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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朝鮮王陵,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능(陵) - 2. (2)제2대 정종(定宗) _ 후릉 厚陵

草霧 2013. 7. 29. 13:34

 

 

 

신들의 정원

 

 

역사의 숲을 산책하다

 

 

 

조선왕릉

 

   

 

[ 朝鮮王陵 ,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

  

() - 2

 

 

 

  2대 정종 (定宗, 1357 ~ 1419) _ 후릉 厚陵  

 

 

 

 

왕릉은 조선 시대의 역대 왕과 왕비, 추존된 왕들의 무덤을 총칭하는 말이다.

  

조선왕릉은 42(북한소재 2기 포함), 원은 13, 묘는 64기이다.

 

조선 왕릉은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된다.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이라 하고,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私親 : 종실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임금의 생가 어버이)의 무덤을 원()이라 하며, 나머지 왕족, 즉 왕의 정궁의 자식인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와 서녀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의 무덤을 묘()라 일컫는다. 광릉이 자리 잡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는 세조의 능인 광릉 이외에 2기의 원이 더 있다. 휘경원과 순강원이 그것이다. 조선왕릉 120(40, 14, 66) 중 현재 비공개하고 있는 지역은 사적 12곳임(3, 4, 5)입니다

사후에 왕()으로 추존(追尊)된 왕릉(王陵) 5()

폐위(廢位)된 묘() 2()

황제릉(皇帝陵) 2()

왕릉 35

 

 

 

 

 

1. 추존이라는 미명으로, 역사세우기

 

추존(追尊)함길도 8

 

2. 왕조, 문을 열다

 

1대 태조 (太祖, 1335-1408) _ 건원릉健元陵, 제릉齊陵, 정릉 貞陵

건원릉建元陵 | 조선 건국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

정릉貞陵 | 조선 최초의 국모 신덕왕후

 

2대 정종 (定宗, 1357-1419) _ 후릉 厚陵

 

3대 태종 (太宗, 1367-1422) _ 헌릉 獻陵

헌릉獻陵 | 철권으로 조선의 기틀을 잡은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4대 세종 (世宗, 1397-1450) _ 영릉 英陵

영릉英陵 | 조선의 문화를 꽃피운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5대 문종 (文宗, 1414-1452) _ 현릉 顯陵

현릉顯陵 | 세종의 분신 문종과 현덕왕후

 

6대 단종 (端宗, 1441-1457) _ 장릉莊陵, 사릉思陵

장릉莊陵 | 비운의 왕 단종

사릉思陵 | 가장 슬픈 왕비 정순왕후

 

7대 세조 (世祖, 1417-1468) _ 광릉 光陵

광릉光陵 | 계유정난으로 등극한 세조와 정희왕후

 

추존(追尊)왕 덕종 (德宗, 1438-1457) _ 경릉 敬陵

경릉敬陵 | 요절한 덕종과 파란의 소혜왕후

 

8대 예종 (睿宗, 1450-1469) _ 창릉昌陵, 공릉恭陵

창릉昌陵 | 유약한 왕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9대 성종 (成宗, 1457-1494) _ 선릉宣陵, 순릉順陵, 회묘 懷墓

공릉恭陵과 순릉順陵 그리고 영릉永陵 | 시대를 풍미했던 한명회의 딸 장순왕후, 공혜왕후 그리고 추존왕 진종과 효순왕후

선릉宣陵 | 비극의 씨앗을 남긴 성종과 정현왕후

 

3. 왕조, 산을 넘다

 

10대 연산군(燕山君, 1476-1506) _ 연산군묘 燕山君墓

 

11대 중종(中宗, 1488-1544) _ 정릉靖陵, 온릉溫陵, 희릉禧陵, 태릉 泰陵

정릉靖陵 |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

온릉溫陵 | 치마바위 전설로 유명한 단경왕후

희릉禧陵 |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한 장경왕후

태릉泰陵 | 불교를 사랑한 문정왕후

 

12대 인종 (仁宗, 1515-1545) _ 효릉 孝陵

효릉孝陵 | 독살설과 함께 잠든 인종

 

13대 명종(明宗, 1534-1567) _ 강릉 康陵, 순창원 順昌園

강릉康陵 | 외척의 농단에 휘둘린 명종 그리고 인순왕후

 

