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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 大田와 철도, 대전광역시 大田廣域市 2

草霧 2013. 12. 18. 00:00

 

 

 

한밭 大田와 철도

 

 

 

대전광역시 大田廣域市

 

 

 

 

 

2 

Daejeon Metropolitan City

 

 

 

수도권과 충청·영남·호남을 연결하는 삼각유통의 중심지로 전국물류산업의 허브도시

경부선·호남선, 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의 분기점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뿐만 아니라 서울-목포, 서울-부산, 대전-장항간 국도와 공주·논산·부여·전주·청주·조치원·무주 등을 연결하는 지방도가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이 지역에 철도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육로(陸路)로서 천안에서 영남지방에 이르는 율봉로(栗峰路)가 있었으며, 회덕에서 옥천으로 지나는 도로가 있었다. 현재 고속전철이 개통되고 기존 고속도로에 동서고속도로가 연결 개통되면 대전은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교통의 핵심지가 될 것이다.

대전지방철도청

대전역에서는 경부선의 여객과 화물을,

서대전역에서는 호남선의 여객과 화물을

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 (유성구 노은동)

오정농수산물도매시장 (대덕구 오정동)

대전 중앙시장중앙시장

도마시장, 대전에서 오래된 장터 중 하나

인동시장, 대전 최초의 5일장으로 1919년에는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

대전역, 교통량 1·2위인 경부선과 호남선이 분기하는 대한민국 철도 교통의 중심지

교통량 1·2위인 경부선과 호남선이 분기하는 대한민국 철도 교통의 중심지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남부순환고속도로

대전당진고속도로

대전복합터미널, 유성시외버스터미널, 유성고속버스터미널, 대전서부시외버스터미널, 대전청사버스정류장

대전에서 시외로 나가는 국도는 국도 제32호선, 국도 제4호선, 국도 제17호선, 국도 제1호선이 지나가며 지방도는 57번 지방도, 32호 지방도, 635호 지방도, 571호 지방도가 있다.

대전 도시철도 1호선

청주국제공항

시민 공용자전거 무인대여 시스템인 '타슈

 

 

유성장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유성과 갑천 일대를 살기 좋은 곳으로 꼽으며 '공주의 갑천이 들 넓고 사방의 산이 맑고 고우며 삼천(三川:유등천, 대전천, 갑천)이 그 가운데로 모여 관개(灌漑)할 수 있다. 강경도 멀지 않고 앞에 큰 시장이 있으며, 해협의 이로운 점을 통할 수 있으니 영원히 대를 이어 살 만한 곳[永遠世居之地]'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큰 시장'이란 유성시장을 가리킨다. 유성시장이 형성된 장대동(場垈洞)의 지명은 유성의 '장터마을'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

회덕향교와 진잠향교가 대덕구 읍내동과 유성구 교촌동에 각각 있었다. 이 밖에도 숭현서원(崇賢書院도산서원·정절서원(靖節書院) 등이 있었다. 숭현서원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9(광해군 1) 송남수(宋柟壽)가 재건한 것으로, 원촌동에 유적지가 남아 있다. 정절서원은 1684(숙종 10)계양동에 세워졌으며, 도산서원은 1711년탄방동에 세워져 지방유생들의 교육에 힘썼으나,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이 밖에 개인이 설립한 서당과 강학당을 통해서도 많은 교육이 행해졌다.

 

1585(선조 18) 남분붕(南奮鵬)의 봉소재(鳳巢齋)가 석교동에 건립되었으며, 인조 때 회덕2동에 김경여(金慶餘)가 송애당을, 숙종 때는 송시열이 남간정사를, 그리고 조선 말기 송병선이 성남동에 석남재(石南齋)를 설립해 학문 연마와 후학 교육에 큰 공헌을 했다.

 

 

근대 교육기관

1911년 회덕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13년 대전공립보통학교가 세워진 뒤 각 면에 보통학교들이 설립되었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1920년에 와서 대전공립상업보습학교가 세워졌으며, 그 뒤 각급 교육기관이 점차 증설되었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한 전국 시·도교육청 평가에서 대전이 종합 1위를 차지하여 가장 많은 특별교부금을 지원받게 되었다. 전통적 교육기관으로 조선시대의 회덕향교·진잠향교가 읍내동과 교촌동에 있었으며 그밖에 원촌동의 숭현서원, 계양동의 도산서원, 탄방동의 정절서원 등이 있었다.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은 1911년 회덕공립보통학교

1913년 대전공립보통학교 설립

1920년 중등교육기관으로 대전공립상업보습학교가 설립

대전학생교육문화원

한밭도서관

한밭제

시민정신문화운동으로 '한밭뿌리운동

지방신문인 대전일보·중도일보·대전매일신문

대전광역시교육청대전광역시교육청 (서구 둔산동)

대전동부교육지원청 (중구 선화동)

대전서부교육지원청 (서구 도마동)

한밭도서관

대전 의료관광사업이 국토해양부의 중부첨단산업권 발전 시범사업에 선정되어 '메티컬스트리트''유성온천 건강거리'

MICE산업, 한국 도시 중 서울, 제주, 부산에 이어 4위를 차지

국립중앙과학관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서구 만년동)

국립중앙과학관 (유성구 구성동)

화폐박물관 (유성구 가정동)

지질박물관 (유성구 가정동)

선사박물관 (유성구 지족동)

대전컨벤션센터 (유성구 도룡동)

연정국악문화회관(중구 문화동)

대전시립미술관 (서구 만년동)

이응로 미술관 (서구 만년동)

한국법문화진흥센터 (유성구 원촌동)

대청댐물문화관 (대덕구 미호동)

대청호 자연생태관 (동구 추동)

대전시민천문대 (유성구 과학로)

대전역사박물관 (유성구 상대동).

