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역사의 숲을 산책하다
조선왕릉
[ 朝鮮王陵 ,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
능 (陵) - 3
(3)제12대 인종 (仁宗, 1515-1545) _ 효릉 孝陵
왕릉은 조선 시대의 역대 왕과 왕비, 추존된 왕들의 무덤을 총칭하는 말이다.
조선왕릉은 42기 (북한소재 2기 포함), 원은 13기, 묘는 64기이다.
조선 왕릉은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된다.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陵)이라 하고,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私親 : 종실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임금의 생가 어버이)의 무덤을 원(園)이라 하며, 나머지 왕족, 즉 왕의 정궁의 자식인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와 서녀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의 무덤을 묘(墓)라 일컫는다. 광릉이 자리 잡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는 세조의 능인 광릉 이외에 2기의 원이 더 있다. 휘경원과 순강원이 그것이다. 조선왕릉 120기(능40, 원14, 묘66) 중 현재 비공개하고 있는 지역은 사적 12곳임(능3, 원4, 묘5)입니다
사후에 왕(王)으로 추존(追尊)된 왕릉(王陵) 5기(基) 폐위(廢位)된 묘(墓) 2기(基) 황제릉(皇帝陵) 2기(基)
왕릉 35기
1. 추존이라는 미명으로, 역사세우기
추존(追尊)왕 ‘함길도 8릉’
2. 왕조, 문을 열다
제1대 태조 (太祖, 1335-1408) _ 건원릉健元陵, 제릉齊陵, 정릉 貞陵 건원릉建元陵 | 조선 건국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 정릉貞陵 | 조선 최초의 국모 신덕왕후
제2대 정종 (定宗, 1357-1419) _ 후릉 厚陵
제3대 태종 (太宗, 1367-1422) _ 헌릉 獻陵 헌릉獻陵 | 철권으로 조선의 기틀을 잡은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제4대 세종 (世宗, 1397-1450) _ 영릉 英陵 영릉英陵 | 조선의 문화를 꽃피운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제5대 문종 (文宗, 1414-1452) _ 현릉 顯陵 현릉顯陵 | 세종의 분신 문종과 현덕왕후
제6대 단종 (端宗, 1441-1457) _ 장릉莊陵, 사릉思陵 장릉莊陵 | 비운의 왕 단종 사릉思陵 | 가장 슬픈 왕비 정순왕후
제7대 세조 (世祖, 1417-1468) _ 광릉 光陵 광릉光陵 | 계유정난으로 등극한 세조와 정희왕후
추존(追尊)왕 덕종 (德宗, 1438-1457) _ 경릉 敬陵 경릉敬陵 | 요절한 덕종과 파란의 소혜왕후
제8대 예종 (睿宗, 1450-1469) _ 창릉昌陵, 공릉恭陵 창릉昌陵 | 유약한 왕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제9대 성종 (成宗, 1457-1494) _ 선릉宣陵, 순릉順陵, 회묘 懷墓 공릉恭陵과 순릉順陵 그리고 영릉永陵 | 시대를 풍미했던 한명회의 딸 장순왕후, 공혜왕후 그리고 추존왕 진종과 효순왕후 선릉宣陵 | 비극의 씨앗을 남긴 성종과 정현왕후
3. 왕조, 산을 넘다
제10대 연산군(燕山君, 1476-1506) _ 연산군묘 燕山君墓