14대 선조 (宣祖, 1552-1608) _ 목릉 穆陵, 성묘 成墓, 순강원 順康園

목릉穆陵 | 서자 출신 왕 선조와 의인왕후 그리고 인목왕후

 

4. 조선, 또 다시 위기를 맞다

 

15대 광해군 (光海君, 1575-1641) _ 광해군묘 光海君墓

 

추존(追尊)왕 원종 (元宗, 1580-1619) _ 장릉 章陵

장릉章陵 | 재위하지 않았던 왕 원종과 인헌왕후

 

5. 왕조, 반석을 다지다

 

16대 인조 (仁祖, 1595-1649) _ 장릉 長陵, 휘릉 徽陵, 소경원 昭慶園, 영회원 永懷園

장릉長陵 | 가장 용렬한 왕 인조와 인렬왕후

휘릉徽陵 | 예송논쟁에 휘말린 장렬왕후

 

6. 조선, 당쟁에 휩싸이다

 

17대 효종 (孝宗, 1619-1659) _ 영릉 寧陵

영릉寧陵 | 북벌을 주창했던 효종과 인선왕후

 

18대 현종 (顯宗, 1641-1674) _ 숭릉 崇陵

숭릉崇陵 | 외국에서 태어난 왕 현종과 과격한 성품의 명성왕후

 

7. 환국정치로 왕권을 다지다

 

19대 숙종 (肅宗, 1661-1720) _ 명릉明陵, 익릉 翼陵, 대빈묘大嬪墓, 소령원昭寧園

명릉明陵 | 차마폭에 휩싸였던 숙종과 인현왕후 그리고 인원왕후

익릉翼陵 | 꽃피우지 못하고 잠든 인경왕후

 

20대 경종 (景宗, 1688-1724) _ 의릉懿陵, 혜릉惠陵

의릉懿陵 | 식물임금 경종과 선의왕후

혜릉惠陵 | 세자빈 신분에서 왕후로 추존된 단의왕후

 

8. 조선, 르네상스를 맞다

 

21대 영조 (英祖, 1694-1776) _ 원릉元陵, 홍릉弘陵, 수경원綏慶園, 수길원 綏吉園

원릉元陵 | 묻히고 싶은 곳에 잠들지 못한 영조와 정순왕후

홍릉弘陵 | 무수리 출신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정성왕후

 

추존(追尊)왕 진종(眞宗) _ 영릉永陵

 

추존(追尊)왕 장조(사도세자 莊祖) _ 융릉隆陵, 의령원 懿寧園

융릉隆陵 | 장조로 추존된 장헌세자와 헌경왕후

 

22대 정조(正祖, 1752-1800) _ 건릉健陵, 휘경원徽慶園, 효창원 孝昌園

건릉健陵 | 개혁군주 정조와 효의왕후

 

9. 조선, 세도정치에 휘둘리다

 

23대 순조 (純祖, 1790-1834) _ 인릉仁陵

인릉仁陵 | 순조와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근원지 순원왕후

 

추존(追尊)왕 익종 (翼宗, 문조 文祖) _ 수릉綏陵

수릉綏陵 |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

 

24대 헌종 (憲宗, 1827-1849) _ 경릉景陵

경릉景陵 | 풍류를 사랑했던 헌종과 효현왕후 그리고 효정왕후

 

25대 철종 (哲宗, 1831-1863) _ 예릉睿陵

예릉睿陵 | 강화도령 철종과 철인왕후

 

10. 오백 년 왕조, 문을 닫다

 

26대 고종황제 (高宗, 1852-1919) _ 홍릉洪陵, 영휘원永徽園, 흥원 興園

홍릉洪陵 | 망국에 중심에 서 있던 고종과 명성황후

 

27대 순종황제 (純宗, 1874-1926) _ 유릉裕陵, 영원英園, 숭인원 崇仁園, 회인원 懷仁園

유릉裕陵 |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과 순명효황후 그리고 순정효황후

 

   

 

 

 

2대 정종 (定宗, 1357 ~ 1419) _ 후릉 厚陵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권력을 내놓고 천수를 얻다

 

후릉 厚陵

 

 

 

정종(定宗, 1357 ~ 1419), 정안왕후 김씨(定安王后 金氏, 1355 ~ 1412), 1419년 개성

 

조선의 왕릉 중에는 태조의 비인 신의왕후의 제릉과 더불어 개성에 있으며, 또한 왕릉 가운데, 최초로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난간석으로 연결한 쌍릉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북한에 있기 때문에 세계유산 신청에서는 제외되었다. 고려 공민왕릉의 형식을 따라 봉분에는 12면의 병풍석을 두르고 있으며, 석마를 동원한 문석인과 무석인을 각각 2쌍 씩 배치하였다. 1412(태종 12) 625일 정안왕후가 58세의 나이로 승하하여 후릉에 안장되었다. 그로부터 7년 뒤 정종이 승하하여 난간석으로 두 봉분을 연결하여 쌍릉을 이루었다.

