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이 끝나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25)살풀이춤 시민기자 이승철 | 2013.09.03 ![](http://inews.seoul.go.kr/hsn/files/upload/article/basic_img_000013538.jpg)
[서울톡톡] "쉿, 움직이지 말고 잠자코 있어." 객석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소곤거리듯 주의를 준다. 조금 전까지 신나게 몸을 흔들어대던 꼬마가 엉거주춤 앉으며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객석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무대 위에서는 조금은 구슬픈 우리가락에 맞춰 하얀 치마 저고리을 입은 무용수가 절제된 동작으로 아름답고 멋진 춤을 추고 있었다. 9월 1일(일) 오후, 남산골 한옥마을 천우각 야외무대 앞이다. 김현숙 무용단의 모듬북 공연에 이어 무용가 김현숙(44)씨의 살풀이춤이 이어지고 있었다. 춤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춤사위가 선명하고 멋스러웠다. 내딛는 발 디딤새며 손과 팔의 동작은 물론 얼굴 표정까지 자연스러우면서 단정하고 깔끔했다. 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아닙니다. 그냥 흥에 겨워 춤 자체에 푹 빠져 든 시간이었습니다." 살풀이춤은 한이나 액을 춤사위로 풀어내는 춤이라고 알고 있는데 혹시 춤출 때 슬프거나 한스러운 감정에 젖어들지 않았냐고 묻자 하는 말이다. 살풀이란 본래 나쁜 기운이나 한(恨), 악귀 등의 '살'을 풀어버린다는 뜻으로, 무속과 직결되는 점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공연을 마치고 내려온 김현숙 씨의 대답은 달랐다. 옛날엔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끼와 흥을 마음껏 발산하는 흥겨운 춤이라는 것이었다. 무용경력 20년이 넘었다는 그녀의 표정은 정말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살풀이춤은 대개 하얀 명주수건을 손에 들고 춘다고 해서 '수건 춤'이라고도 한다. 이 춤은 본래 남도 굿판의 씻김굿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다. 수건을 가지고 추는 춤은 남도지방의 굿판에서 무당이 추던 춤에서 기원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볼 수 있는 살풀이춤은 옛날 씻김굿판에서 성행했던 본래의 춤이 아니라 후대의 춤꾼들이 예술적으로 가다듬은 춤이다. 옛날에 무당들이 추던 살풀이춤은 기방으로 전해져 기생들에게 전승되었다. 그렇게 전해진 살풀이춤이 지금의 춤사위로 가다듬어진 것은 1930년대 전통민속춤의 대부였던 한성준 선생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한과 액을 상징하던 춤사위가 흥과 끼를 발산하는 춤사위로 멋지게 승화된 것이다.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살풀이장단으로 추다가 자진모리로 몰아추고 마지막으로 살풀이장단으로 끝을 맺는 것이 특징이다. 맺고 푸는데서 춤사위의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호남류 살풀이춤으로 알려진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수건의 뿌림과 발놀림이 정교하여 고도의 기교를 요하는 춤으로 통한다. 김숙자의 살풀이춤은 단정하게 빗어 내린 쪽진 머리에 허리를 동여 맨 흰 치마저고리와 기다란 명주수건을 목에 두르고 추는 것이 특징이다. 경기도 살풀이춤으로 불리는 그녀의 춤은 서민들의 한이 깃들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매방류 살풀이춤을 멋지게 풀어내는군요.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한옥마을 야외무대 객석 맨 앞자리에서 김현숙 씨의 살풀이춤 공연을 주의깊게 지켜본 중년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유럽의 어느 문화행사 전문가가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춤으로 살풀이춤을 꼽았다고 하던데, 그 말이 실감나는 공연이었다. 이승철 시민기자는 시인이다. 스스로 '어설픈 시인'이라며 괴테 흉내도 내보고, 소월 흉내도 내보지만 "나의 시는 항상 어설프다.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더불어 공감하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숨쉬고 나누는 것에 만족할 뿐"이라고 한다. 이 어설픈 시인이 서울살이를 하며 보고 느낀 삶의 다양한 모습, 역사와 전통 등을 시인 특유의 문체로 써내려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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