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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가장 어려운 역대 한국영화는?

草霧 2014. 2. 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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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가장 어려운 역대 한국영화는?
번역이 가장 어려운 역대 한국영화는?

최근 <수상한 그녀>를 봤다. 심은경의 활기 넘치는 연기가 재미있고 웃겼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동정심이기도 했다. 누가 이 영화에 영어 자막을 붙일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됐던 참 안됐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필자는 이 영화를 영어자막 없이 본 만큼, 번역의 질을 따질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번역의 질을 따지기에 앞서, <수상한 그녀>의 번역은 처음부터 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전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어느 날 20세 아가씨의 몸으로 돌아간 어떤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유머는 대부분 젊은 외모의 아가씨가 시골할머니에게나 어울리는 투로 말하는 이상한 충돌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이런 대사를 영어로 번역해도 웃길 수 있을까?

대부분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사투리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자막번역가들에겐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 중 하나이다. 사투리는 단어와 문법이 이상하고, 말하는 억양과 리듬도 (표준어와) 다르다. 영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영어 사투리를 그대로 받아 써보면 상당히 이상하다. 필자의 경험상, 영어 자막에 사투리를 넣으면 느낌이 죽어버려서 아무도 웃지 않았다. 한국의 특정 지역 사투리를 어떤 영어 사투리로 번역하느냐도 까다로운 문제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호주 사투리, 텍사스 사투리, 또는 자마이카 사투리로 번역하면 더 느낌이 살아날까? 이 모든 게 순식간에 터무니없어지게 되며, 조심하지 않을 경우 문화적으로 무신경하거나 완전히 공격적인 번역이 돼 버릴 수 있다. 최근에 좀 덜하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필자도 (한국 친구와 함께) 한국영화 대사를 영어로 번역하거나 번역된 것을 감수하는 작업을 자주 한 적이 있다. 자막번역은 정말 어렵다. 관객이 화면에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짧은 문장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나 개념을 설명할 여유가 없다. 한국어 대사의 생동감과 유머를 담아내는 도전이 재미있기는 했지만, 머리칼을 쥐어뜯고 싶은 때도 있었다. <살인의 추억> 끝부분에서 송강호가 박해일에게 던지는 “밥은 먹고 다니냐?”란 그 유명한 대사를 영어로 어떻게 번역할 수가 있을까?

참가자가 한 명(필자)뿐인 매우 비과학적인 여론조사이기는 하지만, <수상한 그녀는> 역대 한국영화들 중 영어로 번역하기가 6번째로 어려운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나머지 5편은 다음과 같다.


5위 <타짜(2006)>

최동훈 감독은 생생하고 인상적인 대사의 영화로 유명하다. 실생활에서는 아무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지만 말이다. <타짜>는 번역가에게는 악몽 같은 영화임에 틀림없다. 속어와 말장난이 난무하는데다가, 등장인물 전부 말을 매우 빨리 하기 때문에 자막이 스크린에 떠 있을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런데다가 특히 이 부분이 어렵다. 김혜수의 그 유명한 대사 “나, 이대 나온 여자야”를 영어로 어떻게 번역하겠나? “나는 이화여대 졸업생입니다(I’m an Ehwa Women’s University graduate)”로 그냥 가야 할까? 이화여대는 들어본 적도 없는 외국인 관객에게 그런 유머가 통할까? 아니면 “나는 명문대 졸업생입니다 (I’m a graduate of a prestigious university)”로 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다. 너무 따분한 표현이다. 아니면 미국의 명문 여대 이름으로 번역해야 할까? “나는 웰슬리 졸업생입니다( I’m a Wellesley graduate)”로? 하지만 그렇게 하면 뚜렷한 한국문화적 요소를 지워버리는 게 되지 않을까? 그게 과연 좋은 번역일까? 번역가가 김혜수에게 그런 백스토리를 만들어줘도 되는 걸까? 개인적으로, 필자는 첫번째 선택으로 갔다.


4위 <춘향뎐(2000)>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민담을 영화화한 임권택의 <춘향뎐>이 번역하기 어려운 작품인 이유는 심플하다. 대사 대부분이 말이 아니라 오래된 판소리로 돼있기 때문이다. 좋은 번역은 문학적이며 정확해야 할 뿐만 아니라 듣기에도 선율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하려면 몇 개월씩 걸린다. 하지만 영화업계가 돌아가는 방식을 알고 있는 필자 생각에, 번역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두 주에 불과했을 것이다.


3위 <친구(2001)>

“내는 니 시다바리가?”로 유명한 <친구>에 등장하는 부산 조폭 속어는 번역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객에게는 1980년대 한국의 문화적 배경이 낯설다. 이 영화에는 외국관객들이 이해하기 힘든 게 너무 많은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2000년대 초 다른 나라에서 대규모 관객을 동원했고, 외국 관객들이 영화를 아주 좋아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2위 . 샤머니즘을 소재로 한 4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영매(2002)>, <사이에서(2006)>, <비단꽃길(2013)>,<만신(2014)>

이 중 2편은 내가 자막을 감수했기 때문에 잘 안다. <만신>에 나오는 인터뷰의 한 대목을 예로 들어보자. “세습무는 본대 종자가 있지, 집안 대대로 나오지마는 이 곰바치라 카는 거는 우리 집에 없는 게 가문에 나와 가 해 먹다가 가는 판이지." 영어 번역 자막을 좀더 이해하기 쉽게 다듬는 작업을 하면서 필자는 이 영화를 볼 미래의 관객들에게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속으로 빌었다. 다소마나 위안으로 삼았던 것은 많은 한국인들도 만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는 점이었다.