제11대 중종(中宗, 1488-1544) _ 정릉靖陵, 온릉溫陵, 희릉禧陵, 태릉 泰陵 정릉靖陵 |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 온릉溫陵 | 치마바위 전설로 유명한 단경왕후 희릉禧陵 |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한 장경왕후 태릉泰陵 | 불교를 사랑한 문정왕후
제12대 인종 (仁宗, 1515-1545) _ 효릉 孝陵 효릉孝陵 | 독살설과 함께 잠든 인종
제13대 명종(明宗, 1534-1567) _ 강릉 康陵, 순창원 順昌園 강릉康陵 | 외척의 농단에 휘둘린 명종 그리고 인순왕후
제14대 선조 (宣祖, 1552-1608) _ 목릉 穆陵, 성묘 成墓, 순강원 順康園 목릉穆陵 | 서자 출신 왕 선조와 의인왕후 그리고 인목왕후
4. 조선, 또 다시 위기를 맞다
제15대 광해군 (光海君, 1575-1641) _ 광해군묘 光海君墓
추존(追尊)왕 원종 (元宗, 1580-1619) _ 장릉 章陵 장릉章陵 | 재위하지 않았던 왕 원종과 인헌왕후
5. 왕조, 반석을 다지다
제16대 인조 (仁祖, 1595-1649) _ 장릉 長陵, 휘릉 徽陵, 소경원 昭慶園, 영회원 永懷園 장릉長陵 | 가장 용렬한 왕 인조와 인렬왕후 휘릉徽陵 | 예송논쟁에 휘말린 장렬왕후
6. 조선, 당쟁에 휩싸이다
제17대 효종 (孝宗, 1619-1659) _ 영릉 寧陵 영릉寧陵 | 북벌을 주창했던 효종과 인선왕후
제18대 현종 (顯宗, 1641-1674) _ 숭릉 崇陵 숭릉崇陵 | 외국에서 태어난 왕 현종과 과격한 성품의 명성왕후
7. 환국정치로 왕권을 다지다
제19대 숙종 (肅宗, 1661-1720) _ 명릉明陵, 익릉 翼陵, 대빈묘大嬪墓, 소령원昭寧園 명릉明陵 | 차마폭에 휩싸였던 숙종과 인현왕후 그리고 인원왕후 익릉翼陵 | 꽃피우지 못하고 잠든 인경왕후
제20대 경종 (景宗, 1688-1724) _ 의릉懿陵, 혜릉惠陵 의릉懿陵 | 식물임금 경종과 선의왕후 혜릉惠陵 | 세자빈 신분에서 왕후로 추존된 단의왕후
8. 조선, 르네상스를 맞다
제21대 영조 (英祖, 1694-1776) _ 원릉元陵, 홍릉弘陵, 수경원綏慶園, 수길원 綏吉園 원릉元陵 | 묻히고 싶은 곳에 잠들지 못한 영조와 정순왕후 홍릉弘陵 | 무수리 출신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정성왕후
추존(追尊)왕 진종(眞宗) _ 영릉永陵
추존(追尊)왕 장조(사도세자 莊祖) _ 융릉隆陵, 의령원 懿寧園 융릉隆陵 | 장조로 추존된 장헌세자와 헌경왕후
제22대 정조(正祖, 1752-1800) _ 건릉健陵, 휘경원徽慶園, 효창원 孝昌園 건릉健陵 | 개혁군주 정조와 효의왕후
9. 조선, 세도정치에 휘둘리다
제23대 순조 (純祖, 1790-1834) _ 인릉仁陵 인릉仁陵 | 순조와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근원지 순원왕후
추존(追尊)왕 익종 (翼宗, 문조 文祖) _ 수릉綏陵 수릉綏陵 |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
제24대 헌종 (憲宗, 1827-1849) _ 경릉景陵 경릉景陵 | 풍류를 사랑했던 헌종과 효현왕후 그리고 효정왕후
제25대 철종 (哲宗, 1831-1863) _ 예릉睿陵 예릉睿陵 | 강화도령 철종과 철인왕후
10. 오백 년 왕조, 문을 닫다
제26대 고종황제 (高宗, 1852-1919) _ 홍릉洪陵, 영휘원永徽園, 흥원 興園 홍릉洪陵 | 망국에 중심에 서 있던 고종과 명성황후
제27대 순종황제 (純宗, 1874-1926) _ 유릉裕陵, 영원英園, 숭인원 崇仁園, 회인원 懷仁園 유릉裕陵 |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과 순명효황후 그리고 순정효황후
