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중세미술

중세미술Ⅲ, A.예루살렘을 사수하라 - 1부.십자군 전쟁( ㅂ )

草霧 2013. 3. 13. 00:00

 

 

 

 

 

중세 미술 3

 

 

십자군 전쟁과 이슬람의 부흥 그리고 문명충돌

 

 

. 인간의 야욕이 신을 닮았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A. 예루살렘을 사수하라

 

 

 

 

본 연재 글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세미술, 1부 예루살렘을 사수하라 편에서는 3편으로 나누워 연재됩니다. “1부 십자군 전쟁 ”, “2부 이슬람의 부흥”, “3부 문명충돌 로 기독교의 광기와 무슬림의 충돌을 통하여, 문명충돌과 미술의 진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참고로, “2. 이슬람의 부흥편은 본 저의 서양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3 (오리엔탈리즘 편)을 참조하세요.

1. 십자군 전쟁

2. 이슬람의 부흥

3. 문명충돌

 

 

1. 십자군 전쟁 (CRUSADE)

 

 

(ㅂ)

 

 

십자군 원정 [crusade] (1095~1270)

    

 

십자군 원정의 배경

    

 

십자군 원정의 원인

    

 

십자군전쟁의 시작

    

 

십자군 전쟁의 전개

    

 

클레르몽 교회회의 (Council of Clermont, 1095)

    

 

11세기 이베리아 반도의 재정복 운동

 

레콩키스타”(Reconquista, 718~1492)

 

 

레콘키스타(Reconquista, 718~1492) 7세기 반에 걸쳐서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재정복"을 뜻하며 '국토 회복 운동'한다. 이는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정복에 의해 상실하였던 기독교 국가의 영토를 회복하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722년 코바동가 전투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본다. 포르투갈의 레콘키스타는 1249년에 아폰수 3세가 알가르브(Algarve)를 점령하였을 때 완료되었다.

 

1492년에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스페인 연합왕국이 마지막 남은 이슬람 점령지인 그라나다를 정복(1492)하여 레콘키스타는 마무리된다.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정복이 시작 (711)

 

우마이야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 정복(718)

 

코바동가 전투(722)

 

카롤루스 대제(Carolus Magnus)가 이베리아를 침공, 론세스바예스 전투에서 패배(778)

 

프랑크 왕국이 피레네 산맥 이북 지역의 영토 수복(800)

 

프랑크 왕국이 바르셀로나 점령(801)

 

이베리아 반도 서북부 지역와 바르셀로나이 재정복(914)

 

이베리아 반도의 북부 재정복(1130)

 

아폰수 3세가 알가르브 점령, 포르투갈의 레콘키스타 완료(1249)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의 연합왕국인 스페인 왕국이 그라나다 정복(1492)

 

 

1. 이베리아 반도의 상황

 

a.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알 안달루시아) 정복 (711~756)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한 서고트족이 세운 서고트 왕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왕위 계승권을 놓고 서고트 왕국이 내분에 휩싸이자 모로코의 아미르였던 타리크는 서고트족의 지원 요청을 명분으로 이베리아를 침공하였다.

 

이로써 피레네 산맥 이남의 이베리아 반도 전체가 이슬람화 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의 알 왈리드 1세이후 오랫동안 이슬람의 이베리아 통치는 안정적으로 지속되었다.

 

한편,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마르텔에게 패배한 뒤 북상을 멈추었다.

    

b. 이슬람의 분열

 

우마이야 왕조 멸망(660~750)

 

아바스 왕조(750~1258)

 

후우마이야 왕조(8~11c)

 

파티마 왕조(909~1171)

 

 

 

2. 유럽은 이것을 <재정복>이라 부른다.

유럽의 서구적 시각에서는 10세기 이후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는 크리스트교 유럽인들의 움직임을 <재정복>사업이라고 하며 <십자군> 원정의 전초전으로 생각하는 등 아주 높게 평가합니다. 이것이 11세기의 <재정복>운동이라 부르는 사건의 시작입니다.

 

12세기에는 카스티야에서 포르투갈이라는 국가가 독립하여 신생독립국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13세기가 되면 그라나다 지역을 제외한 전 에스파냐 영토가 이들 크리스트교 국가에게 넘어갑니다.

 

실제 이러한 이슬람에 대한 재정복 운동은 유럽인들에게 이슬람 국가와의 전쟁이 유럽인의 힘으로도 해볼만 하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시작합니다. 유럽은 이제 이슬람과 붙어도 승산이 있을 정도로 11세기 이후 발전했습니다.

 

이것이 훗날 십자군 원정에 대한 자신감을 불러 일으켜 주게 됩니다. 유럽에서는 이 <재정복>사업을 십자군 원정의 전초전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a. 레콘키스타의 시작 (718)

 

코바동가 전투 (718) _ 아스투리아스의 펠라기우스 의한 기독교 귀족의 반란에 불과하나 이후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국가 회복이라는 명분을 제공하였다.

