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이승에서 꿈꾸기

함께 먹는 사람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기도 하다

草霧 2013. 11. 13. 12:31

 

 

 

생생리포트1
지금, 널리 퍼져 있는 사회 형태 내에서 그러한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공생공락, 친목, 협력의 기쁨을 되살리고 재발견하는 것. 다시 강조하지만, 어울려 먹기. 어울려 음식을 만들고 먹는다는 건, 기본적인 신뢰를 깔고 있다는 것이다. 함께 먹는 사람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행위, 느낌의 공동체를 만든다. 말하자면, 밥은 네트워크이자, 공동체의 다른 말. 밥상공동체는 곧 마을공동체다.
글_김이준수(서울식품안전 시민리포터) 사진제공_서울시 마을공동체담당관실,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그렇게 어울려먹기를 통해 좀 더 나은 삶을 사유하고 실천하는 밥상공동체를 만났다. 지난 10월 17일 저녁, 서울시청 9층 하늘광장 카페가 변신한 ‘마을캠프’. 총 7회에 걸친 ‘마을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첫 시간 <마을아, 밥 한 끼 먹자!>가 열렸다.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이 자리, 이웃랄랄라(http://cafe.naver.com/ecolalala)의 이정인 씨와 은실이네의 소란 씨가 각자의 밥상공동체를 차리고 공유했다.
랄랄라~ 밥상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방법
랄랄라~ 밥상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방법
3년 전 이정인 씨가 무턱대고 시작한 것이 ‘이웃 랄랄라’였다. 혼자 사는 자신을 돌아보고 독립생활자들을 둘러보니 헛헛했다.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몸은 망가지고 하나둘 결혼하는 친구들과 직장 때문에 인간관계도 좁아져, 다른 네트워크라도 쌓고 싶은데 쉽지 않은 상황. 전구가 켜졌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면 되지 않을까! 인터넷카페를 열고 이렇게 내걸었다.
1인가족

이정인씨

의외로 열띤 호응이었다. 60여 명이 카페 가입을 했다. 2010년 3월, 첫 모임을 열었다. 마포구 합정동 벼레별씨 커피집 옥상. 17명이 첫모임에 참석했다. 텃밭 농사를 빌미로 공식 모임은 월 1회, 모토는 ‘심고 뽑고 맛보고 즐기고’, ‘이웃 랄랄라’의 본격적인 탄생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농사를 지어본 적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도시 청춘들이 오죽했을까. 자주 실패했고, 더 자주 새로움과 즐거움을 만났다. 하지만 실패조차 ‘랄랄라~’였다. 옥상에 심은 상추로 삼겹살 파티도 하고 주렁주렁 감자도 캐고, 몰래 심은 수박도 넝쿨째 수확하기도 했다. 모르니까 가능했던 무엇. 잘 안 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이듬해, 옥상텃밭이 없어진 것. 그야말로 밭 없는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다른 옥상을 간신히 구했지만 규모는 작아졌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배추, 쪽파, 시금치, 열무 등을 뽑아 김장재료 파티를 했고, 배추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함께 만들어 먹었다. ‘아,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1인 가족들이 만드는 공동체의 즐거움을 만났다. ‘심봤다!’
매년 새로워졌다. 일신우일신. 2012년, 진짜 텃밭을 분양받았다. 노들섬에 랄랄라 텃밭이 생겼다. 옥상에서 땅으로 내려온 덕분에 랄랄라는 더 흥미로워졌다. ‘밭두렁 라디오’라는 세계 최초의 텃밭라디오 행사도 열었고, 역시 경작된 농작물로 어울려 먹는 즐거움도 계속 됐다. 회원들은 자신들의 성과를 기록하고 싶었다. 《랄랄라 뭐라도 나겠지》라는 한정판수공예 책자도 냈다. 주변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전자책으로도 펴냈다.
올해라고 다를까. 출판기념회 겸 운동회 명목으로 <노들 랄랄라>의 행사를 열었다. 한 뼘 더 나아갔다. 1인 가족의 먹거리를 개선하고 요리와 관련한 재밌는 프로젝트를 위해 새끼를 쳤다. ‘부엌 랄랄라’의 탄생. 이달 말, 1인 가족 밥상개조 프로젝트이자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누들 요리를 선보이는 ‘누들 랄랄라’를 처음 연다.
3년, 좌충우돌하면서 회원들은 많이 친해졌고, 처음엔 이야기하지 않던 자신들의 고민과 계획을 나누기 시작했다. 고민은 제각각, 그러나 지향은 비슷했다. 일상이 좀 더 의미 있고 재미있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이웃 랄랄라’의 존재가 어떤 식으로든 그 중심이 되면 좋겠다는 것. 농사 핑계로 재밌게 놀고, 어울려 먹으면서 삶을 즐겁게 만들어가는 길을 1인 가족 스스로 찾았다. 1인 가족하면 부정적으로 떠오르는 고독과 독거의 이미지는 ‘이웃 랄랄라’에는 없다. 감성을 말랑하게 만들 수 있는 공동의 식탁, 공연 등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함께 하면서 즐겁게 산다. 그들 또한 마을공동체로 도시에 어울리는 새로운 개념이다.

