 일종의 예술적인 생략법으로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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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 비탈레 성당 (Basilica di San Vitale)

 

콘스탄티누스 황제 자신은 콘스탄티노플에 많은 사원을 건립하며 웅대한 도시계획을 세우고 또 베들레헴의 성탄사원 건립 등의 활동에 참가하였으나, 비잔틴 건축을 가장 잘 대표하는 것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에 건립된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과 그즈음 재건(콘스탄티누스 황제 창건, 3세기 소실)된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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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는 성 세르기우스 사원, 갈라플라시디아의 묘당과 더불어 팔각당 형식을 취하는 집중식이다. 다수인이 모여 제례의식을 행하는 데 적합하도록 원에 외접하는 8각 또는 방형의 플랜 위에도 돔을 씌운 형식으로 된 것이다. 이 형식은 그때까지의 지중해 양식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형식인데, 방형 플랜에 몇 개의 아치를 써서 돔을 얹는 식의 공법은 3세기 이래 사산 왕조의 페르시아 궁정에서 채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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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반도 내의 동로마 영토였던 라벤나(Ravenna)에는 5-6세기의 미술, 특히 모자이크가 비잔틴미술의 형성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산 비탈레San.Vitale교회의 모자이크 배치는 예수와, 제정 일치의 수장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부부의 정치, 종교적 위치를 실감나게 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중앙집중식 성당으로 이탈리아의 라벤나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이면서 서유럽의 비잔티움 미술과 건축의 중요한 사례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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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은 팔각형의 평면을 띠고 있다. 건물은 로마 건축의 요소(, 출입구, 계단 탑)와 비잔티움의 요소(다각형 후진, 주두, 폭이 좁은 벽돌 등)가 결합해 있다. 이 성당은 콘스탄티노폴리스 밖에서 그려진 가장 크고 잘 유지된 비잔티움 모자이크가 풍부하다는 점에서 더욱 유명하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의 양식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는 유일한 성당으로 비잔티움 예술에서 무척 중요한 위치에 있다. 또한, 오늘날에는 자취를 감춘 당시 동로마 제국 궁정의 접견실이 어떠한 형태를 띠고 있었는지 보여 준다. 전설에 따르면 이 성당은 성 비탈리스가 순교한 장소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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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역시 온 벽면이 모자이크로 되어있던 비탈레 교회의 후진엔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짧은 머리의 예수가 있고, 제단 양쪽엔 황제부부가 빵과 포도주를 헌납하는 모습으로 새겨져있다. 우선 모두 정면이며 왕관과 두광까지 한 황제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산 비탈레의 후진을 보면 하늘아래 예수가 있고, 그 아래 제단 양쪽에서 예수에게 헌납하는 황제 부부상이 있는 배치에서 우리는 황제이면서 또한 교회의 수장인 제정일치제도의 군주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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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부분은 하나로 겹쳐진 지붕이 있는 회랑 두 개에 둘러싸여 있다. 위쪽의 것은 마트리모네움(matrimoneum}이라는 곳으로 유부녀를 위한 공간이었다. 아치형 채광창 위의 트리포리움에는 아브라함과 멜키체덱의 이야기, 이사악의 희생 등 구약성경 속의 희생 이야기들을 묘사한 모자이크 그림들이 있다. 아치형 채광창 위에는 모세와 불타는 떨기나무, 예레미야와 이사야,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우두머리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십자가와 거대한 메달을 손에 든 한 쌍의 천사들 등의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창틀이 있는 창 옆에 있는 구석의 벽 쪽에는, 네 명의 흰 옷을 입은 복음사가들의 모자이크가 그들의 상징(천사, 사자, 황소, 독수리) 아래에 있다. 특히 사자는 야생적인 사나움이 두드러지게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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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석의 교차한 십자형 둥근 천장에는 잎과 과일, 꽃 등의 모자이크 무늬로 장식하였는데,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묘사된 예수를 둘러싼 꼭대기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다. 꼭대기에는 네 명의 천사가 호위하고 있으며, 각각의 면에는 꽃, , , 짐승과 공작 등으로 풍부하게 뒤덮여 있다. 아치 위의 양쪽 면에는 두 명의 천사가 원반을 들고 있고 그 뒤로는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이 그려져 있다. 이 도시들은 인류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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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모자이크 그림은 헬레니즘-로마의 전통에 따라 제작되었다. 그 덕분에 그림에 생동감이 있고 표현력이 풍부하며, 다채로운 색채와 확실한 원근, 풍경과 식물, 새의 생생한 묘사가 엿보인다. 라벤나가 아직 고트족의 지배에 있을 때에 모자이크들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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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석 모자이크 

