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와 궁녀, 비밀을 묻다>는 궁중의 은밀한 존재였던 내시와 궁녀에 대해 살펴보는 책이다. 구중궁궐의 숨은 권력자이자 왕의 수족으로 평생을 살아야만 했던 내시와 궁녀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2005년에 출간된「내시와 궁녀」의 개정증보판으로, 지금 시기적으로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을 알려주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번 책에서는 다양한 사진과 베일에 싸여 있었던 흥미로운 내용들을 대폭 추가하였으며, 특히 내시가 되는 과정과 그들의 결혼생활, 묘지, 일화와 함께 궁녀의 유래, 출궁과 죽음, 궁녀의 선발과 입궁 과정 등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하였다. 또한 다른 책에서 다루지 않은 내시와 궁녀의 비문 및 역대 내시교관 명단을 부록에 추가하였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내시와 궁녀들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그들이 역사에 남긴 흔적과 현재 어떤 모습으로 조명받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아울러「내반원기」「한성부 북부장 호적」「양세계보」 등의 자료를 참고로 하여, 내시의 거주지역과 묘비에 써 있는 글까지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구중궁궐 깊숙한 곳
비밀을 안고 사는 내시와 궁녀들의 실제이야기!
현존하는 내시와 궁녀의 유적 소개!
내시 신도비 내용 최초 공개!
김처선을 능가하는 충신 내시 김순손
왕의 경연 중에 코를 골며 잔 김자원!
조선 내시들은 마늘을 먹을 수 없었다
베일에 쌓인 내시 시술과정 공개!
여의도 샛강에 내시를 양산하던 시술소가 있었다!
궁중의 은밀한 존재- 내시와 궁녀
요즘 내시를 주인공으로 한 사극 드라마가 방영되고, 궁녀 관련 영화가 나오는 등 어느 때보다 내시와 궁녀에 대한 관심도가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세계는 지금까지 역사적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것은 자료의 절대적인 빈곤과 이 방면의 연구가 빈약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5년 출간된《내시와 궁녀》는 척박했던 이 분야에 소외되었던 그들의 역사를 밝혀주는 데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저자 박상진 씨는 책을 낸 후 2년 동안 내시와 궁녀의 자료와 유적을 찾아 도서관으로 혹은 산야로 헤매고 다녔다고 회고하면서, 그동안의 연구성과와 축적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개정증보판을 출간하게 되었다.
《내시와 궁녀, 비밀을 묻다》는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서 왕의 수족과 그림자가 되어 한 많은 생을 살아야만 했던 내시와 궁녀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지금 시기적으로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을 알려주는 데 중점을 두었고, 다른 책에선 다루지 않은 내시와 궁녀의 비문과 역대 내시교관 명단을 부록에 추가했다. 여기에 좀더 다양한 사진과 일화 등 베일에 쌓여 있던 흥미로운 내용을 대폭 추가했다. 특히 내시가 되는 과정과 그들의 결혼생활, 묘지, 일화와 함께 궁녀의 유래, 출궁과 죽음, 궁녀의 선발과 입궁 과정, 등 그들의 삶을 빠짐없이 복원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나라를 쥐락펴락했던 숨은 권력자들과 왕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고 희생한 내시와 궁녀들의 실제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내시들은 어디에서 살았으며, 어느 곳에 묻혔을까?
내시들은 오늘날의 종로구 효자동?봉익동?운니동 일대?은평구 신사동?응암동 일대?서대문구 연희동?가좌동 일대 등 수도권 전역에 거주했다. 현재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는 아직까지도 선조조 내시 김계환의 14대손인 유충현 씨가 선영을 돌보며 살고 있다.
흔히 내시들은 궁 안에서만 살고 결혼이나 자식을 두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오늘날의 효자동인 궁 밖 준수방에 내시부가 위치에 있었다. 효자동은 본래 내시들의 별칭인 화화자가 살던 동네라 해서 화자동이라 했던 것인데 뒤에 음이 변해서 효자동이 되었다.
