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중세미술

중세미술, 3부 서양 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 1

草霧 2013. 2. 22. 17:10

 

 

 

 

중세 미술 1

 

 

헬레니즘, 헤브라이즘 그리고 오리엔탈

 

 

. 서양에서 중세란 무엇인가?

 

 

3부 서양 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 1

 

 

 

 

본 연재 글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세미술, 3부 서양 예술은 교합의 산물이다 편에서는 3편으로 나누워 연재됩니다. “1. 헬레니즘에서는 그리스·로마의 예술 세계가 중세에 영향에 대하여 설명하며, “2. 헤브라이즘에서는 중세 기독교 신앙과 예술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3. 오리엔탈리즘에서는 무슬림의 성장과 영향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추후, 기회가 되면 구체적으로 설명 하고자 한다.

고대미술, 6부 고대 그리스 미술-1, 6부 고대 그리스 미술-2을 참조하세요.

 

1. 헬레니즘

2. 헤브라이즘

3. 오리엔탈리즘

 

 

   

1. 역동성과 감성의 만남, 헬레니즘 [Hellenism BC 323~31]

     

   

 

그리스인처럼 행동하다, 헬레니즘 (Hellenism)

'말하다', '그리스인처럼 행동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hellenizein에서 유래, 그리스 고유의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하여 이루어진 세계주의적인 예술·사상·정신 등을 특징으로 하는 문화사조로 '헬레니즘(Hellenism)'이란 말은 1863년 독일 드로이젠의 저서, '헬레니즘사'에서 처음 사용됐으며, 폭넓게는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 정신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만나면서 질적으로 변화를 일으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고전(古典) 그리스의 뒤를 잇는, 세계사상 한 시대를 규정짓는 개념이다. 이같은 의미로 헬레니즘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1863년 독일의 드로이젠이 그의 저서 헬레니즘사()에서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 말은 그리스문화, 그리스정신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이 시대의 특징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리스문화의 확대 ·발전으로 보는 견해, 반대로 오리엔트문화를 통한 그리스문화의 퇴폐로 보는 등의 견해도 있으나, 그리스문화와 오리엔트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질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새로 태어난 문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재위 BC 336~323)은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도 북서부까지 정복하며 대제국을 건설했다. 기원전 4세기(BC 323~AD 31)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 그리스 식민지에서 나온 양식을 특별히 지칭해 '헬레니즘 미술(Hellenistic Art)'이라고 한다.

 

헬레니즘 시대의 범위를 일반적으로는 BC 330년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제국 정복에서 BC 30년의 로마가 이집트를 병합하기까지의 300년간이 그 시대범위로 간주된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정복한 마케도니아 ·그리스에서부터 대왕의 정복지 전역(인더스 유역 ·박트리아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이집트)까지이며, 일반적으로 로마는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알렉산더 제국과 헬레니즘 문화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BC 330년 다리우스 3세의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킨 뒤 다시 동방으로 진군하였으나, 군사들 중에 열병이 생기고 장마가 시작되어 인더스강 유역에서 군대를 돌려 바빌론으로 돌아왔다(BC 324). 그러나 그 다음해 대왕이 갑자기 열병으로 병사하자, 디아도코이들은 서로 싸운 끝에 대왕이 남긴 영토를 분할하였다. 입소스전투(BC 301), 쿠르페디온전투(BC 281) 등을 거쳐 디아도코이의 세력 범위는 대개 결정되었다. 카산드로스(훗날의 안티고노스)왕조가 지배하는 마케도니아, 셀레우코스왕조가 지배하는 시리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지배하는 이집트의 3헬레니즘 왕국으로 분열하였으나 결국 로마에 합병되었다. 그리스 본토는 아이톨리아동맹 ·아카이아동맹이라는 두 도시동맹을 만들어 독립을 유지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은 헬레니즘 왕국 중에서는 가장 오랜 왕국으로, BC 30년 로마에 합병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셀레우코스왕조가 지배한 시리아에서도 오리엔트적인 전제군주국이 성립되었다. BC 64년에는 로마에 합병되어 그 속주가 되었다. 마케도니아는 로마와 싸워 패하여 BC 168년 로마령이 되고, BC 146년에는 그리스와 함께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오리엔트적인 전제군주풍의 의례를 채용하고, 페르시아 왕녀와의 결혼, 페르시아 귀족을 친위대로 채용하는 등 이민족 통치의 수단으로서 그리스문화와 오리엔트문화의 결합을 시도하였다. 그래서 전대와는 다른 새로운 헬레니즘문화가 탄생하였다. 이로써 세계시민주의가 역설되었다.