대전문학관 (동구 용전동)

관저문예회관 (서구 관저동)

시립예술단

우암사적공원

대전프린지페스티벌

하늘동네 거리 벽화

TEDxDaejeon http://www.tedxdaejeon.com

대전월드컵경기장

한국과학기술원(KAIST)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대덕R&D특구의 기술 인프라를 활용하여, 최대 규모의 방송·영상단지인 HD드라마타운과 시청자 미디어센터를 국책사업으로 조성한다.

카이스트 (1999) -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촬영

조폭마누라2 (2003) - 중구 용두동이 주요 촬영지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2007)

7급 공무원 (2009) - 꿈돌이랜드에서 촬영

아이리스 (2009) - 유성 선병원과 보문산 대전 아쿠아월드의 지하벙커를 배경으로 촬영

해결사 (2010) - 대전광역시청을 모델로 삼았으며, 대부분 장면은 대전광역시청에서 촬영

국가가 부른다 (2010) - 대전광역시청, 유성장 일원에서 촬영

서유기 리턴즈 (2010) - 사정공원인라인스케이트장이 촬영

동이 (2010)

로드 넘버원 (2010)

글로리아 (2010)

불후의 명작 (2012) - 대전 각지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제작

 

 

대한민국 민심의 캐스팅보트

대전은 수도권이나 영호남에 비하여 인구 대비 국회의원 수가 적어 국비 예산 등에서 정치적으로 상대적 차별을 받아 왔다. 대전의 선거구는 2012년 기준 6개로 인구가 대전광역시보다 6만명 정도 적은 광주광역시보다 국회의원 2명이 부족하고, 인구가 40만명 정도 적은 울산광역시와 국회의원 수가 같다. 국회의원 1인당 인구는 전국 광역시·도 중에서 가장 많아 수도권보다도 불리하며, 이는 지역 발전에 악영향을 미쳤다. 19대 국회에서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한 지역 출신들이 동시에 맡게 된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의 사건이다. 대전이 직할시로 승격된 이후의 첫 대선인 14대 대통령 선거부터 18대 대통령 선거까지 대전에서 우세한 득표를 얻은 후보가 모두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대전은 대한민국 민심의 캐스팅보트라고도 불린다.

 

 

 

 

 

과학테마 관광거리

대덕구 미호동 일대의 대청다목적댐, 유성구 봉명동 일대의 유성온천, 중구 대사동 일대의 보문산공원, 유성구 도룡동의 엑스포과학공원, 유성구 갑동의 대전국립묘지·유성컨트리클럽 등이 대표적인 관광거리이다. 특히 유성온천은 수온 4255의 알칼리성 라듐 온천으로 유명하다. 유성구에 있는 엑스포과학공원·대덕연구단지·한국과학기술원·국립중앙과학관 등은 새로운 과학테마 관광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대덕구 송촌동의 동춘당, 중리동의 쌍청당, 동구 가양동의 남간정사, 유성구 교촌동의 진잠향교, 동구 대성동의 고산사대웅전, 대덕구 장동의 계족산성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대전관광은 충청남도 천안시의 독립기념관·공주시의 계룡산국립공원·금산군의 대둔산도립공원, 충청북도 보은군의 속리산국립공원, 충주시의 수안보온천 등지와 연계되어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전동물원

대전꿈돌이랜드

대덕연구단지 관리본부

국립중앙과학관

대전시민천문대

엑스포과학공원

 

 

식장산

대전동남쪽에 솟은 높이 623.6m의 산으로 자연생태 환경이 잘 보존된 산이다. 산기슭에는 고산사, 개심사 등 명찰이 있고, 호수와 어울린 세천공원의 봄꽃이 유명하며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보문산은 대전의 한가운데 솟은 높이 457.6m의 도시자연공원이다. 백제시대의 보문산성을 비롯하여 유회당, 봉소루, 보문사지 등 문화재가 많고 보문랜드, 푸푸랜드, 청년광장, 사정공원 등 휴식공간이 있다.

 

 

 

구봉산

높이 264.1m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옛날에도 구봉촉석이라하여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산의 남쪽은 갑천이 흐르고 있어 가을단풍이 아름답다. 서구 장안동의 장태산은 높이 186m의 나지막한 산으로 심산궁곡에 자리잡고 있다.

 

 

계족산

백제시대의 계족산성과 산자락에 우암사적공원, 동춘당, 쌍청당, 옥류각 등 문화재가 분포되어 있다.

