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정보가 `예능`인 시대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8
[서울톡톡] 건강정보를 다루는 예능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기존에도 건강정보는 지상파 방송사에서 <생로병사의 비밀> 같은 교양 프로그램이나 <비타민> 같은 예능에서 사랑받아왔지만, 예능계를 주도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엔 종편에서 <닥터콘서트>, <닥터의 승부>처럼 아예 의사들을 전면에 내세운 토크쇼까지 등장했다.
종편 토크쇼 인기의 진원지인 <황금알>에서도 의사들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다루는 내용에서도 건강정보의 분량이 늘어가는 추세다. 그 외 <만물상>, <웰컴 투 시월드>, <헬로헬로>, <천기누설>처럼 건강정보와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프로그램들에서도 건강정보가 다뤄졌다. 종편에서 본격화된 건강정보의 인기는 다시 지상파 방송에 영향을 미쳐, <풀하우스> 같은 지상파 토크쇼에서도 의사들이 주요 출연진으로 등장한다. 지금처럼 방송에서 의사와 건강정보가 각광받은 적이 없었다.
예능의 건강정보, 정말 유용할까? 물론 건강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다. 따라서 방송에서도 건강정보를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건강정보가 예능계까지 주도하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현상이다. 이것은 지상파 토크쇼의 약세와 종편 토크쇼의 강세가 맞물리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지상파 토크쇼는 한동안 연예인들의 막말, 독설, 폭로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제 시청자는 연예인들끼리 벌이는 '그들만의 리그'에 싫증을 느끼고 있다. 이젠 연예인의 신변잡기가 아닌 보다 의미 있고 유용한 정보를 토크쇼에서도 원한다. 마침 그 즈음에 종편에서 의사들을 내세운 토크쇼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종편 입장에선 연예인들을 섭외할 경우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가장 경제적인 구성을 시도한 것이었는데, 그게 시청자들의 요구와 맞아떨어지면서 건강정보 예능 전성기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유별난 시대이기도 하다. 1990년대 말 이후 공동체적인 가치들이 붕괴되면서,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자기 자신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스펙을 잘 쌓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재테크를 잘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건강한 몸을 지킬 것인가', 이렇게 자기배려의 흐름이 강해지다 보니 질병, 정력, 정신안정 등을 다루는 의사들의 영역이 커진 것이다. 식품산업의 발달과 먹을거리의 국제교역으로 음식에 대한 불안이 커진 것도 건강정보 유행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
시청자들은 건강정보 토크쇼를 통해 뭔가 유용한 정보를 얻는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유용한 정보인지는 불분명하다. 여러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그것을 볼 때는 머릿속에 지식이 쌓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막상 돌아서면 체계화된 지식으로 남는 게 별로 없다. 여러 정보들이 단편적인 인상으로만 남을 뿐이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수많은 의사들이 온갖 지식을 홍수처럼 쏟아내기 때문에 때로는 정보와 정보가 충돌하는 양상까지 나타난다. 의사들과 함께 민간요법 체험자들이 나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개인적 체험이 전해져 시청자를 현혹하기도 한다. 과도하게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다보면 그것이 오히려 불안을 초래해, 건강염려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올 상반기에 발생한 효소열풍의 배후에도 건강정보 프로그램이 있었다. 토크쇼에 출연한 양한방 의사들과 식품전문가, 효소 민간요법 체험자들이 돌아가면서 효소를 마치 만병통치의 영약인 것처럼 과장되게 부각시켰다. 그 과정에서 객관적이고 냉정한 성찰은 없었다. 이런 방송에 의해 전국적으로 효소열풍이 불고 홈쇼핑에서까지 효소제품을 파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효소의 효능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으며, 많이 먹을 경우 심지어 해로울 가능성까지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건강정보가 예능에서 재미의 요소로 다루어지면 이런 식의 부작용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시청자의 머릿속에 단편적인 지식을 약간 남겨주는 대신, 건강에 대한 불안을 키우면서 건강산업의 '봉'을 양산하는 방송. 여기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냉철한 시청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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