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한국미술

거시적 건축의 미시적 흔적들 - "중국 청주(靑州) 와당" 특별전

草霧 2013. 11. 14. 11:51

 

 

 

거시적 건축의 미시적 흔적들 - "중국 청주(靑州) 와당" 특별전

 

  • 거시적 건축의 미시적 흔적들-<중국 청주(靑州) 와당>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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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수 완(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조교수)

    전시명 : <중국 청주(靑州) 와당> 특별전
    장 소 : 유금와당박물관
    기 간 : 2013.10.18-2014.9.5

    요즘 걷고 싶은 동네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부암동에는 카페도 많이 들어섰지만, 구석구석 박물관, 미술관도 알차게 들어서 있다. 그 중에 유금와당박물관은 자하문 터널 입구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을 끼고 있는 한적한 골목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다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길목에 위치해있다. 이런 주택가 골목에 와당이라고 하는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는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인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꽃무늬 수막새, 유송~북위, 지름 14.4㎝  


    지금 이곳에서는 내년 9월 5일까지의 일정으로 <중국 청주 와당>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미 국립중앙박물관에 1,800여점의 기와 유물을 기증한 바 있는 유창종 관장이 이후에도 기와 수집을 계속하여 보다 친밀하게 관객들을 맞이할 수 있는 박물관을 2008년 개관한 것이다. 이 박물관의 신은희 학예실장에 의하면, 이번 전시의 목적은 삼국~통일신라와 밀접한 교류관계에 있었던 중국 청주 지역 출토의 와당들을 모아 소개함으로써 우리 와당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는 같은 목적으로 앞서 있었던 <중국 양주 와당>의 후속편이다. 양주 지역이 중국 남쪽 지역으로서 우리나라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면, 이번 청주 지역은 북쪽 지역으로서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지역이다. 

    하나의 전시실에 진열된 와당들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작품들로 가득차 있다. 전시된 유물들은 시기적으로는 남북조시대 5세기 중반 무렵까지 이 지역을 다스렸던 남조의 유송(劉宋) 시기로부터 당(唐) 시대에 걸쳐있으며, 기종으로는 수막새 및 암막새 기와로부터 마루수막새와 장식기와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근래 기와의 연구는 문양연구 뿐 아니라, 제작기법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위함인지 일부 기와들을 뒤집어 전시하여 막새기와와 수키와를 어떻게 접합했는가를 보여준 것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먼저 수막새기와를 대표하는 연꽃무늬 막새의 경우, 삼국시대 고구려의 막새와 백제 막새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다고 생각되는 양식이 주목된다. 고구려의 막새처럼 연판이 마치 벼이삭처럼 생긴 날카로운 표현도 아니고, 그렇다고 백제의 막새처럼 연판이 크고 양감이 풍성한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날카로운 표현이면서도 양감이 풍부하고, 윤곽이 또렷하게 돋을새김이 되어 있는 것은 어쩌면 청주지역이 남조와 북조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왔음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용얼굴무늬 수막새, 북조, 지름 12.3㎝ 


    용얼굴무늬 보주형 마루수막새, 북조, 현존높이 33.8㎝ 


    특히 주목되는 전시유물은 강한 돋을새김으로 용의 얼굴을 조각한 북조의 수막새기와이다. 이 기와는 박락이 심하긴 하지만, 표면에 은색 광택을 띠는 것이 특이한데, 아마도 매우 중요한 건물의 지붕을 장식했던 기와임에 틀림없는 듯 하다. 이것이 유약인지 칠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은빛 안료는 대부분 산화되어 거무죽죽한 색을 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아직도 이런 은빛이 남아있다는 것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번 전시 도록에 실린 유창종 관장의 논고에 따르면 이러한 수막새 와당은 산동성 청주 지역에서만 주로 발견되는 유물이며, 특히 용화사지(龍華寺址)와 같은 불교사원지에서 발굴되거나 수습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를 듣고 보니 용화사지에서 출토된 특이한 형태의 중국 북제시대 불상들 중에서도 이렇게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안료가 미세하게 남아있는 사례가 발견된 적이 있음이 떠올랐다. 이들 안료의 비밀은 무엇일까?

    이와 더불어 관람객을 압도하는 유물은 용의 얼굴이 새겨진 보주형 마루수막새 기와이다. 주로 팔작지붕의 내림마루 끝을 장식하는데 쓰였던 것으로 생각되는 이 기와는 불꽃을 뚫고 고개를 내밀어 입을 벌리고 포효하는 용의 얼굴을 보는 듯, 그리고 그 포효하는 소리를 듣는 듯 역동적이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는 이러한 기와가 사용된 예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지만, 내소사, 개암사와 같은 절의 법당 천정에 보이는 충량 끝을 용머리로 장식하는 기원이 사실상 이러한 용 문양 마루수막새 기와에 있음을 짐작케 하는 귀중한 유물이다. 그 외 상당한 크기의 용 얼굴 모양 기와는 남북조시대 청주 지역의 건물들이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했을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용얼굴무늬 수막새, 수·당, 지름 16.9㎝ 


    당 시대의 기와들은 남북조시대와 달리 상당히 감정을 절제한 느낌이 든다. 더 이상 공격하려는 모습이 아니라, 입을 다물고 정면을 응시하는 듯한 얼굴이다. 이는 상상의 동물이라기 보다는 마치 의젓한 물소의 얼굴을 보는 듯 사실적이고, 나아가 위협보다는 위엄을 느끼게 된다. 또한 전반적으로 얼굴을 앞으로 많이 돌출시켜 사실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이 수막새가 장식된 지붕을 본다면, 지붕골 하나하나가 마치 용이 기어내려오는 듯 보였을 것이니 그 위용이 어떠했을까?

    기와는 흙으로 빚은 작은 공예품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것들은 거대한 건축물의 중요한 구성요소이기도 하다. 특히 목조건축에서 지붕을 보호하기 위한 기와들은 점차 이런 장식성을 더하면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띠고 전개되었다. 특히 남북조 시대와 같은 오래된 과거의 경우 현존하는 목조건축물이 없다는 점에서 당시의 건축 현황을 짐작하는데는 이와 같은 기와편이 중요한 단서가 된다. 기와의 형태를 통해 지붕의 구조는 어떠했으며, 서까래의 지름은 얼마였으며, 건축을 어떤 개념에서 이해했는가 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와란 작지만 거대한 역사를 품고 있다.

    고대 문화사에 관심이 있는 분, 또는 부암동에 단순히 카페만을 들리기 위해 가고 싶지는 않은 인문학 애호가 분들에게 잠시 중국 고대 기와들을 둘러보며 마치 남북조시대 기와지붕이 늘어선 청주 도성을 산책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보시길 추천해드리고 싶다. 함께 진행 중인 <황유도용> 전시(내년 3월 29일까지)도 함께 관람하시길 권한다.

    (박물관 관람은 수·토요일 오전10~오후5시, 화·목·금요일은 예약이 필요하며, 일·월요일은 휴관이다. 02-394-3451)


    글 주수완(고려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