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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문기자 명순영의 ‘재테크 톡’ 27

草霧 2013. 12. 31. 12:08

 

 

풍요로운 노후의 적, 경조사비

경제 전문기자 명순영의 ‘재테크 톡’ 27

 

명순영(매경이코노미 재테크팀장) | 2013.12.30

 

결혼식

[서울톡톡] 세월이 흐르며 좋은 취지로 시작된 제도가 거추장스럽게 변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경조사비일 것 같다. 경조사비는 전통 미덕인 `상부상조'에서 유래한다. 잔칫집이나 상가에 돈이나 물건, 일손을 보태줘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이다. 옛날에는 끈끈한 인간애로 시간을 주로 투자했다면 요즘은 현금으로 대신하는 게 관행이 됐다.

가까운 지인의 경조사를 나누는 건 인간의 도리이다. 원활한 관계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취업포탈 '사람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100명 중 95명이 경조사비 부담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마디로 거의 모든 국민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6년 전인 2007년 한 설문조사에서 5명 중 4명이 부담스럽다고 했는데 그 비중이 더 높아졌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결혼식 초대장을 받으면 축하의 마음이 앞서기 보다 "또 돈이 나가겠구나"하며 가계살림을 먼저 걱정한다. 지인의 부고 소식이라도 접하면 부의금 부담에 `가야할 지 말아야 할 지'부터 고민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 달에 2번씩 경조사에 참석하고 1회당 평균 6만 원의 경조사비를 지출한다. 한해 약 144만 원 이상을 쓴다는 얘기로 결코 작지 않은 금액이다.

특히 은퇴자에게 경조사비는 상당한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일정 수입이 사라지고 연금 등 빠듯한 자금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경우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게다가 늦은 나이에 경조사비를 써봐야 나중에 돌려받기 힘들 것이라는 `본전생각'도 경조사비를 달갑지 않게 만드는 이유다.

액수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2007년 조사에 따르면 대략 3만 원을 적정 수준으로 봤고, 실제 3만 원 정도의 경조사비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3만 원을 내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금액이 올라갔다.

최근 경조사비 수준을 보면 대략 이렇다. 친한 친구는 10만 원, 직장 상사는 7만 원에서 10만 원 선이다. 친한 회사동료라면 5만 원 정도다. 다만 호텔결혼식은 식사비가 비싼 만큼 이를 계산해 축의금 액수를 높인다. 가족이 함께 갈 경우도 이를 감안해 액수를 늘려주는 게 예의라고 한다. 형제자매라면 몇십만 원이 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례씩 부의금은 친한 친구의 부모님, 직장 동료와 관련됐을 때는 10만 원, 직장 동료의 부모님 상이나 은사님 상은 5만 원, 사회적(거래처, 대의적 모임) 관계정도라면 3만 원 정도가 적합하다는 의견이다. 돌잔치도 5만~10만 원 선에서 결정되는 추세다.

불황이 짙어지며 자연스럽게 거품 사라질 수도

사실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는데도 경조사비 문제를 풀어내기가 참 어렵다. 관행적으로 내왔으니, 나 또한 관행적으로 돌려받아야 한다는 본전 생각을 접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실적인 대안이라면 경조사비를 가계 살림에서 별도 계정으로 마련해 놓고, 정말 가까운 지인의 경조사에만 참석하는 등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필자의 생각에 경조사 문화를 바꾸는 출발점은 가까운 지인만 결혼식 등 `경사'에 부르는 일이 아닌가 싶다. 장례식과 같은 조사는 당사자가 부른다기 보다 지인이 알아서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결혼식은 당사자 가족이 직접 초청하는 것이다. 그러니 초청인 숫자를 줄이려면 얼마든지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개선 가능성이 있다.

일본에서는 정말 가까운 지인으로만 수십 명 정도의 하객수를 정해놓고, 참석여부를 정확히 확인해 작은 결혼식을 치른다. 우리나라는 겨우 안면이나 알고 있는 사람까지 부른다. 심지어는 한번도 본 적도 없는데도 갑을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까지 포함해 수백 명에게 초청장을 날린다. 정작 결혼 당사자와 가족은 하객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례가 허다하다. 이런 결혼식은 사라져야 한다.

최근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저금리 추세에 자산 불리기가 쉽지 않아졌다. 재테크 관점에서는 힘들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는 것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낭비를 줄이고 내실을 따져 살림살이를 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최근 작고 소박한 결혼식이 늘어나는 것이 좋은 사례다. 앞으로 자연스럽게 경조사비도 현실화되고, 무작정 참석하는 관행도 없어지리라 기대한다.

필자는 또 이런 경조사 문화를 생각해본다. 주변의 금전적 지원 없이 경조사를 치를 수 있다는 전제 아래, 경조사에 들어온 돈을 기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조사비를 낸 하객과 어려운 형편의 아동과 1대1 후원을 맺어주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돈을 낸 사람도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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