(3)제12대 인종 (仁宗, 1515-1545) _ 효릉 孝陵
천운으로 살아남았지만 여덟 달 최단 재위 왕이 되니
인종(仁宗, 1515-1545), 인성왕후 박씨(仁聖王后 朴氏; 1514-1577), 1544년, 경기 고양 200호, 서삼릉(西三陵)
조선조 최단명 왕위에 있었던 仁宗(이호; 1515-1545, 재위 8개월)과 인성왕후 박씨(仁聖王后 朴氏; 1514-1577)의 효릉은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夭折)한 인종(仁宗)의 능을 먼저 단촐하게 조성했다가, 인성왕후 승하[선조 10년] 후에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다시 조성되었습니다. 재 조성할 때 인종(仁宗)의 능에는 봉분에 병풍석(屛風石)을 두르고 인성왕후 능에는 병풍석을 설치하지 않았지만, 난간석(欄干石)으로 두 능을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비공개 능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효성이 지극해서 능호(陵號)까지 효릉(孝陵)으로 정해진 인종(仁宗)은 불과 8개월밖에 안되는 재위 기간의 운명이 생모(生母) 장경왕후(章敬王后;중종의 제1계비)의 삶과 유사하게 꽃을 펴보지도 못하고 요절(夭折)해 버린 비운의 왕이었습니다. 명종(明宗)이 즉위하고 명종의 생모 문정왕후(文定王后;중종의 제2계비)가 권력을 잡은 후 인종의 외척들을 제거하는 을사사화(乙巳士禍)을 일으켜 더욱이 사후(死後)까지 않타까운 결과를 낳습니다. 1545년(인종 1) 인종이 재위 8개월 만에 승하하자 부모의 능 옆에 안장해 달라는 유교에 따라 그해 10월 15일 당시 중종의 능(현재의 희릉 자리) 옆 언덕에 안장하였다.
인성왕후는 인종의 유언을 전하면서, 자신도 훗날 인종과 함께 묻히기를 원한다고 언급하여 효릉 왼쪽 한 켠으로 왕비릉의 자리를 마련해두었다. 인성왕후는 1577년(선조 10) 승하하여 인종의 옆자리에 모셔졌다.
인종(仁宗)은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가 1515년(중종 10) 2월 25일에 경복궁에서 낳은 중종(中宗)의 장남이다. 1520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가 1544년 11월 20일 창경궁에서 왕위에 올랐으나 다음해 7월 1일 묘시(卯時)에 경복궁 청연루(淸讌樓)에서 승하하였다. 인종은 세자 시절부터 언제나 몸가짐에 흐트러짐이 없이 바른 자세로 만 앉아 공부에 열중하였고, 언동(言動)은 때에 맞게 하였으니 사람들이 그 한계를 헤아릴 수 없었다. 왕위에 오른 뒤로는 업무를 처리하고 보답하는 데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이 없었고, 때때로 상소문에 대해 직접 글로써 답변을 하되 말과 뜻이 다 극진하므로 보는 사람이 누구나 탄복하였다. 그러던 임금이 때때로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니 그제 서야 병환이 깊어졌음을 신하들이 비로소 눈치를 챘다.
임금이 위독하던 밤에는 도성(都城) 사람들이 모여서 밤새도록 자지 않고 대궐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임금의 병환이 어떠한가 물었으며, 승하하던 날에는 길에서 누구나 다 곡하여 울며 슬퍼하는 것이 마치 제 부모를 잃은 것과 같았다고 한다. 임금이 승하하자 인성왕후(仁聖王后)는 인종의 유언을 언문(諺文)으로 작성하여 대신들에게 보여주며 산릉을 정릉(현재 禧陵) 근처에 잡도록 지시를 하였다.