     

페르가몬, 기원전 3세기-2세기, 트라야누스 신전은 서기 2세기

 

<극장 꼭대기에서 남서쪽을 바라본 풍경>, 페르가몬, 도시 아래쪽 구역과 주변의 지형이 보인다.

  

  

<Altar of Zeus>, 페르가몬 대제단, 기원전 175-150년경, 대리석, 국립박물관, 베를린

페르가몬의 제우스 대제단이 있던 자리. 대제단은 위 그림처럼 베를린으로 옮겨졌다

    

동서양 문화가 섞여 탄생한 '헬레니즘 문화'

AD 31, 그리스가 로마에 흡수되기까지의 약 300년간을 '헬레니즘(Hellenism)'시대라고 한다. 그리스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의 후손들이 소아시아, 인도 국경, 이집트까지 영토를 확장했기 때문에 동서양 문화가 자연스럽게 혼합되고,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코린트 건축 양식처럼 화려하고 강한 표현기법이 나타났다.

    

문헌학, 자연과학 등이 발달하고 문학은 쇠퇴해, 역사가에 따라서는 그리스 문화의 창조성이 사라져가는 '그리스 문화의 쇠퇴기'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리스 문화의 융합적 보편화와 확산의 시기로 평가하는 시각도 많다. 또 문화사적인 개념에서 볼 때 헬레니즘 문화는 세계화된 그리스 문화를 일컫기도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대제국 건설은 그리스 미술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리스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된 그리스 미술이 그리스를 넘어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헬레니즘 미술에서는 기존의 도리아, 이오니아 양식의 우아함에서 벗어나 장식적이고 화려한 코린트 양식이 유행했다. 그리스 고전주의 전통은 동방 오리엔트 국가의 이국적인 전통과 섞여 변화를 가져왔다.

 

문화의 중심으로서 아테네, 상업의 중심지로 코린토스, 델로스섬과 로도스섬이 노예매매의 중개 무역지로서 번영한다. 그러나 개인의 안심입명을 꾀하는 개인주의적인 철학의 제파가 출현하였다. 제논이 시작한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의 에피쿠로스학파, 디오게네스의 키니코스학파, 아리스티포스의 키레네학파 등이 모두 이 시대의 철학파이다.

 

헬레니즘 미술_강렬하고 극적인 효과

 

전시대의 특징인 이상화는 약화되고 보다 사실적 ·육감적으로 되었으며, 육체의 운동과 정신의 격동 등을 나타내기를 좋아하였다. 이 시대의 학예 중심지는 알렉산드리아 ·아테네 ·페르가몬 등이었는데, 특히 문헌학 ·자연과학 등이 발달하고, 창조적인 문학 등은 오히려 쇠퇴하였다. 일반적으로 이 시대에는 그리스문화의 창조성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상에서는 고전기의 그리스 조각에서 보이는 조화와 세련미, 이상미 대신에 때로는 거칠고 격렬하기까지 한 역동적인 움직임이 나타난다. 나체의 여성과 여신상이 작품에 많이 등장했다. 이 시대의 조각상은 그리스 미술의 모토인 이상적인 면은 약해지고 육체와 정신의 격동성을 선호했다. 현실적인 인간미를 추구해 자유로운 포즈와 표정으로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했으며 고전시대와는 다른 격한 비장미의 표현도 늘었다. 관찰과 묘사가 세밀해진 초상조각이 발달하고, 그리스 고전기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노인, 다른 인종, 동물이 나오는 등 소재의 폭이 넓어졌다.

 

헬레니즘 미술을 대표하는 조각 작품으로는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시모트라케 섬의 '니케의 여신', 밀로스 섬의 '비너스', '죽어가는 갈리아인' '페르가몬 제단' 등이 있다. 모두 조화와 균형보다는 극적이면서도 인상적인 효과에 치중한 경향을 보인다.

