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고대미술

8부 고대 아메리카 미술 [ Americas Art ] - 1

草霧 2013. 2. 15. 14:07

 

 

 

 

 

 

 

 

 

 

고대 미술 9

 

 

달력의 예술

 

 

8부 고대 아메리카 미술 [ Americas Art ] - 1

 

 

 

 

본 연재 글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추후, 미국미술과 라틴아메리카 미술 편에서 보충됩니다.

 

 

신비에 싸인 기원 (선사 및 원시 부족들, 고대아메리카)

 

 

 

미술의 신비한 기원을 이해하려면 원시인들이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실용적위력이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게금 만든 체험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들 마음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스페인에서 발견된 벽화 그리고 프랑스남부의 동굴에서 벽화가 발견되었을 때 고대 학자들은 빙하 시대에 이처럼 생동감 있고 살아 있는 듯한 동물 그림을 인간이 그렸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런 유물들에 가장 그럴듯한 해석을 붙인다면 아마도 이 유물들이 그림의 위력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의 가장 오래된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이들 원시 사냥꾼들은 그들의 먹이를 그림으로 그리기만 하면 실제로 동물들이 그들의 힘에 굴복할 것으로 생각했다.

 

원시미술은 이처럼 미리 정해진 방식으로 만들어지지만 그래도 미술가의 기질을 알아볼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다.우리가 언시 미술을 논할 때 잊어서는 안될 것은 원시라는 단어가 이들 미술가들의 재능이 미개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것과 다른 것은 그들의 기술의 수준이아니라 그들의 착상인것이다.이러한 문명들이 만들어낸 대부분의 작품들이 우리들에게 생소하고 부자연스럽게 보인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관념 때문일 것이다.

 

미술의 모든 역사는 기술적인 숙련에 관한 진보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의 생각과 요구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아메리카은 위대한 문명 중에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미술이다. 이유는 이러한 미술이 즐거움이나 장식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종족의 종교의식이나 페루 잉카족의 강력한 제국 통치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인간의 얼굴을 완전하게 재현할 수 있었고 사람의 머리 형상의 그릇 발견된다.

 

콜럼부스 이전의 아메리카 미술

 

1492년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이전 중남미에서는 현재의 멕시코, 과테말라, 페루 등을 중심으로 기원전 2세기이후 부터 화려하고 강력한 문명이 꽃피었습니다.

 

수학과 천문학이 발달하여 정교한 달력을 만들 줄 알았으며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였던 마야문명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토템신앙을 바탕으로 장식적인 문양이 두드러진 거석들이 고원도시의 광장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또한 최근의 고고학적인 발굴로 알려지기 시작한 서부 멕시코 일대의 기원 7세기 경의 테오티후아칸 유적에서는 건축물을 뒤덮은 다양한 타일장식에서 보듯 도자기 공예에 있어서 뛰어난 솜씨가 발휘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페루에서 발견되는 사람의 얼굴모양을 한 부장용 용기 역시 사실성과 높은 표현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콜럼부스의 상륙을 역사적인 기점으로 삼는 이유는 현재 신대륙의 문화를 이 지역의 토착문명과는 그 뿌리를 달리하는 유럽문명의 확장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중남미의 문명은 콜럼부스 이후 포르투칼과 스페인의 식민지정책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으며, 다만 그 미술이 토착민들에 의해 공예적인 방식으 로 전승되고 있을 뿐입니다

 

 

 

인간의 두려움에 시작된 문명

    

 

달력의 예술

 

 

마야력

마야력의 기본 구조는 고대 중앙 아메리카의 문명사회에서 사용된 모든 역법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365일의 1년과 260일의 제사주기(祭祀週期)로 되어 있다. 이와 동시에 그 주기는 ' 역주기'(曆週期)라고 하는 18,980, 365일씩 52년이라는 더 큰 주기를 만든다.

 

마야인들이 260일 주기를 원래 무엇이라 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 주기를 날짜를 셈한다는 뜻의 촐킨(Tzolkin), 점술력(占術曆) 또는 제사력(祭祀曆)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 역법은 1~13의 숫자가 조합되어 이루어졌고, 날마다 20개의 이름이 순차적으로 붙여졌다.