좌의정 유관(柳灌)이 정릉 근처에 있는 혈처를 추천하니 영의정 윤인경(尹仁鏡)이 다시 살핀 후 “정릉의 백호 너머에 남서향(艮坐坤向)의 혈처가 청룡은 겹으로 싸이고 백호는 세 겹으로 감싸있고, 내청룡이 감아 돌아 안대(案對)가 되었으며, 수구(水口)는 잘 막혀져 있고, 혈처의 모양이 분명하여 아름답고, 나쁜 점이 없는 것이 중종 무덤의 모양과 똑 같습니다. 다른 지역에는 이와 같은 좋은 혈처가 없사오니, 이곳으로 장지를 정하실 것을 취품합니다.”라고 고하니 승낙하였다. 같은 해 10월 15일에 이곳에 인종을 장사지내고 능호를 효릉(孝陵)이라 하였으며, 부모 곁에 묻히고 싶어 하던 인종은 그 뜻을 이루었다.
1577년(선조 10) 11월 29일 신시(申時)에 인성왕후가 승하하자 다음 해 2월 15일에 인종의 옆에 장사를 지냈으나, 남편인 인종을 장사 지낼 때와는 달리 주변 환경이 변해있었다. 인종의 어머니인 장경왕후를 장사 지낸지 22년만인 1537년(중종 32)에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김안로(金安老) 일파가 광중(壙中)에 돌이 있으니 희릉을 옮겨야 한다는 계략으로 결국 희릉을 현재의 위치로 이장을 하였다. 중종은 희릉을 이장하면서 그 옆에 자신의 무덤자리(壽陵)를 보아두었다가 그 곳에 묻히게 되었고, 인종은 유언으로 부모 옆에 묻어 달라고 하여 현재의 위치에 묻히게 되었다. 그러나 중종과 장경왕후가 나란히 묻혀있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한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중종의 무덤을 선릉 옆으로 옮겨버리니 결국 인성왕후는 시아버지가 없는 시어머니 무덤 근처에 있는 남편 옆에 묻히게 되었다. 효성이 지극한 인종이 그토록 염원하던 부모 곁에 함께 뭍이고 싶은 뜻을 14년 만에 문정왕후는 깨뜨리고 말았다.
아버지인 중종이 승하하자 계모였던 문정왕후를 효성을 다하여 극진히 모신 결과로는 너무 억울할 일이다. 서삼릉에 있는 3개의 능 가운데 유일하게 제한공개 능인 효릉은 진입로 가까이에 있는 옛날 연지(蓮池) 터에서 효릉으로 진입하다보면 홍살문까지 물기가 많아 질척거리는 길을 걷게 된다. 이토록 물기가 많은 것은 인종이 아버지를 멀리 떠나보낸 뒤에 흘린 눈물처럼 보여 진다.
낮은 구릉위에 조성된 효릉은 어머니 무덤인 희릉에서 나온 산줄기가 끊어질 듯 이어질 듯 흘러오다가 인공적으로 쌓아 만든 것처럼 보이는 작은 언덕(鬼星)을 능침 뒤에 겨우 만들어 혈처로 연결되어 있는 내룡(來龍)과 무덤을 감싸 보호해 주는 청룡과 백호로 나눠 준다. 작은 언덕에서 나온 청룡은 길게 뻗어나가 능을 감싸 돌면서 앞에서는 밥상처럼 평평한 모양(一字文星)을 이루어 인종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가려주고 있다. (선문대 최낙기 교수)
가장 짧은 기간 동안 보위에 있었던 왕
인종 (仁宗, 이호, 1515-1545, 재위 8개월) 인종은 중종과 장경왕후의 맏아들로 1544년 왕위에 올랐으나 병약하여 9개월 만에 31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하고, 이복동생인 경원대군 명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인종은 조선의 역대 왕 중에 가장 짧게 재위하였다. 그나마 부왕의 상을 치르며 식음을 전폐하여 재위 기간의 반 이상을 눈물로 지새웠다. 이러한 와중에도 인종은 기묘사화로 유명무실해진 현량과를 복구하고, 조광조 등을 신원시켜 주었다. 비운의 왕 지극한 효자 인종 하늘이 낳은 대효자의 짧은 치세
인성왕후 박씨(仁聖王后 朴氏; 1514-1577)
인성왕후 박씨(仁聖王后 朴氏)는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박용(朴墉)의 딸로 태어나 11세 때 세자빈에 책봉되지만 왕비 재위 8개월만에 인종(仁宗)을 떠나 보내고 외롭게 여생을 보내다가 후사(後嗣)도 없이 64세의 나이[선조 10년]로 생을 마감합니다.