내시들의 묘는 서울 은평구 진관내?외동, 도봉구 쌍문동, 노원구 상계동, 중랑구 신내동은 물론 고양?양주?남양주?파주 심지어 평안남도 강동, 경상북도 풍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국에 산재해 있다. 이 책은《 내반원기》《한성부 북부장 호적》《양세계보》를 참고로 하여 내시의 거주지역과 묘비에 써 있는 글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내시와 궁녀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고려시대 중엽 이후 조선 초기까지는 많은 내시와 궁녀들이 중국 조정에 들어가 봉사했다. 그들 중에는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의 부인이 된 기황후가 있고, 승상을 마음대로 부릴 정도의 권세를 가진 고용보 같은 내시와 충선왕을 귀양 보낸 임빠이앤투그스가 있다. 그들은 중국 조정의 배경을 이용하여 자신이 태어난 고을을 승격시키는가 하면, 공신이 되어 군으로 봉군되는 경우도 흔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15명이 한꺼번에 군으로 봉해지기까지 했다.
조선시대에는 유전을 답사한 내시 이효지를 비롯하여, 신분을 속이고 무과에 급제한 내시 김윤문, 김처선 못지않게 바른말을 아뢰고 죽음을 당함으로써 자신의 직무를 다한 김순손이 있다.
한편, 궁녀는 죽기 전에는 궁을 나갈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는 퇴직한 궁녀들이 살았던 궁말이란 지명이 남아 있고, 진관외동에는 인조 때인 13세에 궁녀가 돼 40여 년간 4명의 임금을 모시고 숙종조에 죽은 임상궁과 상궁 김해김씨의 묘와 보모상궁 김씨의 묘비가 남아 있다.
조선조 마지막 궁녀인 성옥염 상궁은 죽기 전 무의탁 노인복지시설인 서울시 노원구 중계사회복지관에 머물렀는데, 그녀가 남긴 것은 몸뻬 두 벌, 양말 등 내의 몇 벌, 그리고 2만 3,000원이 든 낡은 지갑만을 남기고 자신이 모시던 윤황후의 곁으로 떠났다.
이처럼 내시와 궁녀는 구중궁궐의 숨은 권력자이면서 동시에 왕의 수족으로 평생 육체적인 결함과 마음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이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내시와 궁녀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그들이 역사에 남긴 흔적과 현재 어떤 모습으로 조명 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북한산 내시 묘역은 최고?최대-서울 진관내동 일대 집단 묘역 발견
저자가 최초로 발견한 서울 북한산 자락의 내시 집단 묘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크며 보존상태가 양호한 조선 시대 최대의 묘다. 조선시대 내시 집단 묘역이 조성돼 있는 곳은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199 중골 마을로 북한산 의상봉 등산의 기점이 되는 백화산 인근이다. 이곳에는 내시파중 이사문을 파조로 하는 이사문공파의 내시 분묘 45기가 모여 있다. 가장 오래된 묘는 정2품 품계인 자헌대부로 승전관을 지낸 김충영金忠英의 묘다.