 

한밭문화제

갑천문화제

싸이언스페스티벌

유성건강페스티벌

동춘당문화제

우암문화제

으능정이축제

신탄진봄꽃축제  

 

대전광역시가 선정한 대전 관광명소는 오월드, 엑스포과학공원, 한밭수목원, 뿌리공원, 계족산황톳길(계족산성), 대청호, 장태산휴양림, 대전둘레산길, 대전문화예술의전당, 동춘당,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 유성온천 등 12곳이다. 일본정부 관광국에서는 대전, 경주, 제주도가 서울과 차별화된 한국의 매력적인 관광지로서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보문산은 구도심에서 가깝다. 전망대·케이블카·사정공원·청년광장·야외음악당·놀이시설 등 휴식공간이 갖춰져 있다. 산행코스로는 시루봉길·문필봉길·산성길 등 10여개가 있고, 시루봉이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산 정상부에는 보문산성과 마애여래좌상, 보문사지 석조 등 문화재가 있다. 보문산성은 백제시대 산성으로 둘레가 300m이고 1992년에 복원되었다. 중구 침산동에는 성씨 테마공원인 뿌리공원이 있고, 보건복지부의 효문화진흥원 건립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중구 사정동 대전 오월드에는 대전 동물원과 플라워랜드가 있다. 대사동에는 동굴형 수족관인 대전아쿠아월드가 있다.

 

장태산 자연휴양림은 대전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메타세콰이어 숲이 울창하다. 산 일대 30여만 평이 국내 최초로 사유림 자연휴양림으로 조성이다. 식장산에는 고산사와 구절사 등 유명한 절이 있으며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다. 구봉산은 아홉 개의 산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가을 단풍이 장관이며, 가장 높은 봉우리에 구각정이 세워져 있다. 구각정에서 내려 보면 갑천이 노루벌을 휘감아 흐르는 '물돌이'를 볼 수 있다. 마치 물 위에 오롯이 떠 있는 작은 섬을 보는 듯한 장관이다. 노루벌에는 한국에 서식하는 3종 반딧불이와 천연기념물 원앙, 흰목물떼새 등이 서식하고 있으며, 캠핑을 즐기기에 좋다. 구봉산 남쪽 산자락에는 시립 납골묘원이 있다.

 

대전과 주변 지역에 용수를 공급하는 대청호는 저수량 기준으로 대한민국 3대 호수이다. 호수 위로 해발고도 200300m의 야산과 수목이 펼쳐져 드라이브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대청호 수변을 따라 대청호반길이 조성되어 있다. 철새와 텃새가 많이 날아들어 여름에는 상류에서 백로를 쉽게 볼 수 있다. 대청호 오백리길은 국제연합(UN)이 주관한 '2012년 아시아도시경관상 시상식'에서 아시아도시경관상을 수상하였다. 대덕구 미호동에는 금강과 대청호에 사는 생물의 서식환경과 댐과 물문화에 대해 체험할 수 있는 대청댐물문화관이 있고, 전망대에 오르면 주변 경관을 볼 수 있다. 동구 추동에는 대청호 자연생태관과 대청호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대청호 인근에는 농촌 체험 마을인 찬샘마을과 두메마을이 있다. 주변에 금강유원지, 장계관광지, 문의문화재단지 등이 있어 연계 관광이 가능하다.

 

대덕구에 위치한 계족산의 산책로는 황토길로 만들어서 맨발로 산책하기 좋다. 국가 사적문화재 제355호로 지정된 계족산성으로 가는 등산로는 험하지 않아 가족 등산코스로 좋다. 인근에 장동산림욕장이 있다.

 

유성온천은 지하 100m이하에서 분출되는 섭씨 27~56도의 고온 열천으로 알칼리성 라듐 온천이다. 한국의 온천 지구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유성온천은 부존량과 사용량에서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약알칼리성 단순천으로 천질이 매끄럽고 피부에 자극이 없고 양이온 및 아연, 철 등 미네랄성 금속류들이 골고루 함유되어 있다. 대중 온천 목욕탕과 호텔, 유흥업소 등이 군집하고 있고, 족욕체험장이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1994년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매년 유성온천문화축제가 열린다. 인근에 계룡산 국립공원, 동학사, 수통골, 유성컨트리클럽, 복용승마장, 계룡산자연사박물관 등 관광시설이 있다. 행정안전부는 2012년 온천대축제 주개최지로 유성을 선정하였다.

 

봉명동에 있는 유림공원은 대전지역 기업인 계룡건설산업이 공원을 조성하여 기증한 곳이다. 우리나라 4계절의 모습이 표현될 수 있도록 계절에 따른 64천여 그루의 수목과 135천여 그루의 초본이 심어져 있다. 한반도 모양의 인공호수인 반도지에는 물레방아와 유림정, 수변 테크 등이, 주출입구에는 중앙광장이 각각 설치돼 있고, 산책조깅로는 맨발걷기나 자전거타기가 가능한 자연흙포장으로 조성됐다.

 

한밭 수목원은 정부대전청사와 과학공원의 녹지축을 연계한 한국 최대 규모의 도심 속 인공 수목원으로 각종 식물종의 유전자 보존과 자연체험학습, 도심 속에서 푸르름을 만끽하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 제공을 목적으로 조성하였다. 근처에 갑천 호수공원과 대전컨벤션센터, CMB엑스포아트홀, 대전문화예술의전당, 대전시립미술관, 솔로몬 로파크 등이 있다. 갑천에서는 레저카약, 용선, 페달보트, 래프팅 등 수상 레저기구를 무료로 대여하여 즐길 수 있다.