현황(現況)
조선조 王室世系表 [ 27대, 517년, 1392 - 1910 ]
원(園) 13기(基) 숭인원(崇仁園 : 사적 제361호) :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 내 영원(英園 : 사적 제207호)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금곡동(金谷洞) 영휘원(永徽園 : 사적 제361호) :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 내 효창원(孝昌園 : 사적 제200호)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휘경원(徽慶園 : 사적 제360호)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진접읍(榛接邑) 부평리(富坪里) 의령원(懿寧園 : 사적 제200호)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수경원(綏慶園 : 사적 제198호)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수길원(綏吉園 : 사적 제359호) : 경기(京畿) 파주시(坡州市) 광탄면(廣灘面) 영장리(靈場里) 소령원(昭寧園 : 사적 제358호) : 경기(京畿) 파주시(坡州市) 광탄면(廣灘面) 영장리(靈場里) 영회원(永懷園 : 사적 제357호) : 경기(京畿) 광명시(光明市) 노온사동(勞溫寺洞) 소경원(紹慶園 : 사적 제200호)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순강원(順康園 : 사적 제356호)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진접읍(榛接邑) 내각리(內閣里) 순창원(順昌園 : 사적 제198호)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사후에 왕(王)으로 추존(追尊)된 왕릉(王陵) 5기(基) 익종(翼宗) 一 수릉(綏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장조(莊祖) 一 융릉(隆陵 : 사적 제206호) : 경기 화성시 태안읍(台安邑) 안녕리(安寧里) 진종(眞宗) 一 영릉(永陵 : 사적 제205호) : 경기 파주시 조리읍(條里邑) 봉일천리(奉日川里) 원종(元宗) 一 장릉(章陵 : 사적 제202호) : 경기 김포시 김포읍(金浦邑) 풍무동(豊舞洞) 덕종(德宗) 一 경릉(敬陵 : 사적 제198호)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폐위(廢位)된 묘(墓) 2기(基) 제15대 광해군(第十五代 光海君) 一광해군묘(光海君墓 : 사적 제363호) :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眞乾邑) 제10대 연산군(第十代 燕山君) 一 연산군묘(燕山君墓 : 사적 제362호) : 서울 도봉구(道峰區) 방학동
황제릉(皇帝陵) 2기(基) 제27대 순종(第二十七代 純宗) 一 유릉(裕陵 : 사적 제207호)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제26대 고종(第二十六代 高宗) 一 홍릉(洪陵 : 사적 제207호) : 경기(京畿) 남양주(南楊州)시
왕릉 35기 제25대 철종(第二十五代 哲宗) 一 예릉(睿陵 : 사적 제200호)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제24대 헌종(第二十四代 憲宗) 一 경릉(景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제23대 순조(第二十三代 純祖) 一 인릉(仁陵 : 사적 제194호) : 서울 서초구(瑞草區) 내곡동(內谷洞) 제22대 정조(第二十二代 正祖) 一 건릉(健陵 : 사적 제206호) : 경기 화성시(華城市) 태안읍(台安邑) 제21대 영조(第二十一代 英祖) 二 홍릉(弘陵 : 사적 제198호)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제21대 영조(第二十一代 英祖) 一 원릉(元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제20대 경종(第二十代 景宗) 二 혜릉(惠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제20대 경종(第二十代 景宗) 一 의릉(懿陵 : 사적 제204호) : 서울 성북구 석관동(石串洞) 제19대 숙종(第十九代 肅宗) 三 대빈묘(大嬪墓 : 사적 제198호)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제19대 