이곳에 현재 남아 있는 묘 가운데 비석이나 상석에 관직이 기록된 이가 모두 14명이다. 이중 내시부 최고 관직인 종2품 상선에 오른 이가 박황朴滉, 임성익林成翼, 김성휘金成輝, 박민채朴敏采, 오준겸吳浚謙 등 5명에 달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내시 묘역이 확인된 만큼 정부에서 하루빨리 사적으로 지정,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속으로
원로 향토 사학자인 김동복金東福(1927년생) 씨의 증언에 의하면 여의도의 영등포쪽 샛강을 못미처서 '용추龍湫'라는 연못 옆에는 내시를 양산하는 움막으로 된 시술소가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초등학교 시절 이곳을 지나다닐 때 노인들로부터 들은 얘기로는 고종 34년(1897) 대한제국이 성립되기 이전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김동복 씨가 어렸을 때 옆집에 내시가 살고 있었는데, 내시의 아내가 놀러 와서 어머니와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며,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시술 과정에서 남근 부분은 남겨 놓은 채 음낭 부분만 제거했다는 것이다. 시술은 주로 비오는 날 천둥번개가 칠 때 많이 했다고 한다. 그것은 내시가 수술로 인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게 되는데, 이 비명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내시의 아내는 남편과의 부부관계도 가능했다고 말했다는 데, 다만 사정이 안 돼 아내의 목덜미와 어깨를 사정없이 물어서 괴로웠다고 증언했다는 것이다. -36쪽
애기나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 연말 연초의 궁중 민속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쥐부리 글려!'라는 것이었다. 이는 본래 민간에서 정월 상해일上亥日과 상자일上子日에 그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주술적 행사로 출발했다. 행사의 취지는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쥐나 해충들의 입부리를 지지는 뜻으로 무언가를 태우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이것을 궁중 행사로 차용하여 섣달 그믐날 밤에 젊은 내시 수십 명이 애기나인들의 입에 밀떡을 물리고 수건을 접어 마스크처럼 귀에 걸게 한 후 캄캄한 대궐 뜰에 옆으로 세운다. 그런 후 횃불을 든 내시들은 어린 나인들의 입에 횃불을 들이대며 "쥐부리 글려, 쥐부리지져!" 하며 위협을 주는 행사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227쪽
저자 박상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철학(문학석사)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한국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2007년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서울시 사료조사 위원, 은평향토사학회 부회장, 사단법인 서울문화사학회 회원으로 있으며, 꾸준히 우리 역사의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지은책으로 '짝짓기로 배우는 세계사', '한국의 로맨스' 등이 있고, 옮긴책으로 '平城府院君 忠烈公實記', '凡崔氏通史', '徐氏通史', '漢城週報 16호'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1부 왕의 남자 내시
1장 내시의 역사
내시의 유래 / 삼국시대의 내시 / 고려시대의 내시 / 조선시대의 내시
2장 일화
- 고려시대
행랑만 200여 칸의 집에 산 정함 / 구리 부처 40개와 관음보살 화상 40장을 만들게 한 백선연 /
사나운 아내로 인해 스스로 고자가 된 최세연 / 충선왕을 귀양 보낸 임빠이앤투그스 /
원나라 왕과 승상도 달려가 절한 고용보 / 왕과 얼굴이 닮아 대신 죽은 안도적 /
4,000묘의 토지를 소유한 방신우
- 조선시대
전하, 처용무를 중지하소서! 김처선 / 고국을 향한 충정 윤봉 / 임금의 필법을 흉내낸 이봉정 /
궁녀의 유래 / 궁녀의 선발과 입궁 과정 / 구중궁궐 속으로! / 이제는 나도 어엿한 궁녀 /
나도 상궁이 되었으면 / 출궁과 죽음 / 궁중문학의 양산자들 / 궁녀들의 성생활
2장 일화
- 삼국시대
질투의 종말―관나 부인 / 기이한 인연으로 맺어진 주통촌녀
- 고려시대
원나라 조정을 뒤흔든 기황후
- 조선시대
조선으로 건너온 명나라 궁녀 / 명나라 궁궐의 조선 여인들 /
명나라로 간 두 처녀의 기막힌 운명 / 공신부인의 애환 / 의순공주의 애련 /
폐위된 광해군을 동경한 한보향 / 궁궐에서 쫓겨난 조상궁 /
무수리에서 빈으로-숙빈 최씨 / 인종의 목숨을 구한 김순아 / 쫓겨난 광해군을 박대한 궁녀 /
일본의 조선인 궁녀 막센시아 / 신유교난의 성녀 문영인
부록
역대 왕실 세계도
참고문헌
왕의 하루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
조선의 운명적 그날에 집중했다 '왕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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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이한우지음 ]
출판사김영사| 2012.11.27.