 

 

 

제대를 보관하는 프로테시스(prothesis)와 성찬용 그릇, 전례복, 성서 등을 보관하는 디아코니콘(diaconicon)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전례 도구들을 보관하는 직분인 부제(deacon)가 담당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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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 있는 개선 아치의 안쪽 둘레는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사도, 성 제르바시오와 성 프로타시오를 묘사한 열다섯 개의 대형 모자이크 메달로 장식되어 있다. 커다란 금색 띠에 칭칭 감긴 꽃들과 함께 새들과 무수한 뿔로 덮여있다. 아치 천장의 최고점에는 자줏빛 옷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가 푸른 구체 위에 앉아서 오른손으로 비탈리스 성인에게 순교자의 관을 씌워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의 왼쪽에는 에클레시우스 주교가 산비탈레 성당의 모형을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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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니아누스와 테오도라 패널화

측면 벽 후진의 아래쪽에는 548년에 제작한 두 개의 유명한 모자이크 패널화가 있다. 왼쪽에 그려진 모자이크는 궁정 관리와 막시미아누스 주교, 근위병, 부제 등을 거느린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이다. 황제의 머리에 달린 금빛 후광은 그가 후진의 돔에 그려진 그리스도와 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유스티니아누스를 가운데에 놓고 그의 왼편에는 병사들이, 오른편에는 성직자들이 앉아 있다. 이는 유스티니아누스가 속계와 교계 모두의 지도자임을 강조한 것이다. 손에 성반을 든 유스티니아누스는 황제로서의 직무수행에 바빠서 3일간 면도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모자이크의 황금빛 배경 덕분에 유스티니아누스와 그의 측근들이 성당 안에 있으며 영적인 분위기를 발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인물들은 V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자신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맨 앞 가운데에 있으며, 왼쪽에는 막시밀리아누스 주교가 있고,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 뒤에 있다. 이런 배치는 모자이크 안에 있는 사람들의 발이 포개진 것처럼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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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수행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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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는 황금 후광이 있는 테오도라 황후가 시녀들을 거느린 채, 왕관과 보석을 몸에 두르고 엄숙하고 절제된 모습을 하고 있다. 테오도라는 마치 여신처럼 묘사되어 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모자이크에서는 인물들을 V자형으로 배치한 것과는 달리, 테오도라 황후의 모자이크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 테오도라는 포도주를 들고 있다. 이 패널화는 세속적인 비잔티움 모자이크 예술에서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그림이며, 동로마 세계의 광명과 영화, 영광을 빛내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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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라 황후와 수행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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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레 성당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 세르기오스와 성 바코스 성당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에도 805년 샤를마뉴가 아헨 왕궁 경당을 건설할 때에는 이 성당을 모델로 삼았다. 또한, 몇 세기 뒤에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설계할 때에도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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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잔틴 건축 (Byzantine architecture)

비잔틴 건축의 주요한 것으로는 성당이었다. 건축 양식은 초기 기독교 시대의 바실리카 형식과 동방의 전통적인 팔각당(원당) 형식의 두 종류가 있는데, 이것들은 소아시아 지방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바실리카 양식에서 집중형 돔형식으로 변화되고 돔 안에는 모자이크 벽화가 그려졌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성 소피아 성당, 모자이크로 유명한 성 비탈레 성당, 성 마르코 성당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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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나 성모를 판자 위에 예배의 대상으로 그린 이콘 (휴대 가능한 나무판에 그려진 그림), 즉 성상화가 그려졌는데 템페라나 납화법으로 나무에 그려진 호화로운 이콘들은 작은 모자이크 타일로 대체되면서 더욱 화려해졌다. 특히 황제의 선물로 사용되기 위해 디자인된 이콘들은 값비싼 금속과 애나멜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풍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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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건축은 바닥은 대리석의 모자이크, 벽면에도 색대리석판이 붙여진다. 색대리석의 이용은 로마 시대 이래의 전통이었으나 대리석 자체의 반문을 이용한 구성적인 도양을 만들게 된 것은 처음 있은 일이었다. 벽의 위쪽, 아치··천장 등은 금색을 바탕으로 하는 다채로운 대리석 모자이크로 장식되고, 또 힘차고 우아한 공예품으로 빈틈없이 메워져 있다. 집중식에 알맞는 돔 공법과 장방형의 바실리카식과의 융합은 주로 돔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에 반원통형을 붙이는 그리스크로스형 플랜으로 시공되고 사방을 소돔으로 둘러싸는 방법도 쓰였다. 후자의 좋은 예로서는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사원이 있다. 비잔틴의 건축은 석재축조 보다는 연와축조로 된 것이 많고 11세기 이후는 사라센의 영향도 있어 유약을 칠한 색 타일이나 색연와도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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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릭 크로스와 펜던티브 돔

