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중세미술

중세미술Ⅲ, A.예루살렘을 사수하라 - 1부.십자군 전쟁( ㅅ )

草霧 2013. 3. 13. 00:00

 

 

 

중세 미술 3

   

 

십자군 전쟁과 이슬람의 부흥 그리고 문명충돌

   

. 인간의 야욕이 신을 닮았다.

 

 

A. 예루살렘을 사수하라

 

 

 

본 연재 글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세미술, 1부 예루살렘을 사수하라 편에서는 3편으로 나누워 연재됩니다. “1부 십자군 전쟁 ”, “2부 이슬람의 부흥”, “3부 문명충돌 로 기독교의 광기와 무슬림의 충돌을 통하여, 문명충돌과 미술의 진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참고로, “2. 이슬람의 부흥편은 본 저의 서양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3 (오리엔탈리즘 편)을 참조하세요.

1. 십자군 전쟁

2. 이슬람의 부흥

3. 문명충돌

 

     

1. 십자군 전쟁 (CRUSADE)

   

 

십자군 원정 [crusade] (1095~1270)

 

십자군 원정의 배경

 

십자군 원정의 원인

 

십자군전쟁의 시작

 

십자군 전쟁의 전개

 

클레르몽 교회회의 (Council of Clermont, 1095)

 

레콩키스타 (Reconquista, 718~1492)

 

군중 십자군 (1096)

정식 십자군에 앞서 떠난 군대를 일컫는다. 그에 앞서 은자 피에르가 엉뚱한 생각을 품고 기사 레이날도, 무일푼의 발터와 함께 한발 앞서 떠난다. 이를 군중 십자군이라 하는데 군중 십자군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가난한 기사와 농민으로 구성된 십자군은 종교적 열망으로 부풀어 오른 채 출발하였지만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였다.

 

십자군은 지나는 길에 있는 모든 마을 약탈했으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으며,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현지에서 조달해야만 하였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약탈을 낳았다.

 

그러다가 독일에서 유태인을 학살하고, 베오그라드에서도 약탈을 일삼았다. 그러다가 헝가리의 기병과 베오그라드의 중장보병의 습격에 사망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는 그들을 이슬람 영토로 인도했고, 투르크 군을 만나 전멸, 기사 레이날도는 항복하고 은자 피에르는 목숨만 구해 달아난다.

   

 

 

자 피에르 (Pierre l'Ermite, ? ~ 1098)와 롱기누스의 창 (聖槍, Sainte Lance)

 

기사 레이날도

 

무일푼의 발터 (고티에 생자부아, Gautier Sans-Avoir, Walter Sans Avoir, 성전 기사단의 규범)

 

킬리지 아르슬란 1(I. Kılıç Arslan, 1080-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