 

1993년 세계 박람회를 개최했던 엑스포 과학공원도 많이 찾는 곳이다. 대전의 랜드마크인 한빛탑에서 대전시의 주요 지역을 조망할 수 있고, 놀이공원인 꿈돌이랜드가 있다. 엑스포 과학공원 인근에 위치한 국립중앙과학관과 화폐박물관, 지질박물관, 선사박물관, 대덕연구단지도 전국에서 수학여행과 과학 체험을 하러 오는 명소이다.

 

어남동에는 대전 출신 독립운동가인 신채호 선생 생가가 있고, 조선시대 건축물이 있는 무수동의 유회당(有懷堂), 여경암(餘慶菴), 거업재(居業齋)에서는 대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동구 가양동에는 우암사적공원이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유학자인 송시열 선생이 흥농서당과 남간정사를 세워 제자들과 학문을 연구하며 북벌책을 강구하던 곳이다. 동구 대동 하늘동네 거리 벽화가 있다. 이 거리 벽화는 오늘공공미술연구소에서 그렸으며 아직도 벽화를 그리는 중이다. 대전광역시의 무지개 프로젝트에 의해 재개발되지 않은 동네이다. 대덕구 송촌동에는 유학자인 송준길 선생이 살던 조선시대 건축물인 동춘당(보물 제209)이 있고, 매년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동춘당 문화제가 열린다. 대덕구 읍내동에는 회덕향교가 있고, 유성구 교촌동에는 진잠향교가 있다. 산림청은 진잠향교마을숲을 전통마을숲 복원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

 

대전에서 매년 대전 드라마 페스티벌, 유성온천문화축제, 뿌리문화축제, 대전 사이언스 페스티벌, 금강 로하스 축제, 국제콘텐츠융합페어, 국제 푸드&와인 페스티벌, 신탄진 봄꽃축제, 갑천 열기구 축제, 디쿠(DICU) 페스티벌 등 많은 문화 행사가 개최하고 있다.

 

 

국가지정 4, 시지정 유형문화재 31, 시지정 무형문화재 14, 시지정 기념물 39, 시지정 민속자료 2, 문화재자료 48, 등록문화재 7

 

 

국가지정문화재 5(보물 4, 사적 1), 시지정문화재 93(유형문화재 33, 기념물 42, 무형문화재 16, 민속자료 2), 문화재자료 50, 등록문화재 14점이 있다. 충남대학교박물관·대전대학교박물관·한남대학교박물관·조폐공사박물관 등 4개의 박물관이 있다.

 

관저동·가수원동·대정동·쌍암동 등지에는 고인돌이 분포하며 괴정동 돌무지에서는 세형동검·다뉴세문경·동탁 등의 청동기류와 민무늬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오정동에서는 백제·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철제류가 발굴되었다. 산성으로는 구성리산성(대전광역시 기념물 제6월평동산성(대전광역시 기념물 제7우술성(雨述城대전광역시 기념물 제9) 등이 있다. 주요 목조건축물로는 회덕향교·진잠향교를 비롯하여 회덕동춘당(懷德同春堂보물 제209회덕쌍청당(懷德雙淸堂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회덕동춘선생고택(懷德同春先生古宅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 등이 있다. 주요 전적류로는 조선초의 호구를 알 수 있는 권준(權樽)의 호구단자(戶口單子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 사전인 운부군옥(群玉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 송시열의 문집인 송자대전판각(宋子大全版刻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 등이 있다. 능묘 및 비로는 박팽년선생유허(朴彭年先生遺墟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 및 유허비, 김익희(金益熙)의 묘(대전광역시 기념물 제5) 등이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송순갑(宋淳甲)의 웃다리농악이 있었다(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

 

전통적인 민속놀이로는 어린이들의 닭잡기놀이·이거리저거리놀이가 전해지고 있으며, 부락제로서 거리제와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동구(東區) 법동에는 대전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인 대덕법동리석장승이 있다.

 

설화로는 산·방죽·바위 등 자연물에 얽힌 설화가 주로 전해진다. 소제동에는 50년 전 장자정(長者井)이라고 불렸던 큰 방죽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장자못 유형의 설화가 전해진다. 이 지역에 전해지는 민요는 비기능요가 주류를 이룬다. 노동요는 도시의 발달과 함께 잘 불리지 않고 있지만 근교에는 모내기노래·논매기노래등이 일부 남아 있다. 또한 여성들이 일하며 부르는 시집살이노래·나물노래·오라버니노래등이 전해진다.

    

보문산공원한밭8및 유성온천, 대덕연구단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인접한 대청 다목적 댐, 공주 동학사, 청주 속리산 등지와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로서 연중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다. 유성구는 오래전부터 전국적으로 알려진 온천휴양관광단지로서 온천시설은 물론 각종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어 연중 많은 관광객들이 이 지역을 찾고 있다. 최근에는 대덕연구단지가 새로운 산업관광자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1993년의 대전세계박람회를 계기로 대전은 새로운 관광도시로 부상했다.

