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조선왕조 역사로 보는 `통치 리더십`
신동준 지음
출판사살림| 2007.11.09.
형태 판형 A5 | 페이지 수 591 | ISBN
정가18,000원
조선왕조 500년 역사가 말하는 통치 리더십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누구인가? 통치 리더십의 조건을 조선 역사에 묻는다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는 조선의 왕과 신하를 통해 통치 리더십의 조건을 살펴보는 책이다. 저자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지속된 왕권과 신권 사이의 협력과 견제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조선이 패망한 근본 원인을 왕권이 미약하고 신권이 강한 '군약신강'의 왜곡된 통치 구도에서 찾고 있다.
조선의 역사는 신하들이 기록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는 신하들의 눈으로 조선의 역사를 바라보았다. 실록에 명군으로 기록된 임금들은 신하들의 눈치를 보는 유약한 임금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폭군으로 기억되는 임금들은 대부분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한 개혁가들이었다. 오늘날 명군으로 꼽히는 임금들도 당대에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기도 했다.
저자는 왕권이 신권보다 우위에 있으면서 정국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던 조선 초기에 비해, 신하가 왕을 바꾼 이후 신권이 왕권보다 우위에 있었던 조선 중기와 후기에는 국가가 점점 쇠약해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조선의 역사를 통해, 부국강병을 위해 존재하는 정치를 망각한 모든 이데올로기는 국민과 국가에 비극을 초래할 뿐임을 보여준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는 누구를 지도자라 말하는가!
우리는 흔히 세종을 조선 최고의 명군으로 꼽는다. 그러나 당대의 평가도 그런 것은 아니다. 세종이 때로 신하들을 무시하고 독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선조는 어떠한가? 우리는 선조를 명장 이순신을 내친 어리석은 임금으로 기억하지만, 그는 조선 왕조사에서 다섯 명만이 받았던 조(祖)의 묘호를 받은 명군으로 기록되었다. 왜 이런 역사적 시각의 편차가 생겨났는가?
조선의 역사는 신하들이 기록했다. 실록에 명군으로 기록된 임금들은 위세 당당한 신하들의 눈치를 보는 유약한 임금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폭군으로 기억되는 임금들은 대부분 신권을 누르고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한 과감한 개혁가들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신하들의 눈으로 조선의 역사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 신하들이 맹종한 왕도정치란 무엇인가? 군왕이 도를 행할 때는 군신의 협력이 이루어지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신하가 군주를 바꿀 수 있다는 혁명적인 '택군'의 논리 아닌가! 만약 신권 세력이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에 눈이 먼다면 왕도정치는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조선 역사에선 이런 장면이 자주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과감히 개혁을 이끈 패왕들이 등장했다.
저자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지속된 왕권과 신권 사이의 협력과 견제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조선 초는, 비록 왕자의 난이나 단종의 퇴위 등 불안정한 후계자 계승 구도에 따른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창업과 수성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왕권이 신권보다 우위에 있으면서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세종이 조선 최고의 명군이 되고, 성종이 조선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반면 신하가 왕을 바꾼 중종반정 이후, 신권이 왕권보다 우위에 있었던 조선 중기와 후기에는 왕권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성종의 시대부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왕도정치라는 이데올로기가 국가의 체질을 신하 중심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성리학의 이념과 당리당략을 맹종하던 신하들이었기에 조선이라는 국가는 점점 쇠약해져 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중종, 영조, 정조 등이 애를 썼지만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다. 소현세자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 정조가 꿈꾼 개혁 정치의 실패는 예정되어 있던 일이나 다름없었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정치는 부국강병을 위해 존재한다. 이를 망각한 모든 이데올로기는 국민과 국가에 비극을 초래할 뿐이다. 조선의 역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이 점을 말하고 있다.