 

이러한 날들은 운명적인 특징을 지니는 것으로 여겨졌다. 365일인 마야력은 각각 20일씩 18개월과 우아예브(Uayeb)라고 하는 악의 징후를 뜻하는 기간인 나머지 5일로 나누어져 있다.

 

고대 마야인들이 역사적인 날들을 기록했던 방법은 독특했다. 그들은 년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날을 지정하여 52년 주기의 역주기에 1번씩 나타나도록 했다.

 

날짜를 서로 연결시키기 위해 마야인들은 날짜 사이의 시간을 며칠 또는 며칠의 묶음으로 표현했으며, 모든 역사 기록들을 서로 관련짓고 날짜를 정확히 맞추기 위해 특정한 날을 기점으로 삼아 연속하여 시간을 계산했다.

    

 

 

아스텍력

아스테카력은 '멕시코 계곡'에서 사용된 초기 달력에서 유래했으며, 기본적으로 마야력과 비슷했다. 1년은 월말마다 행해진 축제기간에 맞도록 고안되었다. 새로 불을 지펴서 한 해를 시작했고 4년마다 거창한 의식을 거행했다.

 

아스텍력은 마야력에 비해 수체계가 좀더 원시적이고 날짜기록 방식이 부정확하다는 점이 크게 달랐다. 다른 모든 중앙 아메리카인들뿐 아니라 멕시코인들은 세계가 주기적으로 파괴된 뒤 재창조된다고 믿었다.

 

멕시코 시의 국립인류학박물관에 소장된 ' 역석'(曆石)에는 멕시코인들이 지진으로 세계가 파괴될 때라고 믿었던 날짜가 묘사되어 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력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부족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역법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대신 그들은 독자적인 방식으로 시간간격을 계산했지만 일은 모든 부족들에게 시간의 기본적 단위로서 인식되었다.

 

일반적으로 하루가 지날 때마다 모두 몇 개인지 그 수를 알고 있는 막대기 묶음에서 막대기를 하나씩 빼내어 날을 확인했다. 이보다 더 긴 시간 간격은 달을 이용하여 계산했으며, 계절의 순환주기도 매우 중요했다.

 

대부분의 부족들은 12개월을 1년으로 계산했지만, 몇몇 부족들은 13개월을 1년으로 계산하기도 했다. 중요한 사건이 있는 해는 종종 V자가 표기된 막대기로 표시했다. 북부지방의 몇몇 부족들은 일련의 사건들을 상형문자로 기록했다.

 

이러한 기록 중 하나는 '외로운 개의 겨울 횟수'(Lone-dog Winter Count)로 알려져 있다. 전해지는 것은 들소 가죽으로 만든 옷에 그린 것인데 이것은 1800년부터 시작해 71년을 1 주기로 기록한 것이다.

 

단지 몇몇 부족만이 달의 경과를 년과 관련지어 계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유럽인들과의 접촉을 통해서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그결과 그들의 달력에 관한 현재의 지식은 원래의 체계들이 지녔던 복잡성을 완전히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다.

 

잉카력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잉카에 태양과 달의 관측을 바탕으로 한 역법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 역법의 자세한 계산법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2태음월의 이름은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농경생활기의 축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지만, 시간 계산법이 널리 사용된 증거는 없다.

 

불확실하지만, 이후의 연구를 통해 잉카의 수도 쿠스코에서는 27일을 1개월로 하는 태음태양력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는데, 이것은 328(27×12)로 이루어져 있다.

 

 

 

 

 

아즈텍 문명의 우주관이 담긴 태양의 돌

 

찬란하게 다시 떠오른 아즈텍의 태양

 

식민 시대 말기 멕시코에 파견된 스페인 부왕(총독)은 멕시코 시티의 정비를 명한다. 이윽고 언덕을 깎아 평지로 만들고, 도로를 포장하고, 지하 배수관을 만드는 대역사가 벌어진다. 때는 그 아득한 옛날인 1521년 아즈텍인들이 스페인인들에게 무릎 꿇은 8월이었다.

