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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0

草霧 2013. 9. 4. 11:41

 

 

 

군사문화의 인기,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유!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0

 

하재근(문화평론가) | 2013.09.03

 

 

 

[서울톡톡] 오랫동안 군대 코드를 예능에서 보기 힘들었다. 군대는 아무래도 '칙칙하다'는 인상 때문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하는 걸 상당히 싫어했다. 그랬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케이블TV에서 군대를 소재로 한 <푸른거탑>이 만만찮은 인기를 끌더니, 지상파에서 <진짜 사나이>가 방영되자 <런닝맨>이나 <1박2일>을 제칠 정도로 신드롬이 일었다. 놀라운 건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하는 걸 싫어했던 바로 그 여자들이 이런 군대 소재 프로그램을 매우 좋아한다는 점이다.

군사문화의 인기는 TV 예능에서만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사설 해병대 체험 캠프가 대폭 늘었다고 한다. 교육자들과 학부모들이 앞장서서 아이들에게 군대 체험을 권장한다. 그 와중에 얼마 전엔 해병대 체험 캠프에서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군대 체험에 '묻지마'로 나서다 벌어진 참극이다. 학교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에서도 신입사원에게 군대와 유사한 극기훈련을 많이 시킨다. 과거 여대생들은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요즘엔 복학생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아졌다고 한다.

군대 예능의 인기는 요즘 사회의 삭막한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공동체가 해체되고 사람들이 낱낱의 '원자'로 쪼개져 무한경쟁을 벌이는 시대가 되자, 끈끈한 우애가 넘치는 공동체를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전우애야말로 가장 극적인 우애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군대 예능을 보며 감동을 받는다. 군대 예능 속에서 군인은 책임감 있고 늠름한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그것도 인기의 요인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88만원 세대라고 해서 불안하고 사회적으로도 능력이 떨어진다는 인상이 있는데 반해 늠름한 군인의 이미지는 믿고 기댈 수 있는 남자란 느낌을 준다. 이것이 여자들에게도 군대 예능이 인기를 끄는 이유인데, 여대생들이 복학생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불안의 시대에 여대생들이 믿음직한 남자를 찾는 것이다. 과거 군사문화에 적대적이었던 대학생들이 요즘엔 자발적으로 군사문화를 수용한다고 한다. MT 때 군대식 얼차려가 등장하는 식이다.

과거 고도성장기 한강의 기적은 한국이 군대원리로 운영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지금도 군인정신으로 무장하면 경제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군인정신을 통해 무한경쟁의 승자가 될 거라 믿는 경향이 있다.

불안하고 무력해진 개인은 거대한 전체의 일원이 되려는 속성을 가진다. 전체의 일부가 돼서 현실의 불안감을 보상받고 위안을 얻는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로 궁극의 집단문화인 군사문화의 인기가 점점 더 커지는 추세다.

이런 흐름이 우려 되는 것은 지금이 전근대적 집단문화에서 근대적 시민문화를 발전시켜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우애도 계급사회에 기초한 우애보다는 시민적 연대 차원의 우애가 더 발전적이다. 군대 체험이 인성을 길러준다는 보장도 없다. 정말 아이들 인성을 길러주고 싶으면 학교교육 정상화에 더 힘을 써야 한다. 경제도 그렇다. 지금은 과거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던 조립경제가 아닌 창조경제로 진화할 때다. 창조경제는 집단문화가 아닌 자유로운 시민 문화 속에서 발전할 수 있다. 물론 군대라는 공동체나 극기체험의 미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군사문화 인기는 너무 과도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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