숙종(第十九代 肅宗)二 익릉(翼陵 : 사적 제198호)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용두동 제19대 숙종(第十九代 肅宗) 一 명릉(明陵 : 사적 제198호)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제18대 현종(第十八代 顯宗) 一 숭릉(崇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제17대 효종(第十七代 孝宗) 一 영릉(寧陵 : 사적 제195호) : 경기 여주시(驪州市) 능서면(陵西面) 제16대 인조(第十六代 仁祖) 二 휘릉(徽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제16대 인조(第十六代 仁祖) 一 장릉(長陵 : 사적 제203호) : 경기 파주시(坡州市) 탄현면(炭縣面) 제14대 선조(第十四代 宣祖) 二 성묘(成墓 : 사적 제365호) :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眞乾邑) 제14대 선조(第十四代 宣祖) 一 목릉(穆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제13대 명종(第十三代 明宗) 一 강릉(康陵 : 사적 제201호) : 서울(Seoul) 노원구(蘆原區) 제12대 인종(第十二代 仁宗) 一 효릉(孝陵 : 사적 제200호)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洞) 제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四 태릉(泰陵 : 사적 제201호) : 서울(Seoul) 노원구(蘆原區) 제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四 태릉(泰陵 : 사적 제201호) : 서울(Seoul) 노원구(蘆原區) 제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三 희릉(禧陵 : 사적 제200호)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제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二 온릉(溫陵 : 사적 제210호) : 경기(京畿) 양주시(楊州市) 장흥면(長興面) 제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一 정릉(靖陵 : 사적 제199호) : 서울 강남구 삼성동(三成洞) 테헤란로 제9대 성종(第九代 成宗) 三 회묘(懷墓 : 사적 제200호)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제9대 성종(第九代 成宗) 二 순릉(順陵 : 사적 제205호) : 경기 파주시 조리읍(條里邑) 봉일천리(奉日川里) 제9대 성종(第九代 成宗) 一 선릉(宣陵 : 사적 제199호) : 서울 강남구 삼성동 테헤란로(Teheran路) 제8대 예종(第八代 睿宗) 二 공릉(恭陵 : 사적 제205호) : 경기(京畿) 파주시(坡州市) 조리읍(條里邑) 제8대 예종(第八代 睿宗) 一 창릉(昌陵 : 사적 제198호)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제7대 세조(第七代 世祖) 一 광릉(光陵 : 사적 제197호) :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와 포천군 제6대 단종(第六代 端宗) 二 사릉(思陵 : 사적 제209호)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진건읍(眞乾邑) 제6대 단종(第六代 端宗) 一 장릉(莊陵 : 사적 제196호) : 강원(江原) 영월군(寧越郡) 영월읍(寧越邑) 제5대 문종(第五代 文宗) 一 현릉(顯陵 : 사적 제193호)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제4대 세종(第四代 世宗) 제3대 태종(第三代 太宗) 제2대 정종(第二代 定宗) 제1대 태조(第一代 太祖) 三 정릉(貞陵 : 사적 제208호) : 서울 성북구 정릉2동 제1대 태조(第一代 太祖) 二 제릉(齊陵) : 개성직할시(開城直轄市) 판문군(板門郡) 상도리(上道里) 제1대 태조(第一代 太祖) 一 건원릉(健元陵 : 사적 제193호) : 경기 구리시 인창동
조선왕릉(朝鮮王陵)의 계보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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