 

스페인의 침공에 맞서 굶주림과 질병을 무릅쓰고 처절하게 항거했으나 결국 한 맺힌 항복을 한 그날 이후 아즈텍의 찬란한 태양은 빛을 잃었다. 그리고 아즈텍인들은 식민 지배자의 가혹한 탄압에, ‘위대한 아즈텍인이라는 자부심마저 망각한 채 기나긴 세월을 암흑의 세계에서 신음해야만 했다.

 

그러나 영원히 져버린 줄 알았던 아즈텍의 태양은 그로부터 270년 후인 1790년 바로 그 8월에 다시금 떠올라 세상을 비추었다. 부왕의 명으로 멕시코 시티의 중앙 광장인 소칼로(Zócalo)를 파들어 간 인부들은 지하에서 무려 무게 24, 직경 3.6m에 달하는 거대한 태양의 돌을 발견한 것이다.

 

멕시코 시티 자체가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이 있던 자리에 건설된 것이며, 중앙 광장이 있던 자리도 몇 개의 피라미드가 있던 테노치티틀란의 대광장 자리였기에 태양의 돌과 같은 아즈텍 문명의 정수를 시가지 공사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태양의 돌에 담긴 세계관

 

오늘날 태양의 돌은 멕시코 시티의 인류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64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중앙 아메리카 고대 문명에 관한 한 규모나 소장품의 수준 면에서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양의 돌은 현란하기 이를 데 없다. 알 수 없는 상징과 기호들이 빼곡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중앙의 작은 원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태양을 상징한다. 특이한 것은 아래로 혀를 날름 내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태양은 제5의 태양이다. 아즈텍인은 물론 중앙 아메리카인들은 자신들이 제5의 태양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공통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앞의 4개의 태양이 떠 있던 시대는 모두 멸망했다고 믿고 있었다.

 

5의 태양을 감싸고 있는 원 바로 바깥 원의 4개의 기호가 각각 제1-4의 태양의 시대를 멸망시킨 대재앙인 재규어, 폭풍, 불의 비, 대홍수를 상징한다. 그 다음 원의 20개의 상징은 한 달의 첫 날에서 마지막 날까지를 의미한다(아즈텍인의 달력은 한 달이 20일이다). 그래서 태양의 돌을 흔히 아즈텍의 달력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를 뒷받침해준다.

 

그 다음 원의 V자형으로 바깥쪽으로 뾰족하게 되어 있는 부분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또 맨 바깥 원에는 두 마리의 뱀이 요동치고 있다. 아랫부분이 머리 부분이다. 아즈텍인은 태양이 매일 뱀을 타고 동에서 서로 여행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양의 돌은 단순한 달력이 아니다.

 

 태양의 돌은 종교적 경건함과 열망, 그리고 종교적 의무를 내포한 일종의 경전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인간의 유한성을 초월하여 영원한 삶을 얻고자 하는 종교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인 철학을 담고 있다. 이는 이미 멸망해버린 4개의 태양이 아니라, 이 시기를 각각 멸망시킨 재규어, 폭풍, 불의 비, 대홍수를 새겨 놓고 있고, 5의 태양이 마치 입맛을 다시듯이 혀를 내밀고 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

 

5의 태양의 유구한 생명력을 기원한 희생 의식

 

스페인인들은 흔히 원주민들이 야만인이라는 점을 들어 신대륙 지배를 정당화하였다. 야만인이라는 증거로 들이댄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카리브 해나 브라질의 원주민들이 식인종이었다는 사실이며, 둘째는 바로 아즈텍인들이 제천 의식을 거행한답시고 거리낌없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다.

 

사실 아즈텍인들의 사람을 바치는 희생 의식은 도가 지나친 점이 없지 않다. 약간 과장되어 보이기는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1486년 아즈텍의 왕으로 즉위한 아위소틀은 단 한 번의 제천 행사에 8만여 명을 죽였으며, 이듬해 한해 동안 20만 명을 재물로 바쳤다고 한다.