형태 판형 A5 | 페이지 수 392 | ISBN
정가15,000원
역사를 바꾼 조선왕들의 하루
만약 운명의 그날, 왕이 군사를 동원하여 쿠데타를 진압했다면 조선사의 물줄기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왕의 문제적 하루를 씨줄로 삼고 만주와 중국 지역을 포함하는 아시아사를 날줄로 삼아 역사의 숨겨진 이면들을 단 하루로 환원해낸 역사서! 하루 동안 궁녀와 내시들이 북적이는 아침 기침에서 내밀한 밤의 사생활까지 상반되는 시간들이 혼합되고, 은밀한 독살에서 피 냄새가 풍겨오는 쿠데타까지 치명적인 사건들이 교차한다. 더불어 건국 영웅 이성계부터 망국의 한을 품고 죽어간 순종까지 500년 역사의 격랑이 만들어낸 최고 권력자들의 군상을 펼쳐놓으면서, 진정 왕은 누구였으며 지금 어떤 이가 최고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그 하루 때문에 500년이 달라졌다!”
깨어 있는 의식이 보여주는 새로운 스타일과 뜻밖의 진실!
만약 운명의 그날, 왕이 군사를 동원하여 쿠데타를 진압했다면 조선사의 물줄기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왕의 문제적 하루를 씨줄로 삼고 만주와 중국 지역을 포함하는 아시아사를 날줄로 삼아 역사의 숨겨진 이면들을 단 하루로 환원해낸 역사서! 하루 동안 궁녀와 내시들이 북적이는 아침 기침에서 내밀한 밤의 사생활까지 상반되는 시간들이 혼합되고, 은밀한 독살에서 피 냄새가 풍겨오는 쿠데타까지 치명적인 사건들이 교차한다. 더불어 건국 영웅 이성계부터 망국의 한을 품고 죽어간 순종까지 500년 역사의 격랑이 만들어낸 최고 권력자들의 군상을 펼쳐놓으면서, 진정 왕은 누구였으며 지금 어떤 이가 최고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연산군은 박원종의 쿠데타를 알고서도 침묵했다. 만약 운명의 그날, 왕이 군사를 동원하여 쿠데타를 진압했다면 조선사의 물줄기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왕의 하루 -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는 왕의 문제적 하루를 씨줄로 삼고 만주와 중국 지역을 포함하는 아시아사를 날줄로 삼아 역사의 숨겨진 이면들을 단 하루로 환원해낸 역사서다. 이 하루 동안 궁녀와 내시들이 북적이는 아침 기침에서 내밀한 밤의 사생활까지 상반되는 시간들이 혼합되고, 은밀한 독살에서 피 냄새가 풍겨오는 쿠데타까지 치명적인 사건들이 교차한다. 더불어 건국 영웅 이성계부터 망국의 한을 품고 죽어간 순종까지 500년 역사의 격랑이 만들어낸 최고 권력자들의 군상을 펼쳐놓으면서 진정 왕이란 누구였으며, 지금은 어떤 이가 최고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이성계는 왕이 되고자 하지 않았다?
왕의 새벽에서 밤까지 일상생활을 사실적으로 소개한 프롤로그를 지나면 조선사의 분수령이 되었던 역사적 하루들이 제1부에 등장한다. 태조가 조선을 세우던 날, 연산군과 광해군이 왕좌에서 쫓겨나던 날, 소현세자와 정조가 죽음을 맞이한 날들이다. 저자는 이날들에서 뜻밖의 진실을 보여준다. 이성계가 권력을 넘겨주겠다는 공양왕의 거래를 거절한 이유는 대오각성한 공양왕이 새로운 정치를 펼쳐주기를 바라서였다. 연산군은 중종반정 당일 쿠데타 사실을 알고도 군사를 부르지 않았다. 그는 인간에 대한 신뢰감 상실로 생에 대한 애착이 끊어진 상태였다. 광해군은 뛰어난 중립외교를 펼친 명군이 아니라 자기 정권조차 지킬 의지가 없었던 암군(暗君)에 가까웠다. 소현세자의 죽음은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워했던 부왕 인조의 묵인 하에 이루어진 독살이었고, 정조 독살설은 영남 남인들의 좌절된 바람에서 나온 허구일 뿐이었다. 이 진실들은 하루를 둘러싼 맥락을 통해 입증된다. 이성계의 조선 건국은 고조부 이안사의 몽골 망명을 기점으로 고려와 원의 관계, 중국과 만주의 정세 해설, 그리고 고려 조정 내의 파워게임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거치며 기술된다. 고정된 역사 인식을 거부하는 깨어 있는 의식과 사료를 중층적으로 읽어내는 균형 감각이 새로운 사실(史實)들을 새로운 스타일로 구성한다.
