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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자라는 명품 소나무를 찾아서

草霧 2013. 10. 1. 12:00

 

 

볼수록 신기해, 하얀 소나무 백송

서울에서 자라는 명품 소나무를 찾아서

 

시민기자 김종성 | 2013.09.30

 

[서울톡톡] 소나무는 우리 땅에서 가장 흔한 나무지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특별한 나무이기도 하다. 한반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자란다. 그 중 천연기념물(명목) 소나무는 이 땅의 대표적 자연유산으로 씩씩한 기개와 지조, 충절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소나무는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광화문, 숭례문의 복원에 쓰인 금강송(혹은 황장목, 춘양목)에서 해풍으로부터 바닷가 마을을 지켜주는 곰솔(해송), 내륙지방에서 자라는 흑송, 조선시대 세조에게 벼슬을 받은 정이품송... 그 중 백송(白松)이라는 소나무 이름이 눈길을 끈다. 한자처럼 하얀 소나무라는 의미 때문인지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다.

 

백송은 어릴 적엔 회청색, 나이를 먹을수록 흰색을 띄는 희귀한 소나무다

 

백송은 10년에 겨우 50cm밖에 자라지 않을 정도로 생장도 느리고 번식도 어려운 희귀한 나무다. 수령이 오래될수록 줄기가 하얗게 되며, 초록껍질을 하나씩 벗어가며 흰 얼룩무늬 껍질을 드러내는데, 그 자태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렇게 자람이 늦고 흰 껍질이 독특하여 웬만한 굵기의 백송은 특별 보호목이 될 정도이다. 천연기념물은 순서와 중요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1호부터 10호 중에 6점이 백송이란 사실은 그런 백송만의 특별한 속성을 나타내준다. 현재 남한에 5그루, 북한은 개성에 1그루의 백송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중 충남 예산의 한 그루를 제외하면, 자라는 곳은 모두 서울, 경기 지방이다. 중국 왕래를 할 수 있는 고위관리가 주로 서울, 경기에 살았던 탓이다.

 

백송은 어릴 땐 푸른빛에 가까우나 나이을 먹어가면서 흰빛이 차츰 섞이기 시작한다. 사람이 하얀 머리로 늙어가듯, 백송의 일생은 이렇게 하얀껍질로 나이 값을 한다. 백송이란 이름 외에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하며 북한 사람들은 흰소나무라 부른다.

 

국내에서 제일 컸던 통의동 백송은 1990년 7월 돌풍에 쓰러져 그루터기만 남아있다

 

서울에는 현재 두 그루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8호는 종로구 재동에, 제9호는 종로구 수송동에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백송나무였던 천연기념물 제4호 통의동 백송은 1990년 돌풍에 쓰러진 후 고사되어 그루터기만 남았다. 이 외에도 천연기념물 제5호였던 서울 내자동 백송, 제6호였던 원효로 백송, 제7호였던 회현동의 백송 등이 고사되어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고 말았다.

 

헌법 재판소 안뜰에 살고 있는 재동 백송은 국내에서 가장 큰 백송나무다

 

종로구 재동의 백송은 헌법 재판소 뒤뜰에서 살고 있다. 정문에서 수위 아저씨에게 백송 보러 왔다고 하니 별 다른 질문 없이 출입증을 내준다. 아마도 백송을 찾아오는 이들이 많나보다. 건물을 돌아서자 600년 동안 만고풍상을 겪은, 두 갈래로 갈라진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있다. 노거수 백송을 처음 봐서 그런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느낌 있다'. 나무줄기 여러 군데 수술 자욱이 있지만 흰 살결이 무척 곱고 기품이 느껴진다. 밝고 깨끗하면서 범접하기 어려운 고고함이 들어있다. 멀리 떨어진 큰길에서도 나무줄기가 희게 빛나 보인다. 높이 17m, 밑동부분의 둘레는 3.8m인 이 소나무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백송이다.

 

수백년 풍상을 겪다 보니 여기저기 몸이 성한 데가 없다, 그리고 우측 사진은 백송 껍질이다.

 

백송이 있는 자리는 조선 영조 때의 재상이자 뒷날 풍양조씨 세도정치의 주춧돌을 놓은 조상경의 집이었다. 고종의 등극을 결정적으로 도운 조대비와 대원군이 안동김씨 세도를 종식시키고 왕정복고를 시도할 때 백송은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이 무렵 백송 밑동이 별나게 희어지자 대원군은 개혁정치가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그 뒤 이 자리에는 경기여고와 창덕여고가 차례로 들어왔다가 나갔고 지금은 헌법재판소가 들어서 있다.

 

또 하나의 명물 천연기념물 제9호 백송은 현재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에 자리하고 있는 조계사 대웅전 옆에 자리하고 있다. 조계종 본찰(本刹)답게 거대한 처마를 가진 대웅전과 어우러져 더없이 운치 있는 모습이다. 치렁치렁한 가지를 하늘로 펼쳐놓고 있는 장대한 회화나무가 이웃 친구처럼 우뚝 서있어 덜 외로워 보인다. 수령 500년 정도로 추정하는 이 백송은 높이가 14m 정도이며, 밑동부분의 둘레는 1.85m 정도이다. 조계사 뜰 안 대웅전 옆 가까이 서 있고, 대웅전 쪽으로 뻗은 가지만 살아있다. 원줄기에는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한편으로 길게 위로 올라가면서 나 있다.

 

조계사 대웅전과 운치있게 어울리는 수송동 백송

 

백송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수송동의 백송은 나무의 한쪽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 바로 접해있고, 다른 한쪽은 건물에 인접해 있어서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고 생육상태도 좋지 않은 편이다. 거기다가 나무 주변이 주차장으로 사용돼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매연으로 인해 나무의 생육이 지장을 받을 것으로 보였다. 좋지 않은 환경 때문인지 이미 말라죽은 가지들과 이런저런 수술 자국들로 나무의 모양은 기형이 됐다. 일부분은 받침대에 의존해 서 있다. 과연 500년을 살아온 이 백송은 얼마나 더 살까 하는 걱정이 먼저 떠오른다.

 

이에 문화재청은 1977년부터 백송의 종자를 채종, 사릉 전통수목 양묘장에서 발아시켜 관리를 해온 백송의 종자를 후계목으로 증식시키는 등 생물학적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는 명목 노거수(老巨樹) 백송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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