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미술 3
십자군 전쟁과 이슬람의 부흥 그리고 문명충돌
Ⅲ. 인간의 야욕이 신을 닮았다.
A. 예루살렘을 사수하라
본 연재 글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세미술, 1부 예루살렘을 사수하라 편에서는 3편으로 나누워 연재됩니다. “1부 십자군 전쟁 ”, “2부 이슬람의 부흥”, “3부 문명충돌 ”로 기독교의 광기와 무슬림의 충돌을 통하여, 문명충돌과 미술의 진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참고로, “2부. 이슬람의 부흥” 편은 본 저의 서양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 3 (오리엔탈리즘 편)을 참조하세요.
1부. 십자군 전쟁 2부. 이슬람의 부흥 3부. 문명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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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십자군 전쟁
(ㅁ)
십자군 원정 [crusade] (1095~1270)
십자군 원정의 배경
십자군 원정의 원인
십자군전쟁의 시작
십자군 전쟁의 전개
클레르몽 교회회의 (1095년)
1095년 11월 18일부터 11월 28일까지 프랑스 클레르몽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합동 주재로 열렸던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회회의이다.
1095년 비잔티움 제국 황제 알렉시우스 1세는 점차 세력을 확장해가는 셀주크 투르크측에 위협을 느끼고 서방측에 군사적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 후 11월, 우르바노 2세는 클레르몽 교회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결정하였다.
교회 내 클뤼니 개혁과 프랑스 국왕 필리프 1세의 파문에 관한 문제, 동방 문제를 언급하였다.
교황은 11월 27일, 서방의 그리스도교회가 이슬람교에 의해 정복당한 성지를 해방시키고, 이슬람 제국의 공격으로 인하여 위험에 처한 비잔티움 제국을 구원해야 한다고 열변하며, 제1차 십자군 원정을 호소하였다.
피아첸차 교회회의
교황 우르바노 2세 (Urbanus PP. II, 1088 - 1099)
필리프 1세 (Philippe I, 1052 – 1108)
알렉시오스 1세 (Alexius I Comnenus, 1081 – 1118)
마틸데 백작부인 (토스카나의 마틸데, Matilda; 1046 – 1115)와 카노사의 굴욕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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