 

아위소틀 뿐만 아니라 아위소틀 직전에 아즈텍의 세력을 크게 확장한 목테수마 1세나, 훗날 에르난 코르테스가 침입했을 때의 왕인 묵테수마 2세 역시 희생 의식에 광분했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아즈텍인들이 야만스럽다거나 잔혹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1의 태양의 시대에서 제4의 태양의 시대가 이미 대재앙으로 멸망했다는 점은 제5의 태양 역시 언젠가 쇠락하리라는 것을 예고하는 일이다. 더구나 아즈텍인들이 살던 시대는, 중앙 아메리카인들의 역법에 따르면 제5의 태양이 질 시기에 해당했다. 아즈텍인들보다 역법에 더 밝았던 마야인들은 제5의 태양이 지는 시점을 20121223일로 못박고 있었다. 이 계산에 따르면 세계가 멸망할 날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또 다른 역법에 따르면 제1-4의 태양의 시대는 각각 4천년 내지 5천년을 주기로 하였고, 5의 태양은 기원전 4000년에 탄생했다고 하니 아즈텍인들의 전성기가 시작한 15세기는 제5의 태양이 떠오른 이후 이미 5천년을 훨씬 넘긴 셈이니 언제 대재앙이 닥칠지 모를 일이었다.

 

1450-54년 사이에 각종 자연 재해가 일어났을 때나, 스페인인들이 오기 약 10년 전에 혜성이 나타나고 대화재가 일어나는 일 등이 있었을 때, 아즈텍인들이 제5의 태양이 질까봐 두려움에 떤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아즈텍인들은 끊임없이 제5의 태양의 원기를 북돋아 태양이 지는 것을 막고자 했고, 그들의 신화에 따르면 사람의 심장과 피를 바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그 신화는 제5의 태양의 시대가 시작된 시점에 대해 또 다른 내용을 담고 있으며, 배경이 된 장소는 멕시코 시티에서 북동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테오티와칸이다.

 

신화에 따르면 대홍수로 제4의 태양이 지고 난 후(노아의 방주 시기와 이 시기를 비슷한 연대로 보는 이들이 많다), 신들은 암흑으로 뒤덮힌 테오티와칸에 모였다. 암흑 속에서 오직 성스러운 불꽃 한 줄기만이 빛을 발하였다. 태초를 열기 위해 생명을 바친 신 우에우에테오틀의 화신이었다.

 

신들은 절규했다. “누군가가 불꽃 속으로 몸을 던져 희생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태양이 생길 것이다.” 그러자 두 명의 신이 몸을 바쳐 희생하였다. 그리고 하늘이 새벽녘처럼 붉어지더니 생명의 원천인 태양이 불타오르며 힘차게 솟구쳤다고 한다.

 

결국 이 신화는 제5의 태양의 강렬한 불길을 지닌 태양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태양의 원기를 북돋우기 위해서는 가장 고귀한 생명도 아끼지 말아야한다는 종교적 사명을 요구하고 있다. 불길과 같은 색깔을 지닌 인간의 심장과 피가 태양의 원기를 돋구는 직접적인 자양분이라는 상상을 아즈텍인들이 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태양의 돌 가운데에 새겨진 제5의 태양의 혀는 그래서 인간의 피로 입맛을 다시고 있는 듯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으며, 또한 인간의 심장을 가르기라도 하듯 칼처럼 혀를 뾰족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제1-4의 태양의 시대를 멸망시킨 대재앙을 일으킨 장본인들인 재규어, 폭풍, 불의 비, 대홍수를 새겨 넣음으로써 아즈텍인들은 제5의 태양을 위해 어떠한 희생이라도 하여야만 한다는 종교적 암시를 끊임없이 주고 있는 것이다.

 

영원으로 가는 통로 제5의 태양

 

인간의 계절은 흔히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뉜다. 여름만이 있는 것 같은 적도 지방이나, 겨울만이 있는 것 같은 북극 지방에서도 대부분의 민족들이 희한하게도 계절을 사계로 나눈다.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고, 죽는 만물의 법칙과 딱 맞아떨어지는 구분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민족이 방향을 넷으로 구분하다. 동서남북, 전후좌우처럼 말이다. 넷으로 나누기 싫으면 으레 둘로 나누기 마련이다. 사실 무엇인가를 구분하기 위해서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 적과 아군, 생과 사, 남성과 여성, 주인과 노예, 오른쪽과 왼쪽, 위와 아래 등등으로 나누면 무엇인가를 구분하는 것은 너무도 쉬워진다. 그런데 아즈텍인들은 어째서 다섯 번째 태양에 목을 매달고 있는 것일까? ‘5’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는 영원을 의미하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개념에서 비롯된 숫자이다.