 

고인돌은 서구 가수원동과 유성구 관리동에 내동리지석묘(대전광역시 기념물 제3), 교촌동에 칠성당지석묘군(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2)과 대정동 등에 분포해 있다. 서구 괴정동의 돌무지 아래 석실묘에서는 세형동검·다뉴세문경·동탁 등의 청동기류와 민무늬토기·간석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청동기 제작기술의 정교함과 세련됨을 보여준다.

 

이 밖에 탄방동에서는 세형동검과 동모가, 문화동에서는 세형동검 등이 나왔으며, 대덕구 오정동에서는 백제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철제류가 발굴되었다. 중구 무수동에 국사봉유적(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8)도 있다.

 

산성으로는 대덕구 장동의 대덕계족산성(大德鷄足山城, 사적 제355), 중구 대사동의 보문산성(寶文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0), 소정동의 사정성(沙井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4), 동구 가양동의 능성(陵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1), 용운동의 갈현성(葛峴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2), 판암동의 삼정동산성(三丁洞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7), 직동의 노고산성(老姑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9성치산성(城峙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9), 호평동의 태두산성(太頭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0), 신하동의 백골산성(白骨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2), 삼괴동의 계현산성(鷄峴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4), 이사동의 비파산성(琵琶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5), 마산동산성(馬山洞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30), 유성구 덕진동의 적오산성(赤鰲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3), 안산동산성(案山洞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6), 성북동산성(城北洞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8), 신동의 소문산성(蘇文山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3), 구성동의 구성리산성(대전광역시 기념물 제6), 서구의 월평동산성(대전광역시 기념물 제7), 대덕구 비래동의 질현성(迭峴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8), 읍내동의 우술성(雨述城,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9)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동구 대성동의 고산사대웅전(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 유성구 성북동의 진잠성북리 석조보살입상(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제 5), 중구 정생동의 중암사부도(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1), 석교동의 보문산마애여래좌상(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 무수동의 보문사지석조(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0보문사지(대전광역시 기념물 제4)가 있다.

 

유교문화재는 대덕구 읍내동의 회덕향교(懷德鄕校회덕향교대성전(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 유성구 교촌동의 진잠향교(鎭岑鄕校진잠향교대성전(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을 비롯해, 서구 탄방동의 도산서원(道山書院,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 중구 안영동의 창계숭절사(滄溪崇節祠,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 동구 용운동의 문충사(文忠祠,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 이사동의 월송재(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1은진송씨승지공파재실(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5)이 있다.

 

고가옥은 서구 송촌동의 송용억가옥(宋容億家屋, 대전광역시 민속자료 제2), 괴곡동의 파평윤씨서윤공파고택(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4), 대덕구 송촌동의 회덕동춘당(懷德同春堂, 보물 제209회덕동춘선생고택(懷德同春先生古宅,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 동구 소제동의 송자고택(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9), 대덕구 중리동의 회덕쌍청당(懷德雙淸堂,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 등이 있다.

 

송시열이 건립한 가양동의 남간정사(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는 송시열의 제자들이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발간한 곳이다. 또한 동구 석교동의 봉소루(鳳巢樓,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5), 대덕구 미호동의 취백정(翠白亭,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9), 비래동의 옥류각(玉溜閣,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은 송준길이 창건해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이 밖에 유성구 원내동의 기성관(杞城館,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9), 대덕구 중리동의 송애당(松崖堂,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 읍내동의 제월당 및 옥오재(霽月堂·玉吾齋,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 서구 변동의 수정재(水晶齋,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0), 동구 가양동의 삼매당(三梅堂,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도 유명하다.

 

대덕구 법동의 은진송씨정려각(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 송촌동의 이시직공정려각(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6), 중리동의 고흥유씨정려각 및 비(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 동구 가양동에는 송시열의 문집인 송자대전판각(宋子大全版刻,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 등이 있다.

    

대덕구 중리동의 초려이유태유고(草廬李惟泰遺稿,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농암진적(農巖眞蹟,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을 비롯해 권준(權樽)의 호구단자(戶口單子,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와 사전인 운부군옥(韻府群玉,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 윤돈(尹暾) 등이 재산을 분배받은 것을 기록한 윤돈 등의 동복화회입의(尹暾等·同復和會立議,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 서구 탄방동에 만회집탄옹문집판목(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 흑성동에 상제집략판목(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용천련고판목(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2), 중구 무수동에 유회당판각(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 동구 이사동에 금암집판목(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 서구 변동의 동국사략(東國史略,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8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9청구풍아(靑丘風雅,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0양성당제영(養性堂題詠,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1문정공왕고간독(文正公王考簡牘,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2화산세가필적(花山世家筆蹟,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3박인년교지(朴引年敎旨,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4) 등이 있다.

    

능묘 및 비로는 동구 가양동에 박팽년선생유허(朴彭年先生遺墟,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박팽년선생유허비(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 유성구 가정동에 김익희(金益熙)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5), 전민동의 김반 묘(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 서구 원종동의 송준길 묘(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5), 과곡동의 김여온 묘(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6), 평촌동의 유혁원 묘(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8)가 있다.

 

웃다리농악(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 대전의 앉은굿(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 상모제작(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3), 유천동산신제(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4), 장동산디마을탑제(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5), 불상조각장(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6), 소목장(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7), 매사냥(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 송순주(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9), 연안이씨가 각색편(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0), 단청장(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 악기장·북메우기(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2), 들말두레소리(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3), 가곡·여창가곡(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4) 등이 있다.