 

 

엄청난 역동성과 비장미를 표현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Laocoon and His Sons, Laocoon Group)'

 

1506년에 발견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은 트로이의 사제인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태양신 아폴론을 섬기는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은 트로이전쟁 때 그리스군의 목마(木馬)를 성 안에 들이는 것을 반대해 신들의 노여움을 샀기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아들과 함께 살해당했다. 2.4m의 거대한 조각은 큰 뱀에게 칭칭 감겨 막 질식해 죽어가는 라오콘과 불행한 두 아들의 고통과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섬뜩한 죽음의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 조각상은 그리스 에게 해의 끝 로도스섬의 조각가 아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클리투스 등 3명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Laocoon and His Sons, Laocoon Group)'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 기원전 175~50년경, 대리석, 높이 240cm, 로마 바티칸 미술관 소장

 

1506년에 발견된 [라오콘]상은 베길리우스의 아에네이드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묘사한 조각이다. 트로이의 사제인 라오콘은 동포들에게 그리스 군인들이 숨어 있는 목마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했고 트로이를 멸망시키려 했던 계획이 좌절되는 것을 본 신들이 노하여 바다로부터 두 마리의 거대한 뱀을 보내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칭칭 감아 질식사 시켜 버렸다. 이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자주 나오는 형태로 올림푸스 신들이 무력한 인간들에게 행하는 무정하고 잔인한 이야기 중 하나이다.

 

헬레니즘 미술의 최고봉, 페르가몬 제단

BC 250BC 150년 페르가몬은 헬레니즘 시대의 취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서 소아시아를 지배했던 아탈리드 왕조에 의해 기원전 170년경 페르가몬에 건립된 <제우스제단>의 한 부분이다.

 

건축의 기둥은 이오니아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제단 아래 부분의 조각은 고전기의 조각과 분명히 다른 격정을 보여준다.이 조각의 주제는 신과 거인들의 싸움을 다루고 있다.

 

그리스 고전조각의 조화와 세련미를 발견할 수 없고 대신 격정적이고 극적이며 그리스인들이 이른 바 '파토스(Pathos)'라 불렀던 격앙된 비극적 정서가 표출되고 있다.

 

흉측하게 생긴 거인족들이 신들로부터 공격을 받자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장면이 건축구조와 상관없이 계단을 따라 펼쳐지는 이 일련의 조각은 다분히 서술적이면서 동시에 고전기의 조각에서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정서적 긴장을 드러낸다.

   

 

페르가몬의 제우스의 대제단

거인족을 쓰러뜨리는 올림포스의 신들을 묘사한 환조(丸彫)에 가까운 부조상(浮彫像)으로 약동감 넘치는 헬레니즘조각의 진수를 보여준다. 큰 자세로 옷 주름을 휘날리며 오른손에 벼락을 든 제우스의 표정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거인의 표정에서 그리고,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등의 부조품들이지만 당장이라도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면 기세를 떨칠 것 같은 그들의 모습에서 그것을 느낄 수가 있다

    

고부조로 표현된 등장인물들-제우스나 아테나 등의 신과 하반신이 뱀으로 표현되거나 날개를 달고 있는가 하면 평범한 인간의 형상을 한 거인족들-의 소란스럽고 요동치는 운동감은 부풀어오른 근육과 소용돌이치는 옷주름 등에 의해 이 전투장면을 더욱 인상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각자 배역대로 다양한 자세와 표정으로 연기하고 있는 연극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헬레니즘 미술은 인상적 효과를 표출하기 위해 극적인 요소에 많은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부조의 주제는

고전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만 단지 고전의 부활만이 이 시대 예술가들의 목표가 아니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가들은 고전기의 조각을 참조하여 그것을 그들 시대의 요구에 맞는 것으로 응용했다. 나아가 그들은 폴리클레이토스와 미론, 프락시텔레스, 스코파스 등로부터 배운 자연주의적 수법을 더욱 확장시켜 인간적 특징이 강한 조각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죽어가는 갈리아의 병사]

 

청동으로 만든 원작을 로마인들이 대리석으로 복제한 이 조각상은 [죽어가는 갈리아의 병사] 이다. 페르가몬(소아시아 북서쪽에 있던 작은 도시)의 아탈루스 1세가 기원전 200년경에 헌정한 이 조각은 갈리아의 침입을 격퇴하고 그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작품의 제작을 지시했다. 그리스 전사가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해 훨씬 더 사실적으로 표현된 갈리아 병사의 고통은 장엄한 비애감을 동반한다. 더이상 자신의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갈리아의 병사는 마치 보이지 않는 엄청난 힘이 그를 땅바닥으로 짓누르기라도 하는 듯이 점점 소멸되어 가는 기력을 팔에 집중시키고 있다.