2007년 11월 3주 인터넷교보문고 <오늘의 선택> 부분 추천도서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 상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살림. 2007)의 저자인 21세기 정치연구소 신동준 소장이 출연. 조선왕조 500년 역사가 말하는 통치 리더십을 통해 이 시대가 원하는 지도자 상을 정립해 눈길을 끌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조선시대의 왕권과 신권 사이의 협력과 견제의 역사를 비판하고 있는 점이다. 그 이유는 조선의 역사는 신하들이 기록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는 신하들의 눈으로 조선의 역사를 바라봤다는 것. 저자는 실록에 명군으로 기록된 임금들은 신하들의 눈치를 보는 유약한 임금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폭군으로 기억되는 임금들은 대부분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한 개혁가들임을 강조한다.
그 예로 신 소장은 패도정치라 불리는 세조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왕도와 패도는 적절히 섞어 사용해야하는데, 치세(治世) 시는 패도보다는 왕도를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하게 되고, 반대로 난세(亂世)의 경우 강력한 리더십을 요하기 때문에 패도 사용이 높게 된다"며 "큰 틀에서 보면 세조가 패도를 구사한 것은 맞지만 시대적 상황(계유정난 등)이 그를 패도의 길로 걷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또한 저자는 조선패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세도정치`를 꼬집고 있다. 왕권이 신권보다 우위에 있으면서 정국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던 조선 초기에 비해, 신하가 왕을 바꾼 중종반정 이후, 신권이 왕권보다 우위를 점하게 됐다. 이로써 조선 중기와 후기로 와서 국가는 점점 쇠약해졌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부국강병이 왕과 국가의 목표이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신권이 제약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 이명박 당선인에게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과 직면해 있기도 하다. 신 소장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표차이로 당선이 됐다는 것은 이명박 당선자가 내세운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말로 대변된다”며 “이명박 당선자가 만약 경제 살리기에 실패한다면 더 큰 분노로 변할 수 있기에 먹고사는 문제, 특히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정치는 부국강병을 위해 존재한다. 이를 망각한 모든 이데올로기는 국민과 국가에 비극을 초래할 뿐이다.
어떤 이념이든 이를 절대시할 경우 반드시 폐쇄적인 당파주의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사림 세력이 독점으로 붕당 구도를 형성한 이래 조선이 신권 국가로 줄달음 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이 신봉했던 왕도주의 이념이 화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왕도주의 이념은 붕당 구도를 통해 '국론 분열'과 '폐쇄주의'를 널리 퍼트렸다. 이는 의리론에 얽매인 명분주의를 더욱 강화해 조선이 주변 정세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조선이 임기응변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시점에서 일제가 침공하자 덧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 것이다. - 본문 9쪽
"요즈음 성상께서 송골매를 좋아하셨는데, 조련하는 군사가 이를 놓치면 밤에도 궁문을 열어 놓고 궁중의 군사를 풀어 이를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창고의 곡식으로 그 군사를 먹이는데 올해는 흉년이 들어서 곡식이 귀하므로 창고의 곡식을 낭비할 수 없습니다. 송골매 한 마리를 잃은 것이 나라에 무슨 손상이 되기에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입니까?"
매사냥을 즐겼던 연산군도 송골매를 놓쳤다고 한밤중에 군사를 풀어 수색하는 소동을 벌이지는 않았다. (중략) 똑같은 사냥 행위를 놓고 한 사람은 성군의 강무로 평가받았고, 한 사람은 폭군의 유흥으로 비난받았다. 이처럼 연산군에 대한 악의적인 평가는 기본적으로 이중 잣대를 들이댄 결과로 보아야 한다. - 본문 226~227쪽
연산군의 폐위는 신하들에게 언제라도 명분만 조작할 수 있다면 군왕조차 몰아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중종반정 이후 겨우 1백 년 만에 또다시 인조반정이 일어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조선 성리학의 극단적인 명분론이 초래한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 본문 246쪽
영조가 대신들을 불러놓고 이같이 물었다.
"정신과 기운이 더욱 피곤하니 어찌 여러 가지 정무를 수행하겠는가? 국사를 생각하느라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지가 오래 되었다. 어린 세손이 노론을 알겠는가, 소론을 알겠는가, 남인을 알겠는가? 국사를 알겠는가, 조정 일을 알겠는가? 병조판서를 누가 할 만한지를 알겠는가, 이조판서를 누가 할 만한지를 알겠는가? 상황이 이와 같으니 장차 종묘사직을 어디에 두겠는가? 나는 어린 세손으로 하여금 그것들을 알게 하고 싶다."