 

   

 

후릉의 주인은 조선 왕조 2대 왕인 정종(定宗)과 그의 정비(正妃)인 정안왕후. 한 나라의 가장 높은 위치라고 할 수 있는 군주(君主). 그만큼 매우 큰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위치니만큼, 역사적으로 수많은 인물들이 군주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피비린내나는 전쟁과 전투, 권력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그만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협 속에 살아야 하는 자리. 그래도 대부분의 왕들은 그 지존의 위치에 서기를 바랬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 위치에 서기를 바랬던 것은 아니다. 후릉을 조성한 사람은 위에 서술했듯이 당대의 공조판서였던 박자청이었는데, 박자청은 조선 초기 경회루와 각종 왕릉의 공역(工役)을 책임진 최고의 기술자였다. 13961대 태조계비 신덕왕후의 정릉과 14071대 태조원비 신의왕후의 제릉(齊陵). 14081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建元陵)을 조성을 책임지고 맡았는데, 1412년 이 후릉의 조성 역시 박자청의 감독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박자청은 사망하기 1년전인 1422년에는 태종의 헌릉(獻陵) 조성도 맡았다. 후릉은 전형적인 쌍릉의 양식으로서 조선왕조 왕릉 중에서는 이 후릉이 최초의 쌍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된다.

 

 

왼쪽이 정종릉, 오른쪽이 정안왕후릉이며 봉분과 그 주변의 석물들은 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되지만, 곡장과 정자각, 재실, 비각, 홍살문 등은 유실되었다. 그 덕분에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없이 황량한 느낌이다. 재미있는 것은 쌍릉 양식이 철저하게 반영되어 남한에 있는 3대 태종이 헌릉(獻陵)처럼 석물이 2배로 있다는 것. 정확하게 보이진 않지만 석양과 석호가 각 8개씩 배치되고, 석마 역시 8, 혼유석도 2, 장명등도 2, 문인석도 4, 무인석도 4개다. 비각으로 둘러쌓여 있었을 곳에는 비각없이 비석만 덩그러니 남아있는데, 비각은 6.25 전쟁 때 남한군과 유엔연합군이 평양에 진격할 때 사라졌다고 한다. '조선국 정종대왕 후릉 정안왕후 부좌'라고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영조 31년인 1755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후릉의 중계(中階)와 하계(下階)에 위치하고 있는 문인석과 무인석, 그리고 석마의 모습들. 다른 릉에 비해서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의 갯수 역시 2배이다. 역시 후릉과 헌릉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인데, 맨 아래 사진을 보면 언젠가 북한측에서 대대적으로 후릉을 개보수 한 듯하다.

 

 

 

 

왕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정종. 그는 실권도 없고 과도기적인 임금으로 치부되어서 사후에도 시호와 묘호가 없이 공정대왕으로만 불리다가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묘호와 시호가 추가되었다. 그만큼 왕조 내부에서도 다른 군주와는 다른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인물. 하지만, 왕이 되고 싶지 않았었던 그이니 만큼 묘호와 시호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남한에 있는 헌릉과 양식이 상당히 유사한 탓에 헌릉을 통해서 많은 부분을 추측할 수 있다.

 

 

왕위보다 격구를 좋아한 왕

 

정종(定宗, 1357 ~ 1419)

사후 시호가 없이 조선 중후기까지 명나라가 내려준 시호인 공정왕(恭靖王)으로 불리다가 숙종 때 정식으로 묘호와 시호를 올려 정종공정의문장무온인순효대왕(定宗恭靖懿文莊武溫仁順孝大王)이다. 정종은 1357년 음력 71일에 태조와 신의왕후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성품이 온화하고 용맹하고 지략이 뛰어나 고려 말기에 아버지를 따라 여러 전쟁터에 참여하여 많은 공적을 세웠다. 아버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이방과는 영안대군으로 책봉되었다가 1398년 음력 8월에 동생 정안대군 이방원이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본래 왕위에 뜻이 없었던 이방과는 왕세자가 되기를 극구 사양하였지만, 태조의 맏아들이자 형 진안대군 이방우는 이미 죽었던 데다가, 그 당시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동생 이방원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왕세자에 올랐다가 1개월 뒤인 1398년 음력 9월에 태조의 양위로 조선의 임금이 되었다. 정종은 2년의 재위 기간 동안 동생인 이방원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이방원의 뜻에 따라 권력가들이 거느리고 있던 사병들을 해체하고 군사권을 국가의 최고 군사기관인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로 집중시켰다.