    

역동성과 풍부한 감정표현의 문화 '헬레니즘

 

고전기로부터 헬레니즘으로 넘어가는 시기인 기원전 4세기의 조각에 나타난 새로운 변화의 분위기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자연주의를 향한 새롭고 활발한 추구와 이와 더불어 차별화(differentiation)에 대한 관심의 부활 되었다.

 

2) 예술가 사이에도 전문화가 이루어져 어떤 이들은 감정 묘사에 능숙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서정적 분위기와 보다 세심한 정서를 표현하는데 뛰어났다.

 

3) 새로운 개념들-때로는 추상적 관념까지도-이 예술의 주제가 되었다.

 

4) 여성누드조각의 관능성이 두드러진다.

 

기원전 4세기 조각에 나타난 이러한 특징은 헬레니즘에 이르러 더욱 강화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남자누드를 표현한 이 '토르소'는 비록 머리와 팔다리 부위가 없어지긴 했으나 남성의 신체에서 볼 수 있는 건강한 활력 못지 않게 관능성이 표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전조각에서 볼 수 없었던 극적 동세와 감각적 표현에의 관심을 발견할 수 있다. 관능성에 대한 관심은 여신의 형체를 신적인 차원에서 인간적 차원으로 끌어내렸다.

    

 

천사는 날지못한다. 《사모트라케의 니케

 

이 시대 조각의 특징으로 흘러넘치는 격정의 표현과 함께 사실적 기법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초상 조각에 잘 나타나 있다. 대부분 로마시대의 모각(模刻)이나 시인·웅변가·사상가·지배자들의 초상이 많이 남아 있고, 시대에 따른 양식 변화도 볼 수 있다. 초기의 조각가 폴리에우크테스가 제작한 데모스테네스의 초상에서는 사실을 묘사하면서도 여전히 양괴적인 조형에 의한 이상화를 볼 수 있으며, 후기 작품에는 상()의 두부(頭部)에만 사실적 표현이 강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날개를 단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

 

기원전 2세기 초에 만들어진 승전기념 조각 중 하나인 [사모트라케의 니케]

이 조각상은 막 뱃머리에 내려앉은 니케 여신의 모습을 나타낸다. 큰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여신은 맞바람을 맞아 여전히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며 의상 하나하나에 기막힐 정도의 생동감이 부여되어 있다.

    

매력적인 헬레니즘, 밀로의 비너스

멜로스 섬에서 발견되었는 이유로 '밀로의 비너스'로 불려지는 아프로디테의 모습은 폴리클레이토스의 콘트라포스토에 관능성을 덧붙인 전형적인 예로 볼 수 있다. 고졸기나 고전기의 여신들이 대체로 옷을 입은 형상으로 표현된 것인데 비해 기원전 4세기부터 완전히 벗은 신체의 여신이 나타나고 있음도 주목된다. 콘트라포스토는 이 누드조각의 관능성을 훨씬 감각적이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이용되었던 것이다.

 

품위 있는 머리부분이라든지 가슴에서 허리에 걸친 우아한 몸매의 표현에는 BC 4세기적인 조화를 보이기도 하지만, 두발(頭髮)의 조각과 하반신을 덮는 옷의 표현은 분명히 헬레니즘의 특색을 나타내고, 그 고전적인 자태는 헬레니즘의 극단적인 사실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고전 양식의 부활이라는 당시의 풍조에서 태어난 걸작이다. 그리고 한 팔이 없음으로 해서 오히려 완벽한 여신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상상의 여지가 있으므로 더욱 추앙받고 있다.

 

아울러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허공을 쳐다보는 장중함보다 극적인 동세가 선호되었음을 이미 페르가몬의 제우스 제단 부조를 통해 확인한 바 있는데, 이런 특징은 헬레니즘 조각가들에 의해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추구되었다. 나아가 헬레니즘 조각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주문했던 수집가들은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인 신보다 보다 인간에게 친숙한 신, 이를테면 아프로디테와 승리의 여신인 '니케' 등을 더 선호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의 발흥과 함께 초상조각의 제작도 활발해졌다.