 

 

그 내용은 그릭 크로스의 평면구성과 펜던티브 돔의 구조기술로 요약할 수 있으며, 아울러 이 두 가지를 실제 건물에 혼합, 응용해서 이전에 서방의 초기기독교 건축에서는 보지 못했던 다양하고 새로운 교회 공간과 구조공법을 창출해냈다. 그릭 크로스는 네 팔의 길이가 같은 정사각형 윤곽의 십자가 형태를 의미한다. 초기 기독교 건축의 바실리카 교회에서 파생한 아래쪽 팔이 긴 라틴 크로스와 교회건축의 짝을 이루는 구성이다. 공간의 느낌과 종류에서 라틴 크로스가 행렬 등 제식에 맞는 선형 공간인 반면 그릭 크로스는 중앙의 크로싱이 초점 역할을 하는 중앙 집중 형 공간이다. 상징성 측면에서도 라틴 크로스가 서방 가톨릭을 대표하는 반면 그릭 크로스는 동방정교를 대표하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에는 신교를 대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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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미예의 티카에움(Tychaeum at Mismiyeh). 시리아(Syria). 정사각형을 9등분한 그릭 크로스의 표준형 평면이다. 정사각형 평면 위에 펜던티브를 이용해서 원형 돔 천장을 올리는 원리를 다이어그램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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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던티브 돔은 그릭 크로스의 정사각형 크로싱 위에 원형 천장인 돔을 얹는 기술이다. 로마를 비롯한 서양 건축에는 없던 비잔틴 건축만의 첨단 발명품인데 관건은 정사각형 위에 원형 천장을 얹는다는 사실이다. 판테온에서 완전한 반구를 만드는 돔의 기술이 완성되었다고는 하나 평면은 원형이었다. 이것을 정사각형 평면 위에 얹는 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기술을 요구했다. 평면과 지붕의 형태가 다를 경우 기술의 난이도는 급격히 높아지는데 이 조건을 만족시킨 것이 펜던티브 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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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던티브 돔은 다음의 순서로 지어진다. 첫째, 정사각형 평면을 에워싸는 큰 외접원을 그리고 이것을 평면으로 삼아 큰 반구 천장을 세운다. 둘째, 정사각형 평면의 네 변에서 수직으로 네 장의 벽을 세워 큰 반구 천장을 잘라낸다. 셋째, 네 장의 수직 벽은 단면이 아치형이 되는데 각 아치의 꼭대기 네 곳을 이으면 수직 벽 위에 작은 원형 평면이 만들어진다. 이 평면은 다름 아니라 정사각형 평면의 내접원이다. 넷째, 이 작은 원형 평면 위에 돔 천장을 얹는다. 원형 평면 위에 돔 천장을 얹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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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피아 성당 (Hagia Sopia)

 

 