왕 vs 신하, 그리고 역사를 두고 벌이는 전쟁
조선 정치사의 핵심 줄기인 왕권과 신권의 대립은 제2부의 주제이다. 조선은 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된 국가였음에도 왕들 중 3분의 1이 독살설에 휘말릴 만큼 왕권이 약했다. 태종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이면서 시작된 군신 간의 전쟁은 세조와 김종서, 예종과 공신 세력, 중종과 사림파, 문묘 배향을 둘러싼 왕과 서인들 간의 갈등을 거쳐 역사를 두고 벌이는 실록 전쟁으로 번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왕권을 암묵적으로 부정했던 서인 노론은 조선의 최고 세력이 되었다. 군신 간의 투쟁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는 것은 제국 명나라와 유교이다. 세조의 명참모였지만 후대 임금부터 왕권을 위협하는 거대 세력이 된 한명회는 명나라 사신 정총을 포섭하여 예종을 압박하고, 성종도 명과의 관계 때문에 공신 제거에 실패한다. 서인들은 공자의 사당 문묘에 왕의 사당 종묘를 뛰어넘는 의미를 부여하고 문묘 배향에 목숨을 건다. 정조처럼 김인후 단독 배향안으로 맞서며 신권 정치의 벽에 균열을 내려 했던 왕도 있었지만 그도 세도정치로 이어지는 파멸을 면치 못한다. 이러한 갈등들은 《선조수정실록》, 《현종개수실록》, 《경종개수실록》, 《숙종보궐정오》 등 신하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실록을 고쳐 쓰면서 역사적 심판을 필요로 하게 된다.
입체적 시선으로 바라본 왕의 현장
3부에서는 왕의 즉위를 둘러싼 엇갈린 명암, 경연석상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정치 논쟁, 정치 행위의 결정체였던 왕의 결혼과 묘호의 제정, 그리고 효의 나라에서 왕과 아들들 사이에 벌어진 비극들이 하루 안에 담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묘호 제정 과정이다. 예종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왕의 묘호를 세조로 할 것을 밀어붙인다. 세조(世祖)란 세상을 연 군주라는 뜻으로서 세종(世宗)을 넘어서는 의미이다. 예종의 왕권 강화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반면 정종(定宗)의 경우는 공정대왕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불리다가 숙종 대에 들어와서야 ‘세상을 평안히 했다’는 의미로 묘호가 정해진다. 정종이 해동육룡의 리스트에도 끼지 못한 허수아비 왕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역설적이다. 대표적 암군이었던 명종(明宗)이나 여색에 빠져 정사를 돌볼 겨를이 없었던 철종(哲宗)의 경우는 신하들의 복수에 가까운 케이스다. 이러한 현장 속 국왕의 ‘하루’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하면서 조선 왕실의 부침을 드러낸다.