 

특히 이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적이었던 이방인들을 조각의 주제로 선택하게 만들었다. 페르가몬을 습격한 골(골족은 현재 프랑스인들의 조상을 일컫는다)족을 격퇴한 헬레니즘 왕국은 이 전쟁에서 패배한 골족의 전사가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자살하는 장면을 조각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 작품에 나타난 삶과 죽음, 남성과 여성, 옷을 입은 아내와 누드로 표현된 전사, 방금 남편의 칼을 맞고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아내와 남편의 긴장된 팔근육 등의 극적 대비는 이 조각이 그리스인들과는 분명히 다른 골격을 지닌 이방인에 대한 세심한 관찰 아래 제작된 것임을 알려준다. 헬레니즘 시대에 만연했던 새로움에의 관심은 비단 유럽의 다른 종족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흑인들, 남러시아의 스키타이인들을 소재로 한 조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이 시대의 조각은 매우 훌륭하였고 전시대의 특징인 이상화는 약화되고 보다 사실적·육감적으로 되었으며, 육체의 운동과 정신의 격동 등을 나타내기를 좋아하였다. 그렇지만 창조적인 문학 등은 오히려 쇠퇴하였다. 일반적으로 이 시대에는 그리스문화의 창조성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의 모자이크

 

폼페이에서 출토된 알렉산드로스대왕과 페르시아왕 다리우스 3세의 싸움을 그린 바닥면 모자이크화 알렉산드로스의 모자이크BC 317년 무렵의 원작을 정확하고 치밀한 모자이크로 재현한 것으로, 극적인 주제, 격한 움직임, 명암의 효과, 원근법에 의한 거리 표현 등 헬레니즘회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폼페이·헤르쿨라네움 등 베수비오화산 주변의 도시들과 로마제정 초기의 빌라를 장식하였던 프레스코화는 헬레니즘 벽화의 영향을 받았다.

    

BC 3세기 그리스의 독창적 회화기법을 전하는 유품으로 북 그리스 볼로스에서 발견된 채화묘비군이 있는데 죽은 사람의 모습과 죽음에 얽힌 신화적 주제를 파스텔조의 엷은 색채를 사용, 사실적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모자이크는 자연석을 절단하여 만든 사각형 재료 테세라를 써서 세부까지 꼼꼼하게 다듬어진 다채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스 회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도기화는 BC 4세기 중엽에 아티카요업의 쇠퇴와 함께 사라졌다. 이 시대의 도기는 상징적인 장식무늬가 그려져 있거나 오목형[凹型] 부조로 장식되었다.

      

수사학

에피그람

동방(오리엔트)의 문화와 서양(그리스) 문화가 융합된 성격의 문화

폴리스를 초월한 세계 시민주의와 공동체보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적경향

헤론다스의 미미암비 Mimiambi, 마임과 팬터마임

에피쿠로스 학파 (쾌락주의) 와 스토아 학파 (금욕주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의 이상적인 미보다 현실적인 미를 추구하였다. 그리스 문화와 동방의 문화가 융합되었다. 헬레니즘에 녹아든 그리스 문화는 로마에 전해지고, 결국 로마 제국에 의해 서양 문화의 기틀이 되었다. 인도에 영향을 주어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은 불교 미술인 간다라 미술을 탄생시켰다. 간다라 미술은 중국과 우리 나라에도 영향을 주었다.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이 갑작스레 강국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한 가지 분야가 아닌, 그들은 모든 면에 관심을 가졌다... 참주의 신민일 때 그들은 무엇을 이루었는가? 노예와 같은 상태에서 그들은 위축되고 정체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유를 얻자, 일개 시민이 아닌 그는 바로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느꼈다.

    

 

호라티우스는 "정복당한 그리스는 야만적인 승리자를 정복하고 조야한 라티움에 자신들의 예술을 전해주었다"(Graecia capta ferum victorem cepit et artes intulit agresti Latio)라고 말한 바 있다.

 

로마의 예술과 문학은 헬레니즘의 예에서 많이 차용되었다. 코이네 그리스어는 로마 제국의 동부 속주에서 지배적인 언어로 계속 남았다. 수도 로마 시에서도 코이네는 일상적으로 널리 쓰였으며, 상류층은 그리스어를 라틴어만큼 유창하게 구사했다.

   

 

헬레니즘 철학 (Hellenistic philosophy) _  즐거라?