유스티니아누스 교회 가운데 대표작은 단연 성 소피아 성당이다. 주변에 여러 보조시설들이 더해서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 공간은 내접형 그릭 크로스였으며 여기에 여러 가지 추가 처리를 가했다. 동서 방향으로 공간 켜를 확장해서 선형공간 구성을 더했다. 내 팔 가운데 남쪽과 북쪽의 것은 원형 상태로 둔 채 크로싱과의 경계부에 열주 스크린만 세웠으며 그 위로 큰 아치 윤곽의 수직 벽이 올라갔다. 동쪽과 서쪽의 것은 양 귀퉁이에 반원형 앱스 공간을 추가로 더했다. 앱스를 이루는 외벽에는 열주 스크린을 세워 모퉁이 공간과 소통이 일어나도록 했다. 크로싱에는 표준형 펜던티브 돔으로 완전한 반구 천장을 만들어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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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피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터키. 532-537- 유스티니아누스의 야망을 잘 보여주는 비잔틴 건축의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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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관건은 크기였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야심에 맞게 가능한 한 크게 만들고 싶어 했는데 전체 윤곽은 69미터 x 75미터였고 정사각형 크로싱은 지름이 32.6미터였다. 돔 천장의 높이는 지면에서 54.8미터였다. 이 크기는 쉽지 않은 것이어서 지붕의 무게를 감당해내는 일이 공사의 최우선이 되었다. 돔 자체를 경량화하기 위해 펜던티브와 만나는 밑동 내벽에 40개의 높은 아치형 창을 뚫었다. 하중은 여러 갈래로 분산시켜 내려가게 했다. 제일 중요한 경로는 펜던티브를 타고 내려가는 것으로 이것을 받치기 위해 크로싱의 네 귀퉁이에 두께 7.6미터, 18.3미터인 두꺼운 벽체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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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공간은 더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둥근 천장 자체가 크로싱 위의 돔-동서 쪽 팔의 대형 앱스-그 아래쪽의 작은 앱스로 삼원화되면서 단일 원 윤곽이 여럿으로 나누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런 여러 원들 사이를 벽으로 구획하지 않고 흐르는 공간으로 처리했다. 경량화를 위해 구조적으로 무리가 없는 부분에는 가능한 한 많은 창을 뚫다 보니 천장들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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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로 유명한 성 비탈레 성당 (Basilica di San Vitale)

 

산 비탈레는 이탈리아 라벤나에 지어진 비잔틴 교회이다. 비잔틴 제국은 초반기 힘이 융성할 때 동로마의 후신 자격으로 서방에 대해서 압력과 침략을 자주 감행했다. 라벤나는 이것의 전진기지였다. 그러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압박에 비해 서방 지역에는 비잔틴 건축물이 많이 지어지지 않았는데 산 비탈레는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와 함께 서방에 지어진 비잔틴 건축을 대표한다. 공간은 비잔틴 건축의 전형적 특징인 부유하는 공간을 대표한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성 소피아보다 이런 특징을 더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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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비탈레(San Vitale). 라벤나(Ravenna), 이탈리아. 526-540. 부유공간이라는 비잔틴 건축의 공간특징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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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부터 팔각형 겹 공간으로 이루어지면서 처음부터 수평 확산의 가능성을 봉쇄하고 중앙 집중성을 강화했다. 제식을 위한 선형성의 보강도 별도로 하지 않았으며 다만 성소 밖으로 팔각형 한 변 폭의 앱스 하나를 돌출시킨 것이 전부이다. 진입부에 전실을 뒀지만 선형성의 강조로 나타나지 않는 대신 중심 공간과 22.5도 기울어져서 동선에 꺾임이 일어나게 했다. 이는 선형성을 최대한 억제해서 중앙 집중성을 높임과 동시에 동선과 시선에 극적인 변화와 역동성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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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초점을 향해서 가능한 한 동선과 시선을 모두 모은 다음 수직 방향으로 폭발하듯 확산이 일어나게 했다. 중심 팔각형은 16.6미터 지름에 높이가 29.5미터이기 때문에 절대 크기는 성 소피아보다 많이 작지만 공간의 비례 느낌은 우물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곧추선 느낌이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는 수직 기운이 무척 강한데 양옆으로 뻗어나가는 구멍을 최대한으로 뚫어서 이 기운을 확산시켰다. 원형 지붕을 받는 원통형 몸체를 2층으로 한 뒤 각 층을 열주 스크린으로 처리해서 바깥쪽 복도공간과 관통이 최대한으로 일어나게 했다. 고형적 물체로 쌓은 경계부가 마치 투명한 막을 겹쳐 놓은 것처럼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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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코 성당 (Basilica di San Marco a Venezia), 베니스, 864, 1085년 재건(9~10세기)

 

이탈리아 베네토 주의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이다. 비잔틴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산마르코 광장과 두칼레 궁전과 인접해 있다. 1807년부터 이 성당에 베네치아 대주교좌가 설정되었다. 돔형식 건축의 특징은 둥근 지붕을 갖춘 동양적인 외관과 모자이크에 의한 풍부한 색채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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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 교회와 도상 상징주의 (Chora Church=Kariye Camii)

 