 

정종은 서울의 운기가 나빠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는 이유를 들어 수도를 서울에서 다시 개경으로 옮겼다. 그러나 다음 해인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이방원을 왕세자로 책봉하고 9개월 뒤인 음력 1113일에 왕세제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정종으로서는 권력의 중심인 왕위에서 물러나는 것만이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상왕으로 물러난 정종은 인덕궁에서 격구나 사냥, 온천, 연회 등의 오락으로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내다가 세종 1년인 1419년 음력 926일에 63살의 나이에 승하하였다. 능은 개경에 있는 후릉(厚陵)이다.

 

2년 동안의 짧은 치세에 거의 실권이 없었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정종을 과도기 집권자로 여기고 묘호도 올리지 않고 공정대왕’(恭靖大王)으로 불렀으나, 262년이 지난 1681(숙종 7) 음력 12월에 이르러서야 정종이란 묘호를 받게 되었다.

왕위보다 격구를 좋아한 왕

세자가 싫다

개경으로 돌아가자

마음을 비우고 천수를 누리다

 

   

 

조선왕릉 전시관 : http://royaltombs.cha.go.kr/

위키백과 정종 : 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A0%95%EC%A2%85

위키백과 정안왕후 : http://ko.wikipedia.org/wiki/%EC%A0%95%EC%95%88%EC%99%95%ED%9B%84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http://blog.naver.com/ksl3699?Redirect=Log&logNo=80163897907

길손의 자유여행 : http://blog.daum.net/b-pyung/15609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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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 효령대군 주계군파 : http://cafe.naver.com/lee1454/4220

학루당 : http://blog.naver.com/micro21c?Redirect=Log&logNo=20127757428&from=postView

블루미르의 서평/리뷰 나부랭이 http://bluemir9.tistory.com/511

   

직지사 조선 2대 정종의 태실

 

정안왕후 김씨(定安王后 金氏, 1355 ~ 1412)

1355(공민왕 4)1412(태종 12). 조선 제2대왕 정종의 비. 경주김씨(慶州金氏), 판예빈시사 증문하좌시중월성부원군(判禮賓寺事贈門下左侍中月城府院君) 천서(天瑞)의 딸이다. 1398(태조 7) 8월 정안군(靖安君:태종) 등에 의한 정도전(鄭道傳)일파의 제거 및 이를 계기로 한 세자 의안대군(宜安大君)의 폐출로 영안군(永安君)이 세자가 되면서 세자비가 되었고, 같은해 9월에 덕빈(德嬪)에 봉해졌다가 정종이 즉위하면서 덕비(德妃)에 진봉(進封)되었다. 1400(태종 즉위년) 정종이 태종에게 전위하고 상왕이 되자 순덕왕대비(順德王大妃)의 존호를 가상(加上)받았다. 인자하고 후덕하였으며, 정종에게 선위하고 정양할 것을 권하여 정종이 조기에 선위 및 천수를 다하게 한 내조가 있었다. 소생은 없었고, 능은 개성의 후릉(厚陵)이다. 1681(숙종 7) 온명장의(溫明莊懿)의 휘호를 추상받았다.

 

아들 불노

정종은 후궁인 가의궁주 유씨에게서 불노라는 이름의 아들을 보았다. 이후 정종은 왕위에 즉위하자 불노를 원자라고 칭하였으나, 이 일은 동생 이방원의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이방원은 불노의 원자 칭호를 박탈하고 자신이 왕세자가 되었다.