시기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후부터 신플라톤주의의 발생 이전까지의 기원전 320년 경에서 기원후 200년까지의 약 520년 간의 기간을 의미한다. 문명사적 입장에서 헬레니즘 문명은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323년에서 기원전 146년 또는 기원전 30년까지로 로마 시대가 포함되지 않지만, 철학사의 입장에서 헬레니즘 철학에는 로마 시대가 포함된다.

플라톤주의(Platonism): 플라톤 철학 · 플라톤 철학 전통

아리스토텔레스 학파(Peripateticism): 페리파토스 학파 · 소요 학파

키니코스 학파(Cynicism): 견유학파

키레네 학파(Cyrenaicism): 쾌락주의

에피쿠로스 학파(Epicureanism): 쾌락주의

스토아 학파(Stoicism): 금욕주의

피로니즘(Pyrrhonism): 철학적 회의주의

절충주의(Eclecticism)

헬레니즘 유대교(Hellenistic Judaism)

신피타고라스주의(Neopythagoreanism)

헬레니즘 기독교(Hellenistic Christianity)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

    

 

<라오콘 군상>, 뱀들을 상대로 몸부림치는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초기복원 후의 상태)

플리니우스는 이 조각상이 로도스 출신의 하게산드로스와 아테네도로스, 폴리도로스의 작품이라고 주장.

기원전 2세기 혹은 서기1세기, 대리석, 1.84미터, 바티칸 박물관, 로마.

 

1506년 로마에서 발견. 트로이의 사제인 라오콘은 트로이인들에게 목마에 대해서 경고하려다가 이를 막으려는 포세이돈 신이 보낸 바닷뱀들에 의해 두 아들과 함께 공격을 당한다. 한편 뒤틀리고 변형된 인물들의 자태나 라오콘의 몸에서 보여지는 과장된 근육 표현, 고통과 공포로 가득 찬 표정, 몸부림치는 순간의 극적인 묘사 등으로 인해서 학자들 중에는 이 조각상이 페르가몬의 대제단 프리즈와 제작 연도가 비슷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1957년 스페를롱가의 한 동굴에서 헬레니즘 바로크 양식에 속하는 조각 작품들이 더 발견되었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장면들을 묘사한 장대한 구성의 군상들이었다.

   

 

헬레니즘과 로마 합리주의 _ 상식에 맞추다

헬레니즘 시대 동안 신화는 일정 신분만이 향유할 수 있는 일류 엘리트 지식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동시에 고전 시대의 회의적인 성향 또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리스 신화 수집가 유헤메로스 작품 (Sacred Scriptures), 디오도로스와 락탄티우스가 기록한 자료를 통해서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대부분의 내용이 알려져 있다.

로마 제국 시대에 들어오면서 신화 해석학의 합리화는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의 물리주의 이론의 영향으로 대중에게 높은 관심을 받았다. 유헤메로스 학파가 신화를 역사적 형태로 합리화한 반면에, 스토아 학파는 신과 영웅에 대한 설명을 물리적 현상으로 해석하였다. 이와 더불어 스토아와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들은 신화적 전통의 도덕적 의의를 강조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주로 그리스 어원에 바탕을 두었다. 루크레티우스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가르침을 통해 그를 따르는 시민들의 마음에 사로잡힌 미신의 두려움을 쫓고자 하였다.

 

리비우스 신의 역사(Antiquitates Rerum Divinarum) 에서 바로는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이 신을 두려워하는 반면, 진실로 경건한 사람은 그들을 부모로서 공경한다고 주장하였다.

1.자연의 신: 비와 불과 같은 자연 현상의 신격화.

2.시인의 신: 열정을 일으키는 부도덕한 음유 시인이 창안.

3.도시의 신: 민중을 달래고 계몽하는 영리한 입법자가 창안.

키케로 저서인 De Natura Deorum (신의 본질에 관해)로 비판

융화하는 경향

주신 제우스와 주피터는 이러한 신화적 공통점의 좋은 예이다. 두 신화적 전통의 결합에 더불어 새롭게 유입된 동방 종교는 더욱 심화된 융합을 이끌었다.

태양 숭배 문화

오르페우스 찬가와 마크로비우스의 사투르날리아

 

헬레니즘,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의 자연과학 _ 헛소리도 과학이 된다.