상징주의는 비잔틴 예술의 또 다른 대표적 장르인 모자이크 성화, 즉 도상 혹은 성상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되었다. 도상 상징주의라 부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직접적 표현력이 더 강한 도상을 이용해서 하느님의 존재를 드러내고 성서의 내용을 전달하려는 시도이다. 성상숭배금지(726~843)는 이것을 금지한 시기였는데 이는 신의 모습을 인간의 매체로 직접 그리는 것을 금지했던 이슬람이 이를 빌미로 비잔틴을 공격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성상숭배금지가 풀리면서 중기 비잔틴 르네상스(867~1204)가 시작된다. 도상 상징주의의 도래였다. 교회도 여기에 맞춰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기독교 제식을 담아내고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던 독립적 건축양식에서 벗어나 성화가 그려지는 바탕 면을 제공하는 거대한 캔버스로 기본 개념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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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 교회.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터키. 11-12세기 - 성상숭배금지가 풀리고 모자이크 성화의 전성기가 도래하면서 건물은 규모가 작아지는 대신 성화를 그리는 캔버스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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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 교회는 이를 대표하는 건물이다. 교회 실내에 도상을 그리는 데에도 장소에 따라서 법칙이 있었다. 공간적 위계에 따른 상징성이 기준이었다. 교회 실내를 3등분하여 각 부분의 상정성에 맞는 도상을 대응시켰다. 돔은 하늘을 상징하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일을 그렸다. 보통 예수와 천사가 주인공이었다. 예수는 하늘에서 지상을 굽어보는 심판자로 그려졌고 그 주위를 천사들이 호위했다. 펜던티브와 천측창에는 예수의 생애와 수난을 그렸다. 돔 아래의 볼트와 벽체는 하늘나라 밑에 있는 땅을 상징했으며 땅의 일을 그렸다. 예수를 비롯해서 사도, 예언자, 순교자, 성인 등이 행했던 기독교의 역사가 주요 내용으로 예수가 보여준 기적과 성서의 증명, 성인들의 전도와 순교 등이 대표적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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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세르기우스와 바커스 성당, 콘스탄티노플,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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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미션 교회

 