1위 <황산벌(2003)>

지난 2003년 이 영화는 누군가에 의해 영어로 번역됐다. 그 번역가가 보수를 잘 받았기를 빈다. 필자라면 ‘거시기’란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대목에서 번역을 포기했을 것이다.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 darcy@koreanfilm.org
번역 영화평론가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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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원문]

The six most difficult Korean films to subtitle into English

This week I saw Miss Granny <수상한 그녀>. Shim Eun-kyung’s spirited performance both entertained me and made me laugh. But throughout the film I felt a vague ache in the pit of my stomach. It was an ache of pity -- pity for the poor soul, whoever it was, who had to translate the English subtitles.

I saw the film without subtitles, so I can’t comment on the quality of the translation. But really, isn’t this a losing battle from the start? It’s is a film about an elderly woman who suddenly finds herself in a 20-year old’s body. A huge portion of the film’s humor derives from the odd clash between the way the main character talks -- appropriate for an older woman from the countryside -- and the way she looks. In Korean, it’s funny. But how do you make it funny in English?

Most likely, you can’t. Translating dialect is one of the unsolvable dilemmas faced by subtitle translators. Dialect is partly about unusual words and grammar, but for the most part we sense it in the intonation and rhythms of speech. This seems particularly true for English, so that when you write down dialect as text in English, it looks rather awkward. My experience is that when you try to insert dialect into English subtitles, the words lie there dead on the screen, and nobody laughs. There’s also the awkward decision about which regional dialect you use in place of a particular Korean dialect. Is Jeolla-do speech better represented by Australian dialect, a Texan dialect, or a Jamaican dialect? The whole thing becomes absurd quite quickly, and if you’re not careful, the translation can sound culturally insensitive or outright offensive.

Although I do it less often now, I used to work fairly often on the English subtitles for Korean films, either as a proofreader, or (together with a Korean friend) the translator. Subtitle translation is a real challenge, since you have to use short sentences that the viewer can read on the screen easily. You don’t have space to explain words or concepts that are difficult to translate. Oftentimes the challenge of preserving the vitality and humor of the original Korean dialogue is fun... But sometimes it makes you want to pull your hair out. Towards the end of Memories of Murder 살인의 추억, Song Kang-ho says to Park Hae-il, “밥은 먹고 다니냐?” How would you translate that iconic line into English?

Although this is a very unscientific poll, with only one respondent (myself), I’d like to declare that Miss Granny is the sixth most difficult film in Korean cinema history to translate into English. What are the other five? Please read on!

#5. 타짜 Tazza: The High Rollers (2006) – Director Choi Dong-hoon is famous for his dialogue, which is lively and memorable, even if nobody actually speaks that way in real life. But this film must have been a nightmare to translate. Not only is there a lot of slang and wordplay, but the characters all speak extremely quickly, leaving less time for the subtitles to remain onscreen. And then there’s this particular challenge: how do you translate Kim Hye-soo’s famous line, “나 이대나온 여자야”? You can just go with “I’m an Ehwa Women’s University graduate,” but what if the foreign audience hasn’t heard of Ehwa, and doesn’t get the humor? Do you go with, “I’m a graduate of a prestigious university?” No: that’s too boring! Or do you substitute in a prestigious American women’s university? “I’m a Wellesley graduate”? But isn’t that erasing some distinctly Korean cultural reference from the film? Is that the point of a good translation? And is the translator allowed to invent such a backstory to Kim Hye-soo’s character? Personally, I’d have gone with the first option.

#4. 춘향뎐 Chunhyang (2000) – There is a simple reason that Im Kwon-taek’s adaptation of Korea’s most famous folktale is one of the most difficult Korean films to translate. Most of the dialogue is sung, not spoken, and taken directly from an old pansori script. A good translation would not only need to be literary and precise, but should also sound melodic. To do it properly would take months of work, but knowing the way things work in the film industry, I’d guess that the translator was probably given a week or two to do the job.

#3. 친구 Friend (2001) -- "내는 니 시다바리가?" Not only is this film famous for its Busan gangster slang that is impossible to translate, but foreign viewers also won’t be familiar with the cultural setting of 1980s Korea. It seems like there’s so much in the film that would be lost on a foreign audience. The surprising thing is that a large number of viewers from other countries saw this film in the early 2000s and absolutely loved it.

#2. (4-way tie) Four documentaries on shamanism:영매Mudang - Reconciliation between the Living and the Dead (2002), 사이에서Between (2006), 비단꽃길 The Silk Flower (2013), 만신 Manshin (2014) -- I know, because I did the proofreading for two of these. one interview excerpt from Mudang, taken at random: "세습무는 본대 종자가 있지, 집안 대대로 나오지마는 이 곰바치라 카는 거는 우리 집에 없는 게 가문에 나와 가 해 먹다가 가는 판이지" Trying to rework these sentences in English to make them easier to understand, I found myself whispering, “I’m sorry, I’m sorry” to the film’s future viewers. My one bit of consolation is that many Koreans don’t seem to understand what these shamans are saying either.

#1. 황산벌 once Upon a Time on a Battlefield (2003) -- Apparently someone did translate this film into English back in 2003. I hope that person was paid well. I would have given up before the first ‘거시기’.

Darcy Paquet

달시 파켓(Darcy Paquet)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미국인 영화평론가.(@darcypaquet)
서울에서 살고 있으며, 1997년부터 한국 영화에 대한 글을 써오고 있다. 'Koreanfilm.org'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으며, 스페인 산세바스찬국제영화제와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최근엔 <돈의 맛>과 <강철대오>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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