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이승에서 꿈꾸기

협동조합의 놀라운 유연성을 이해하고 지켜 나가는 방법

草霧 2013. 11. 1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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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의 놀라운 유연성을 이해하고 지켜 나가는 방법
- 생협의 로컬푸드와 로컬푸드운동의 상생발전을 위하여 -



협동조합은 처음 탄생할 때부터 사람들이 손잡고 벌인 운동이면서 동시에 사업체로서 유지되어야 하는 하나의 ‘조직’이다.
일반적으로 조직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개별적인 참여자의 의식에서 독립된 ‘유기체’로서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며, 분열되어 소멸되지 않을 정도의 속도 내에서 변화하게 된다. 조직이 커질수록 변화의 속도의 한계는 일반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반면에 조직이 커져서 많은 조합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면 조직의 작은 변화에도 사회적 파급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협동조합은 5명이 모인 아주 작은 규모의 조직부터 400조원 이상의 자산과 수 조원의 고정자산을 가진 거대한 규모의 농협까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당연히 작은 협동조합은 생성-변화-발전-소멸의 속도가 빠르게 나타날 것이며, 큰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일반의지를 하나로 모으기 위하여 복잡한 의사결정의 프로세스를 밟아 나가며 천천히 변화해 나갈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올바른 협동조합운동은 이런 변화들의 절대적인 속도보다는 그것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조합원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합과 그 변화의 속도를 감안한 상대적인 속도가 빠른지 그렇지 않은지를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총수에게 절대적인 의사결정권이 주어지는 재벌기업과 달리 협동조합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또한 협동조합이 자신의 정체성의 한 부분을 스스로 ‘운동’이라고 설명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힌 이상 세상의 변화를 선도하려는 모든 운동은 협동조합에 대해 자신들의 운동을 지지하고 그것을 선취(先取)하도록 요구하는 당연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협동조합은 언제나 영리기업처럼 이윤극대화라는 하나의 균형점을 가지지 못하고, 다양한 목적에 적합한 균형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다시 균형점을 찾기 위해 움직여 나가야 하는 ‘수고로움’을 자신의 숙명으로 가지고 있다.
이런 본질은, 협동조합은 다른 어떤 조직보다 유연해야 한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어떤 협동조합 이론가는 조합원의 목표가 달성되고, 다른 협동조합이 자유롭게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이라면 굳이 현재에 메이지 말고 과감하게 ‘흑자 해산’을 한 후, 마음 맞는 조합원들끼리 다시 모여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까지 주장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성공적인 사업시스템을 구축하고 사업규모와 조직규모가 증대된 협동조합의 변화 속도에 대해 새로운 운동을 제창하는 사람들은 만족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상호간의 이해의 부족 때문에 불필요한 논쟁이 발생하기도 하고,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최근에 토론자로 참석한 자리가 생협의 로컬푸드와 로컬푸드운동의 논리적 대립이 첨예하게 드러난 터라서 더 건설적인 대화를 위하는 바람으로 몇 자 적어본다.
필자는 로컬푸드 논의의 필요성과 그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로컬푸드의 문제의식이 생협의 사업시스템에 잘 반영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로컬푸드 운동을 위해 생협이 있거나, 조합원들이 로컬푸드 운동을 하기 위해 생협에 가입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한국적 상황에서 필자는 ‘로컬푸드’에서 ‘로컬’의 중층적인 공간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용어를 좀 더 다듬어야 하겠지만 시군단위의 기초 로컬푸드, 시도단위의 광역 로컬푸드, 한국 전체를 위한 국가 로컬푸드(국산농산물)의 3단계로 나눠서 접근하는 것은 어떨까? 국가적 로컬푸드도 글로벌 농산물시장의 문제점에 비춰볼 때 나름의 운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협은 이런 3단계 공간에서 최대한 이동거리 및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시스템을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며, 로컬푸드 운동은 이런 의지를 높여 줄 수 있는 구체적인 경로를 함께 고민해 주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로컬푸드의 지향과 생협의 지향은 교집합을 함께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부분도 분명히 있다. 이 점을 인식하고, 로컬푸드의 실행방식을 다양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서로 머리를 맞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로컬푸드의 성공적인 모델로는 언니네텃밭과 같은 꾸러미사업과 완주의 마을살리기와 농협의 직매장사업을 연결한 두 가지가 있다. 더 많은 제도들을 로컬푸드의 지향과 연결하는 방향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광역로컬의 경우 시군과 함께 로컬푸드로 인증받은 농산물에 대해서는 계약재배 및 직거래 정책에서 우선순위를 주고, 지역농산물도매시장의 상장수수료를 할인해 주는 정책도 고민할 수 있다. 이런 정책이 로컬푸드의 모든 원칙을 다 만족시켜주지는 못할 지라도 대중적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
농협과 생협 등 협동조합 매장을 활용하여 로컬푸드를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 낼 것인지 홍보전략을 함께 짤 수도 있다. 영국의 한 소비자협동조합은 로컬푸드를 매장에 진열할 경우 그 의의와 내용을 함축적으로 적은 카드를 함께 비치하여 로컬푸드의 확산을 지원하고 있다.

다른 운동들도 마찬가지 접근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면 좋겠다. 협동조합이 가지는 상대적인 변화속도에 대한 이해와 함께 교집합과 여집합이 있는 관계라는 점에 대해 서로 이해가 높아진다면, 협동조합은 자신의 유연성을 더 많이 발휘하면서 여러 운동과 함께 갈 수 있는 기회도 증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