알렉산드로스대왕 사망 후, 마케도니아 제국은 셋으로 분열되고, 북아프리카 지역은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새 왕조를 세우게 된다. 프톨레마이오스3세는 그리스의 학자들을 초청하여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Academy)아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립한 뤼케이온(Lykeion)을 본따서 보다 큰 규모로 도서관과 박물관을 포함한 뮤제이온(Museum)을 설립하여 알렉산드리아 지역을 새로운 학문의 중심지로 만든다. 이 때부터 로마가 지중해 지역과 유럽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는 기원 후 수세기까지 학문적문화적 활동을 고대 그리스의 영향을 크게 받은 헬레니즘 문명권 활동으로 본다.

 

유클리드의 기하학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 직선, 삼각형, 원 등 중요한 용어들을 정의하고, 이들 사이의 관계에서 명백해 보이는 공리들을 만들어 낸다. 기하학적인 구도를 갖춘 논리적 추론의 방식은 이미 고대 그리스 문명의 초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도 그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후세의 학자들은 근대 과학이 서양 문명권에서도 그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후세의 학자들은 근대 과학이 서양 문명권에서 형성될 수 있었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이러한 논리적 사고 구도라고 본다.

 

아르키메데스의 수학

물리적인 현상들을 수학적으로 다루면서 실천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많은 해결책을 제시한 수학자가 아르키메데스이다. 르네상스기에 이르러서야 다시 한번 플라톤의 저술들과 함께 아르키메데스의 저술들이 학자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근대 물리 과학이 수학적인 형태를 갖추어가는데 영향을 끼쳤다.

 

 

 

로마의 자연과학

그리스 이래로 알려진 각종 지식을 간략히 정리하여 전달하는 개요서 형태로 나타났다. 개요서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플리니우스의 박물지같은 내용은 계속 다시 필사되어 당시의 내용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15세기 중반 금속 활자 인쇄본의 책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곧 출판되어 17세기 과학 혁명기에 원자론이 부활되는 지적인 배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개요서의 저술 전총은 로마 말기에서 중세 전기 내내 계속 된다.

   

 

<사모트라케의 니케(승리의 여신상)>, 로도스 출신 피토크리토스(Pythokritos)의 작품으로 추정,

기원전 180년경, 대리석, 2.45미터, 루브르, 파리

 

승리를 의인화한 이 조각상은 대리석 원작으로 높이가 2.45미터. 원래는 앞이 환하게 트여 있는 절벽 꼭대기에 자리잡은 성소건물 안에 세워져 있었는데, 조각상의 맏침대는 배의 이물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다. 발굴자들에 따르면 이들 전체가 저수조 내에 위치해 있어서 물위로 상이 비쳐지도록 되어 있었으며, 반대편에는 들쑥날쑥 나온 바위들로 꾸며진 또 하나의 저수조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위험으로 가득 찬 바다를 통과할 수 있도록 배 또는 국가를 인도하는 니케의 역할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Ptolemaeus)의 천문학과 갈레노스(Claudius Galenus)의 의학

 

 

로마 시기에 과학의 창조적 발전이 크게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매우 정교한 우주 체계와 인체의 기능을 설명하는 생리학 체계가 이 때 정립되었다.

    

 

천문학 집대성(Megalē Syntaxis tēs Astoronomias) 알마게스트(Almagest)

(AD 140년 편찬 ~ 12세기 후반 재판)

알마게스트(Almagest)를 저술한 프톨레마이오스는 해, , 행성들의 움직임을 각도로 추적하여 나타내는 데 주력했고, 이들 천체의 물리적 크기나 그들 사이의 거리 같은 사항은 별도로 다루었다.

 

그래서 그는 이들 천체를 식도 심께 하늘 위에서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원을 그리며 도는 공 껍질 모양의 친구를 가정했다. 그리고 중세 내내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동심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여러 개의 천구들로 이루어진 우주의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유럽에서는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천문학 수준이 프톨레마이오스시대에 이르렀고 그 기초위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탄생하였다.

 

 

 

 

 

갈레노스(Claudius Galenus)의 의학

모든 인체의 구조를 기능적으로 해설하려고 하였다. 코는 숨을 쉬기 위해 만들어졌고 다리는 걷기 위해 그리고 눈은 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갈레노스의 입장이다.

 

갈레노스의 이론은 심장과 동맥, 정맥을 통한 혈액 순환의 해부학적 지식과 혈액의 산소 전달이라는 생리학적 개념이 없던 시대에 이는 소화, 호흡 및 신경계의 기능을 설명해 주는 매우 그럴듯한 이론 체계였다.