그러자 홍인한이 이같이 대답했다.
"동궁은 노론과 소론을 알 필요가 없으며, 이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알 필요가 없습니다. 조정의 일에 이르러서는 더욱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 본문 476쪽
정조는 세종과 더불어 조선의 역대 임금 중 최고의 명군에 해당한다. 두 사람 모두 박물군자의 임금으로 학식과 덕을 겸비한 데다 치세 기간 중 많은 업적을 남김으로써 후대인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정조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안심하는 소심한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세를 그르쳤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 본문 506쪽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가 그 역사를 기록하는 신하의 눈에 의한 역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세종을 조선 최고의 명군으로 꼽는데, 그것이 당대의 평가는 아니었다. 세종이 때로는 신하들을 무시하고 독단을 내렸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역사는 신하들이 기록했다. 실록에 명군으로 기록된 임금들은 위세 당당한 신하들의 눈치를 보는 유약한 임금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폭군으로 기억되는 임금들은 대부분 신권을 누르고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한 과감한 개혁가들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신하들의 눈으로 조선의 역사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저자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지속된 왕권과 신권 사이의 협력과 견제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조선 초는, 비록 왕자의 난이나 단종의 퇴위 등 불안정한 후계자 계승 구도에 따른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창업과 수성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왕권이 신권보다 우위에 있으면서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신하가 왕을 바꾼 중종반정 이후, 신권이 왕권보다 우위에 있었던 조선 중기와 후기에는 왕권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성종의 시대부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왕도정치라는 이데올로기가 국가의 체질을 신하 중심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시대별로 왕과 신하의 권력이라는 관점을 통해 조선의 역사를 다시 한번 바라보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는 누구를 지도자라 말하는가!
우리는 선조를 명장 이순신을 내친 어리석은 임금으로 기억하지만, 그는 조선 왕조사에서 다섯 명만이 받았던 조(祖)의 묘호를 받은 명군으로 기록되었다. 왜 이런 역사적 시각의 편차가 생겨났는가?
신하들이 맹종한 왕도정치란 무엇인가? 군왕이 도를 행할 때는 군신의 협력이 이루어지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신하가 군주를 바꿀 수 있다는 혁명적인 ‘택군’의 논리 아닌가! 만약 신권 세력이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에 눈이 먼다면 왕도정치는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조선 역사에선 이런 장면이 자주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과감히 개혁을 이끈 패왕들이 등장했다.
저자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지속된 왕권과 신권 사이의 협력과 견제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조선 초는, 왕권이 신권보다 우위에 있으면서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했고, 이런 바탕 위에서 세종이 조선 최고의 명군이 되고, 성종이 조선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반면 신하가 왕을 바꾼 중종반정 이후, 성리학의 이념과 당리당략을 맹종하던 신하들이었기에 조선이라는 국가는 점점 쇠약해져 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중종, 영조, 정조 등이 애를 썼지만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다. 소현세자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 정조가 꿈꾼 개혁 정치의 실패는 예정되어 있던 일이나 다름없었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정치는 부국강병을 위해 존재한다. 이를 망각한 모든 이데올로기는 국민과 국가에 비극을 초래할 뿐이다. 조선의 역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이 점을 말하고 있다.
저자 신동준
1956년에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정치와 역사, 사상을 연구하고 강의해온 학자이자 평론가이다.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의 대가인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 선생에게 사서삼경과 '춘추좌전' 등의 고전을 배웠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그 뒤 다시 모교로 돌아가 동양의 정치사상을 전공하고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등을 지냈으며,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치도(治道)의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저자는 동양정치사상과 리더십의 문제를 다룬 저술활동을 활발하게 펼쳐왔다. 현재 21세기정경연구소장으로 서울대, 고려대 등에서 강의하였고, 월간조선에 중국제왕열전을 연재하였다.
