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만년의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왕조들이 거듭되면서 역사는 승자를 위해 흘러왔다. 따라서 한반도 곳곳에는 나라의 주체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그들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 적지 않다. 우리에게는 잊혀진 망국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일지라도 그 역시 우리 역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음은 부인 할 수 없다. 이러한 곳을 직접 찾아가 봄으로써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사람들의 역사적 공과를 교훈적인 입장에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신라와 당이 연합한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에 수륙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에 육박하자, 백제 의자왕은 결국 항복하고 백제가 멸망하게 되었다. 이때 궁녀들이 욕을 면하고자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에 올라 백마강에 몸을 던졌는데, 이곳을 낙화암이라 부른다. 낙화암은 삼국통일 무렵 백제의 멸망을 되새기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신라와 당이 연합한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에 수륙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에 육박하자, 백제 의자왕은 결국 항복하고 백제가 멸망하게 되었다. 이때 궁녀들이 욕을 면하고자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에 올라 백마강에 몸을 던졌는데, 이곳을 낙화암이라 부른다. 낙화암은 삼국통일 무렵 백제의 멸망을 되새기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이후 신라는 후삼국시대를 맞아 점점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으며, 후백제 견훤군의 침입으로 죽은 경애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경순왕은 결국 고려의 왕건에게 항복해 몸을 의탁하게 된다. 이에 반대한 마의태자가 건립한 곳이 중원 미륵리사지라고 전해진다. 이후 경순왕은 경기도 연천군에 묻혔다.
고려 말 중국 명나라와의 전쟁에 반대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 공민왕의 아들 우왕은 폐위되고, 창왕 역시 잇달아 곧 폐위된다. 그리고 이성계의 추대로 즉위한 이가 공양왕이다. 공양왕은 조선의 건국 후 결국 삼척에서 살해되었으며, 이후 무덤이 고양현으로 이장되면서 삼척과 고양 두 곳에 무덤이 존재하게 되었다.
조선 말기에 일제의 만행으로 경복궁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된다. 이후 아관파천 등의 사건을 거쳐 결국 덕수궁 중명전에서 190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제2차 한일협약(을사조약)이 체결되게 된다. 을사조약 체결로 우리나라는 외교권을 잃고 이어 한일합방으로 국권을 침탈당하면서, 36년간 기나긴 독립운동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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