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전설과 상관없이 연인과 함께 걷고 싶은 길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21) 덕수궁 돌담길 [서울톡톡] 비 내리는 덕수궁 돌담장 길을 우산 없이 혼자서 거니는 사람 - 1966년도에 가수 진송남이 불러 1970년대까지 유행했던 '덕수궁 돌담길' 가사 며칠 전 장맛비가 그친 오후였다. 덕수궁에 들렀다가 돌담길에 들어서자 문득 떠오른 옛 노래다. 가사가 왠지 조금은 서글픈 느낌으로 다가온다. 서울시청 앞 덕수궁 정문에서 시작해 서울시립미술관 앞 분수대까지 이어진 이 길을 덕수궁 돌담길, 혹은 정동길이라고 부른다. 우리 수도 서울에서 가장 멋있고 정감이 넘쳐나는 이 길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매우 높다. 이 길은 언제 걸어도 참으로 아름답다. 가로수들이 계절마다 색깔 다른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양쪽 보행로 가운데 있는 차도는 1차선 일방통행로다. 통행차량이 많지 않고 자동차보다는 사람을 배려한 길이어서 여유롭게 걸을 수 있어 더욱 좋다. 누군가 담장에 기대어 진열해 놓은 그림들도 풍경의 한 부분으로 어울린다. 길은 시청 앞 광장을 바라보는 대한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서 시작된다. 오른편에 이어진 덕수궁 담장을 따라 이어진 길이다. 남쪽엔 숭례문이 서있고 경복궁은 북쪽으로 1km 남짓 떨어져 있다. 시립미술관 앞 3거리에서 오른편으로 가는 길은 미대사관저가 있는 길로 더욱 호젓하다. 경찰 초소가 자리 잡고 있지만 통행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왼편 길의 끝은 서대문 근처까지 이어진다. 도성 안쪽에 위치해 있어서 조선시대에는 왕실과 양반들의 주거지였던 곳이다. 이곳은 또 조선말기 개항시기에 서양문화와 문물이 먼저 자리 잡은 곳이다. 19세기 말 조선의 개항에 때맞춰 들어온 외국의 공관들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러시아 대사관도 그때 들어선 공관이다. 정동교회는 그 시절 기독교 선교사가 자리 잡아 세운 교회다. 돌담길 주변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극장을 비롯한 문화시설과 덕수궁이 자리 잡고 있어서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덕수궁 돌담길은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길이지만 젊은 연인들에게는 추억을 만드는 길이다. 그래서인지 이 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특별한 연령층이 따로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몇 쌍의 연인들과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엄마들, 친구들과 걷는 젊은 여성들, 그리고 젊은 아들과 함께 걷는 중년의 엄마도 보였다. "저는 옛날부터 이 길을 좋아해서 가끔 찾아오곤 합니다. 멋있고 정겹잖아요? 요즘은 아들이랑 함께 옵니다. 아들도 이 길이 멋있고 좋다고 하네요, 호호"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과 함께 산책하던 아주머니가 유쾌하게 웃으며 하는 말이다. 길에서 마주친 아주머니는 아현동에서 왔다고 한다. "슬픈 전설이요? 전 그런 전설 들어본 적 없는데요, 저희 부부도 결혼하기 전에 이 길에서 데이트를 하곤 했는데 아직 이렇게 잘 살고 있잖아요. 호호호~" 혹시 슬픈 전설을 들어본 적 있느냐고 묻자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표정의 아주머니는 전설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진송남이 부른 노래는 들어본 기억이 있다고 한다. 덕수궁 돌담길의 슬픈 전설은 사랑하는 두 남녀가 이 길을 함께 걸으면 오래지 않아 헤어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전설의 역사적인 배경은 조선시대에 덕수궁에서 살았던 후궁들 중에 임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여인들의 한과 질투심이 연인들을 헤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덕수궁 돌담길을 걸은 뒤 헤어진 연인들이 정말 많이 있는 것인지는 확인된 것이 없다. 어쩌면 전설의 배경보다 더 설득력 있는 사실은 이 길을 지나면 과거에 가정법원이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부부가 이혼하려면 가정법원을 찾게 되는데 가정법원으로 가기 위해 돌담길을 걷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립미술관 건물이 바로 과거의 대법원과 가정법원이 들어있던 건물이었다. 중년의 아주머니 모자와 헤어져 정동 삼거리에 이르자 어린 자녀들과 산책 나온 젊은 엄마들이 '장독대' 조형물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준다. 건너편 시립미술관 입구 둥그런 꽃 조형물 앞에서도 기념사진을 찍는 시민들이 많았다. 전설과는 상관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 아름다운 길, 서울을 대표하는 걷고 싶은 멋진 길, 추억과 낭만이 깃들어 있는 도심 속의 고즈넉한 정취가 묻어나는 길, 덕수궁 돌담길은 서울시가 1999년도에 '걷고 싶은 거리' 1호로 지정한 길이다. 지난 2006년에는 건설교통부에서 주관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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