지은 책으로는 '공자와 천하를 논하다', '제자백가, 사상을 논하다'를 비롯하여 '통치학원론', '삼국지통치학', '조조통치론', '덕치 인치 법치', '연산군을 위한 변명', '중국문명의 기원',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CEO의 삼국지', '개화파 열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한길사에서 펴낸 '춘추좌전'을 비롯해 '난세를 평정하는 중국통치학', '자치통감 삼국지', '실록 열국지', '국어' 등이 있다.
오랫동안 동 서양 고전 연구에 매진해 온 저자는 라틴어 희랍어 등의 옛 언어와 영어, 중국어, 불어, 독어에 두루 능통하다. 영어의 역사 정치학적 배경에는 등을 돌린 채 미국식 영어를 익히는 데만 골몰한 한국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 풍부한 인문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인을 위한 새로운 관점의 영문법 책 '영문법 정치언어학으로 분석하다'도 저술하였다.
목차
들어가는 글_조선의 통치를 돌아본다
제1장 정도전_신권 우위의 국가 건설 꿈꾼 혁명가
풍운아 정도전
조선의 이름을 짓다/ 정도전의 탄생/ 젊은 날의 시련
역사를 바꾼 만남
이성계와의 만남/ 정몽주의 반격/ 새 왕조를 설계하다/ 표전문 사건/ 요동정벌론의 진실
칼끝에 지다
제1차 왕자의 난/ 정도전이 남긴 글들/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제2장 하륜_왕권 강화로 조선 5백 년의 기틀을 닦다
경세가 하륜
변절자(?) 하륜/ 실력으로 출신을 뛰어넘다/ 계륵 같은 존재/ 변역과 변절/ 하륜 대 정도전
위대한 이인자
정계에 진출하다/ 왕권 체제의 구축/ 위기일발/ 창업 완성/ 하륜 연구의 필요성
제3장 태종_피를 흘려 국가의 기강을 다진 패왕
패왕의 조건
왕권 우위의 통치 체제 구축/ 신권 세력에 대한 견제
태종의 덫
아버지를 누르다/ 내선의 덫/ 양녕대군의 몰락/ 역사가 바라본 태종
제4장 세종_왕도와 패도를 겸해 부국강병을 이룬 전략가
세종의 진실
창업 다음은 수성/ 굴신인욕/ 수불석권/ 덕법상보/ 민식위본과 풍평지치/ 실사구시/ 한글 제정
역사 속의 세종
조광조와 이이가 본 세종 시대/ 세종 통치의 재해석
제5장 세조_나라를 위해 역사의 치욕을 감내하다
세조에 대한 오해
'세조'의 의미/ 부당한 평가/ 호불지군을 자처한 이유
수양대군, 왕이 되다
불안한 국제 정세/ 허약한 단종/ 천하 책사 한명회/ 김종서의 모반/ 계유정난의 진실
현명한 패왕, 세조
왕의 조선, 신하의 조선/ 위민 정치/ 남이와 유자광/ 자주 군주
제6장 성종_어머니와 신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낭만 군주
학문을 좋아한 임금/ 사치의 성행/ 세종과 성종의 차이점
어머니의 왕
편법으로 왕위에 오르다/ 언문 교지/ 왕비 윤씨의 폐출/ 윤씨 사사 배경
후환의 불씨를 남기다
흙비가 내린 사건/ 임사홍에 대한 왜곡/ 홍문관과 신권
제7장 연산군_태평세에 풍류를 즐기다 역사의 희생양이 된 불운아
풍류 군왕
조선의 네로/ 폭군이라는 평가/ 언론 3사와 대립/ 부전자전/ 사냥과 강무의 차이
연산군의 진실
의도된 왜곡/ 사림 세력의 견제/ 흥청망청
패도의 끝
반정인가, 반역인가/ 역사는 누가 쓰는가/ 지나친 패도가 낳은 비극
제8장 중종_우유부단으로 왕권을 실추하다