은실이네, ‘따로 또 같이 살기’의 신공

소란님 (유희정, 페머컬쳐 디자이너)

이어 등장한 소란님(유희정, 퍼머컬쳐 permaculture 디자이너)은 은평구의 ‘은실이네’에 산다. 은실이네(은실이는 함께 지내는 반려 고양이 이름)는 여성 다섯 명이 사는 셰어하우스(공동주택)로 ‘따로 또 같이 살기’를 실천하는 밥상공동체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구조했다고 표현한다. 재밌다. 경쟁 격화로 서로를 팔꿈치로 몰아내지 않고, 서로를 보듬고 품는 공동체라니. 은실이네의 비장의 무기는 냉장고다. 이 냉장고는 마을 사람들이 공유하는 동네 장독대 구실을 한다. 매일 한 분 정도는 이 냉장고에 김치 등을 갖고 오고, 필요한 사람이 갖고 가기 위해 은실이네를 들린다.
덕분에 은실이네는 공유공간, 공유지가 됐다. 크리스토퍼 알렉산더가《건축도시 형태론》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공유지가 없으면 어떤 사회시스템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은실이네는 이미 그것을 몸으로 깨닫고 있는 것 같다. 마을에서 함께 살기의 신공은, 상호구조의 정신에 입각한 은실이네의 모토에서도 드러난다. 소란님은 그것을 ‘동네 그지(거지)’라고 표현했다. 비록 가진 것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살펴주고 할 수 있는 것도 찾아주는, 마을에 젖어든 동네그지.
그렇지만 이 콘셉트와 달리 은실이네는 방 5개와 화장실 3개가 딸린 2층 집에 마당도 있는 부잣집 모양새 같다. 안을 들여다보면 부잣집과는 거리가 멀지만. 다섯 명이 출자를 했고, 빚을 졌으며, 이자를 나눠 갚으며 산다. 다행이라면, 셰어하우스의 장점인데, 다른 보통의 월세보다 적은 비용으로 산다는 것. 집은 정작 허술하단다. 비가 많이 오면 빗물이 새고, 겨울에는 춥다. 그럴 때마다 적정기술 등을 활용해 그런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이 소란님의 설명.
마당에선 텃밭을 가꾼다. 재밌는 것은 오줌을 받아 발효를 시켜 퇴비로 주고 있다. 거기서 나오는 식재료로 밥을 어울려 먹는다. 생명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셈이다. 더 나아가 은평구에 자리한 갈현텃밭에서 주민들과 함께 농사짓고 잉여를 나눈다. 덕분에 마을 주민들이 은실이네로 다양한 것을 보내준다. 동네 그지답게, 은실이네는 그런 것으로도 먹고 산다.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마을의 풍경. 소란님은 은실이네를 중심으로 그린 먹거리 지도를 보여준다. 내가 먹는 것들이 어디서 오는지 살펴보니 마을의 관계도가 자연스럽게 그려졌단다. 서로가 서로를 구조해주고 서로에게 먹여주는 관계, 마을공동체의 한 풍경이다.

은실이네, ‘따로 또 같이 살기’의 신공

우리 집 앞뜰

30대 미혼여성 다섯이 모여 산다고 걱정을 하거나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이미 가족이다. 혈연 중심이 아니라도 행동반경을 같이 하는 가족. 그래서 다양한 실험도 하고 있다. 조금 벌고 일도 조금 하자는 이들은 공동장부를 써서 1/n을 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상조시스템도 만들었다. 공유경제를 생활 속에 실천한다.
그렇게 많은 것을 공유하고 어울리지만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있다. ‘자기만의 방’. 은실이네의 유일한 법칙은 방 하나에 한 사람씩.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울프는 당당해지고 싶은 여성이라면 생활의 자립을 꾀할 수 있는 경제적인 소득과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사색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은실이네는 그런 공간이다. 따로 또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