 

 

 

 

현황(現況)    

 

    

 

 

조선조 王室世系表 [ 27, 517, 1392 - 1910 ]

 

 

 

 

() 13()

숭인원(崇仁園 : 사적 제361) :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 내

영원(英園 : 사적 제207)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금곡동(金谷洞)

영휘원(永徽園 : 사적 제361) :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 내

효창원(孝昌園 : 사적 제200)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휘경원(徽慶園 : 사적 제360)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진접읍(榛接邑) 부평리(富坪里)

의령원(懿寧園 : 사적 제200)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수경원(綏慶園 : 사적 제198)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수길원(綏吉園 : 사적 제359) : 경기(京畿) 파주시(坡州市) 광탄면(廣灘面) 영장리(靈場里)

소령원(昭寧園 : 사적 제358) : 경기(京畿) 파주시(坡州市) 광탄면(廣灘面) 영장리(靈場里)

영회원(永懷園 : 사적 제357) : 경기(京畿) 광명시(光明市) 노온사동(勞溫寺洞)

소경원(紹慶園 : 사적 제200)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순강원(順康園 : 사적 제356)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진접읍(榛接邑) 내각리(內閣里)

순창원(順昌園 : 사적 제198)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사후에 왕()으로 추존(追尊)된 왕릉(王陵) 5()

익종(翼宗) 수릉(綏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장조(莊祖) 융릉(隆陵 : 사적 제206) : 경기 화성시 태안읍(台安邑) 안녕리(安寧里)

진종(眞宗) 영릉(永陵 : 사적 제205) : 경기 파주시 조리읍(條里邑) 봉일천리(奉日川里)

원종(元宗) 장릉(章陵 : 사적 제202) : 경기 김포시 김포읍(金浦邑) 풍무동(豊舞洞)

덕종(德宗) 경릉(敬陵 : 사적 제198)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폐위(廢位)된 묘() 2()

15대 광해군(第十五代 光海君) 광해군묘(光海君墓 : 사적 제363) :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眞乾邑)

10대 연산군(第十代 燕山君) 연산군묘(燕山君墓 : 사적 제362) : 서울 도봉구(道峰區) 방학동

황제릉(皇帝陵) 2()

27대 순종(第二十七代 純宗) 유릉(裕陵 : 사적 제207)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26대 고종(第二十六代 高宗) 홍릉(洪陵 : 사적 제207) : 경기(京畿) 남양주(南楊州)

왕릉 35

25대 철종(第二十五代 哲宗) 예릉(睿陵 : 사적 제200)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24대 헌종(第二十四代 憲宗) 경릉(景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23대 순조(第二十三代 純祖) 인릉(仁陵 : 사적 제194) : 서울 서초구(瑞草區) 내곡동(內谷洞)

22대 정조(第二十二代 正祖) 건릉(健陵 : 사적 제206) : 경기 화성시(華城市) 태안읍(台安邑)

21대 영조(第二十一代 英祖) 홍릉(弘陵 : 사적 제198)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21대 영조(第二十一代 英祖) 원릉(元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20대 경종(第二十代 景宗) 혜릉(惠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20대 경종(第二十代 景宗) 의릉(懿陵 : 사적 제204) : 서울 성북구 석관동(石串洞)

19대 숙종(第十九代 肅宗) 대빈묘(大嬪墓 : 사적 제198)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19대 숙종(第十九代 肅宗)익릉(翼陵 : 사적 제198) : 경기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용두동

19대 숙종(第十九代 肅宗) 명릉(明陵 : 사적 제198)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용두동(龍頭洞)

18대 현종(第十八代 顯宗) 숭릉(崇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17대 효종(第十七代 孝宗) 영릉(寧陵 : 사적 제195) : 경기 여주시(驪州市) 능서면(陵西面)

16대 인조(第十六代 仁祖) 휘릉(徽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16대 인조(第十六代 仁祖) 장릉(長陵 : 사적 제203) : 경기 파주시(坡州市) 탄현면(炭縣面)

14대 선조(第十四代 宣祖) 성묘(成墓 : 사적 제365) :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眞乾邑)

14대 선조(第十四代 宣祖) 목릉(穆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13대 명종(第十三代 明宗) 강릉(康陵 : 사적 제201) : 서울(Seoul) 노원구(蘆原區)

12대 인종(第十二代 仁宗) 효릉(孝陵 : 사적 제200)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

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태릉(泰陵 : 사적 제201) : 서울(Seoul) 노원구(蘆原區)

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태릉(泰陵 : 사적 제201) : 서울(Seoul) 노원구(蘆原區)

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희릉(禧陵 : 사적 제200)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온릉(溫陵 : 사적 제210) : 경기(京畿) 양주시(楊州市) 장흥면(長興面)