 

툴루즈 전투 (721)

 

투르 전투

 

 

b. 프랑크 왕국의 침공(778)

750년 우마이야 왕조가 몰락 후 라흐만 1세의 후우마이야 왕조는 여전히 이베리아 반도 거의 대부분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하던 바르셀로나의 아미르는 카롤루스 대제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778년 카롤루스 대제가 이베리아를 침공하였다. 론세스바예스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이 전투에서 롤랑의 죽음은 후일 롤랑의 노래라는 서사시의 소재가 되었다.

 

 이후 801년 프랑크 왕국에게 점령되었다. 이후 바르셀로나 백작령은 알비 십자군 이후인 1258년 프랑스의 루이 9세와 아라곤 왕국의 하이메 1세 사이에 맺어진 코르베유 조약에 의해 아라곤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c. 기독교 왕국의 성립

 

아스투리아스 왕국 (Asturorum Regnum, 718~914)

718년 펠라기우스가 코바동가 전투에서 승리 후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성립을 선포, 이베리아 반도 내에 남은 유일한 기독교 국가였다.

 

812년 알폰소 2세는 갈라시아 점령하면서 야고보의 유골을 발견했다(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이를 명분으로 카롤루스 대제와 교황이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승인하고 지원하였다.

 

이후 기독교 국가와 이슬람과의 전쟁에는 성지의 수호라는 명분이 더해졌다.

 

레온 왕국(10~13c)

아스투리아스 왕국 알폰소 3(재위 866- 910) 시기에 아스투리아스-레온 왕국으로 불렸으나 뒤를 이은 가르시아 1세에 레온 왕국으로 변경하였다.

 

나바라 왕국(Reino de Navarra, 824~1620)

824년 팜플로나와 남부 나바라를 중심으로 바스크인들의 반란을 통해 팜플로나 왕국을 건국하였다. 뒤에 나바라 왕국이 되었다.

 

10세기부터 레콘키스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1세기 산초 3세 대왕 대에 이르러 강대한 국가로 성장하였다. 카스티야 백작령과 아라곤 백작령, 레온 왕국을 정복하여 이베리아 북부의 강자가 되었다.

 

산초 3세가 사망한 후 산초 가르시아 3세가 나바라 왕국을, 페르난도 1세가 카스티야 왕국을, 그리고 라미로 1세가 아라곤 왕국을 세운다. 이후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난도는 1516년 나바라 지방을 복속시켰다.

 

b. 타이파 (아베리아 토착 이슬람 토후국)

 

1037년 후우마이야 왕조는 멸망

 

 

1147년 알 모라비드 왕조 멸망

 

 

타이파 통치 _ 이후 이베리아 반도은 중소 독립적인 타이파국으로 분열

 

 

 

 

e. 십자군과 기사단

중세 후기 기독교 세계에서 레콘키스타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을 몰아내는 종교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으로 여겨졌다. 교황과 부르고뉴의 클루니 수도회 등의 종교 조직이 이슬람의 축출을 선동했다.

 

그 결과 전쟁에 참전한 기사단들은 오늘날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 에스트레마두라 지방과 포르투갈의 알레테주에 해당하는 광대한 지역을 정복, 라티푼디움 (Latifundium)

 

 

1064년 교황 알렉산데르 2세 소집으로 바르바스트로 전쟁, 사실상 십자군의 시작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제1차 십자군을 소집, 타라고나 점령 촉구로 타이파들과 전쟁

 

1195년의 알라르코스 전투

 

1212년의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

 

1215년 알모하드 왕조가 붕괴와 이베리아의 기독교 왕국의 통합

 

1236년 코르도바 함락

 

1236년 세비야 함락

 

1348년 흑사병(黑死病)의 창궐과 마리나드 왕조의 반격, 이슬람의 영토는 남부 이베리아 반도 축소

 

 

3. 스페인의 성립(1469)과 레콘키스타의 종결

1469년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Fernando II de Aragón y V de Castilla "el Católico" 1452 - 1516)와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Isabel I de Castilla, 1451 - 1504)이 결혼하여 아라곤 카스티야 공동왕국이 스페인(에스파냐) 된다.

 

 

이로써 이베리아 반도에서 있었던 781년 간의 이슬람 통치가 종식되었다. 한편 1492년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 ~ 1506)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해이기도 하다.

 

 

 

1478년 카나리아 제도 정복

 

1492년 그라나다 (Emirate of Granada, 1228~1492) 정복으로 레콘키스타 종결

 

알람브라 칙령 반포(1492) _ 유대인 추방으로 동부 유럽계 유대인 공동체에 흡수됐다

 

무어인(Moors)

 

 

4. 시칠리아 탈환

이탈리아의 섬 시칠리아는 9세기 무렵 이슬람이 확장하면서 이슬람의 영토였습니다. 유럽인들은 11세기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크리스트교 확장 등에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에서 이슬람을 몰아내기 위한 대대적인 운동을 전개합니다.

 

 

 

 12세기 로저 2세는 시칠라아 왕국을 성립시켰습니다. 이것은 <지중해 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