누가 최고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
왕권이 취약했던 조선의 정치 체제를 살펴보는 일은 성공한 대통령을 배출한 경험이 없는 대한민국의 정치를 돌아보는 일이다. 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의 모든 왕들이 등장하는 이 책에서 저자는 “과연 왕은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역사는 인간에게 도전의 기회를 주고 그 격랑 속에서 각양각색의 군상들이 탄생한다. 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된 조선 역사 안에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지도자들의 유형이 담겨 있다. 그중 누가 최고의 지도자였는가? 그리고 지금 어떤 이가 최고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 현실을 헤쳐 나갈 지혜를 구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책속으로
조선의 왕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침전에서 파루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었다. 침전은 왕의 은밀한 공간이자 유일한 ‘사적 영역’이었다. 즉 침전에서 눈을 떠 침전의 문을 나서기까지는 사사로운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비교적 맘껏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파루와 함께 왕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침전 주변 상궁과 궁궐 시녀들은 맡은 바 임무에 따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왕이 기침하는 순간 왕의 방 테두리의 작은 방들에서 숙직을 섰던 지밀상궁들이 들어와서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수라간에서는 왕의 아침 수라 준비로 요란하고 양치와 세수, 옷을 책임진 대전의 차비(差備, 담당자)들은 조금의 실수도 없도록 치밀한 준비를 갖춘다. 이때면 내시들도 침전 주변에 와서 혹시 있을지 모를 왕의 급명을 기다린다. -프롤로그 <왕의 하루를 찾아서> 중에서
나는 당한 것이 아니라 자초한 것이다. 내가 지존에 대한 꿈과 기대를 접은 지는 오래 되었다. 그날도 술 한 잔을 들고서 잠이 들었는데 3경 무렵(밤11시~1시) 승지들이 황급히 나를 깨웠다. 윤장, 조계형, 이우 세 사람이었다. 훗날 실록은 그 순간 나의 모습을 이렇게 적었다.
“왕이 놀라 뛰어나와 승지의 손을 잡고 턱이 떨려 말을 못했다.”
웃기는 소리다. 내가 정말 권좌에 미련을 갖고 있었다면 군사부터 불러들였을 것이다. 그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뿐이었다. 실록을 보니 세 승지의 모습은 잘 나와 있었다.
“이우 등 세 사람은 바깥 동정을 살핀다는 핑계를 대고 하나씩 흩어져 모두 수챗구멍으로 달아났는데, 더러는 실족해 뒷간에 빠진 자도 있었다.”
이런 자들의 증언으로 내가 턱이 떨려 말을 못했다는 식으로 정리했으니, 그 실록(實錄)이란 게 허록(虛錄) 아니던가?
-제1부 2장 <허무가 불러온 파멸, 연산군 이융의 하루> 중에서
사흘이 지난 26일, 결국 나는 유언 한 자 못 남기고 외부와 격리된 채 지내다가 이승과 작별하고 말았다. 원통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의도가 있었다면 과연 누구의 뜻이었던 것인가? 진정 부왕께서는 다 아시고서도 정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자식이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온몸을 던진 세자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말인가? 그것이 조금이라도 사실이라면 나는 어디에 대고 효를 다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그 후 아내 강빈과 아들들에게 가해진 일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분하고 원통하다!
-제1부 4장 <사라진 강성대국의 꿈, 소현세자 이왕의 하루> 중에서
정조도 독살설에 휩싸였다. 특히 정조의 임종을 본 인물이 정순왕후 김씨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정순왕후는 영조의 계비로서 원비 정성왕후가 죽은 지 2년 후인 1759년(영조 35) 왕비로 책봉되어 가례를 행했다. 15세에 왕비가 되었지만 단호한 성품으로 궁중의 법도를 잡았고, 나이 많은 사도세자와 사이가 벌어져 그를 죽이는 배후 세력이 되었다. 영조 말년 권력을 누리던 정순왕후와 그 집안은 정조의 즉위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었다. 정순왕후와 그의 아버지 김한구는 사도세자 제거에 적극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정리해보면 이전 국왕의 부인인 대비가 기존 세력과 연결되어 있다가 자신들의 뜻과 다른 인물이 왕좌를 잇게 되거나 왕이 되어 탄압을 가해올 때, 독살의 가능성이 자리한다.
-제2부 2장 <군신 대립의 뿌리를 찾아서, 수양과 김종서와 한명회> 중에서
선조가 방계승통으로 왕위를 계승하면서 신하들 사이에는 크게 두 그룹이 생겨났다. 출신 여하를 막론하고 일단 임금은 임금이라는 동인과 임금으로 인정하기 곤란하다는 서인이었다. 이후 동인, 북인, 남인 등은 줄곧 친왕 노선을 견지한 반면 서인, 노론(소론은 친왕론), 벽파(시파는 친왕론)는 일관되게 반왕 노선을 견지했다. 서인들은 선조 이후 종묘의 기능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반면 문묘는 공자를 비롯한 5성(五聖,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로부터 공문십철(공자의 뛰어난 열 제자)과 송나라 때의 주자학자 6명을 기리면서, 동시에 신라의 설총과 최치원에서 고려의 안향과 정몽주 그리고 조선의 유학자들을 모시는 곳이었다. 따라서 서인들은 종묘보다는 문묘에 배향되는 것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고, 당파의 문묘 배향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거는 적극성을 보이게 되었다.