성상파괴운동의 시련을 겪은 후의 성상은 더욱 성스럽고 교리와 밀접해져야 했다. 다프니에 있는 도르미션 교회의 그림들은 중세 미술에서 가장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온통 금빛으로 둘러싸인 천장 한 가운데 존엄한 <우주의 지배자>가 무섭게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교회의 다른 한쪽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새겨져 있는데, 시간과 공간의 묘사가 최대한 배제된 그림이지만 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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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카피톨리노 언덕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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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건축가는 토목공사나 궁전건축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며, 콘스탄티노플의 빈 비르 딜레크라고 불리는 지하 대저수소 등에서 그 편린이 엿보이나 건축의 주요한 것으로는 성당이다. 성당 건축은 한편으로는 종교의식이라고 하는 기능에 따른 계획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집이라고 하는 강한 상징적 성격을 가진다. 종교의식을 목적으로 하는 집회를 위해서는 사제를 위한 제실 및 내진과, 신도를 위한 신랑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고대 말기의 공공건축의 종장식(바실리카식) 설계가 채용되었다. 그러나 그 경우, 제실은 거의 언제나 반원상으로 돌출하고, 반원 모양의 지붕을 덮었다. 이 반원 모양의 지붕은 신의 자리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의미로는 오히려 원 모양의 지붕이 상징성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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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건축의 스타일은 그리이스식의 십자형의 정방형평면과 로마세계의 돔양식을 둘다 빌려 왔다. 그 결과는 돔으로 된 진흙, 벽돌조의 키로키티아 집들에 기묘하게 영향을 미쳤다. 콘스탄틴 데제가 4세기 초에 기독교를 공인하여 그때 건축은 교회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비잔틴 건축은 기독교를 실천하도록 새로운 자유를 북돋았을 때였다. 그들 스타일에 기본을 이루는 십자형의 상징에서 강한 건축형태를 발견하였다. 그리이스 십자형이라 명명된 이 같은 형태는 교회에 사람들이 모여 신앙생황을 할수 있도록 지붕이 있는 공간을 제공했으며, 평면은 돔으로 덮힌 중앙에 집점이 고정되었고 초기 기독교의 길다란 본당과 회랑이 있는 순수한 바실리카형태와 대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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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을 강조하기 위해 비잔틴 건축가는 사각형의 평면 위에 둥근 돔을 지탱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둥근 원통형 단면 위에 세워진 로마식돔은 비교적 해결이 용이했다. 시라아인은 사면을 팔면을 바꾸는 삼각슬햅을 구석에 놓아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고했으나 하단에서 삼각형 석재부분이 보인다는 것은 둥근형태와 조화되지 않았다. 달마티아의 스팔라토아에 있는 팔각 모슬리엄에서 로마인은 벽돌조 보울트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이는 스퀸치라고 알려진 공법에 의해 3개의 벽돌조 아치는 삼각돌 까지 突出하여 그것을 덮어 감추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다만 折衝的 해결에 불과했다. 마지막 아치의 면은 둥근 형태와 여전히 조화를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펜덴티브(pendentives)라 불리는 볼록하게 굽은구석사면의 밑동과 돔의 원형 밑동 사이와의 흐름을 이어주는 소피아 대성당이 건축됨으로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 십자가의 象徵追求하는 비잔틴건축가의 결정과 그들의 예술적 순수성의 연출은 그들의 강렬한 信念을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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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원통형, 그리스 십자형(Greek Cross)은 비잔틴 교회건축의 주요한 요소들이다. 높고 긴 돔 형탑과 사원하부의 사각형 몸체와의 결합된 효과는 비잔틴 교회를 강렬한 형태로 만들었다. 중요한 점은 성소피아와 같은 거대한 성당이든 카프니카리아 같은 작은 교회이든 패턴은 동일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세부적인 형태는 축제분위기와도 같이 복잡한 것이었다. 중앙 돔은, 돔의 호를 따라 놓여 있는 로마식 타일로 덮혀있으며 때때로 그 돔의 가장자리는 수평적이었고, 원통형이나 탑에서 눈썹처럼 창문의 아치모양 위로 곡선을 이뤘다. 종종 중앙 돔은 십자형 팔익부와 구석간 위에 다양한 높이로 서 있는 작은 돔의 그룹으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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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풍에서 석재는 유용하지 못했다. 가장 유용한 재료로 - 벽돌용 진흙덩이, 콘크리트용 자갈이 가장 많이 쓰였고, 대리석과 기둥용 巨石은 지중해변에 있는 채석장으로부터 輸入을 해야했다. 한정된 재료를 사용하여 가능한 한 매우 풍부하게 장식을 했다. 두께가 1.5인치(4cm)쯤 되는 벽돌 타일과 돌블록 사이에 모르타르가 뚜껍게 바라졌다. 타일과 돌은 줄을 번갈아 놓였는데, 타일은 변칙적으로 배치되었으며 돌은 엄격한 규칙아래 놓였다. 내어 쌓기는 지붕밑에 조각용 프리즈로 사용되었고, 프리즈는 창옆과 아치 위에서 얇고 동근 벽됼 리브(rib)로 서 이어져 있다. 에테네의 스몰 메트로폴리스경우처럼 석재작품은 복잡한 형상과 형태로 조각되었다. 이런한 세부적인 것들이 융합되어 건축작품을 거대하고 장엄한 조각품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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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모양의 지붕을 씌운 집중식 건축은 성스러운 천계(天界)로 덮인 종교적 공간을 구성하고, 그 원형은 고대 로마에도 있으나 5세기부터 세례당(洗禮堂), 묘당(廟堂), 순교자 기념당 등으로 우선 발달하였고(라벤나의 갈라 플라키디아 묘당 등), 그것이 점차 대형화하여 성당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러나 전례(典禮)를 위해서는 제실과 주랑(主廊)을 직선으로 늘어놓고 다시 거기에 전실(前室:세례 지원자용)과 앞뜰(일반인용)을 추가한 종장식 설계가 편리하므로 집중식의 경우도 대부분 바실리카 구조를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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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회화

비잔틴 시대의 회화는 모자이크가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자이크는 작은 각추대형으로 자른 색대리석을 석회벽 위에 줄 맞춰 끼워 넣어 회화나 도안을 그려내는 일종의 공예기술이다. 이미 폼페이 등에서도 우수한 예를 볼 수 있으나 고전기 작품의 예가 주로 방치장의 장식인 데 대하여, 비잔틴의 그것은 궁정과 관계가 있는 사원에 장엄함을 주는 데 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비잔틴의 것은 색대리석뿐만 아니라 뒷면을 도금한 유리, 색유리, 도자기 등의 소재도, 전체적으로 다채롭고 광택이 나며 색의 대비효과·표현효과 등 매우 화려하고 숭고함을 갖춘 것이었다. 비잔틴식()의 장려(壯麗)한 모자이크 기법의 성립은 6세기 초라고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다.

