草霧의 세상구경을 시작합니다./정리는 청소이다.

좋은 날은 기억하며 살자

草霧 2010. 4. 14. 13:12

어느 부부에게나 찾아오는 기념일 증후군


 

좋은 날은 기억하며 살자

 

 

사례1
남편과 대학 때 만나 결혼을 했다. 5년이 넘는 연애 끝에 결혼했기에 함께 공유하는 추억도 많고 여러 가지 사건도 많았다. 워낙 아기자기하고 가족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는 작은 기념일에도 맛있는 반찬 한 가지라도 준비해서 분위기를 마련하는 편이다.
내가 남편에게 결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의 추억이 담긴 날에는 다정하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는 것이 뭐 그리 힘드냐는 것이다. 사실 가족 경조사를 챙기다 보면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다. 양쪽 집안 식구들의 생일이나 경조사에 선물도 해야 되고, 우리 가족만의 기념일에 외식이라도 하게 되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단지 내가 바라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기념일에 나누는 말 한마디와 퇴근길에 들고 오는 장미꽃 한 송이뿐.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러나 남편은 뻔히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기념일에도 무슨 청구서라도 날아온 양 대뜸 “기념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식의 불쾌한 말로 인사를 하는 것이 다반사다.
그러면서도 시댁 식구들의 생일이나 조카들 생일에는 일일이 선물 품목까지 정해주며 잊지 말고 챙기라고 간섭한다. 그런데도 정작 나와의 추억이 담긴 기념일에는 무관심한 것이 마치 대범한 남자들의 정석인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얼마 전 남편의 생일을 맞아 와인 한잔과 간단한 안주를 준비해서 축하 파티를 했다. 한편으론 어색해하면서도 남편은 매우 즐겁고 흡족해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행복했던 만큼 상대방을 위해 케이크 전문점에서 아내의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들어오는 남편.
이런 모습을 기대하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아내일까?


사례2
아침부터 아내 얼굴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출근하기 바쁜 내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모양이 분명 오늘도 무슨 기념일인가 보다. 그러나 기념일을 생각해내기엔 출근길이 너무 바쁘다. 그래서 모른 척했던 아내의 기분은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가도 쳐다보지도 않는 아내의 기분을 맞추려고 말을 시키니 아내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기나 해?”
“또 무슨 날인데?”
“또? 그래 우리가 만난 날도 또야? ”
그럼, 오늘은 바로 우리가 만난 지 한 10주년은 되었을 날이다. 아! 너무도 정확한 아내의 숫자 감각이다. 바로 지난주에 결혼 5주년 기념 외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엔 처음 만난 날 기념이란다. 지지난 달엔 약혼 기념일과 아내의 생일이 있었고, 부모님 생일과 조카들 생일, 연말 모임, 크리스마스 그리고…. “도대체 우리가 만난 날까지 챙겨야 해?”
너무 많은 기념일에 지쳐 한마디했더니, 아내는 토라져 며칠째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좋은 날은 그냥 좋은 날이라고 지나간 추억을 얘기하며 보내면 어떨까? 사실 나는 내 생일을 챙기는 것도 귀찮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남자들은 왜 그리 이벤트를 좋아하는지. 얼마 전 TV에 나온 한 남자 탤런트의 토크쇼를 보면서 아내와 나는 또 한 번 싸웠다. 그 남자 탤런트는 인생 그 자체를 아내와 가족을 위한 이벤트를 위해 사는 사람 같았다. 하긴 나도 그 배우처럼 돈 많이 벌고 시간이 남아돈다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무뚝뚝한 사람이긴 하지만 최소한의 경조사나 기념일은 챙기며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나는 매일 지나간 날만 기념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아내와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의 소중한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다. 그 많은 기념일들을 조금만 줄여주면 안 될까?     


전문가 조언
부인께서는 가족들에게 의미 있는 날들을 잘 챙기시는 것 같네요. 이런 날들을 일일이 챙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도 말이에요. 그런 면에서 부인은 매우 아기자기하신 분 같습니다. 부인의 이런 노력은 축하받는 당사자나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혼 5년차쯤 되면 가정생활도 쉽게 무미건조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나 남편에게는 가족 행사를 일일이 기억하고 챙기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성들은 일반적으로 관계 중심적이기보다 일 중심적인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즉, 남성들의 경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안이 아니면 관심도 없고 집중도 잘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행사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가족이나 부인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사실 두 분의 문제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갈등이고, 버리기 아까운 가족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두분만의 새로운 규칙을 잘 만든다면, 가족 화목과 부부관계 향상이라고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가족의 기념일(이를테면 양가 부모님 생신, 결혼기념일, 가족 생일, 크리스마스 등등)에 대한 범위를 정해보세요. 부부가 함께 해야 할 행사와 각자 해도 될 행사, 어디까지는 챙기되 어디까지는 생략하기, 어떤 날은 이렇게 보내고 다른 날은 저렇게 보내기 등등에 대한 두 분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합의된 사항을 가지고 얼마간 생활해보시면서 문제점은 무엇인지, 잘 지켜지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뭔지, 더 잘 지켜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등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부부 모두가 공평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족 행사와 관련한 규칙을 다듬어나가시면 됩니다. 가족생활이란 이와 같이 끊임없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