    

갑하산, 계족산, 구봉산, 대전천, 도덕봉, 보문산, 우산봉, 유등천, 유성온천, 장태산, 주원천, 계룡산국립공원, 계룡팔경, 꿈돌이랜드, 만인산자연휴양림, 보문산공원, 뿌리공원, 시애틀공원, 엑스포과학공원, 유성온천, 장태산자연휴양림, 갈현성, 갑진북정록,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성당, 견두산성, 계현산성, 고봉산성, 고산사 대웅전, 고흥유씨 정려각 및 비, 관동묘려, 구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구 산업은행 대전지점, 구대전형무소 망루, 구성리 산성, 구완동 상감청자가마터, 구완동 청자가마터,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국사봉 유적, 궁동 유적, 권준의호구단자, 금암집판목, 기성관, 김반·김익겸의 묘, 김여온의 묘, 김익희의 묘, 김정선생묘소일원, 남간정사, 내동리 지석묘, 노고산성, 농암진적, 단재신채호선생생가지, 단청장, 대덕 법동리 석장승, 대전 계족산성, 대전 괴정동 유적, 대전 동춘당, 대전 선화동 구 사범부속학교 교장 사택, 대전 수운교 본부법회당, 대전 수운교 본부사무실, 대전 수운교 봉령각, 대전 수운교 용호당, 대전 수운교 종각 및 범종, 대전 앉은굿(안택굿, 미친굿), 대전여중 강당, 도산서원, 독립지사김태원생가유허, 둔산 선사유적지, 류혁연의묘, 마산동 산성, 만회집탄옹문집판목, 문정공왕고간독, 문충사, 박원상의 묘, 박인년교지, 박팽년선생유허, 박팽년선생유허비, 백골산성, 보문사지, 보문사지 석조, 보문산 마애여래좌상, 보문산성, 봉소루, 비파산성, 사정성, 삼강행실도, 삼매당, 삼성초등학교구교사, 삼정동 산성, 상제집략판목, 서포김만중영정, 설고시첩, 성북동 산성, 성치산성, 소문산성, 송순주, 송씨 양세정려, 송애당, 송용억가옥, 송자고택, 송자대전판, 송준길의 묘, 수운교석종, 수운교천단, 수정재, 숭현서원지, 신선봉 유적, 안산동 산성, 양성당제영, 어사홍원모영세불망비 및 비각, 여경암()거업재산신당, 오정동 선교사촌, 옥류각, 용천련고판목, 용화사 석불입상, 우술성, 운부군옥, 월송재, 월평동 산성, 유회당 판각, 유회당()기궁재, 유회당유물, 윤돈 등의 동복화회입의, 은진송씨 승지공파 재실, 은진송씨 정려각, 이시직공정려각, 이현동 산성, 장동 산디마을 탑제, 적오산성, 정생동 백자 가마터, 제월당 및 옥오재, 조천진장, 조흥은행 대전지점, 중암사 승탑, 진잠 성북리 석조보살입상, 진잠향교 대성전, 질현성, 창계숭절사, 철도청대전지역사무소 재무과 보급창고(3), 청구풍아, 초려이유태유고, 충남도지사공관, 충청남도 관사촌, 충청남도청, 취백정, 칠성당 지석묘군, 태실(석함), 파평윤씨서윤공파고택, 한전대전보급소, 화산세가필적, 회덕 동춘선생고택(정침·가묘·별묘), 회덕 쌍청당, 회덕향교 대성전, 흑석동 산성,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국립문화재연구소, 대전광역시립미술관, 대전광역시향토사료관, 대전대학교 박물관, 대전동물원, 대전보건대학 박물관, 대전월드컵경기장, 대전토기역사관, 동산도기박물관, 물박물관, 배재대학교 박물관, 지질박물관, 충남대학교 박물관, 충남전기통신박물관, 충청남도과학교육원 전시관, 한남대학교 자연사박물관, 한남대학교 중앙박물관, 한림미술관, 한밭교육박물관, 한밭도서관,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한밭종합운동장 축구장, 화폐박물관, 대전세계박람회, 한밭문화제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유희와 오락을 주로 들 수 있다. 어린이들의 유희인 닭잡기놀이와 이거리저거리놀이를 들 수 있다. 닭잡기놀이는 10세 내외 아이들의 집단놀이이다. 먼저 살쾡이(술래)와 닭을 정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원형을 이룬다.

 

그 원 속에 닭을 넣고 원 밖에서는 살쾡이가 닭을 노리며 닭아 닭아 달걀 몇 개나 있니?” 하고 물으면 열 개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살쾡이가 닭에게 달걀 하나만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제의하는데, 이 때 못 주겠다.”라고 대답하면 살쾡이가 야아!” 하고 소리치며 닭을 잡으려고 원 안으로 달려든다. 이 때 원형을 이룬 아이들은 빙빙 돌며 살쾡이가 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놀이이다.