 

 중세유럽과 르네상스뿐만 아니라 이슬람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11세기 말경에는 유럽학자들이 고대 그리스 문화를 깨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5~16세기 르네상스 기간에 부활한 갈레노스의 전통은 현대의학의 발흥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르베리니의 파우누스로 널리 알려진 잠든 사티로스 상>

로마에서 발견된, 헬레니즘 시대의 원본으로 추정. 기원전 200년경, 대리석, 높이 2.15

 

 

그리스 헬레니즘 조각 _ 남자는 벗어야 한다.

 

기원전 320년경부터 기원전 30년경까지, 즉 알렉산드로스 대왕(재위 기원전 336기원전 323)의 동정(東征)에 의하여, 널리 동방 각지에 전파된 그리스 문화가 오리엔트 문화와의 접촉으로 동방적 요소와 융합하고, 뚜렷한 변화를 가져오게 한 시대를 말한다.

    

이 시대는 정치적으로 폴리스는 체제가 붕괴하고, 강대한 지배권을 가진 군주제로 바뀌어 종교적으로는 올림포스의 신들로부터 개인적인 쾌락의 추구로 옮겨졌다. 이러한 시대 사조를 기본으로 하여서 일어난 헬레니즘(Hellenism) 시대의 미술은 모든 면에서 전시대를 초월했다. 새로운 미술의 중심은 본토를 떠나 알렉산드리아·안티오키아·소아시아의 페르가몬 등으로 옮겨졌다.

 

각종의 다양한 민족이나 문화와의 접촉과 현실 생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그 소재를 무한정으로 넓혀, 세속적인 서민의 일상 생활의 모든 모습에까지 넓혀졌다. 여기서 고전적인 감정은 격정·흥분에까지 높아지고, 운동은 격동·동요에 이르렀다. 아름다운 아프로디테는 관능의 세계에 도취되어 결국 헤르아프로디테의 상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유명한 <라오콘>(바티칸 미술관)을 비롯하여 페르가몬의 제우스 신전 대제 단의 부조(베를린 미술관)는 비통(悲痛격정을 나타내고, 그 위에 사실적(寫實的)인 감각과 고도한 기법은 <권투사(拳鬪士)>(로마 국립미술관), <거위를 안은 아이>(루브르 미술관) 등의 작품을 낳았다. 그리고 <메로스의 아프로디테> 등 여러 가지 아름다운 아프로디테의 상이 제작된 것도 이 시대이며, 이들 헬레니즘 시대의 특징은 로마에 계승되어 새로운 전개를 보게 된 것이다.

    

<멜로스의 아프로디테(밀로의 비너스)>

기원전 150-100년경. 대리석, 높이 2.04미터, 루브르, 파리. 1840년경 멜로스 섬에서 발견

 

미인의 기준, 아프로디테 _ 당신은 아름다운가?

다양한 발전을 보인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들은 아름다운 아프로디테에 있어서 미술사상 드물게 보는 위대한 발전을 했다.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관능적인 모든 가능한 형태를 탐색하고, <웅크리고 앉은 아프로디테>(루브르 미술관, 로마시대 모각)<아름다운 볼기를 벗는 아프로디테>(로마시대 모각, 나폴리 미술관) 등 자유분방한 자태를 전개시켰다.

 

여기서 여신은 이미 천상적, 그리고 청초한 여신이 아니라, 요염한 관능미를 과시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이 관능미에 대한 도취는 끝내 남녀 양성을 가진 <헤르아프로디테>로 발전했다. 상반신은 풍만한 유방을 갖고, 하반신에는 남성의 상징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조각은 여러 각도로 바라보며 감상되었다. 이 풍조에 대해 다시금 고전적 이상미에 가까워지려는 작품도 나타나서 <메로스의 아프로디테>(루브르 미술관)<메디치의 아프로디테>(우피치 미술관) 등의 아름다운 여신상도 제작되었다.

    

<아프로디테와 파우누스, 에로스>

 

델로스 섬에 있는 베리토스(베이루트)의 포세이도니아스트들의회관에서발견, 기원전 100년경, 대리석, 높이 1.32미터, 국립박물관, 아테네 일명슬리퍼로 때리는 여신(Slipper-Slapper). 포세이도니아스트들이란 일종의 상인 조합으로 델로스에서 이들의 회관이 세워져 있었는데 기원전 166년에 로마인들은 이 건물을 아테네인들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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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끝. 2부에서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