 

서구의 예를 두고 보자면 이는 절대자나 영원성을 상징하는 숫자인 ‘1’이나 ‘3’에 해당된다. 짝수나 4의 배수로 무엇인가를 구분하다가도 유일신을 내세우는 기독교나 삼각형이 우주의 근본 법칙이라고 말하는 피타고라스가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게 된 것을 보면 ‘1’이나 ‘3’과 같은 홀수는 짝수나 4의 배수보다 분명 질적으로 우위에 있는 숫자이다.

 

그런데 세계의 어느 종교나 절대적 신을 상상하게 마련이지만 기독교만큼 그 절대신이 딱 한 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종교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종교는 그저 절대자를 막연하게, 그리고 추상적으로만 상상할 뿐이다. 이는 기독교처럼 절대자가 누구이다라고 딱 집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 밖의 일, 때로는 불경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게 보통의 종교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독교가 오늘날 전 세계에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고정 관념을 뒤엎고 절대자가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막연하지 않은 절대자, 즉 좀더 쉽게 인간에게 다가서고 동시에 인간에게 구체적으로 위엄을 보일 수 있는 절대자 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절대자를 하나로 상상하는 것이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인간을 둘러싼 자연 자체가 무엇인가 하나만을 딱 끄집어내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령 농경 사회의 전형적인 구분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각각 중요한 의미를 띄고 있다. 겨울만 해도 단지 죽음의 계절이 아니라 소생을 준비하는 계절로 간주되기 마련이다.

 

또 기독교처럼 가령 하늘만을 떠받들며 절대자 운운하는 것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하늘은 무한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대지의 생명력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많은 민족이나 종교는 성스러움이나 절대자를 표현할 때 ‘1’로 표현하기보다는 주로 ‘3’으로 표현한다. 유일신을 주장하는 기독교(가톨릭)임에도 뜻밖에도 하느님, 예수, 동정녀 마리아(혹은 성부, 성자, 성신)의 세 영역을 설정하고 유럽 포교에 나선 것은, 포교의 편의를 위해서 원래 ‘3’을 절대자의 상징적 숫자로 여기던 이교도유럽인들, 특히 서구 문명의 근간이 되었던 그리스인들의 정신 세계와 야합한 것에 불과하다.

 

때로는 ‘3’과 더불어 ‘5’가 성스러움이나 절대자의 상징적 숫자가 되거나, 아예 ‘5’‘3’의 역할을 대체하기도 한다. 사실 자연의 주기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는 것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라면 1부터 4까지는 인간에게 친숙한 존재이다. 즉 구체적이고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다섯 번째의 무엇인가를 상상한다는 것은 구체적이고 실제 존재하는 것을 초월한 무엇인가를 상상하는 것이다. 1-4까지보다 추상적이고 숭고한 그 무엇, 쉽게 다다르기 힘든 심오한 정신 세계 말이다. 결국 아즈텍인들의 제5의 태양은 그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절대자 혹은 최고의 가치인 셈이다. 동서남북, 전후좌우, 하늘과 땅처럼 구체적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끝없이 추구해야할 심오한 정신적 영역인 것이다.

    

5의 태양은 불길 속에서 생명을 얻었다. 그래서 아즈텍인들은 그 불길과 닮은 심장과 피를 바쳤다. 그러나 태양의 원기를 북돋우고자 한 일은 단지 대재앙이 무섭기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즈텍인들이 진정한 바램은 제5의 태양의 불길에 몸과 마음을 불살라 세속의 때를 정화시키고자 했음이리라.

 

물론 종교라는 미명으로 안 그래도 억압받고 착취 받던 아즈텍의 많은 평민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러나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수많은 자원자가 있었다고. 어쩌면 현실의 고난이 그들로 하여금 희생 의식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초월적 세계를 염원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아즈텍의 희생 의식은 결코 야만스럽고 잔혹하다고만 볼 일이 아니다. 아즈텍인들에게 제5의 태양은 영원을 향한 통로였다.

 

     

 

아메리카 미술 1부 끝. 2부에서 계속

   

 

본 연재 글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추후, 미국미술과 라틴아메리카 미술 편에서 보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