-제2부 4장 <공자는 군주를 초월한다, 서인과 문묘 배향> 중에서
다시 문제의 1762년(영조 38)이다. 세자가 반란을 도모한다는 밀고가 올라왔던 5월 22일부터 세자의 시민당 뜰 대명(待命)이 시작됐다. 더운 여름날 세자의 대명은 20일 가까이 계속됐다. 실록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세자빈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따르면 영조가 최종적으로 세자를 죽여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윤5월 11일 세자의 ‘영조 암살 미수 사건’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의 왕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침전에서 파루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었다. 침전은 왕의 은밀한 공간이자 유일한 '사적 영역'이다. 침전에서 눈을 떠 침전의 문을 나서기까지는 사사로운 인간으로서 자유를 비교적 맘껏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파루와 함께 왕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침전 주변 상궁과 궁궐 시녀들은 맡은 바 임무에 따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왕이 기침하는 순간 왕의 방 테두리의 작은 방들에서 숙직을 선 지밀상궁들이 들어와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수라간은 왕의 아침 수라 준비로 요란하고 양치와 세수, 옷을 책임진 대전의 차비(差備), 즉담당자들은 조금의 실수도 없도록 치밀한 준비를 한다.'왕의 하루-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는 역사 속 최고 권력자 왕의 자질과 성격, 세력과 조건 등 왕의 모든 것을 하루 안에 압축한 역사서다.아침 기침에서 내밀한 밤의 사생활까지, 은밀한 독살에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쿠데타까지 문제가 있는 왕의 하루를 씨줄로 삼고 만주와 중국 지역을 아우르는 아시아사를 날줄 삼아 역사의 깊은 이면을 끄집어낸다.연산군과 광해군이 폐위되던 날, 소현세자와 정조가 죽던 날, 태종과 정도전이 전쟁을 벌이고 세조와 김종서가 격돌하던 날 등 운명적 하루에 집중한다. 또 왕권과 신권의 대립에 주목하며 왕들이 사림 세력과 어떻게 협력하고 갈등했는지, 어떻게 왕권을 암묵적으로 부정한 서인들의 국가 최고 세력이 될 수 있었는지를 알려준다.왕의 즉위를 둘러싼 엇갈린 명암, 경연석상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정치 논쟁, 정치 행위의 결정체였던 왕의 결혼과 묘호의 제정, 효의 나라에서 왕과 아들들 사이에 벌어진 비극들이 담겼다.세조(世祖)란 세상을 연 군주라는 뜻으로서 세종(世宗)을 넘어서는 의미다. 예종의 왕권 강화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반면 정종(定宗)는 공정대왕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불리다가 숙종 대에 들어와서야 '세상을 평안히 했다'는 의미로 묘호가 정해진다. 이러한 현장 속 국왕의 '하루'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한다
저자 이한우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 석사 및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중앙일보》 《뉴스위크》와 《문화일보》를 거쳐 1994년부터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고 있다. 2002~2003년에 논설위원을 지낸 후 문화부 기자로 학술과 출판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오랫동안 조선 군주의 리더십 연구에 몰두해 온 저자는, 인문학적 깊이와 감각적 필치를 바탕으로 <이한우의 군주열전> 시리즈를 펴내, 『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 『성종, 조선의 태평을 누리다』 『선조, 조선의 난세를 넘다』 『숙종, 조선의 지존으로 서다』를 출간했다. 그외 저서로는 『거대한 생애 이승만 90년』 등의 리더십 연구서와 『한국은 난민촌인가』를 비롯한 사회비평서 및 『아부의 즐거움』 등 여러 권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역사의 의미』 『여성 철학자』 등 역사와 철학 분야를 아울러 2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