 

당시의 주요한 대사원은 대부분이 모자이크로 장식되고,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사원은 오래되고 총합적 완성미를 보여주는 좋은 예였으나, 15세기 터키인에게 점렴당하여 회교사원(回敎寺院)으로 개축될 때 두꺼운 석회질 벽으로 고쳐지는 바람에, 오늘에 와서는 일부밖에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오늘날 비잔틴 모자이크의 모습을 간직한 가장 좋은 예는 이탈리아의 라벤나에 있는 아리우스파 세례당(洗禮堂)<그리스도의 세례>, <열두사도>, 성 비탈레 사원의 <유스티니아누스와 그 종신(從臣)>, <테오도라 왕비와 그 종신들>, <아브라함의 이야기>, () 아폴리나레 인 누오브 사원의 <그리스도 일대기(一代記)>, 성 아폴리나레인 클라세 사원의 <그리스도의 변용(變容)> 등은 모두 67세기의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소재의 제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색의 선과 색면(色面)과의 대비, 금색의 바탕, 조형(造形) 등이 훌륭한 장식미를 낳고 있다. 여기에서 도상(圖像)면에서 주목을 요하는 것은 성서의 도양(圖樣)이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헤브라이인은 설화성(說話性)이나 서술적 창조성에 뛰어났지만 그들은 그것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천분(天分)을 결여하고 있다. 한편 라틴인의 자연주의적 사실, ()아시아인의 세련된 공예기술 특히 금·은 세공에 보이는 감각, 또는 소아시아를 넘어서 멀리 중앙아시아로부터 전래된 것이라고도 생각되는 선적(線的추상적 묘사가 비잔틴이란 지점에서 합류, 일체화되어, 기독교 미술은 이 시대에 비로소 풍부한 설화로서의 성전(聖典성자(聖者)의 도상화(圖像化)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모자이크는 제작비가 많이 들므로 지방에서는 프레스코에 의한 벽화가 보급되었다. 표현 방식은 모자이크와 마찬가지이며, 다분히 동방적으로 도식화(圖式化)된 것으로서 그 유례(類例)는 오늘의 유고슬라비아의 마케도니아 지방과 아드리아 해안에 잘 보존된 상태로 그 모습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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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란 돌.유리.조가비 등 각종 재료의 조그만 조각으로 무늬나 회화를 구성하여 건축물 또는 공예품 표면에 접착제로 붙인 것을 말한다. 그리이스 , 로마 시대에는 대리석 모자이크로 마루 바닥이나 벽면 장식에 사용되다가 이것을 회화로서의 위치로 끌어올린 것이 비잔틴 미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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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는 입체감이나 미세한 뉘앙스까지 표현하기는 힘들지만,비잔틴적인 추상세계를 표현하는 데는 적합한 것이었는데 비잔틴에서는 유약 ( 釉藥).유리를 주로 하고 조가비와 금박 . 은박을 적당히 섞어 사용하여, 광선의 반사작용으로 신비로운 느낌과 함께 공간의 확대감을 주었다. 그러나 모자이크는 값비싼 예술이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프레스코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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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마돈나

비잔틴 성상을 대표하는 <블라디미르 마돈나>를 보면, 황금색의 넓은 테두리가 우선 그림을 성스럽게 하고 있다.

 

그러나 검은 바탕에 금장식이 놓인 옷을 입은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슬퍼 보이는데, 이 마리아는 바로 예수의 죽음을 알고 슬퍼하는 마리아인 것이다.

 

비잔틴 성상은 사실의 설명이 아니라 교리의 전달과 시공을 초월한 성스러움을 지녀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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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오도라황후와 시종들>547년경 , 라벤나산비탈레

여러 가지 색깔의 돌이나 유리를 사용한 모자이크화는 종교적 효과를 내는데 도움이 되며 비잔틴 회화의 주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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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오병이어(五餠二魚),

520년경/이탈리아 라벤나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소장

이 작품은 붓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풍부한 색채를 발산하는 색유리로 만들어진 테세라tessera를 이용한 모자이크 그림이다. 모자이크는 원래 기원전 3000년경 수메르 인들이 건축물의 장식에 사용했고, 헬레니즘기의 그리스인이나 로마인들도 대리석의 테세라를 사용한 바 있지만, 색유리라고 하는 강렬한 색채를 발산하는 테세라 모자이크는 비잔틴, 즉 콘스탄티노플 시대의 창안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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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장식사본, 장식미술

이즈음부터 각지의 수도원에서 수많은 사본류(寫本類)가 제작되게 되었다. 각국어로 만들어진 사본류의 장식은 다른 분야와 같이 동방적인 것과 라틴적인 것이 합류되어 성립한 것이었으나 후대의 유럽에 있어서 사본류의 원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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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화 채색사본 <린드스판의 서: 8세기초, 미니어쳐 런던>