 

이거리저거리놀이는 남녀 아이들의 방안놀이로서 몇 사람이 양쪽으로 마주앉아 두 다리를 섞어 뻗고 한 사람이 다리를 짚으면서 이거리 저거리 밥거리 인사만사 두만사 주머니끝……의 노래를 하는데, 그 노래가 끝날 때 짚은 다리를 빼내게 된다. 이렇게 몇 번을 되풀이해 먼저 두 다리를 빼내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이다.

 

이 고장에서 지내는 동제는 산신제로 시행되며, 동제를 지내는 모든 마을은 거리제를 지낸다. 제일은 대부분 정월 열나흗날이며, 거리제는 노신(路神), 산신제는 보문산 산신을 대상으로 지낸다. 제장은 산사당·석장승·누석단(累石壇) 등이며, 제주는 부정이 없는 사람 중에서 선정하고 제주의 금기는 그리 엄격하지 않은 편이다.

 

 

 

 

삼정동의 거리제는 100여 년 전 농사에 방해가 되는 큰 느티나무를 베어내자 마을에 청소년 10여 명이 급사하는 변이 일어난 뒤 나무신에게 제를 지냈던 데서 유래한다. 삼정동은 큰삼정·골삼[정의] 두 마을에 누석단이 축조되어 있고 큰삼[정의] 할아버지신과 골삼[정의] 할머니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제관은 생기복덕한 자로 10일 전에 선출해 문전에 황토를 깔고 금줄을 치고 어육식을 금하고 새로 떠낸 정화수를 이용한다. 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 11시 전후해 거행된다. 제일 전야에 주민들이 마을 입구의 거목 아래 모여 굵기 2, 길이 200m의 새끼를 꼬아 5m 간격으로 길지(吉紙)를 매달아 제주의 집에 보관한다. 다음 날 청년들이 거목에서 야산까지 전날 꼬아놓은 금줄을 매달고 누석단의 동서남북 중앙에 오방장군기를 세우고 누석단에도 여러 줄의 금줄을 걸어놓는다. 제전에는 부정이 없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례할 수 있다. 그리고 제단 곁에는 달불이라 부르는 모닥불을 제의가 끝날 때까지 피운다. 제차는 강신분향·사배·참신·진찬(進饌독축·헌작·사신(辭神분축·소지·철찬·음복 등 유식 제례로 진행된다. 이 때 소지는 만동소지(萬洞燒紙제주소지가 올려지고 나면 마을의 최고령자로부터 시작해 연령순으로 10세 소년까지 각자의 소지를 올려준다. 제의가 끝나면 주민들은 제전이나 제관의 집에 모여 제관의 노고를 위무한다.

 

이 고장은 산·방죽·바위 등 자연물에 관한 설화가 주류를 이루며, 역사적 인물에 관한 설화도 많다. 지금부터 50년 전만 해도 장자정(長者井)이라 하여 소제동에 큰 방죽이 남아 있었는데, 여기에는 장자못 유형의 설화가 남아 있다.

 

옛날 장씨라는 부자가 이 곳에 살고 있었는데 심술궂고 인색해 보문산에서 시주를 구하러 온 도승에게 쌀 대신 쇠똥을 퍼주었다. 이를 본 장씨의 부인이 쫓아나가 아무 말 없이 돌아가는 도승에게 잘못을 빌었다. 그러자 도승은 부인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고 따라오라고 하며 보문산으로 향했다. 나지막한 고개에 이르렀을 때 뒤따르던 부인이 깜박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이 순간 벼락과 천둥이 치며 장씨의 집은 물바다가 되었고 부인은 그 자리에서 돌이 되고 말았다.

 

유등천 근처에는 아들바위가 있다. 옛날 이 곳에 아기를 못 낳는 며느리가 살고 있었는데, 5대 독자인 아들을 둔 시부모는 대가 끊어지는 것을 염려해 며느리를 쫓아내려 했다. 이에 남편이 사정해 3년의 말미를 얻고 기다렸으나 끝내 아들을 낳지 못했다. 남편은 아기를 낳으면 끓여주려고 준비한 미역 한 다발을 쫓겨나는 부인에게 주어 보냈다. 며느리는 쏟아지는 눈 속을 걸어 비구니가 되려고 절로 향했는데, 날이 어두워져 바위 밑에 미역 다발을 숨겨놓고 걷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진 며느리의 몸 위로 눈이 수북이 쌓였으며, 겨울이 가고 봄이 와 눈이 녹으니 사람 형상의 바위가 나타났다. 그 뒤 이 바위를 아들바위, 미역을 숨겨둔 바위를 미역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지금도 아들바위에 와서 정성을 들인다고 한다.

 

은행동의 목척교에는 명명(命名) 유래담이 있다.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돌로 놓은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아침 저녁으로 그 곳을 지나는 새우젓장수가 있었다. 그는 꼭 징검다리 한가운데에 지게를 받쳐놓고 쉬고는 했는데, 받쳐놓은 지게가 꼭 목척(木尺) 같아 그 뒤 다리가 완공되어 다리 이름을 목척교라고 했다 한다. 이 밖에 대전의 동쪽을 에워싼 식장산에 관한 다양한 설화와 송시열과 보문산 설화는 대덕에서와 같이 이곳에서도 널리 퍼져 있는 설화이다.