중종, 공신, 사림
간교한 군주/ 태생적 한계/ 과거사 청산
개혁가 조광조
반정 3대장의 죽음/ 특이한 선비/ 조광조의 승리
중종과 조광조
화를 부른 소격서 폐지/ 조광조의 몰락/ 현량과/ 기묘사화/ 조광조의 사사/ 조광조와 중종의 한계
제9장 붕당정치_신하의 시대를 열어 조선을 혼돈에 빠뜨리다
신하들의 조선
사림의 승리/ 조선의 붕당/ 붕당의 탄생과 왕권의 실추/ 성리학의 화석화/ 을사사화와 임꺽정의 난
성리학의 나라
퇴계와 율곡/ 퇴계와 율곡의 사상/ 퇴계학파와 율곡학파의 대립/
실학의 등장/ 퇴계와 율곡에 대한 평가
제10장 선조_붕당정치라는 비극의 씨앗을 심은 주인공
사림의 시대
'선종'이 아닌 '선조'/ 붕당의 폐해/ 방계의 등극
임진왜란과 조선의 운명
정여립 모반 사건/ 임진왜란/ 정유재란/ 이순신과 원균/ 선조 암군설
제11장 광해군_시대를 잘못 만난 뛰어난 국방 외교가
고난의 왕위 등극
폭군 광해/ 광해군의 활약/ 차서자의 등극
위기의 조선
칠서의 옥사 사건/ 궁궐 건축 사업/ 여진족의 흥기/ 파병을 둘러싼 대립/ 광해군 통치의 공과
제12장 인조_조선 최악의 어리석은 군주
명분없는 쿠데타
부도덕한 시작/ 명나라의 승인 문제/ 명나라 사신의 횡포
삼전도의 굴욕
인조의 대외 정책/ 정묘호란/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
소현세자 독살설
의문스러운 죽음/ 쫓겨난 강씨
제13장 숙종_당쟁을 부추겨 왕권 유지를 꾀하다
환국의 정치
환국정치/ 신가귀의 침/ 예송 논쟁
정치가 숙종
유악 사건/ 분열된 정치/ 송시열과 장희빈의 죽음/ 취선당 저주 사건/ 대리청정/ 숙종의 유산
제14장 영조_탕평책으로 붕당정치를 종식한 현명한 왕
경종의 의문스런 죽음
왕도탕탕평평/ 경종의 고심/ 목호룡 고변 사건/ 경종 독살설
탕평의 정치
영조의 속마음/ 이인좌의 난/ 반충반역의 논리/ 영조의 두 가지 고민/ 탕평파의 몰락
사도세자의 죽음
뒤주에 갇힌 세자/ 공홍파와 부홍파/ 탕평정치의 허실
제15장 정조_탁월한 능력을 지닌 비운의 개혁 군주
3대 역모 사건
만천명월주인옹/ 세손은 세 가지를 알 필요가 없다/ 3대 역모 사건
정조의 권력 경영
홍국영의 몰락/ 탕평의 부활/ 화성 경영
왕의 나라 대 신하의 나라
진산 사건/ 만인소 사건/ 군주도통론과 화성 축조/ 오회연교/ 군주도통론의 한계
제16장 세도정치_수령들의 가렴주구로 조선 패망을 재촉하다
세도정치의 뿌리
世道와 勢道/ 신서파와 공서파/ 황사영 백서 사건
안동 김씨
전교동 시절/ 양근 자른 일을 슬퍼하네/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풍양 조씨, 안동 김씨를 누르다/ 안동 김씨의 복귀
군약신강의 끝
끝나지 않는 세도정치/ 군약신강의 정체
제17장 고종_현명한 길과 어리석은 길 사이에서 엇갈리는 행보를 거듭하다
대원군의 시대
고종 논쟁/ 성공한 개혁정치/ 쇄국의 본질/ 무엇을 위한 개화인가
세도정치의 부활
대원군의 오판/ 임오군란/ 여우 사냥
대한제국의 진실
아관파천/ 대한제국의 탄생/ 춘생문 사건/ 독립협회의 진실/ 광무개혁/
고종은 '근대적'인가/ 고종의 진실
참고문헌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草霧의 세상구경을 시작합니다. > 도시 상상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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