비잔틴 양식의 독자적이고 진보된 예술업적은 채색 필사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본의 작가들은 성서의 내용과 그 의미를 그리고 느낌을 감동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는데 초기에는 대개 복잡하고 정교한 장식문양을 이루거나 기하학적인 방법으로 인물을 표현하는데 주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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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장식이란 단순한 벽면 미화가 아니라, 조형적 수단에 의하여 공간 내부를 성화(聖化)하여 거기에 초자연적인 세계를 현실에 나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성스러운 것 또는 성스러운 공간은 현세 또는 물질계의 것처럼 나타내면 안되었다. 특히 건축 내부에 집중되었으며 십자가, 여러 종교 용구, 제단 등이 황금·보석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비단 등을 사용한 호화로운 염직품이 귀하게 여겨졌고, 건축장식으로는 색유리를 많이 사용하는 모자이크 미술의 발달을 가져왔다. 그 전형적인 것으로는 이탈리아의 라벤나에 풍부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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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은 특히 건축 내부에 집중되었다. 이 경우 장식이란 단순한 벽면 미화가 아니라, 조형적 수단에 의하여 공간 내부를 성화(聖化)하여 거기에 초자연적인 세계를 현실에 나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성스러운 것 또는 성스러운 공간은 현세 또는 물질계의 것처럼 나타내면 안된다. 이 초자연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은 무엇보다도 빛이며, 빛의 구성 요소로서의 색채이다. 이리하여 십자가, 여러 종교 용구, 제단 등이 황금·보석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비단 등을 사용한 호화로운 염직품이 귀하게 여겨졌고, 건축장식으로는 색유리를 많이 사용하는 모자이크 미술의 발달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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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것으로는 이탈리아의 라벤나에 풍부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모자이크는 비용과 수고가 드는 것이므로 시대 또는 경우에 따라 벽화가 이를 대신하였다. 어쨌든 그 표현양식을 보면 무엇보다도 색채의 효과가 중시되어 3차원적인 표현에서 입체감이나 원근 표현은 되도록 피하려 하였다. 그렇지만 아직도 성스러운 자나 성스러운 장면의 물질화를 두려워한 사람들은 성상(聖像) 표현을 우상숭배라 하여 부정하고 아이코노클래즘 운동을 89세기에 걸쳐 흥륭시켰다. 마케도니아 왕조 이래 성상 미술은 또다시 흥하지만 그것도 모자이크·벽화· 아이콘으로부터 사본 등 따위 색채 미술의 각 분야에 걸쳐 있다. 그러나 유럽과는 달리 3차원적 성격의 강한 조각미술이 끝내 발달하지 못한 것은 유대교 이래의 전통인 우상에 대한 강한 경계심 때문일 것이다. 조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기둥머리, 내진 장벽 등) 주제의 대부분은 추상적· 상징적이며, 사람의 상을 표현하는 경우에도 거의 평면예술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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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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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미술 연대기 (500 ~ 1500)

 

청동기 시대

(3650-1100 BC)

에게 미술

중세 미술

(500 ~ 1500)

중세 초기(Early Middle Ages, 476-1000)

중세 중기(High Middle Ages, 1000-1300)

중세 후기(Late Middle Ages, 1300-1453)

중세의 몰락(1453)

콘스탄티노플의 함락(1453)

인쇄기의 발명(1456)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1492)

종교 개혁(1517)

르네상스

고대 그리스

(1100-146 BC)

고대 그리스 미술 1

고대 그리스 미술 2

고대 로마

(753~476 BC)

로마 황제 연대표

고대 로마 미술 1

고대 로마 미술 - 2

 

비잔틴 제국

(476BC-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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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황제 연대표

십자군 연대표

동방 정교회

라틴제국

비잔틴 미술 - 1

비잔틴 미술 - 2

성서의 가르침을 그림으로 읽는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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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왕 또한, 신의 백성이다

신 보다, 인간의 호기심은 강하다

신이여! 구원하소서!

새로운 세기는 우연히 왔다.

중세 초기 미술

아메리카 문명

(300~1533)

고대 아메리카 미술-1

고대 아메리카 미술-2

고대 아메리카 미술-3

아프리카 미술

(BC 3300~1800)

미술의 탄생

원시미술 -2

메소포타미아 미술

이집트미술

아프리카 미술-1

아프리카 미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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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미술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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