 

이 고장에 구전되고 있는 민요는 비기능요가 주류를 이룬다. 노동요는 도시의 발달로 노동현장과 유리되어 기능을 잃고 잘 불리지 않지만, 근교에 모내기노래·논매기노래 등이 일부 남아 있다.

 

해다갔네 해다갔네/골골마다 저녁연기가 나는구나/오늘해는 여기서 놀고/내일해는 어느곳에서 놀까나.”라는 모내기노래는 모내기가 끝나가는 저녁 무렵에 부르는 저녁노래로, 모두 소리를 모아 느리고 애수적인 가락으로 부른다.

 

장구배미 다매고/북통배미로 넘어가나/어럴럴럴 상사디야//북통배미도 다매고/반달만큼 남았구나/어럴럴럴 상사디야//저건너 갈미봉에/비바람 들어온다/어럴럴럴 상사디야//우장을 둘러치고/삿갓을 써라/어럴럴럴 상사디어.”상사디어계 여음을 사용하고 있는 논매기노래이다.

 

사설은 모심기노래와도 비슷한 것이 있고 전라도 민요인 육자배기사설을 사용하기도 한다. 가창방식은 선창자가 메기면 여음을 모두 부르는 선후창방식이고 곡조는 느리며 매우 애수적이다.

 

여성들이 일하면서 부르는 시집살이노래가 있고 어희요계인 나물노래도 있다. , “오라버니 오라버니/오라버니 있어서/누룩으로 담을치고/명지전대 울띠맸나/내집에는 없어서/나무전대 울띠맸나/포록포록 뜯은나물/옴솥에 삶어서/입벌리고 더넣드니/첫숟갈에 온()기돋고 두숟갈에 숨이도네/아홉아들 아들인가/외딸이 딸이지……라는 오라버니노래가 여성들이 부르는 서사민요로 전하고 있다. 이 노래는 생명수나 저승꽃으로 사람을 살린다는 무가 계통의 노래와 비슷한데 뜯어온 나물로 오빠를 살리는 [내용]이다.

 

동요로는 까치는 깍깍/동애줄은 독독//너어디 가나/금산에 간다//뭣하러 가나/새끼치러 간다//몇마리 쳤나/열두마리 쳤다.”와 같이 유희를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까치요가 있으며, 파랑새요불무요등도 있다. 이 밖에도 타령류인사랑가·범벅타령·흥타령등이 불린다.

 

 

대전이 낳은 인물들

이 고장이 낳은 인물로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송준길이 있다. 송준길의 호는 동춘당(同春堂)인데, 이는 자신의 집 별당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서울 정릉동에서 태어나 3세 때 아버지 송이창을 따라 회덕 송촌으로 거처를 옮겼고, 9세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공자와 주자, 율곡의 학문을 익혔다. 이종 형제인 송시열과 함께 공부했는데 이때 비롯된 송준길과 송시열 두 사람의 우의는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거의 한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18세 때부터 사계(沙溪) 김장생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김장생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의 아들 신독재(愼獨齋) 김집에게서 배웠다. 김장생은 송준길의 생활과 학문적 태도를 보고 이 사람은 훗날 반드시 예가(禮家)의 종장이 될 것이라 칭찬했다고 한다. 인조 2(1624) 19세 때 진사가 된 송준길은 25세 이후로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거의 부임하지 않고 주로 송시열 등과 교우하면서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남간정사

우암 송시열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능인암 아래 지은 서당이며 이곳에서 그의 학문을 완성시켰다. 송준길은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는데도 부임하지 않다가 효종 8년 조정으로 나아갔고 호조참판, 대사헌, 이조참판을 거쳐 효종 10년에 병조판서가 되면서 효종과 함께 북벌 계획을 준비한다. 그러나 효종이 일찍 죽자 북벌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관직에서 물러난 송준길은 이곳에서 그의 이름을 듣고 나라 안 곳곳에서 찾아온 유림들에게 북벌론을 강론하다가 현종 13년 동춘당에서 67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동춘당

송준길의 호 동춘당은 자신의 집 별당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조선시대 별당을 표준으로 삼은 건물로 살아 움직이는 봄과 같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동춘당은 조선시대의 별당을 표준으로 삼은 건물로 살아 움직이는 봄과 같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나직한 기단과 아담한 몸체, 조붓한 툇마루, 단정한 지붕 매무새 등 곳곳에서 선비다운 얌전함과 간소함을 풍기는 집이다. 조선 후기 별당 건축의 한 표본으로 꼽을 만하여 보물 제209호로 지정되었다. 동춘당 뒤편에는 ()’자 사랑채와 자 안채, 두 개의 사당으로 이루어진 송준길의 고택이 있다. 인조 20(1642)에 건립된 이 고택은 안채의 구성 등에 처음 지어졌을 때의 모습이 잘 간직되어 있다. 사랑채 뒤편과 안마당 사이에 야트막한 담을 두어 서로의 공간을 독립해놓은 점이 재미있다. 따로 떨어진 두 사당 중에서 별묘(別廟)에 송준길을 모시고 가묘(家廟)에 다른 선조들을 모셨다. 조선시대 양반집의 전형을 보여주는 송준길의 고택은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송준길 고택

동춘당 뒤편에 있는 송준길 고택은 인조 20(1642) 건립 당시의 모습이 잘 간직되어 있다. 조선시대 양반집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