11대 중종(第十一代 中宗) 정릉(靖陵 : 사적 제199) : 서울 강남구 삼성동(三成洞) 테헤란로

9대 성종(第九代 成宗) 회묘(懷墓 : 사적 제200) : 경기 고양시 덕양구(德陽區) 원당동(元堂洞)

9대 성종(第九代 成宗) 순릉(順陵 : 사적 제205) : 경기 파주시 조리읍(條里邑) 봉일천리(奉日川里)

9대 성종(第九代 成宗) 선릉(宣陵 : 사적 제199) : 서울 강남구 삼성동 테헤란로(Teheran)

8대 예종(第八代 睿宗) 공릉(恭陵 : 사적 제205) : 경기(京畿) 파주시(坡州市) 조리읍(條里邑)

8대 예종(第八代 睿宗) 창릉(昌陵 : 사적 제198) : 경기(京畿)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7대 세조(第七代 世祖) 광릉(光陵 : 사적 제197) :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와 포천군

6대 단종(第六代 端宗) 사릉(思陵 : 사적 제209) : 경기(京畿) 남양주시(南楊州市) 진건읍(眞乾邑)

6대 단종(第六代 端宗) 장릉(莊陵 : 사적 제196) : 강원(江原) 영월군(寧越郡) 영월읍(寧越邑)

5대 문종(第五代 文宗) 현릉(顯陵 : 사적 제193) : 경기(京畿) 구리시(九里市) 인창동(仁倉洞)

4대 세종(第四代 世宗)

3대 태종(第三代 太宗)

2대 정종(第二代 定宗)

1대 태조(第一代 太祖) 정릉(貞陵 : 사적 제208) : 서울 성북구 정릉2

1대 태조(第一代 太祖) 제릉(齊陵) : 개성직할시(開城直轄市) 판문군(板門郡) 상도리(上道里)

1대 태조(第一代 太祖) 건원릉(健元陵 : 사적 제193) : 경기 구리시 인창동

 

조선왕릉(朝鮮王陵)의 계보

 

 

 

 

목조-덕릉 효공왕후 이씨-안릉

익조-지릉 정숙왕후 최씨-숙릉 , 손씨

도조-의릉 경순왕후 박씨-순릉, 조씨

환조-정릉 의혜왕후 최씨-화릉, 이씨, 정빈 김씨

태조-건원릉 신의왕후 한씨-제릉 신덕왕후 강씨-정릉

정종-후릉 정안왕후 김씨-후릉

태종-헌릉 원경왕후 민씨-헌릉

세종-영릉 소헌왕후 심씨-영릉

문종-현릉 현덕왕후 권씨-현릉

단종-장릉 정순왕후 송씨-사릉

세조-광릉 정희왕후 윤씨-광릉

예종-창릉 장순왕후 한씨-공릉 안순왕후 한씨-창릉

성종-선릉 공혜왕후 한씨-순릉 폐비 윤씨-회묘 정현왕후 윤씨-선릉

연산군-연산군묘 폐비 신씨-연산군묘

중종-정릉 단경왕후 신씨-온릉 장경왕후 윤씨-희릉 문정왕후 윤씨-태릉

인종-효릉 인성왕후 박씨-효릉

명종-강릉 인순왕후 심씨-강릉

선조-목릉 의인왕후 박씨-목릉 인목왕후 김씨-목릉

광해군-광해군묘 폐비유씨-광해군묘

인조-장릉 인렬왕후 한씨-장릉 장렬왕후 조씨-휘릉

효종-영릉 인선왕후 장씨-영릉

현종-숭릉 명성왕후 김씨-숭릉

숙종-명릉 인경왕후 김씨-익릉 인현왕후 민씨-명릉 인원왕후 김씨-명릉

경종-의릉 단의왕후 심씨-혜릉 선의왕후 어씨-의릉

영조-원릉 정성왕후 서씨-홍릉 정순왕후 김씨-원릉

정조-건릉 효의왕후 김씨-건릉

순조-인릉 순원왕후 김씨-인릉

헌종-경릉 효현왕후 김씨-경릉 효정왕후 홍씨-경릉

철종-예릉 철인왕후 김씨-예릉

고종-홍릉 명성황후 민씨-홍릉

순종-유릉 순명효황후 민씨-유릉 순정효황후 윤씨-유릉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